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동차미래연구소가 21일(목)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 2소회의실에서 `자율주행차 사고책임에 관한 법률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각계 전문가들은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이 자율주행차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데에 공감하는 한 편, 자율주행차로 인한 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에 한 목소리를 냈다. 현재 자동차와 관련한 현행법령은 총 21개(시행령과 시행규칙까지 포함하면 약 48개) 항목에 달하지만, 그중에서 자율주행차와 관련한 현행법령은 아직 미비한 상황이다.
이날 전문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2020년에는 레벨3 등급에 해당하는 자율주행 기술이 양산될 것으로 보인다. 레벨3 자율주행 기술이란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서 정의한 자율주행기술 단계 중 하나로, 차량의 조향, 제동, 가속 등이 모두 자동화될 뿐만 아니라 감시 및 제어 기능까지 갖춘 상태를 가리킨다. 쉽게 말해 운전자가 손발을 전혀 쓰지 않고 심지어는 눈을 감고 있어도 되며, 특정 상황 시에만 개입하면 되는 단계를 말한다. 그러나 지난 레벨1, 2 자율주행차가 그 동안 현행법을 적용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던 것과는 달리, 완전 자율주행(레벨4)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레벨3의 경우 사고 발생 시 현재 법 체계만으로는 법적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법률적인 보완이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국민대학교 자동차융합대학장 김정하 교수는 레벨3 자율주행차의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자율주행차와 운전자뿐만이 아니라 국가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제조사가 만든 자동차를 승인하여 번호판을 부여한 것은 국가``라며, ``레벨3 자율주행 기술이 상용화되면 사고 책임을 놓고 운전자, 제조사, 국가 등의 책임을 적절한 비율로 나눌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법무법인 한민-대교 조석만 변호사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운전하는 자율주행차나 무인차의 경우 더는 전통적인 운전자의 개념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인공지능을 운전자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또한 ``현실적으로 당장 2020년 상용화가 임박한 레벨3 자율주행차의 초점을 맞춰 사고 시 법적 책임을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도로교통법`, `교통사고처리특별법`,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제조물책임법` 등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청 호욱진 교통조사계장은 자율주행차 산업을 키워나가는데 우선적인 규제를 하는 것이 조심스럽다며 ``처벌은 자율주행차가 완전히 궤도에 오른 후 병리 현상이 일어난다면 논의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자율주행차 전용도로나 시범도시 운영 등의 사례를 들며 ``차와 운전자 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도로와 인프라 등 주행 환경에 대한 논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도로교통공단 본부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 류태선 팀장은 현행 법규에서는 자율주행시스템 결함에 대한 증명 책임이 운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때문에 ``자율주행차 사고에 있어 운전자의 부주의인지, 혹은 자율주행 시스템의 결함인지를 명확히 판단할 수 있도록 사고 전후의 영상기록, 사고기록 등을 담을 수 있는 블랙박스 설치 의무화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 김승현 팀장은 관점을 달리하여 `자율주행차 소유권을 개인에 허용해도 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을 지적했다. 미국 캘리포니아가 자율주행차의 안전성이 완전히 확보되지 않을 경우 대여 또는 리스 형태로만 허용하겠다고 발표한 점이 그 근거다. 그는 또한 ``자율주행차의 물적 손해 책임 소재 부분에 있어 법적 공백이 있다는 점도 보완되어야 한다``며 ``급발진 소송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제조사뿐만 아니라 이용자와 보험사, 조사기관 등의 관련자가 모두 사고 정보에 대해 접근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KB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신정관 이사는 자율주행차의 상용화에 앞서 블랙박스나 텔레매틱스 등의 기술을 이용하여 실시간 차량 운행 상태를 기록하는 도로교통모니터링 시스템의 구축이 선결과제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또한 차량 운행정보가 제조사를 통해 집적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를 보험사와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현재 초-중기 단계의 자율주행차는 이미 양산되어 도로를 달리고 있다는데 공감하며, 안전하고 편리한 자율주행차 이용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자율주행차의 법적 제약과 자율주행 인프라, 차량 보안 등 다양한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아울러 2020년까지 레벨3, 2035년 레벨4 자율주행의 상용화에 앞서 운전자들과 전문가, 제조사까지 기술의 위험성을 알고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법률제정이나 제도적인 뒷받침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도 있다는 것으로 토론회는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