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한 고성능 브랜드, 토요타 GR 이야기
토요타자동차(이하 토요타)는 현재 'GR'이라는 이름의 고성능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그런데 토요타 GR 브랜드는 국내에서는 아직은 생소할 수 있는 브랜드다. GR 브랜드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20년 국내 출시된 GR 수프라를 통해서였다. 국내 기준으로는 아직 소개된 지 2년도 지나지 않은 브랜드인만큼, 충분히 생소할 수 있다.
토요타의 GR 브랜드는 다른 고성능 브랜드에 비해 최근에 만들어진 브랜드다. 토요타 GR 브랜드 역사의 시작은 토요타 가주 레이싱(Toyota GAZOO Racing, 이하 TGR)이 설립된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TGR은 2007년 토요타의 모터스포츠 전담 디비전으로서 출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7양산차 기반의 고성능 라인업인 GR 모델들의 개발도 담당하고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토요타의 모터스포츠 전반을 담당하고 있는 토요타 가주 레이싱과 그 손길에서 태어난 GR 브랜드에 대해 알아 본다.
토요타는 원래부터 모터스포츠에 '진심'이었다
현재 토요타의 모터스포츠 활동은 모두 TGR이 전담하고 있다. 특히 2009년에 포뮬러 1(이하 F1)에서 전면 철수한 이래, 현재 토요타자동차 자체적인 워크스 팀은 꾸려지지 않고 있으며, 모터스포츠 관련 활동은 모두 TGR에 일임하고 있다.
하지만 본래 토요타는 사업 초기에는 일본 내의 자동차 제조사들 중, 누구보다도 '모터스포츠에 진심인' 기업이었다. 그동안 자동 직조기를 제조해 왔던 토요타를 자동차 제조사로 탈바꿈시킨 2대 사장, 토요다 키이치로(豊田 喜一郎, 1894~1952)는 "자동차 경주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며,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레이싱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2대 사장이자, 토요타자동차의 실질적인 창업주의 이 말만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토요타는 이렇게 적극적인 모터스포츠 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을 양산차에 끊임없이 피드백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꽤나 먼 과거에는 '달리기의 토요타(走りのトヨタ)'라는 평가도 있었을 정도였다.
이렇게 토요타는 자국내에서의 모터스포츠 활동을 통해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있었고, 일본 경제가 급속성장하고 기술력도 동반성장한 1980년대 이후부터는 WRC를 비롯해 세계의 모터스포츠 무대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대에는 전세계 모터스포츠의 정점이자, 모터스포츠계의 '돈 먹는 하마' 1순위로 손꼽히는 '포뮬러 1(이하 F1)'에도 출전하는 등, 모터스포츠 활동에 막대한 예산과 역량을 투입했다.
하지만 토요타는 2009년 아부다비 그랑프리를 끝으로 F1에서 전면 철수했다. 그리고 이 이후로 해외 모터스포츠는 물론, 자국내에서 열리는 모터스포츠 경기에도 자사의 이름을 직접 걸고 참전하는 워크스 팀을 꾸리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그리고 바로 다음 해 토요타 리콜사태 등의 역대급 악재들이 잇달아 발생하는 바람에 더 이상 F1 같이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는 모터스포츠에 투자할 여유가 없어진 것, 그리고 상기한 여러 악재들에 따른 경영난에 따른 것이 토요타측의 '공식적인' 이유다. 따라서 이 다음으로 거론되는 내용은 모두 비공식이라는 점에 유의해서 보도록 하자.
앞서 언급했듯이, 토요타자동차는 경영난을 이유로 F1에서 철수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다른 이유를 거론하기도 한다. 바로 라이벌이었던 혼다기연공업(이하 혼다)과 대비되는, 토요타 F1 팀의 실망스러운 성적표 때문이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혼다는 F1에서 엔진공급자로서 좋은 성적을 낸 것 뿐만 아니라 2000년대에는 그랑프리 우승컵도 3번을 거머쥐었다. 반면, 토요타 F1 팀은 스쿠데리아 페라리(Scuderia Ferrari S. p. A.)보다도 훨씬 큰 규모의 자금을 투입했다고 전해진다. 규모로만 따지자면 당대 F1 팀들 가운데 월등히 최대 수준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음에도 2001년 시즌 참가 후 8시즌 동안 토요타 F1 팀은 단 한 번도 우승컵을 손에 쥐지 못했고, 폴 포지션을 3회 따 낸 것이 고작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일본 현지에서는 현재 토요타자동차를 이끌고 있는 수장, '토요다 아키오(豊田章男, 66)' 사장의 존재가 현재 토요타의 자체적인 모터스포츠 활동을 막고 있는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키오 사장은 2대 사장인 키이치로의 손자임과 동시에, 현재 토요타/렉서스의 주행품질을 책임지는 마스터 드라이버 중 한 명이기도 하며, TGR 소속의 전속 드라이버 중 한 명인 '모리조(MORIZO)'의 '정체'이기도 하며, 오늘날 TGR을 손수 일군 장본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는 할아버지인 키이치로와 마찬가지로, 누구보다도 모터스포츠에 진심인 인물이다. 그런데 이토록 모터스포츠에 진심인 그가 취임하자마자 한 일은 다름 아닌 'F1팀 전면 철수'였다. 그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토요타 가주 레이싱의 설립과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그리고 토요다 아키오 사장의 성향 등, 여러 측면을 들여다 봐야 한다.
