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카의 대명사, 람보르기니의 GT 이야기

기사입력 2019.08.05 11:0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오늘날 페라리와 함께, 이탈리안 슈퍼카 브랜드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람보르기니(Automobili Lamborghini)는 특유의 디자인과 폭발적인 성능, 그리고 브랜드 고유의 감성 등으로 전 세계에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SUV 모델인 우루스까지 내놓으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머나먼 대한민국에서도 슈퍼카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우루스의 등장 이전까지만 해도 엔진이 앞에 달린 람보르기니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01.jpg

하지만 람보르기니의 시작은 슈퍼카가 아니었다. 람보르기니는 1963년에 세워졌고, 그들이 만들어 낸  최초의 슈퍼카 미우라(Miura)는 1966년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데뷔했다. 그리고 미우라는 이들이 만든 세 번째 작품이었다. 람보르기니의 뱃지가 붙은 첫 번째 차는 슈퍼카가 아닌, 전방엔진 후륜구동(FR) 방식의 ‘GT(Gran Turismo)’였다. 최초의 람보르기니 350GT가 바로 그것이다.


02.jpg

람보르기니의 창업주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 1916 - 1993)는 본래 GT를 사랑하는 남자였다. 그는 자동차 사업 이전에 트랙터 사업을 통해 큰 돈을 벌었고, 고급 자동차를 다수 소유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페라리의 GT들이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일화인 페루치오가 자신이 타고 있었던 페라리 자동차에 불만을 느껴 페라리를 방문했다가 박대를 당한 일화 또한 그가 가지고 있었던 페라리 250GT에서 비롯되었다. 페루치오의 GT 사랑은 타도 페라리를 부르짖으며 람보르기니를 세웠을 무렵부터 전제되어 있었으며, 람보르기니의 엔지니어들이 슈퍼카 미우라(Miura)를 페루치오 몰래 개발해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03.jpg

이제는 과거의 이야기가 된 지 오래지만, 람브로기니는 적어도 1970년대~80년대까지는 꾸준히 GT 모델들을 만들어 왔다. 오늘날에는 슈퍼카들에 가려져 잊혀진 람보르기니의 GT들을 소개한다.


350GT(1963~1966)

람보르기니의 첫 양산차는 바로 350GT다. 350GT는 람보르기니에서 만든 첫 시제 차량인 350GTV를 기반으로 양산 환경에 맞게 개수한 사양으로 만들어졌다. 350GT는 차체 앞이 길고 뒤가 짧은 전형적인 ‘롱-노즈, 숏-데크’ 스타일의 FR 쿠페형 차체를 가진, 우아한 GT였다. 350GT의 유려한 외관은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 투어링(Touring Superleggera)의 작품이다.


04.jpg

투어링의 손길로 완성된 매끈하고 유려한 곡선의 차체 아래에는 지오토 비자리니(Giotto Bizzarrini)가 설계한 3.5리터의 V형 12기통 엔진이 숨쉬고 있었다. 이 엔진은 알루미늄 실린더 블록과 DOHC 방식을 적용한, 선진적인 설계의 엔진이었다. 이 엔진은 이후 아벤타도르의 등장 이전까지 반세기가 넘는 V12 람보르기니의 역사를 함께 한 엔진이다. 당초 비자리니의 설계는 11,000rpm에서 400마력의 최고출력을 낼 수 있도록 했으나, 양산형 GT에는 가속특성이나 정숙성, 내구성 등에서 적합하지 않았기에, 전술한 세 가지를 고려한 270마력 사양으로 결정되었다. 변속기는 독일 ZF의 5단 수동 변속기를 사용했다.


05.jpg

350GT는 당대의 GT에 요구되는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0-100km/h 가속 시간은 6.8초였으며, 최고속도는 약 250km/h에 달했다. 튼튼한 튜브 프레임 섀시와 코일스프링 댐퍼가 적용된 4개의 독립식 서스펜션은 우수한 핸들링을 제공했고, 진공 서보의 도움을 받는 디스크 브레이크로 차체의 움직임을 다스렸다. 350GT는 미우라가 등장할 무렵인 1966년까지 생산되었고, 이후 후속차종인 400GT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400GT(1966~1968)

람보르기니 400GT는 350GT의 후계차종으로 만들어진 차로, 기본적인 설계 자체는 350GT의 것을 기반으로 했다. 400GT는 외견 상으로는 350GT와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차량의 성능과 특성을 결정짓는 많은 요소들이 재설계되었다.


