[스포츠카 세계의 진주들]토요타와 야마하의 합작품, 토요타 200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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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카 세계의 진주들]토요타와 야마하의 합작품, 토요타 2000GT
  • 박병하
  • 승인 2017.11.2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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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유명한 토요타자동차(이하 토요타)와 이륜차로 유명한 야마하발동기(이하 야마하)는 서로 전혀 다른 분야가 주력임에도 불구하고 협력을계속해 오고 있다. 특히 현재 야마하는 토요타의 고급 브랜드 렉서스의 고성능 디비전인 ‘F’ 모델들의 연구 개발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토요타와 야마하의 합작품 중 비교적 최근의 것으로는렉서스의 슈퍼카, ‘LFA’를 들 수 있다. LFA의 번개같은리스폰스와 격렬한 회전 상승, 그리고 고회전형 엔진만이 줄 수 있는 하이피치의 짜릿한 배기음을 선사하는4.8리터 V10엔진이 바로 야마하의 튜닝을 거친 작품이다. 또한 IS F로부터 비롯된 5.0V8 엔진은 현재 RC F와 GS F, 그리고최근 국내에서도 출시한 럭셔리 쿠페 LC500의 심장으로 사용 중이다.

렉서스 F 디비전을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이 두 기업 간의 관계는 사실 그 역사가 꽤 길다. 그들의 공생관계는 반세기 전, 일본의 모터리제이션이 한창이었던 시절인 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당시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너도나도 스포츠카의 개발을 서두르고 있었다.스포츠카의 개발은 제조사의 이미지 제고에 있어 더할 나위없이 좋은 수단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두 기업이 손을 잡기까지

1960년대 당시 닛산의 브랜드인 닷슨(Datson)에서는이미 59년부터 그 이름도 유명한 페어레이디(Fairlady) 시리즈의 2세대 모델을 내놓고 있었다. 그리고 혼다는 ‘S500’을 시작으로 한 경량/고성능 소형 스포츠카, S시리즈를 내놓으며 주목받았고 있었다. 토요타는 65년부터 ‘스포츠 800(Sports800)’이라는 이름의 소형 스포츠카를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차는 동사의 소형 승용차, ‘퍼블리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스페셜티 카에 가까운 차였다. 따라서 경쟁자들에 비해 성능이 부족한 것은 물론, 한 기업의 이미지를대표할 만한 재목으로 내세울 수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으로서는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당시 토요타는 크라운과퍼블리카 등, 대중차를 주력으로 해 왔던 제조사였다. 그때문에 스포츠카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디자인, 엔진 기술, 고급소재 사용 등과 같은 경험이 경쟁자들에 비해 부족한 상황이었고 브랜드 이미지마저 보수적인 브랜드로 인식되었다.

이에 1964년, 토요타는 코드네임 ‘280A’로 명명된 새로운 스포츠카의 개발에나선다.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차종을 개발하기 위해 인력을 모으고 외관 디자인과 섀시의 설계를 진행했다. 그리고 동년 12월에는 이미 구조 강도의 설계까지 완료된 상태로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당시이륜차 사업으로 잘 알려져 있었던 야마하는 닛산과 공동으로 고성능 스포츠카 ‘A550X’의 개발을 진행하고있던 중이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야마하는 닛산과 협력 관계를 맺어 오고 있었으며, 그 덕분에 독일에서 넘어 온 알브레히트 괴르츠에게 외관 디자인을 맡길 수 있었다. 알브레이트 괴르츠는 독일계 미국인 디자이너로 BMW 507, 닛산페어레이디 Z, 그리고 초대 닛산 실비아 등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다.

야마하의 주도로 개발되고 있었던 A550X는 컨셉트카까지 만들어질 만큼 개발이 상당한 수준으로 진척되어 있었다.그러다 1964년, 닛산 측의 사정으로 인해, 이 프로젝트의 진행은 전면 중지되고 말았다. 이 때 당시 야마하발동기의사장이었던 카와카미 겐이치(川上 源一)는 중간에 엎어져 버린이 프로젝트를 살려내기 위해 프로젝트가 중지되자마자 토요타와 접촉을 시도했다. 당시 토요타가 누구보다도스포츠카를 원했지만 스포츠카의 개발과 생산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는 점을 알고 접근한 것이다. 이렇게야마하와 토요타는 ‘새로운 스포츠카의 개발’이라는 하나의목표를 공유하는 파트너십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양사의 주특기가 시너지를 이룬 성공적인 합작품

토요타와 야마하가 손을 맞잡으면서 새로운 스포츠카의개발은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섀시 등의 기본 설계는 토요타의 것을 채용하고 1965년 1월 경, 토요타측이 자사의 개발진을 야마하로 보내 신차의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도록 했다. 개발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진행되어, 합작 개발 착수 후 불과 11개월만에 시제차가완성되어 토요타에 전달되었다.

