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 RCZ

2012-04-20     김기범


어쩌면 식상할 수 있었다. 이제 와서 ‘2 2’ 시트의 스포츠 쿠페라니. 이 종목으로 찌릿한 전율을 안겨줬던 아우디 TT조차 2세대로 거듭나며 총기가 흐릿해진 느낌인데. 하지만 푸조는 입증해 보였다. 남이 단물쓴물 다 빨아먹은 장르일지언정, 디자인으로 개척할 여지는 얼마든 남아있단 사실을. 앞뒤 대칭과 둥근 지붕 모두, TT로 경험했던 구성. 그러나 날카롭게 찢은 눈과 탐스럽게 부풀린 펜더를 보고 있노라면, 기대와 설렘에 가슴이 쿵쿵 뛴다. 무엇보다, 뒷유리를 저토록 육감적으로 빚은 재치와 용기에, 진심에서 우러난 경의를 표한다.

 



푸조는 동급의 성공사례를 꼼꼼히 벤치마킹한 모양이다. 디자인 영감의 원천은 누가 봐도 TT였고, 놀랍게도 ‘청출어람’의 기적마저 이뤘다. 주행감각은 내심 미니를 욕심냈던 모양이다. 스티어링은 파워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만큼 뻑뻑하고, 네 바퀴는 노면을 스캔하듯 훑으며 움찔댄다. 1.6L 터보에 200마력은 과분한 출력이다. 가속은 휘파람처럼 쉽고, 코너링은 탭댄스처럼 경쾌하다. 그런데 필요 이상 거칠고 억세다. 그것도 다분히 의도적으로.

그런데 승차감은 부드럽다. 거칠고 억센 느낌은 손과 발까지 만이다. 푸조는 RCZ에서도 고유의 가치를 지켰다.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푸조는 어떤 프리미엄 브랜드보다 서스펜션에 공을 들인다. 폭리를 취할 수 없는 브랜드인 만큼, 현란한 신기술로 관절을 적시진 않는다. 구조와 움직임을 면밀히 해석하는 ‘정공법’으로 승부한다. RCZ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장거리 운전이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편안하되, 꼬부랑길에서는 의연하게 차체를 떠받쳤다.

 



대체 지루할 짬이 없다. 다시 반전이다. 동공에 아지랑이가 필 만큼 아름다운 건 외모까지다. 도어를 열면 같은 차가 맞나 싶게 칙칙하고 무덤덤하다. 겉모습과 뒷유리 금형을 뜨는 데 쓴 비용을, 실내에서 회수하겠다는 계산속이 엿보인다. 스위치는 여드름처럼 자글자글해 더듬어 쓸 엄두가 안 난다. 그나마 디자인으로 스포티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감촉과 색감이 감흥을 반감시킨다. 한 집 살림하는 시트로앵과, 어쩌면 이리도 다를까.

그것 참 신기하다. 어떻게 4기통이, 그것도 1.6L 엔진이 이렇게 울어댈까. 저회전에선 그윽하고, 중회전에선 기름지며, 고회전에선 통렬하다. 그 음색의 깊이와 굴절이 어찌나 기기묘묘한지, 아이유의 3단 고음보다 중독성이 심하다. 연료가 차단될 때까지 엔진을 연주하다 보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흥에 겨운들 윈도까진 열지 말자. 엔진의 구성진 곡소리는, 희한하게도 실내에서만 들리니까. 

 

글 김기범|사진 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