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 GT-R

기사입력 2011.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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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를 꺽다. 車神, GT-R
포르쉐와 숙명의 대결을 펼친, 1966년 R380부터 내려온 레이싱 혈통


[1부: "포르쉐를 꺽어라"]


프린스 스카이라인. 생소한 느낌이겠지만, 애초에 스카이라인은 프린스 자동차의 것이었다. 몇몇 항공 기술자들이 기반으로 세운 전기차 회사를 기반으로 한 조그만 기업. 하지만 항공 기술자 출신답게 기술에 대한 자존심은 대단했다. 전기차에서 휘발유차의 생산으로 업종을 바꾼 그들이 선택한 활로는 일본 그랑프리. 경주에서 승리하여 자동차의 성능을 널리 알리겠다는 계획이었다.

1963년에 제 1회 일본 그랑프리가 열리고, 당시 각 메이커들은 튜닝하지 않은 순정차 그대로 경주를 하기로 협의했다. 하지만 막상 실제 경주가 치뤄지자, 튜닝을 하지 않은 차량은 프린스 자동차의 스카이라인 GT밖에 없었다. 그리고 참담하게 졌다. 순진한 공학자들의 패배였다.

1964년, 당시 일본에서는 수입차에 대항하기 위해, 자동차 회사의 경쟁력을 키운다는 명목아래 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자동차 회사 합병계획이 흘러나왔다. 작은 회사가 큰 회사에 합병되는 방식의 메이커 일제 정리.

작은 회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둬야 했다. 기술력을 보여주기 가장 알맞은 곳은 자동차 경주장이다. 그 곳에서의 승리, 작년의 복수를 위해 엔지니어들은 최선을 다해 스카이라인 2000GT S54 레이스카를 만들어냈고, 제 2회 일본 그랑프리가 열렸다.



결과는, 모든 일본 자동차 회사를 손쉽게 이겼지만 졌다. 개인 드라이버가 갑자기 들여온 포르쉐 904에게 완전히 지고 만 것. 설상가상으로 1965년 그랑프리는 취소되고, 1966년 8월자로 닛산에 흡수합병이 결정된다.

마지막 남은 복수의 기회는 1966년 그랑프리. 단 한 번의 기회만이 남았다. 포르쉐를 타도할 자동차를 만들어내야만 했다. 당시 포르쉐 904의 엔진출력은 180마력, 무게는 700kg에 가까웠다. 첫번째 목표는 엔진 출력의 상승. 두번째 목표는 904를 이길 수 있는 가벼움을 갖춘, 운동 성능을 뽑아낼 수 있는 새로운 차체의 개발이었다. 

기존의 엔진 헤드를 DOHC방식으로 바꾸고, 윤활유의 공급방식을 스케벤징 펌프를 이용해서 실린더에 윤활유 자체를 쏟아 붓는 방식으로 변경해 안정성을 지키는 식의 여러가지 시도들이 도입됐다. 출력을 높이기 위해 카뷰레터의 수를 늘리는 등 그들이 쏟아부을 수 있는 한계까지 끌어낸 2리터 직렬 6기통 자연흡기 엔진은 시운전 테스트에서 놀랍게도 225마력을 기록했다. (정식 레이스에서는 200마력/8000rpm으로 재조정)

문제는 차체였다. 세단만 만들어본 그들이 퓨어 레이스카인 포르쉐 904를 꺽을만한 차체를 만든다는 것 그 자체가 고난 그 자체다. 돈 계산을 하는 메이커라면 절대 하지 못할 일.

1년전 레이스 카로 썼던 S54의 경량형 철제 바디는 1070kg. 새로 만들어야 하는 차체의 무게는 700kg 이하. 370kg 차이. 다시 말하면 35%의 감량을 생각하고 제작해야 하는 매우 힘겨운 상황이다.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차체 소재의 교체였다. 기존의 강철 보디를 알루미늄 보디로 바꾸는 과정만이 해결책이었다. 항공기 엔지니어들의 회사였던 덕분이었을까. 당시 항공기의 알루미늄 용접을 담당하던 베태랑들이 도전에 나섰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660kg. 포르쉐 904를 뛰어넘는 성능의 자동차는 준비됐다. 이름은 R380.