이렇게 양사의 협력으로 완성된 토요타 2000GT는 당시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 유래 없는 최고급 GT카로태어났다. 당대의 경향을 충실히 따른 아름다운 외관 디자인, 야마하의손길을 거쳐 고급스럽게 마무리된 실내와 우수한 성능의 엔진 등, 당대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 ‘GT’를 자처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토요타 2000GT의외관은 알브레히트 괴르츠가 디자인한 A550X의 원안을 어느 정도 따르되, 토요타의 차체 설계에 맞춰 대폭 수정을 가했다. 토요타를 위한 자동차였기에, 토요타의 색채를 입힐 필요도 있었다. 따라서 2000GT의 프론트 마스크는 먼저 생산하고 있었던 토요타 스포츠 800의것을 참조한 스타일로 바뀌었으며, 보다 곡선적인 형태를 띄는 실루엣을 지니게 되었다. 롱 노즈 숏 데크의 프로포션과 미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토요타 2000GT의실루엣은 당대에도 손꼽히는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실내에는 고급 가죽 소재를 아낌 없이 사용했으며, 전용의 천연 장미목(Rosewood) 장식으로 마감하여 고급스러운분위기를 자랑했다. 또한 당시 흔치 않았던 라디오 튜너를 비롯한 최신식 편의 장비를 다량으로 탑재하여편의성 면에서도 앞섰다.

토요타가 만들어 야마하의 손길로 완성된 토요타 2000GT의 엔진은 고급세단 크라운에 사용하고 있었던 2.0리터배기량의 토요타제 직렬 6기통 엔진이다. 이 엔진에는 3개의 2연장 카뷰레터와 야마하 DOHC헤드 및 밸브트레인을 사용하여 150마력/6,600rpm의최고출력을 발휘했다. 이는 당시 시판중이었던 혼다 S800이나닛산 페어레이디에 비해 한층 강력한 성능이었다. 엔진의 강력한 동력은 전용의 5단 수동변속기를 통해 뒷바퀴로 전달되었다.

토요타 2000GT의변속기는 아이신(AISIN)에서 제작하여 공급하였다. 그리고이 변속기는 아이신이 처음으로 개발한 승용차용 변속기이기도 하다. 차동 기어에는 일본 자동차 업계 최초로차동제한장치(LSD)가 도입되었으며, 4륜에 모두 디스크브레이크를도입하는 등의 선진적인 하드웨어로 무장했다. 이 든든한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토요타 2000GT는 217km/h에 달하는 최고속도를 자랑했다.

토요타 2000GT는그야말로 양사의 서로 부족한 부분들이 이상적으로 상호보완을 이룬 결과물이라 할 수 있었다. 토요타에게부족했던 목재 등 고급 소재의 가공 노하우와 고성능 지향의 엔진 기술은 야마하가 채워주고 야마하에게 부족했던 사륜자동차의 생산 및 품질 관리에대한 노하우는 토요타가 채워주었던 것이다.

야마하는 목재를 다루는 데 있어 튼실하게 노하우를쌓아왔다. 야마하는 피아노 수리로 사업을 시작하여 고급의 악기를 제작하면서 목재를 다루는 법을 체득했고, 그 경험을 살려 항공기의 가변피치 프로펠러까지 제작하기도 했다. 그야말로목재 가공의 ‘달인’인 셈이었다. 또한 당시 일본의 이륜차 업계는 사륜자동차보다도 빠르게 고성능화가 진행되고 있었기에, DOHC 등과 같은 고급 기술들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었다. 따라서토요타가 미리 만들어 둔 2.0리터 엔진은 야마하의 DOHC 실린더헤드를 사용하는 등의 조율을 거쳤다.

2000GT의 생산은 야마하가 전담하고 있었다. 그러나 야마하는사륜자동차 생산 경험이 부족했으며, 자동차를 위한 부품을 제작할 수 있는 역량도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토요타는 한 대의 자동차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클러치, 변속기, 차동기어, 추진축 등, 대부분의부품을 독자적으로 설계 및 공급할 수 있었고, 사륜차 생산에 대한 노하우를 충분히 쌓고 있었던 덕분에차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데에는 토요타의 역량이 크게 작용했다.

토요타 2000GT는시장을 선도하는 카탈로그 스펙은 물론, 당시 양사가 펼칠 수 있었던 최대의 역량을 투입하여 만들어진자동차였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차 자체의 단가는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코요타 2000GT의 1967년출시 당시 가격은 238만엔이었다. 이 가격은 당시 크라운 2대분, 혹은 코롤라 6대분에해당하는 엄청난 가격이었다. 따라서 토요타 2000GT는1970년 단종될때까지 고작 약 350대만 생산된 채 단종을맞았다. 그 중 60대는 북미 지역으로 수출되었다.

토요타 2000GT는007 시리즈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일본을 배경으로 한작품인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에서하드탑 컨버터블 형태의 본드카로 등장했다. 이 차는 오로지 영화 촬영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이유는 쿠페형 2000GT의 실내가 협소하여 주연 배우인 숀코너리의 체격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컨버터블 사양의 2000GT는영화 촬영용으로 딱 2대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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