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의 최초 사례들 2편

기사입력 2019.08.0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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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은 이미 검증된 방법을 따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시도에는 반드시 ‘모험’이라는 요소가 반대급부로 따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의 이목을 끌고 그로 인해 흥행에 성공한다면, 그 위험은 흥행과 진보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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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의 불모지에서 불과 반세기를 조금 넘는 세월 동안, 세계 10대 자동차 생산국 중 하나로 발돋움한 대한민국의 자동차 시장에서도 진취적인 기업 정신과 끊임 없는 노력으로 ‘최초’라는 타이틀을 따낸 자동차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동차들이 등장함에 따라, 국내 자동차 시장은 더욱 다양화되고 성숙해지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움으로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을 따낸 차들을 다뤄 본다.


국내 최초의 독자개발 쿠페 –현대자동차 스쿠프(1991)

80~90년대, 세계의 자동차 시장은 스페셜티카(Specialty Car)가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스페셜티카는  값비싼 진짜배기 스포츠카들에 비해 낮은 성능을 지니고 있지만 스포츠 쿠페의 매력적인 외모와 감각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나쁘게 말하면 ‘무늬만 스포츠카’지만 좋게 말하면 ‘대중의 스포츠카’였던  것이다. 국적과 제조사를 불문하고 만들어진 80~90년대의 수많은 스페셜티카 중에는 현대자동차의 ‘스쿠프(Scoupe)’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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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스쿠프는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인 1989년 가을, 일본에서 열린 도쿄 모터쇼에서 공개한 ‘SLC’ 컨셉트를 통해 먼저 발표되었다. SLC는 ‘스포츠 루킹 카(Sports Looking Car)’를 줄인 것으로, 글자 그대로 ‘스포츠카처럼 보이는 차’를 말했다. 스페셜티카의 본질을 그대로 표현한 작명이라고 할 수 있다. 스쿠프는 2+2 좌석 구성을 갖는 2도어 노치드 쿠페 형태의 정석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당대의 경향을 충실하게 반영한 스타일링이 특징이었다. 또한, 스쿠프는 ‘국산차 최초의 (가솔린)터보엔진 탑재’차량이기도 하다. 스쿠프의 알파터보엔진은 129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했고,  0-100km/h 가속 시간은 약 9.18초를 기록했으며, 최고속도는 200km/h를 넘어섰다. 또한 스쿠프는 국내 모터스포츠 저변을 확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국내 최초의 경량 로드스터 – 쌍용자동차 칼리스타(1992)

쌍용차가 생산한 칼리스타는 시기로만 따지면 국산 로드스터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기아 엘란(Elan)보다 4년이나 앞서 등장했다. 그러면서도 두 차종은 모두 고향은 영국이라는 점 또한 재미있다. 칼리스타의 태동은 1987년, 쌍용자동차가 영국의 자동차 제조사 팬더 웨스트윈드(Panther Westwinds, 이하 팬더)를 인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칼리스타는 본래 팬더가 70년대에 개발한 차종인 리마(Lima)를 토대로 했다. 팬더 리마는 정통파 영국식 로드스터로 개발된 차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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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스타는 팬더 리마를 한국인의 체형에 맞게 일부 설계를 변경하고 엔진 등 주요 부품을 포드에서 공수해 오는 등의 변경을 거쳐 완성되었다. 차명인 칼리스타(Kallista)는 그리스어로 ‘작고 예쁘다’를 의미한다. 그리고 칼리스타는 그 이름 그대로 작고 예쁜 차였다. 짧고, 넓고, 낮은 영국식 로드스터의 전형에 가까운 프로포션을 정석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엔진 출력은 빈약하지만 가벼운 몸무게로 상쇄했다. 하지만 쌍용자동차는 칼리스타의 생산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했다. 수제작으로 이루어지는 생산 방식으로 인해 대당 제조단가가 너무 높았고 생산속도도 느렸으며, 무엇보다도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너무나도 생소한 종류의 차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칼리스타는 쌍용차가 당초 우려했던 대로 판매량은 목표 생산 대수를 크게 밑돌았다. 칼리스타는 고작 37대가 생산되는 데 그쳤으며,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개체 수는 10대 내외 정도로 알려져 있다.