포르쉐가 이 작은 자동차 회사를 신경쓸 일은 전혀 없었겠지만, 또 다시 포르쉐가 프린스 자동차 회사에 타격을 줄만한 일이 생겼다. 포르쉐 904보다 더 뛰어난 성능의 포르쉐 906이 제 3회 일본 그랑프리에 참전한다는 것. 포르쉐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그들이 포르쉐 타도의 열망을 더욱 불태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머신이 전부 준비된 이상, 남은 것은 레이스의 준비밖에 없다. 타이어 교체 연습과 주유 연습에 열을 올리며, 프린스 자동차는 대회를 준비해갔다.

1966년 5월 13일에 열린 제 3회 일본 그랑프리는 일본차 메이커에게 재앙이나 가까운 상황이나 다름없게 됐다. 재규어, 로터스, 포드, 포르쉐와 같은 유명 메이커들의 차량이 참전하는데다, 후지 스피드웨이를 60바퀴 도는 장거리 경주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선두로 올라선 차량은 프린스 자동차의 R380, 그 뒤를 바짝 쫒아오는 포르쉐 906. 이 팽팽한 기싸움은 계속 이어져 결국 24바퀴 째에서 R380이 포르쉐의 906에 추월당하나, 31랩에 포르쉐 906이 급유를 위해 피트인하고 R380이 다시 선두로 올라선다.

906의 급유에 걸린 시간은 1분, 거리는 제법 벌어졌지만, 아직 R380은 급유조차 하지 않았다. 급유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고, 급유를 한다면 포르쉐 906과 격차는 거의 없을 것이다.

36랩째, R380의 급유가 개시됐다. 급유에 걸린 시간은 약 15초. 906에 비해 약 35초가 짧은 시간. 프린스 자동차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했다. 연료통을 높은 곳에 놓아두어 연료가 떨어지는 유속을 높였고 단번에 주유를 마쳤다. 이로써 906과의 격차는 확실히 벌어졌다.

선두를 유지하던 R380, 게다가 47랩에서 906이 스핀하면서 중도 탈락했고, 이 이후로는 완전한 R380의 독무대가 되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들의 마음을 누르고 있던 우승과 포르쉐에 대한 설욕은 이렇게 끝났다.

이윽고 8월 1일, 프린스 자동차가 닛산에 합병되던 날. 닛산은 프린스 자동차의 합병에서 프린스 자동차의 기술을 전수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프린스 자동차의 직원들은 닛산 자동차의 개발부에서 그들의 작품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프린스 자동차의 직원들은 닛산에서 스카이라인 모델을 이어가기 시작했고, 합병후 1년이 지난 1969년, 닛산 스카이라인 GT-R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기술을 집약한 자동차를 만들어낸다.



당시 2리터 직렬 6기통 엔진으로 160마력을 뽑아내고, 수동 5단 변속기와 짝지었으며, 레이스에서 49연승, 50승 이상의 거대한 성과를 거뒀다.

이렇게 닛산 스카이라인 GT-R의 서막이 시작됐다. (닛산은 이 이후에도 프린스 자동차의 R380을 존중하는 의미로 르망에 참가하는 GT1 머신의 이름을 R390으로 짓는다.)


[2부: 부활과 침묵]

레이스에서 49연승을 올리고 전설로 사라진 1세대 스카이라인 GT-R에 이어 등장한 2세대 스카이라인 GT-R은 출시 직후 닥친 세계 유가 파동(오일 쇼크)로 인해 채 1년을 생산하지 못하고 1973년 단종된다.

세월이 지나가며 GT-R 없는 스카이라인은 그저 노멀한 일반 자동차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가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한장의 사진이 모든 것을 바꾼다.

뉘르부르크링에 나타난 실비아로 위장한 자동차. 비록 처음에는 엔진 블로우로 리타이어하지만, 혹독한 뉘르부르크링의 담금질을 통해 드디어 1989년의 도쿄모터쇼에 나타난다.

16년만의 부활, 스카이라인 GT-R의 3세대 모델, R32가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이 때부터 코드네임 R34까지 실린 RB26DETT 엔진은 2.6(2568cc)리터 직렬 6기통의 엔진에 트윈 터보 차져를 달아냈고, 보어(86mm)보다 스트로크(73.7mm)가 짧은 고회전 지향의 숏 스트로크 엔진으로 압축비는 8.5:1 이었다.

마력은 일본 내수 제한인 280마력에 묶여 280마력을 6800rpm에서 냈으며, 토크는 약 37kg·m로 4400rpm에서 나왔다. 엔진 한계 회전수는 8000rpm.

