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이 일본 자동차 업계에 남긴 것, 3대 스포츠카 - 혼다 NSX 하편

2022-03-31     박병하

1980년대 부동산 붐으로부터 시작된 일본의 거품경제가 1990년대 들어 붕괴하면서 일본은 이른 바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잃어버린 20년', '잃어버린 30년'이라고 일컬어지는 초장기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하지만 거품경제가 극에 달해 일시적으로 엄청난 현금을 갖게 되었던 일본의 자동차 업계는 이 돈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참가하는데만 해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 전세계의 모터스포츠 무대에 거침없이 뛰어 들었고, 1960년대 일본 자동차 산업의 중흥기부터 지속적으로 키워오고 있었던 자국 내의 모터스포츠 기반도 한층 단단하게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투자 비용 대비 시장성이 지극히 낮은 고성능 스포츠카의 개발에도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부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차들이, 오늘날에도 JDM(일본 내수차량)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일본의 3대 스포츠카들이다. 자동차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서도 특히 2000년대 만화 '이니셜D' 시리즈나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초기 시리즈를 보고 자라 왔던 세대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눈에 들어 왔을 법한 그 차들이기도 하다. 지난 기사에서는 이번 연작 기획의 두번째 주인공이자 혼다기연공업(이하 혼다)의 걸작 스포츠카, 초대 NSX의 마무리 개발 과정과 차량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했다.

생각지도 못한 난관..."스포츠카에 4기통이 웬말이냐"
1980년대 F1에서 주가가 크게 높아진 혼다는 그동안의 자사 양산차와는 궤를 달리하는, 완전히 새로운 스포츠카, 'NSX'의 개발에 나섰다. 차명인 NSX는 당시 혼다 내의 프로젝트명이었던 (New Sports X)를 줄인 것이었다. 혼다는 NSX를 2.0리터급의 배기량을 갖는 중형급의 스포츠카로 개발되었으며,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혁신적인 스포츠카를 만들고자 했던 혼다의 피나는 노력이 담겼다. 특히 당대의 스포츠카들을 뛰어넘는 최고의 핸들링 성능을 갖도록 하기 위해 여러 모험을 스스로 감수해야만 했다. 특히 혼다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도전하는 리어미드십 후륜구동계의 채용과 더불어,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인 풀-알루미늄 차체구조에, 엔진과 서스펜션 등에 알루미늄 합금을 적극 채용하는 등,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가볍고도 탄탄한 기골을 완성시켰다. 여기에 각종 경량화 설계가 적용된 고회전 자연흡기 2.0리터 엔진을 탑재해 공차중량 1,000kg의 초경량이면서도 200마력의 출력를 가져, 중량 대 출력비가 슈퍼카에 버금가는 1마력 당 5kg를 달성한 스포츠카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혼다는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고급 브랜드 아큐라(Acura)의 론칭을 앞두고 있었던 미국측의 혼다 딜러사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 당시 혼다의 미국측 딜러사들은 "미국에서 4기통 엔진은 그냥 평범한 승용차용 엔진"이라는 지적을 비롯하여 "4기통 따위로는 스포츠카의 감각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등 날선 비난을 퍼부었다. 또한 미국측 딜러사들은 "최소한 6기통 엔진을 달아야 한다"고 혼다 측에 요구했다. 심지어 "어차피 미국 시장에서는 '중량 대 출력 비'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며, "알루미늄 바디는 불필요한 비용상승만 불러오니 폐기하라"는 요구마저 있었다. 이는 NSX의 근간마저 부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혼다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혁신적인 스포츠카를 만들고자 했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국 시장이 워낙 거대한 시장이기에, 그들의 요구가 터무니없는 것처럼 들릴지라도 마냥 무시할 수 만은 없었다. 그리하여 혼다는 눈물을 머금고 4기통 엔진을 포기하고, 6기통 엔진을 탑재하는 방향으로 개발 방향을 수정했다. 그러나 스스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나가며 피나는 노력 끝에 완성해낸 알루미늄 차체구조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NSX는 당초 계획된 2.0리터 4기통 엔진을 포기하고 최고출력 280마력의 V6 엔진으로 갈아타게 되었다. 그런데 미국 시장의 반발로 인해 V6 엔진을 선택한 것은 오히려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시판 사양의 NSX는 수동변속기 기준으로 1,350kg의 중량을 갖는다. 그런데 이를 중량 대 출력 비로 환산하면 1마력 당 4.82kg으로, 당초 목표로 했던 1마력 당 5kg을 초과달성하는 효과를 거둔 것이다. 아울러 혼다는 NSX의 가벼운 중량 덕분에 엔진에 걸리는 부하는 물론, 차체 각 부에 가해지는 부담도 함께 줄어드는 효과를 갖게 되어 차량의 수명연장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전설적인 드라이버의 지도를 받다
이렇게 설계기반을 모두 확보하면서 미국 시장의 불만을 잠재운 혼다는 NSX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 셀 수도 없이 많은 테스트를 거쳤다. 혼다는 NSX의 성능 시험 및 조정을 위해 시즈오카에 위치한 자사 소유의 스즈카 서킷과 혼다 프루빙 그라운드에서 숱한 테스트 주행을 반복하며 설계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당시 F1 무대에서 잘 나가고 있었던 드라이버였던 아일톤 세나(Ayrton Senna da Silva)에게 NSX의 테스트를 의뢰하기까지 했다.

