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현대정공 싼타모

기사입력 2019.04.0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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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에서 선발주자의 제품을 라이센스 생산하는 경험은 기술력의 토대를 닦는 데 있어 중요하다. 라이센스 생산은 제품의 생산 및 개발에 대한 노하우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후발주자의 입장에서 라이센스 생산은 선발 주자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얻은 성과를 빠르게 흡수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와 같이 고도의 기술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분야에서는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성장한 기업들이 많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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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사업 초기에는 미국 포드자동차(이하 포드)와 손을 잡고 사업을 진행해 왔고 이 외에도 몇몇 자동차 기업들과 기술제휴를 성사시키면서 차근차근 역량을 키워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본 미쓰비시자동차(이하 미쓰비시)와의 관계 또한, 독자생존을 위한 역량을 키우는 데 있어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현대차가 미쓰비시와의 제휴를 통해 생산한 차들은 대형세단 그랜저와 에쿠스, 중형 세단 쏘나타, 현대 그레이스 등, 여러가지가 존재한다. 또한 현대자동차 뿐만 아니라, 현대모비스의 전신이자 정몽구 회장이 몸을 담고 있었던 현대정공에서 생산한 차량도 2대 존재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미쓰비시 파제로를 라이센스 생산한 ‘갤로퍼(Galloper)’고, 다른 하나가 바로 싼타모(Santamo)다.


국산 7인승 MPV의 개념을 정립하다

1990년대 초, 갤로퍼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과 함께 현대정공은 사업에 탄력을 불어 넣기 위한 또 다른 신차 투입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M-2로 기획된 형대정공의 또 다른 신차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선진적이었던 MPV(Multi Purpose Vehicle) 컨셉트의 차량인 미쓰비시 샤리오(Chariot)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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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샤리오는 정통 오프로더 파제로(Pajero), 소형 크로스오버 RVR 등과 함께, 한 때 일본 내에서는 ‘RV명가’로 불리고 있었던 미쓰비시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차종 중 하나다. 초대 샤리오는 1983년, 중형차 갤랑(Gallant)의 왜건 버전을 대체하기 위한 차종으로 처음 출시되었다. 현대정공이 생산한 샤리오는 1991년부터 일본 내수 시장에 출시된 2세대 모델로, 초대 모델에 비해 더욱 대형화되고 실내 공간도 더욱 넉넉해진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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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은 현대자동차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었던 미쓰비시 시리우스 엔진을 주력으로 기용했다. 쏘나타 2에 사용했던 115마력 사양의 SOHC 버전과 146마력 DOHC 버전이 사용되었고 출시 2년 뒤인 1997년부터는 쏘나타 3의 택시 모델에 탑재되었던 2.0 LPG 엔진이 추가되었다. 2.0리터 LPG 엔진은 초기에는 82마력 사양이었으나, 후기에는 86마력 사양으로 성능이 개선되었다.


싼타모는 내부 구조도 독특했다. A필러의 두께를 극단적으로 줄여, 305도에 달하는 전/측방 시야를 확보하였고 시트 포지션도 약간 높게 설정하여 운전하기가 편한 차였다. 당시 기준으로는 중형 세단에 준하는 넉넉한 편의사양도 특징 중 하나였다. 또한, 좌석은 일반적인 2-3 배치의 5인승 좌석과 2-3-2 배치의 7인승 좌석을 선택할 수 있었고, 7인승 좌석은 완전히 펼쳐지는 풀-플랫 개념이 적용되었다. 심지어 미쓰비시가 랜서 에볼루션을 통해 갈고 닦은 상시사륜구동 시스템까지 선택 사양으로 마련했다. 이렇게 MPV로서 훌륭한 구성을 갖추고 있었던 싼타모는 레저 수요가 조금씩 늘고 있었던 당시에 상당한 주목을 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싼타모는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 최초로 시도된 7인승 MPV 모델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차체에도 넉넉한 실내공간, 풀플랫 시트 등, 현대적인 MPV의 기준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렇게 태어난 싼타모는 출시 초기에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이러한 컨셉트의 차종이 상당히 생소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당시까지 국내에서 다인승 자동차는 통칭 ‘봉고차’로 불린 현대 그레이스나 기아 베스타와 같은 1박스형 승합차가 거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싼타모는 이들 보다 가격도 비쌌고 탑승 인원은 더 적었으며, 결정적으로 디젤엔진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초 기획과는 달리, 국내의 실정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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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현대정공은 싼타모의 실적이 기대치에 못 미쳤기 때문에 조기 단종을 고려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하지만 출시 2년차인 1997년부터 의외의 부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바로 LPG 엔진의 존재 덕분이었다. 당시 국내 LPG 가격은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저렴했기 때문에 유류비 부담이 소형차보다도 적은 수준을 자랑했다. 또한 7인승 좌석을 선택하는 경우, ‘승합차’로 분류되었던 당시의 세제에 따라 연간 65,000원의 자동차세와 등록비용 절감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특히, 1997년 외환 위기 이래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유지비가 저렴하면서도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LPG 엔진 MPV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기 시작함에 따라, 싼타모 또한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LPG 파워트레인의 채용 덕에 뒤늦게 상당한 수요를 창출할 수 있었기에, 현대정공은 싼타모의 생산을 계속하게 된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싼타모의 잔존개체 대다수는 이 전륜구동 LPG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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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타모의 시장 진입은 국내 MPV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 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온 가족이 여유롭게 승차할 수 있으면서도 낮은 유지비로 운용할 수 있었던 LPG 엔진 MPV들은 경차 시장의 대두와 함께 국내 자동차 시장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싼타모의 뒤늦은 성공과 함께 MPV 시장은 성장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9년부터는 기아자동차에서 크레도스를 기반으로 한 카렌스를 출시하고 2000년에는 대우자동차에서 레조(Rezzo)를 출시하는 등, 국내 MPV 시장은 크로스오버 SUV의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까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국내 자동차 시장의 한 갈래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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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타모의 지속적인 판매 신장을 지켜 본 현대정공은 싼타모의 후속 모델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 차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합병하는 과정에서 현대차의 이름이 아닌, 기아차의 이름을 달고 판매되었다. 이 차가 바로 카스타(Carstar)였다. 1999년 등장한 카스타는 자동차(Car)와 별(Star)을 합친 이름으로, ‘자동차 중 으뜸’을 의미한다. 이 차는 싼타모의 기존 플랫폼을 그대로 이용해 만들어진 일종의 스킨 체인지 모델에 가까웠으며, 파워트레인 역시 미쓰비시의 시리우스 계열의 가솔린 및 LPG 엔진을 사용했다. 싼타모에 비해 세단과 같은 권위적인 외관과 화려한 인테리어를 지니고 있었다.


싼타모는 카스타와 함께, 현대정공에서 계속 생산되었으다. 그리고 2002년, 배기가스 규제를 만족하지 못하게 된 현대정공 싼타모는 기아 카스타와 나란히 단종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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