아무런 지원도 없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다
TGR은 2007년, 토요타자동차의 마스터 드라이버 故 나루세 히로무(成瀬弘, 1942~2010)氏를 주축으로 결성한 '팀 가주(Team GAZOO)'라는 이름의 아마추어 레이싱 팀으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다. 일종의 사내 벤처와 같은 규모로 출발한 이 팀은 예나 지금이나 험난하기로 유명한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 레이스에 도전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그런데 이 팀은 설립 초기부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팀을 꾸려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이 당시는 아직 토요타 본사가 F1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었던 시절이었기에, 본사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은 꿈도 못 꿀 상황이었으며, 토요타의 공식 팀으로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팀 가주는 다른 참가팀들처럼 제대로 된 경주차를 제작할 예산조차 부족했다. 이들은 중고 토요타 알테자(Altezza, 수출명 렉서스 IS200/300)나 중고 BMW 3시리즈(E90) 등을 구해다가 어렵게 경주차를 제작해야 했다.
하지만 이 팀이 존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팀의 중심을 잡고 있었던 나루세 히로무의 존재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토요타 내에서 전설적인 테스트 드라이버로 통하는 인물이었으며, 토요타의 여러 스포츠카 모델들이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다. 그의 손길을 거친 차들 중에는 '이니셜D'로 유명한 'AE86(스프린터 트레노/코롤라 레빈)'이 있다. 그는 1979년 신설된 토요타의 본사 전속 드라이버 교육 제도를 통해 선발된 테스트 드라이버 300명 중 사내에서 '탑 건'이라 불렸던 9명, 그리고 그 9명의 정점에 있는 '마스터 드라이버'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 인물은 현재 토요타의 마스터 드라이버인 토요다 아키오의 '스승'이기도 하다
나루세는 당시 아키오 사장을 꽤나 가혹하게 단련시켰던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는 아키오 사장과의 첫 대면부터 "운전이라는 게 뭔 지도 모르는 놈한테 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듣고싶지 않다"며 매몰차게 대했다고 한다. 당시 토요다 아키오는 명문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미국서 MBA 과정을 수료해 미국 은행에 다니다가 토요타로 넘어 온 몸이었고, 비록 공채로 입사해 밑바닥부터 시작하기는 했다고는 하지만, 이후 경영승계를 위해 고속승진을 한 '재벌 2세' 그 자체였다. 심지어 자동차에 대해 이렇다 할 지식도 없었던 상태였으니, 토요타의 주행품질을 책임지는 마스터 드라이버로서 자부심이 대단했던 그로서는 훗날 사장이 될 이 '도련님'이 그리 곱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토요다 아키오는 나루세의 이러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제자로 삼아달라'며 간곡하게 부탁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훗날 세계에서 손꼽히는 자동차 회사를 경영하게 될 사람으로서, '자동차란 무엇인가'에 대해 몸으로 부딪히며 알고 싶어 했던 그의 열정의 발로였다. 나루세는 그의 간곡한 부탁과 자동차에 대해 진심이 되고자 했던 그의 열정을 알아 보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진정으로 운전을 배우고 싶다면 내가 가르쳐주마"라며 그를 제자로 삼게 되었고, 예상 외로 매 주말마다 찾아와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아키오 사장이 훗날 토요타의 마스터 드라이버가 되고, 모터스포츠에 현역으로 뛸 수 있을 정도의 기량을 만들어 준 인물이 바로 이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나루세 히로무와 함께 이 팀을 이끌고 있었던 주요한 인물 중 하나가 그의 '제자'를 자청했던 현재의 토요타 아키오 사장이었다. 그리고 팀명이자, 현재 토요타 가주 레이싱이라는 이름의 어원이 된 '가주(GAZOO)' 역시 그와 관련이 있다. 이 가주라는 이름은 본래 아키오 사장이 주도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던 'GAZOO'라는 비공식 인터넷 미디어 플랫폼에서 가져 온 것이다. 이는 아키오 사장이 입사 초기 토요타 딜러망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고안한 디지털 이미지 기반의 인증 중고차 판매 서비스인 '화상(画像, gazou)' 서비스를 기반으로 여기에 다양한 자동차 관련 컨텐츠를 제공함으로써 '이미지(Gazou)의 동물원(Zoo)을 만든다'는 개념으로 지어진 것이다. 가주는 지금도 운영되고 있으며, 아키오 사장 역시, '모리조'라는 필명으로 기고를 하고 있기도 하다.