06.jpg

400GT의 외관은 350GT를 맡았었던 카로체리아 투어링이 다시금 맡았다. 투어링은 400GT를 보다 넉넉한 2+2 쿠페로 빚어내기 위해 350GT의 외관 디자인에서 여러 부분을 새로 디자인했다. 공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휠베이스가 350GT에 비해 확대되었고 그 때문에 350GT와는 다른 디자인의 루프가 적용되었다. 또한 기존 350GT가 차체 외판의 대부분을 알루미늄을 사용한 것과는 달리, 일부 부위에 강판을 사용하기도 했다.


07.jpg

엔진은 기존 3.5리터 람보르기니 V12 엔진의 개량형으로, 배기량이 4.0리터로 확대되었다. 최고출력은 350GT 시절보다 크게 오른 320마력으로 증강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변속기는 싱크로메쉬(Synchromesh)를 적용한 신형의 5단 수동 변속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파워트레인의 업그레이드에도 불구하고 다소 불어난 몸집과 중량으로 인해 0-100km/h 가속 시간이 7.6초로 늘어나, 350GT보다 약간 부족한 성능이었다. 400GT는 200대를 넘게 판매한 350GT에 비해 상당히 소수인 20여대 정도가 제작되었다. 이후 1968년, 350GT는 후속 차종인 이슬레로(Islero)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이슬레로(1968~1969)

람보르기니 이슬레로(Islero)는 350GT와 400GT의 뒤를 잇는 대형 GT 모델로 개발되었다. 이슬레로는 람보르기니의 슈퍼카 미우라의 등장 이후 람보르기니의 전통으로 자리한 ‘투우(鬪牛)’의 이름을 붙이게 된 첫 번째 GT 모델이기도 하다. 차명인 이슬레로는 스페인 내전 이후인 1940년대, 대담한 투우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던 투우사 마놀레떼(Manolete, 1917~1947)를 죽인 황소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08.jpg

1968년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데뷔한 이슬레로는 더욱 대형화된 차체와 새로운 디자인으로 태어났다. 기본 설계는 400GT의 것을 바탕으로 했지만 차체 외형은 완전히 새롭게 설계되었다. 또한 마감품질에도 신경을 써서 한층 향상된 정숙성과 감성 품질을 지니게 되었다. 람보르기니 이슬레로는 400GT의 파워트레인을 그대로 사용했다.


09.jpg

람보르기니 이슬레로는 1969년, 기본 모델 외에도 성능 강화 버전에 해당하는 ‘이슬레로 S’ 모델이 추가되었다. 이슬레로 S는 기본형 이슬레로와는 외형 상에서 몇 가지 차이가 있다. 먼저 외형의 경우에는 전륜 펜더와 전방 에어인테이크를 키우고 당시에 흔치 않았던 틴팅 글라스를 적용했다. 엔진은 기존 400GT의 엔진을 그대로 사용한 이슬레로와는 달리, 성능을 개선하여 최고출력을 350마력으로 높여, 260km/h의 최고촉도를 자랑했다.


람보르기니 자라마(1970~1976)

람보르기니의 자라마는 1970년, 이슬레로의 뒤를 잇는 GT모델로 등장했다. 차명인 ‘자라마’는 스페인의 투우로 유명한 지역인 ‘하라마(Jarama)’에서 가져왔다. 하라마는 1967년에 개장한 하라마 서킷(Circuito Permanente del Jarama)이 위치한 지역이기도 하다. 자라마는 직선적인 스타일의 차체와 반만 가려진 형태의 리트럭터블 헤드램프 등 독특한 디자인이 적용되어 있었는데, 이 디자인은 파격적인 스타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베르토네(Bertone) 소속의 젊은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의 작품이다.