GT-R만을 위해 개발된 섀시는 차체 길이 4545mm, 폭 1755mm, 높이는 1340mm에 휠 베이스는 2615mm, 앞 뒤 서스펜션은 멀티링크 타입을 채용, 총 중량은 1430kg였다.

R32에서 현대 GT-R의 기본을 갖추게 되는데, 4륜 동시 조향 시스템인 HI-CAS(하이-카스)와 4륜 구동 제어 시스템인 ATTESSA(아테사)를 달아 코너 스피드에도 중점을 맞췄다.

특히 아테사 시스템의 경우에는 후륜의 슬립이 감지되면 아테사를 담당하는 ECU가 후륜의 슬립양을 판단해 전륜에 필요한 만큼의 토크를 보내는 전자제어 형식으로써, 항상 최적의 트랙션을 유지하도록 한다.



선대 GT-R과 같이 R32의 우월한 성능은 경기장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1990년 치뤄진 전 일본 투어링카 선수권(JTC)에서 등장한 600마력의 칼소닉 스카이라인은 최강자로 불리던 포드 시에라를 가볍게 제압하고 GT-R의 복귀를 알린다. 이후 93년까지의 투어링카 레이스에서 29전 29승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은퇴할때까지, R32는 한번도 지지 않았다.

이런 GT-R의 성능은 튜너들에게도 어필하기 충분했다. 레이스 참전을 염두에 두고 만든 차량을 법규에 맞게 디튠시켜서 내놓은 차답게 섀시 자체는 600마력 이상의 대응에 초점이 맞춰졌고, RB26DETT엔진 자체의 내구성과 잠재력도 엄청난 수준이어서, 튜너들의 엔진 개조 대결이 극에 달하게 됐다.

당시의 마력 경쟁을 보면, 단순한 흡·배기 교체 후 부스트 업을 통해서 휠 마력 350을 얻는 기본부터 시작해, 튜너의 손에서는 500~600마력을 무리없이 뽑아내는 수준이었으며, 점점 대결이 커져갈 수록 고마력화 되어갔다. 기록에 의하면 톱 시크릿의 GT3037S 트윈터보 세팅이 1000마력을 넘겼고, 베일사이드에서 내놓은 GT3540 트윈터보 세팅이 1380마력을 기록했다.

89년 데뷔한 R32는 93년 단종, 94년에는 R33이 나왔고, 98년 R34로 스카이라인 GT-R의 마지막 질주가 시작됐다.

숙성의 끝에 들어선 RB26DETT와 무게 배분을 개선한 차체, 더욱 개선된 코너링, 더욱 발전된 아테사와 하이카스 시스템은 GT-R R34의 독주를 완벽히 굳혔다. 튜너의 캔버스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엄청난 포텐셜을 가진 엔진과 레이스의 승리를 위해 개발된 바디의 조합은 튜너들과 만나 수많은 기록을 세우며, 차신(車神)의 명성을 굳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일본의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2002년에 스카이라인 GT-R은 단종되고 만다.
하지만, 새로운 스카이라인 GT-R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3부: 한계를 넘어, 포르쉐를 꺽다] 

2007년 도쿄 모터쇼, 모든 시선은 단 한대의 차에 집중됐다.
스카이라인 뱃지를 떼어버린, 신형 GT-R이 긴 기다림을 깨고 발표됐다.
완벽하게 새로운 플랫폼에서 시작된 GT-R은 VR38DETT엔진이라는 V형 6기통 트윈 터보 엔진으로 교체, 6단 듀얼 클러치 트랜스 미션을 채택했다.



2008년도 GT-R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완벽하게 새로운 플랫폼에서 시작된 GT-R은 VR38DETT엔진이라는 V형 6기통 트윈 터보 엔진으로 교체, 6단 듀얼 클러치 트랜스 미션을 채택했다. 엔진은 3799cc의 V6 엔진으로 보어(95.5mm)보다 스트로크(88.4mm)가 짧은 숏 스트로크 엔진으로 6400rpm에서 480마력을 내고, 3200rpm에서 60.6kg·m의 토크를 낸다. 아테사 시스템은 계속 유지, 리어 트랜스 액슬에 카본 컴포지트 드라이브 샤프트를 연결하여 경량화도 이끌어냈다.