모터스포츠 전담반을 넘어, 자동차 문화의 선도자로
이렇게 아키오 사장 자신과 그의 스승인 나루세가 주축이 되어 어렵게 운영하고 있었던 팀 가주는 2009년, 토요다 아키오가 사장으로 본격 취임하면서, 활동에 급물살을 타게된다. 아키오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회사를 살리기 위한 구조조정을 진행함과 더불어, 그동안 전사적 지원을 받아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고 있었던 토요타 F1 팀을 전면 철수시켰다. 그리고 그동안 사내 벤처 수준으로 어렵사리 운영되고 있었던 팀 가주를 '가주 레이싱(GAZOO Racing)'이라는 이름으로 재편하고 본격적인 활동 강화에 나섰다. 가주 레이싱은 "신차 개발의 성지인 뉘르부르크링에서 사람과 자동차를 함께 단련"하는 것을 목표로 당시 한창 개발 중이었던 렉서스 LF-A(LFA)와 FT-86(GT86)을 바탕으로 한 경주차와 일본 내 프로 레이서들까지 동원해 뉘르부르크링 24시에 참가하며 활동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2010년, LFA 기반의 경주차로 SP8 클래스 우승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전후하여 가주 레이싱은 양산차 부문에도 관여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해서 만들어진 브랜드가 오늘날 GR브랜드의 전신이 되는 'GRMN' 브랜드와 'G's' 브랜드다. 2009년 출범한 GRMN 브랜드와 이듬해 출범한 G's 브랜드의 양산차들은 나루세 히로무가 개발에 참여했다고 한다. 특히 최상급에 해당하는 GRMN은 가주 레이싱(Gazoo Racing)과 나루세의 별명이었던 '마이스터 오브 뉘르부르크링(Meister of Nuerburgring)'에서 가져 온 것이다.
하지만 2010년, 가주 레이싱에 큰 위기가 닥친다.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아키오 사장의 스승인 나루세 히로무가 렉서스 LFA의 특별사양 차량인 뉘르부르크링 패키지의 테스트 주행을 위해 뉘르부르크링 부근의 도로를 통해 이동하던 중, 마주 오던 BMW 차량과의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이 일은 아키오 사장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하며, 지금도 아키오 사장이 뉘르부르크링 24시에서 '모리조'라는 가명으로 출전할 때, 항상 "나루세氏도 우리와 함께 달리고 계신다"며, 스승인 나루세 히로무를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또한 아키오 사장은 가주 레이싱을 단순한 모터스포츠 전담반이 아닌, 일본 내 자동차 문화를 선도하는 존재로 만들고자 했다. 가주레이싱은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서킷 체험 행사를 적극적으로 개최하는 한 편, GT86과 스바루 BRZ의 출시 이후 이들 차량을 베이스로 하는 원메이크 레이스를 개최하기 시작했으며, 매년 11월에 토요타 가주 레이싱 페스티벌(TOYOTA GAZOO Racing Festival)이라는 이름의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자동차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환기하고 있다.
또한 2015년도부터는 토요타 레이싱(Toyota Racing)과 렉서스 레이싱(Lexus Racing)을 모두 가주 레이싱으로 통합, 토요타자동차그룹의 모터스포츠 활동을 완전히 가주 레이싱으로 일원화했다. 토요타 가주 레이싱의 모터스포츠 활동은 설립부터 지금까지 WEC와 WRC, 그리고 일본 내 각종 랠리 및 투어링카 레이싱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심지어 미국의 스톡카 경주인 나스카에도 참가하고 있다. 반면, 포뮬러 1이나 포뮬러 3 등의 오픈휠(Open Wheel) 레이스에는 전혀 참가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특징이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아키오 사장이 뉘르부르크링과 랠리에 갖는 애정이 각별한 것 뿐만 아니라, 경주차와 양산차의 간의 차이가 너무 커서 당장의 양산차 개발에 즉각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으로 인해 기피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2017년에는 GRMN과 G's로 나뉘어져 있었던 고성능 브랜드를 GR 브랜드로 통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토요타 GR 브랜드의 모든 차량들은 TGR의 모터스포츠 활동으로 획득한 피드백을 양산차에 반영하고 있으며, 현재는 일본 내수시장 기준으로 총 4종의 GR 브랜드 차량과 5종의 GR 스포트(GR Sport) 차량이 판매되고 있다. 국내 시장의 경우에는 2020년 선보인 GR수프라를 시작으로, 2022년 상반기 GR86이 출시되며 2종의 차량이 한국토요타자동차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