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대우 로얄 시리즈 – 상편

기사입력 2018.07.0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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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로얄은 대우자동차 역사 상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웠던 세월을 함께 한 차다. 대우 로얄은 다양한 차종이 하나의 시리즈를 이루는 제품군으로, 중형 승용차부터 고급 대형 승용차까지 아울렀다. 1980년대 국내 고급 승용차 시장을 석권했으며 일부 모델들의 경우, 당대에는 부의 상징으로 통하기도 했다. 로얄 시리즈의 흥행은 80년대 대우자동차의 눈부신 성장을 상징하는 측면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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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쏘나타와 그랜저의 등장 이전까지, 국내에서 가장 크고, 고급스러운 승용차로 통한 로얄 시리즈. 오펠 레코드로부터 시작하여 십수년간 대우자동차의 중핵으로 자리잡으며 국산 고급 승용차의 역사를 써 내려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왕가의 출발점, 새한 레코드 로얄

오늘날 한국지엠의 전신인 구 대우자동차는 과거 중국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었던 토요타의 일방적인 철수로 붕괴 위기에 처했던 신진자동차가 미국 제너럴 모터스(GM)와의 50:50 공동출자로 설립한 제너럴모터스코리아자동차(지엠코리아, 이하 GMK)를 전신으로 한다. GMK는 출범 초기, 시보레 1700 과 오펠에서 들여 온 레코드(Rekord, D형)를 주력으로 재기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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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는 고급세단 수요를 어느 정도 끌어 들였다. 그러나 볼륨 모델로 내세운 시보레 1700은 그렇지 못했다. 비포장 도로가 많았던 당시 국내 도로 실정과 맞지 않고, 연비까지 나빴기 때문이다. 게다가 1973년의 1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소형 승용차의 강세로 말미암아 단 3년 만에 단종되었다. 위기상황 속에서 벌인 새로운 사업이 실패함에 따라 신진자동차의 붕괴는 가시화되었고 경쟁사인 현대자동차에게 업계 선두를 내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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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1976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한 종합 자동차 제조사였던 신진자동차는 경영악화로 결국 산업은행의 관리 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신진자동차는 각각 새한자동차와 거화자동차 등으로 갈리게 된다. 산은의 관리 하에 있었던 새한자동차는 경쟁사에게 빼앗긴 소형 승용차 시장을 탈환하기 위해 시보레 1700을 퇴출시키고 이스즈의 제미니를 도입했다. 제미니는 후일 소폭의 외관 변경을 거친 ‘맵시’로 다시 태어나, 새한자동차의 볼륨 모델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GMK시절부터 국내 고급 승용차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던 레코드는 그대로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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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레코드는 포드 20M에 비해 크기는 조금 작았지만 우아한 디자인을 자랑했다. 현대자동차가 내놓은 포드 20M보다 크기가 약간 작았지만 뱃머리처럼 아래로 꺾여 들어가는 역 슬렌트 형상의 전면부와 더불어, 유럽계 고급 승용차에서 나타나는 우아하고 세련된 디자인은 당시 국내 고위층과 중산층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또한, 부품은 몽땅 독일에서 공수하여 생산했으며, 뛰어난 주행성능과 고급 편의 사양으로 무장했다. 새한 레코드는 신진 크라운의 빅 히트 이래, 고급 승용차 시장에서 새롭게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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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한자동차는 1975년, 기존 레코드의 외관을 소폭 변경한 ‘레코드 로얄(Rekord Royale)’을 출시한다. 1980년대 대우자동차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로얄’ 시리즈는 이 ‘레코드 로얄’로부터 출발한다. 이 최초의 레코드 로얄은 약 2년이 조금 넘게 생산되었다. 이후에도 부분 개선 모델인 레코드 프리미어를 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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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우그룹이 새한자동차를 인수한 해인 1978년, 새한자동차는 오펠 레코드의 최신 버전인 E형 레코드를 바탕으로 한 신형의 ‘레코드 로얄’을 내놓았다. 대우 로얄시리즈의 역사는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엔진은 기존 D형 레코드에서 사용했던 102마력짜리 1.9리터 4기통 엔진을 그대로 사용했다.


신형의 레코드 로얄이 출시된 해는 2차 석유파동이 벌어진 해이기도 하다. 그런데 레코드 로얄은 이 치명적인 악재에도 불구하고 뜻밖의 호재를 누렸다. 당시 대한민국 장관급 관료들의 관용차를 4기통으로 제한하는 조치가 실행됨에 따라, 장관급 관료들의 관용차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레코드 로얄은 차체에 비해 적당한 가격대는 물론, 상대적으로 우수한 연비를 지닌 데다, ‘장관급 관료들이 타는 차’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면서 고급 승용차 시장 최고 수준의 판매고를 올렸다. 당시 V6엔진을 사용한 그라나다를 생산하고 있었던 현대차는 1980년에 들어서야 그라나다(Ford Granada)의 4기통 버전인 뉴 그라나다를 내놓기는 했지만 레코드 로얄의 판매량 증가를 막지는 못했다. 레코드 로얄에게 호재를 안겨 준 장관급 관용차의 4기통 제한은 1981년에 결국 해제되었지만 해제 이후에도 레코드 로얄의 판매는 크게 타격을 입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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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로얄의 판매가 궤도에 오른 1980년, 새한자동차는 레코드 로얄의 새로운 바리에이션을 내놓았다. 바로 ‘로얄 디젤’이다. 레코드 로얄에 독일 오펠에서 공수한 64마력의 2.0리터 디젤 엔진을 얹은 차종으로,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 상 최초의 디젤 승용차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디젤 버전 레코드는 독일 오펠에서도 자국 시장에 판매 중인 사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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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엔진은 당시의 기준으로도 승용차에 사용하기에 적당한 엔진이라 보기에는 어려웠다. 승용형 디젤 엔진이랍시고 개발은 했지만 당시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구식 디젤 엔진들의 심한 소음과 진동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또한 디젤 엔진의 특성 상, 엔진의 체적이 지나치게 컸다. 이 때문에 로얄 디젤은 통상의 레코드 로얄과는 다른, 중앙부가 툭 튀어 나온 형상의 전용 보닛을 사용했다. 이 외에도 새한자동차는 1982년, 레토드 로얄의 LPG 버전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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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83년, 새한자동차가 대우자동차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로얄 시리즈의 본격적인 세력 확장이 시작된다. 1.5리터급 엔진으로 초창기 준중형차 시장 형성에 일조한 로얄XQ와 더불어 고급 중형 세단으로 등장한 로얄 프린스, 그리고 최고급 세단 임페리얼에 이르는 대우 로얄 시리즈의 역사는 다음 회차를 통해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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