하지만 대폭 차체가 커지면서 무게 또한 늘었다. 길이는 4655mm, 너비는 1895mm, 높이는 1370mm, 휠베이스는 2780mm, 중량은 1740kg으로 늘어났으며, 제동과 코너링 성능을 위해 전후륜 모두 255/40R20 사이즈의 던롭 SP 스포츠 타이어를 채용하고, 386mm에 상응하는 브렘보의 벤틸레이티드 디스크를 전후륜 브레이크 디스크로 장착했다.

최강의 성능으로 보였지만, 특별 버전인 V스펙을 위한 여유가 있는 것만 같았다. 530마력의 특별판이 선보일 것이라는 소문도 흘렀고, 동시에 충격적인 발표 또한 이어졌다.

2008년 4월 17일. 토시오 스즈끼가 주행한 신형 GT-R이 뉘르부르그링 노르드슈라이페에서 포르쉐의 발터뢸이 2007년 세운 기록인 911 GT2의 7분 32초를 뛰어넘는 7분 29.03초를 기록한 것. 닛산의 의기양양한 발표에 드디어 포르쉐가 입을 열었다. 자체적으로 GT-R을 구해 주행했지만 그런 결과는 나오지 못했다라는 발표에 닛산은 GT-R은 엔지니어의 전담 세팅이 필요하며 원한다면 세팅을 해주겠다는 대답으로 전면 응수에 나섰다.




이어 2009년 4월 23일 제 2차 타임 어택에 들어가 토시오 스즈끼가 주행한 결과 7분 26.7초를 기록, 그간 포르쉐가 양산차로 뉘르부르그링 노르드슐라이페에서 기록한 모든 기록을 깨버린다. 심지어 포르쉐에서 가장 빨랐던 카레라 GT의 7분 28초의 기록도 깨지고 말았다.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졌던 포르쉐의 벽이 깨졌다. 닛산의 ´반값 자동차로 포르쉐를 이긴다´라는 블랙 마케팅이 포르쉐의 심기를 건드렸다.




<닛산 GT-R이 2009년 4월 23일, 뉘르부르그링 노르드슈라이페에서 7분 26.7초를 기록한 영상이다.>

분노한 포르쉐는 곧바로 더욱 강한 620마력의 911 GT2 RS의 개발에 착수, 2010년 4월 시작된 타임 어택에서 티모 클럭의 주행으로 7분 18초를 기록해 반격에 성공했다. 이에 닛산은 GT-R의 페이스 리프트 작업과 동시에 성능향상 작업을 시작했다.

GT-R과 911, 닛산과 포르쉐의 자존심 싸움이 불을 당겨 뉘르부르그링은 격전지로 바뀌어갔다. 2011년에도 3번씩이나 양산차의 반란이 일어났다.

2011년 6월 9일, 콜벳 C6 ZR1이 7분 19.63초를 찍으며 코너에서 느리다고 생각됐던 미국차의 자존심을 끝까지 세웠다.
8월 31일. 렉서스의 LF-A 뉘르부르그링 패키지가 7분 14.64초를 기록, 성공적인 결과를 세우며 양산차 부문 제왕에 오른다.
하지만 2주만인 9월 14일, 닷지 바이퍼의 아메리칸 클럽 레이싱(ACR)버전이 7분 12.13초를 기록, 양산차 부분 제왕을 탈환. 현재 양산차 부문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이 가운데, 포르쉐는 9월에 열린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신형 911인 코드네임 991을 발표했고, 기본형의 성능마저 훨씬 끌어올렸다. 새로운 차체에서 시작되는 최상급 모델은 포르쉐의 안방이나 다름 없는 뉘르부르그링의 탈환을 목표할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2011년 11월 7일, 출력을 550마력으로 증강한 2012년 GT-R이 공개됐다. 0→60마일까지 가속은 단 2.7초. 또한 새로운 구조인 비대칭 서스펜션과 스펙 V에서 넘겨온 트랙 전용 옵션이 준비됐다. LF-A의 뉘르부르그링 패키지에 대응할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날씨가 풀리는 2012년의 4월, 타임어택의 진행 여부는 전세계를 흥분케 할 것이다.

포르쉐가 원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포르쉐 때문에 울어야 했던 한 회사의 집념이 수십년을 지나 빛을 발했다. 차신(車神)을 만든 것은 이런 사람의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 아닐까.
 

글: 모토야 전문기자 안민희 2011/12/21
사진: 닛산 글로벌 뉴스룸 헤드쿼터 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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