국내 최초의 MPV – 현대정공 싼타모(1995)

갤로퍼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과 함께 현대정공은 사업에 탄력을 불어 넣기 위한 또 다른 신차 투입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M-2로 기획된 현대정공의 또 다른 신차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선진적이었던 MPV(Multi Purpose Vehicle) 컨셉트의 차량인 미쓰비시 샤리오(Chariot)의 2세대 모델로 잡았다. 이렇게 개발된 차가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MPV, 싼타모(Santam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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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타모는 작은 차체에 비해 넉넉한 실내공간, 풀플랫 시트 등, 현대적인 MPV의 기준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렇게 태어난 싼타모는 출시 초기에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이러한 컨셉트의 차종이 상당히 생소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싼타모에게는 LPG 파워트레인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하여 도래한 도래한 MPV 붐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래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유지비가 저렴하면서도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LPG 엔진 MPV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싼타모는 국내 MPV 시장을 본격적으로 활성화시켰고, 경차 시장의 대두와 함께 국내 자동차 시장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국내 최초의 미니밴 – 기아자동차 카니발(1998)

1997년 후반, 기아자동차는 이듬해 내놓을 신차를 대거 공개했다. 당시 기아자동차는 자금난으로 인한 법정 관리를 받는 힘겨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신차의 흥행여부에 따라 기업의 정상화가 판가름 나는 상황이었다. 당시 공개된 차종은 슈마, 크레도스 II, 레토나 등으로 카니발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중형 세단인 크레도스 플랫폼으로 개발된 카니발은 1998년 1월부터 시판되기 시작했다. 본넷 메인 프레임 밑에 보조 프레임을 덧대 높은 차체 강성을 확보했고, 좌우 양쪽 슬라이딩 도어를 적용하여 편의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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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카니발은 영국 로버와 공동으로 개발한 175마력의 V6 2.5L 가솔린 엔진과 135마력의 2.9L 디젤 엔진을 얹었다. 디젤 차량은 경제성이 높아 인기를 모은 반면, 가솔린 차량은 전체 판매 대수의 3%에도 미치지 못했다. 스킨체인지 모델인 카니발 II가 나오기 전인 2001년까지 219,400여대가 판매되어 기아자동차의 정상화에 견인차 역할을 해낸 효자 차종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기아 카니발은 현재 3대를 거치는 동안 국내 미니밴 시장에서 적수가 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대한민국 미니밴의 기준으로 통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8기통 엔진 채용 – 현대자동차 에쿠스(1999)

그랜저로 고급 승용차 시장을 휘어 잡은 현대자동차는 2세대 그랜저(통칭 뉴그랜저)이래로 그랜저보다 상위급에 위치하는 차를 개발하고자 했다.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은 그야말로 고급 승용차의 불꽃 튀는 경쟁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1996년에 뉴그랜저의 고급화 버전에 해당하는 ‘다이너스티(Dynasty)’를 내놓은 바 있었다. 하지만 1997년, 다이너스티의 체급을 뛰어 넘는 기아 엔터프라이즈와 쌍용 체어맨이 등장하면서 대형차 시장의 판도가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와 함께 이들과 압도할 수 있는, '초대형 세단'을 개발했다. 이 차가 바로 에쿠스(EQUU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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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에쿠스는 대형 세단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국내 최초의 V8 엔진을 적용한 세단이라는 점이다. 에쿠스의 주력 파워트레인은 3.5 시그마 V6 엔진이었지만, 최고급 사양에는 4.5리터 미쓰비시 8A8형 V8 엔진을 적용했다. 이 엔진은 에쿠스가 당당하게 ‘초대형 세단’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 엔진은 GDI 등,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선 최신 기술들이 대거 적용되었고, 이 기술들의 완성도가 아직 부족했던 탓에, 여러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는 원본인 미쓰비시 8A8형 엔진에 대한 권리를 사들여 GDI를 MPI로 교체하는 등의 대수술을 거쳐 '오메가 엔진'으로 개수하여 다시 투입했다. 그리고 이 때 얻은 V8 엔진에 대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 오늘날 현대자동차의 타우 엔진이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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