혼다에 따르면, 세나가 처음 NSX의 테스트를 진행할 당시에는 "양산차 개발과 관련된 일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적절한 코멘트가 가능할 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테스트 이후 드라이버로서 최대한 솔직한 감상을 말해 주었다고 한다. 이내 스즈카 서킷에서 그는 프로토타입 NSX를 극한까지 몰아 붙여가며 테스트를 진행하고는, 프로토타입 섀시의 비틀림 강성이 부족한 것을 지적했다. 그런데 당시 혼다 측에서는 이미 수치상으로는 충분한 강성이 확보되어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허나 아무리 수치 상으로 완벽하다고 할지라도 그 차를 운전하게 될 드라이버가 직접 몸으로 느끼게 되는 감각적인 부분에서 위화감이 생긴다면, 당초 목표로 했던 '쾌적한 F1'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혼다는 NSX의 프로토타입을 오늘날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의 핸들링 성능 시험장+경연장이 되어버린 독일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로 향했다. 혼다는 아예 NSX의 시험만을 위한 뉘르부르크링에 테스트 센터까지 차리고서 테스트를 진행했다. 혼다는 유수의 드라이버들이 전달해 주는 피드백을 최대한 차량에 반영하려 노력했고, 이렇게 NSX는 사상 최고의 핸들링 머신으로 숙성되어갔다. 혼다는 이 때 세나의 솔직한 지적이 NSX의 차량 동역학 개선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후의 풍문에 따르면, 이 당시 세나가 NSX를 테스트하면서 차량이 마음에 들었었는지, 본인도 NSX 1대를 개인적으로 소유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혹독한 테스트 끝에, NSX는 수치 뿐만 아니라 감각적으로도 "안심하고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체감 강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능'보다 '사람'이 먼저인 스포츠카를 실현
기자는 NSX 시리즈의 첫 기사에서 언급하였듯이, 혼다는 "기술은 사람을 위해(技術は人のために)"라는 자사의 이념에 부합하는 스포츠카를 만들고자 했다. 따라서 혼다는 "스포츠카는 불편함을 이 악물고 감수해야 하는 차"라는 통념을 완전히 깨뜨리는 "쾌적한 F1(快適F1)"을 목표로 개발에 임했다. 그러한 부분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NSX의 패키징이다. 차량의 스타일링이나 성능이 먼저가 아닌, 탑승자를 가장 우선시하는 설계 사상으로 만들어진 스포츠카인 것이다.

혼다는 "종래의 리어미드 엔진 스포츠카나 리어엔진 스포츠카들은 앞바퀴의 휠하우징이 실내로 크게 파고들기 때문에 스티어링 휠이나 페달 배치가 어렵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들은 처음부터 사람이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운전자세를 설정해 두고, 거기에 맞춰 설계를 진행했다고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스포츠카의 낮은 전고로 인한 운전시야의 축소를 막기 위해, 대시보드, 계기반, 그리고 보닛의 위치를 최대한으로 낮게 잡을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혼다는 극도로 소형화된 NSX 전용의 공조장치 유닛을 따로 개발해서 적용했다. 또한 혼다는 NSX만을 위한 전용의 더블위시본 서스펜션을 개발하여 NSX에 적용시켰다. 이 프론트 서스펜션 유닛은 인휠 타입으로 설계된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 덕분에 조종 안정성과 승차감을 모두 챙기면서도 차체 전방의 높이까지 크게 낮출 수 있었다.