10.jpg

람보르기니 자라마는 이슬레로와 마찬가지로, 고성능과 편안한 실내공간을 확보한 차로 개발되고 있었다. 하지만 출시 직전이었던 1970년, 주요 수출국인 미국에서 새로운 규제가 신설됨에 따라, 설계를 대폭 수정하게 되었다. 1969년 12월, 미국 전역의 대기오염을 관장하는 환경보호청(EPA)이 설립되고 이듬해 3월 에드먼드 머스키(Edmund S. Muskie) 상원 의원이 발의한 대기정화법개정안(Clean Air Act Extension) 때문이었다. 이른 바 ‘머스키 법’으로도 불리는 본 법안은 1975년까지 일산화탄소, 질소산화물 등의 배출가스 허용치를 기존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내용으로 수많은 자동차제조사의 반발을 샀다. 또한 여기에는 ‘내구성’에 대한 항목까지 개설되어 있어, 고성능 자동차 제조사들의 입장에서는 악재로 받아들여졌다.


11.jpg

람보르기니 자라마는 이 머스키 법에 대응하기 위해 전자식 연료펌프를 채용하여 다른 차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용인할 만한 4~5km/l대의 연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자라마는 이슬레로S의 350마력 사양의 4.0 V12 엔진을 사용했다. 람보르기니 자라마는 이슬레로와 마찬가지로, 후기인 1973년부터 성능을 높인 ‘S’ 버전도 추가했다. 자라마 S는 365마력으로 출력을 높인 버전의 엔진을 탑재했으며, 6.8초에 불과한 0-60mph(약 96km/h) 가속 시간을 자랑했다. 람보르기니 자라마는 S 버전을 포함해 328대가 생산되었다.


에스파다(1968~1978)

람보르기니 에스파다(Espada)는 자라마와 함께, 람보르기니가 만든 프론트 엔진 GT 중 마지막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차명인 에스파다는 스페이어로 ‘검(Sword)’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작명이 절대 뜬금 없는 작명은 아니다. 스페인의 투우에서 투우사가 최후에 소를 죽일 때 사용하는 무기가 바로 ‘검’이기 때문이다.


12.jpg

람보르기니 에스파다는 자라마와 마찬가지로,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을 맡았다. 섀시는 특이하게도, 영국 재규어의 E-타입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람보르기니 에스파다는 출시 당시를 기준으로 역대 람보르기니에서 만든 모델들 중 가장 실용적인 모델로 꼽힌다. 람보르기니 에스파다는 역대 람보르기니의 프론트 엔진 쿠페들 중 가장 긴 4,730mm의 전장과 1,860mm의 차폭을 가지고 있었고, 실내공간도 동시대에 등장했던 자라마에 비해서 훨씬 넓었다. 이 덕분에 성인도 부담없이 탑승할 수 있는 4인승 구조를 실현했다. 인테리어 또한 상당히 고급스럽게 꾸며졌다.


13.jpg

람보르기니 에스파다의 심장은 400GT로부터 물려 받은 4.0리터 V12 엔진이다. 람보르기니 에스파다는 S1, S2, S3로 세 단계에 걸쳐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S1은 325마력, S2 이후부터는 350마력으로 유지된다. 람보르기니 에스파다는 10년에 걸쳐 1,200여대가 생산되었다.


14.jpg
 
15.jpg

1999년에는 새로운 에스파다가 출시될 것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으나 당시 람보르기니는 디아블로의후속 차종 개발에 여념이 없었던 시기였다. 람보르기니는 아우디로의 합병 이후인 2009년, 에스파다의 후속 모델의 성격에 가까운 에스토크(Estoque) 컨셉트를 발표하기는 했으나, 이 모델의 양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람보르기니의 CEO가 SUV 모델 우루스(Urus) 이후 새롭게 추가할 4도어 모델로 에스토크 컨셉트를 언급하면서 람보르기니의 새로운 2+2 GT 내지는 4도어 쿠페 모델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저작권자ⓒ모토야 & motoya.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59816
 
 
 
 
 
  • (주)넥스틴ㅣ등록번호 : 서울-아02108 | 등록일자 : 2012년 5월 7일 | 제호 : 모토야(http://www.motoya.co.kr)
  • 발행인, 편집인 : 김재민 | 발행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광평로280, 1215호 (수서동 로즈데일오피스텔)
  • 발행일자 : 2012년 5월 7일 | 대표번호 : 02-3452-7658ㅣ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재민    
  • Copyright © 2012 NEXTEEN. All right reserved.
모토야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