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의 최초 사례들 1편

기사입력 2019.08.0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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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은 이미 검증된 방법을 따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시도에는 반드시 ‘모험’이라는 요소가 반대급부로 따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의 이목을 끌고 그로 인해 흥행에 성공한다면, 그 위험은 흥행과 진보로 돌아온다. 



극동의 불모지에서 불과 반세기를 조금 넘는 세월 동안, 세계 10대 자동차 생산국 중 하나로 발돋움한 대한민국의 자동차 시장에서도 진취적인 기업 정신과 끊임 없는 노력으로 ‘최초’라는 타이틀을 따낸 자동차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동차들이 등장함에 따라, 국내 자동차 시장은 더욱 다양화되고 성숙해지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움으로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을 따낸 차들을 다뤄 본다.


국내 최초의 양산차 - 국제차량제작 시-발(1959)

‘국제차량제작(國際車輛製作)’이라는 자동차 제작 회사가 내놓은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상 첫 차, ‘시-발’. 국제차량제작의 시발(始發)은 ‘첫 출발’, 혹은 ‘어떠한 일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것’을 이르는 말로,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첫 출발을 기록한 자동차에게 그 어떤 것 보다도 어울리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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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차량제작은 본래 광복 후 미군으로부터 불하(拂下)받은 군용 차량의 정비와 폐차 처리 등을 업으로 삼았던 ‘국제공업사’를 모체로 하는 기업이었다. 다라서 기본 구조는 폐차된 지프를 기반으로 하고, 차체는 드럼통을 자르고 펴서 만들어졌으며, 엔진은 원본 지프의 부품을 주물로 복제해다 만들었다. 기술적으로는 조잡하게 만들어진 ‘영운기’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화마가 지나 간 이후, 황폐해졌던 국내 환경에서 시-발의 존재 가치는 상당히 컸다.


국내 최초의 SUV – 쌍용자동차 코란도(1969)

쌍용 코란도는 1969년, 신진자동차가 생산한 미국의 민수용 지프(Civilian Jeep, CJ)인 ‘신진 지프’를 그 조상으로 한다. 이 차는 카이저(Kaiser) 사의 CJ-5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카이저 사의 부품을 공급받아 조립생산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신진자동차의 인천 부평공장에서 먼저 생산되었다가 1970년도부터 부산 주례공장에서 생산되었다. 코란도라는 이름이 최초로 사용된 것은 거화 시절이었던 1982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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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란도는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인은 할 수 있다"를 영역한 "KORean cAN DO"에서 가져왔다. ‘코란도’는 신진지프자동차 이후로 거화, 동아, 그리고 쌍용으로 주인이 세 차례나 바뀌면서도 존속되었다. 그리고 쌍용자동차를 상징하는 모델의 이름으로도 쓰였고, 온갖 악재를 이겨내고 다시 일어 선 오늘날에는 쌍용자동차의 SUV 브랜드로 사용되고 있다. 이 덕분에 ‘코란도’는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 가장 장수하고 있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국내 최초의 독자개발 양산차 – 현대자동차 포니(1975)

포니의 등장 이전까지,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은 주로 외국 자동차 기업의 라이센스 생산에 의존해야 하는 체제였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현대적인 자동차를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원천 기술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 등장한 한 대의 자동차는 오늘날 세계 10대 자동차 생산국이 될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계의 초석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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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대 포니는 순수하게 100% 국내에서 독자개발한 모델이라고 보기에는 여러가지로 어폐가 있다. 기본 구조부터 일본 미쓰비시의 것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엔진과 변속기 등의 핵심 부품들 또한 미쓰비시의 것을 사용했다. 외관 디자인은 이탈디자인에 외주를 맡긴 결과물이었다. 현대자동차가 머리부터 발 끝까지 홀로 개발한 최초의 차는 다음 편에서 소개할 액센트(Accent)가 최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포니가 갖는 의미가 큰 것은, 국내 자동차 제조사 스스로 ‘자립’ 내지는 ‘독자생존’의 길을 선언한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일 것이다. 포니는 대한민국에서 자동차의 대중화에 혁혁하게 기여했으며,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해외에 수출되기 시작한 자동차이기도 하다.


국내 최초의 승합차 – 현대자동차 HD1000 미니버스(1977)

대한민국에서 승합자동차 내지는 1박스형의 밴(유개화물차)을 모두 일컫는 말이 있다. 바로 ‘봉고차’다. ‘봉고차’라는 말은 ‘찦차’와 같이, 고유명사에서 비롯되어 보통명사로 쓰이는 말의 예시 중 하나다. 봉고차는 1980년대 초 기아자동차(이하 기아차, 당시 기아산업)에서 만들어진 봉고(Bongo)에서 유래되었다. 하지만 기아 봉고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승합차라고 할 수는 있으나, 최초의 승합차는 아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승합차는 현대자동차가 1977년에 내놓은 HD1000 미니버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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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량은 포드 트랜짓(Tranjit)의 하부설계를 기반으로 현대자동차에서 거의 독자개발한 수준으로 만들어진 모델로, 미니버스 외에 밴 모델과 트럭모델이 모두 존재했다. 이들 중 트럭 모델은 ‘포터’의 1세대 모델에 해당한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HD1000은 생산을 개시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아 단종을 맞게 되었다. 이는 전두환 정권의 악명 높은 ‘자동차공업 통합조치’에 따른 것이었다. 이로 인해 현대자동차는 승용차 라인업은 보존한 대신, 5톤 미만 소형 상용차 분야를 접어야 했고, HD1000 미니버스도 역사 속에 묻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기아자동차의 봉고가 꿰어 차게 되었다.


국내 최초의 디젤 승용차 – 새한자동차 로얄 디젤(1980)

신진자동차의 후신인 지엠코리아는 오펠에서 가져 온 대형 승용차 레코드(Rekord), 그리고 그 후속이라 할 수 있는 레코드 로얄(Rekord Royale)을 통해 세단 시장에서 그 입지를 확고하게 다졌다. 레코드 로얄은 1980년에 접어들며 판매가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고, 지엠코리아의 후신인 새한자동차는 레코드 로얄의 새로운 바리에이션을 내놓았다. 바로 ‘로얄 디젤’이다. 레코드 로얄에 독일 오펠에서 공수한 64마력의 2.0리터 디젤 엔진을 얹은 차종으로,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 상 최초의 디젤 승용차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디젤 버전 레코드는 독일 오펠에서도 자국 시장에 판매 중인 사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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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엔진은 당시의 기준으로도 승용차에 사용하기에 적당한 엔진이라 보기에는 어려웠다. 승용형 디젤 엔진이랍시고 개발은 했지만 당시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구식 디젤 엔진들의 심한 소음과 진동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또한 디젤 엔진의 특성 상, 엔진의 체적이 지나치게 컸다. 이 때문에 로얄 디젤은 통상의 레코드 로얄과는 다른, 중앙부가 툭 튀어 나온 형상의 전용 보닛을 사용했다. 로얄 디젤은 대한민국에서 판매된 최초의 디젤 승용차라는 데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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