NSX의 그린하우스는 F-16 전투기의 캐노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이는 초기 디자인 과정에서 협력했던 피닌파리나가 제시한 것으로, 극단적인 캡포워드 스타일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캡포워드 스타일이란, 윈드스크린(앞유리)을 앞쪽으로 최대한 밀어낸 형태를 말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고곡률의 고강성 유리를 제작해야 하므로 기술적으로 난이도가 있지만, 차량의 내부 공간을 더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개선된 전방시야와 공력특성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후방에도 이러한 형태의 고곡률 유리를 뒷유리에도 적용하여 전투기의 캐노피와 같은 형상이 된다. 

엔진의 배치 역시 남달랐다. 종래의 리어 미드 엔진 스포츠카들은 세로배치를 적용한 반면, NSX는 엔진은 내부공간의 확보와 후방시야의 개선을 위해 가로배치로 탑재되었다. 이는 V8이나 V12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고 체적이 작은 V6 엔진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이렇게 NSX는 당대의 리어미드엔진 스포츠카가 갖는 사각(死角)을 최소화함으로써 승용차에 준하는 운전환경을 구현했다. 편의장비 면에서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NSX의 공조장치 유닛은 크기만 작을 뿐, 성능은 종래의 공조장치와 비등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우수한 내구성을 겸비하고 있었고, 심지어 고급 세단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전자동 공조 기능까지 적용했다. 또한 품질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고, 내구성이 우수한 소재들을 사용했다.

시대를 앞선 각종 선진기술들
우여곡절 끝에 탑재된 V6 엔진의 경우, 알루미늄 블록을 적용해 경량화를 꾀하는 한 편, 세계 최초의 전자식 스로틀 바디를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른 바, 드라이브-바이-와이어(Drive-by-Wire) 기술이 적용된 혼다 최초의 양산차인 것이다. 이는 항공기에 적용되고 있었던 '플라이-바이-와이어(Fly-by-Wire)'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다 정교한 스로틀 제어가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 핵심 기술이다. 종래의 스로틀 바디는 가속페달과 강철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어 가속페달 조작시 저항이 생기고, 이 때문에 이론 상 정확한 스로틀 제어가 어렵다.

특히나 엔진이 뒤에 배치되는 리어미드십 스포츠카로서 이것은 가속페달 응답성 저하를 불러와, 위화감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따라서 혼다는 가속페달을 밟으면 센서가 가속페달 조작량을 감지하여 전기신호를 보내 스로틀을 여닫는 혁신적인 방식을 적용했다. 또한 자사의 슈퍼스포츠 모터사이클 엔진에 적용하고 있었던 가변밸브타이밍 기구, 'V-TEC'을 적용해 뛰어난 동력성능을 확보하는 한 편, 엔진의 튠업에도 신경을 써서 유연한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NSX는 초기형에는 3.0리터 사양이8, 후기형에는 3.2리터 사양의 엔진이 장착되었다. 엔진출력은 당시 일본 내수시장의 출력제한으로 인해, 모두 280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도록 만들어졌다.

스티어링 시스템 역시 남달랐는데, 당대로서는 상당히 앞선 전동식 파워스티어링 시스템(EPS)의 적용이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는 2000년대 후반에나 들어서야 널리 적용되기 시작한 것을 NSX는 1980년대 후반에 실용화를 꾀했던 것이다. 종래의 유압식 파워스티어링 시스템은 별도의 유압기구를 작동하기 위한 각종 기계장치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NSX는 리어 미드엔진 레이아웃의 특성 상, 유압관련 배관의 길이가 지나치게 길어져서 불필요한 중량 증가를 불러오는 요소로 작용했던 것이다. 또한 유압 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엔진의 동력을 이용해야 하는데, 여기서 6마력의 출력손실이 발생했다고 한다.

따라서 혼다는 당시에는 연구단계에 가까웠던 전동식 파워스티어링 시스템을 NSX 전용으로 개발하기에 이른다. 전기 모터에 의해 스티어링 시스템이 동작하므로 복잡한 유압장치들이 필요가 없으며, 전자제어로 작동하기 때문에 중량절감 면에서 유리할 뿐만 아니라 엔진의 출력 손실도 없는 혁신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다는 스포츠카에 걸맞은 조종질감과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해 소재나 단가 등에 구애받지 않고 최상급의 시스템을 개발해 냈다. 이 덕분에 훗날 다른 제조사들이 연비 향상 및 원가절감을 위해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도입하자 터져 나왔던 '위화감'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었다고 하며, 오히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전동식 파워스티어링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NSX는 마침내 1990년, 미국 시장에서 아큐라 브랜드를 대표하는 스포츠카로서 정식 데뷔하였다. 일본 내수용 및 유럽 시장용인 혼다 버전의 NSX는 동년 10월 열린 도쿄 모터쇼에서 정식 데뷔하고, 일본 내수시장을 필두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최종회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