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택시 이야기 - 하편
한반도에 처음으로 자동차가 보급된 이래 한반도에서도 택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한제국 시절이었던 1900년대 초반, 일종의 전세 내지는 시간제로 운영되기 시작한 택시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일본인들을 위한 이동수단으로 존재했고,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이 설치한 별도의 택시영업체계로 소규모 운영되었다. 그리고 전국토가 쑥대밭이 되었었던 한국전쟁의 화마가 지나간 뒤 자동차 산업이 태동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택시 영업도 다시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 다시금 택시영업에 활기를 띄게 만들어 준 차는 폐차 혹은 민간에 불하된 군용 지프 차량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던 국제차량제작의 시-발이었다. 이 차는 택시수요로 많은 양이 생산 및 판매된 탓에, 택시라는 인식이 더 강하게 자리하게 되어 '시발택시'라는 이명으로 자주 불렸다. 이후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로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세워진 새나라자동차를 통해 닛산의 블루버드가 대량으로 국내에 반입되어 이들 상당수가 일반 택시로 판매되었다. 이후 4대의혹 사건으로 망해버린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한 신진자동차가 일본 토요타자동차로부터 코로나(Corona)를 라이센스 생산했는데, 이 모델의 상당수가 택시로 판매되었고, 현대자동차의 코티나까지 가세하면서 택시 업계에서도 2종 이상의 차량이 경쟁을 하는 시대가 찾아왔다.
1970년대에는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이 급변하면서 택시 모델도 더욱 다양해졌다. 현대자동차가 대한민국의 첫 독자모델인 포니를 내놓고, 기아산업(現 기아)도 일본 마쓰다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브리사(Brisa)를 생산하며 택시 업계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이렇게 1960~1970년대까지는 대체로 소형 승용차들이 택시로 활용되어 왔다.
그 이유는 바로 1986년 아시안 게임 개최와 1988 서울올림픽 개최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두 번의 대규모 국제행사로 인해 국내를 찾게 될 수많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대대적인 체질개선에 나서야 했다. 이에 당시 집권하고 있던 전두환의 신군부 정권은 김포국제공항을 대대적으로 증축하는 한 편, 국제적인 행사를 개최하게 되면서 외국에서 수많은 손님이 올 것으로 예상되었기에, 기존에 운영하던 소형 택시를 중형 택시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국내에 존재한 중형택시는 총 201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움직임에 따라, 자동차 제조사들에서도 중형급 택시 모델을 부랴부랴 개발해야 했다. 해당 정책으로 인해 개발된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현대자동차의 스텔라(Stella)다. 스텔라는 기존에 생산했던 코티나의 하부 설계를 바탕으로 대형화된 차체에 우수한 성능을 내는 미쓰비시자동차의 1.4리터 및 1.6리터 엔진을 탑재했다. 이 모델은 저렴한 가격으로 중형차에 준하는 크기와 편의성을 가져, 택시용도 뿐만 아니라 자가용 승용차로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한편 기아산업에서도 늘어나는 중형급 택시 수요를 잡기 위해 1.8리터 엔진을 탑재한 중형세단 콩코드(Concord)를 내놓으며 중형택시 경쟁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전후하여 대한민국 택시의 표준은 소형 승용차에서 중형 승용차로 완전히 넘어가, 수 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택시 모델로 가장 많이 팔리는 차종은 현대자동차의 쏘나타인데, 이 쏘나타는 일반용으로 판매되는 현행의 8세대(DN8) 모델이 아닌, 7세대(LF) 기반의 모델로, 이 모델은 오직 택시용도로만 판매되고 있으며, 기아의 K5가 신형으로 교체되면서 택시 모델이 단종되자, 유일한 택시 전용 모델로 남았다.
하지만 택시 업계에서도 변화를 꾀하기 위한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2년에 도입한 모범택시는 개인택시를 더욱 확대한 형태로, 배기량 1,900cc 이상의 중형 이상급 승용차를 사용하며, 더욱 고급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요금은 일반택시에 비해 더 높지만, 상호병산제(거리 당 요금 혹은 시간 당 요금 중 하나만 추가하는 방식)를 적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2009년도에는 서울에서 국내 최초로 LPG-하이브리드 택시가 시범적으로 운행되기 시작한 바 있으며, 성남시에서는 2010년도부터 경차 택시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경차 택시는 기본요금이 저렴하고 기동성이 좋아, 도심 내에서 단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이용객들로부터 호평을 얻은 바 있다. 하지만 경차 택시나 준중형 택시의 경우에는 채산성이 맞지 않아, 대부분 사라졌다고 한다.
한편 2015년 7월부터는 개인택시/모범택시에 고급 수입차를 이용할 수도 있게 되었으며, 모범택시보다 더욱 고급화된, 사실 상의 리무진 서비스에 가까운 고급 택시 제도 또한 도입된 바 있다. 이들 택시의 경우에는 F세그먼트에 해당하는 대형 승용차, 혹은 카니발 등의 MPV를 하이리무진으로 개조한 형태의 차량을 영업에 사용하며, 다양한 편의장비와 편안한 승차감 및 거주성으로 한 차원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도서/산간지역과 같이, 일반 승용차로는 접근 및 통행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SUV형 택시를 운영하기도 한다. 이러한 SUV 택시의 경우, 승용 세단 대비 높은 지상고와 더불어 사륜구동 기능이 적용되어 있어, 운행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운영되는 장애인용의 콜택시도 존재한다. 이러한 차종의 경우에는 공간이 상대적으로 넉넉한 MPV 차량을 개조하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빠르게 발전한 전기차 기술과 더불어, 정부에서 지원하는 유가보조금 지원 정책 등을 바탕으로, 전기차 택시들도 적지 않은 숫자가 운용되고 있다. 전기 택시 도입 초기에는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일렉트릭과 코나EV, 기아 니로EV 등이 택시 용도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5가 택시 모델로 판매되고 있으며, 기아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상용 용도로 개발한 목적기반 모빌리티 모델인 '니로 플러스'를 출시해 영업용 차량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