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영역을 아우르는 유산으로부터 태어나다 - 롤스로이스 블랙 배지 이야기
롤스로이스모터카가 이달 새로운 블랙 배지(Black Badge) 모델의 공개를 앞두고 블랙 배지 관련 헤리티지를 소개했다. 고객이 롤스로이스에 이끌리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표현을 향한 욕구’를 가능케하는 능력이다. 롤스로이스는 고객에게 한계를 넘어서고, 가능성의 기준을 재정립하며, 정해진 관습에 도전할 기회를 제공한다. 롤스로이스 블랙 배지 시리즈는 이 ‘극한’의 정신을 포착한다. 롤스로이스의 창립자 헨리 로이스와 C. S. 롤스는 공통점이 없는 성장 배경을 가졌지만 규범과 관습에 도전해 성공을 거뒀다. 헨리 로이스는 가난과 궁핍, 그리고 정규 교육의 부재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자동차’를 만든 세계적인 엔지니어로 우뚝 섰으며, 그 성취를 통해 작위를 수여받았다. 영국 명문 대학인 케임브리지 출신의 C. S. 롤스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특권을 누리며 쉬운 삶을 사는 대신 자동차 레이싱과 비행기 조종과 같이 모험적인 길을 택해 두 분야 모두를 이끄는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는 이들을 ‘교란자(disruptor)’라고 부른다. 교란자는 다른 사람이었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혹은 감히 시도하지도 못했을 일을 해냄으로써 세계를 바꾸는 평균 이상의 사람들, 선지자들, 그리고 전복자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범하고 도전적이며 반항적인 정신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롤스로이스에게 깊은 매력을 느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016년 출시한 롤스로이스 블랙 배지 라인업은 개성, 자기표현, 창조성, 인습 타파의 정신을 궁극의 형태로 표현한다. 외장 마감에는 제한이 없지만 확고히 정해진 단 하나의 색상은 강력한 매력을 자아낸다. 바로 검은색이다. 검은색은 오랫동안 권력, 힘, 권위의 상징이었다. 강렬하고 본질적임과 동시에 우아함과 자신감, 절제와 단순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과시와 현란함, 관심을 갈구하는 태도와 상반되는 느낌을 지니며, 미스터리하고 비밀스러운, 그리고 위엄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지난 수십 년간 검은색으로 마감된 비스포크 롤스로이스 자동차는 각 고객의 취향에 맞춰 차별화된 방식으로 제작됐다. 아래 모델들은 브랜드의 117년 역사에서 30년이 넘도록 롤스로이스가 ‘올 블랙’이라는 테마를 어떻게 독특하고 기억에 남는 방향으로 구현했는지 보여준다.
1933년: 팬텀 II 컨티넨탈(94MY)
1930년, 디자이너 이반 에버든(Ivan Evernden)은 26EX라는 코드명 아래 팬텀 II 컨티넨탈을 의뢰했다. 이 자동차는 장거리 여행을 목적으로 특별히 설계됐으며, 짧은 차체와 클로즈 커플드(close-coupled) 스타일의 4인승 세단 바디를 갖췄다. 트렁크 부분에는 균등한 무게 배분을 위해 두개의 예비 휠이 수직으로 부착되어 있고, 바커&컴퍼니(Barker & Co)가 만든 차체는 한결 같이 편안한 고속 주행과 강력한 제동력을 얻기 위해 서브프레임 위에 얹혔다. 26EX로 첫 여행을 떠난 날 에번든은 프랑스에서 열린 콩쿠르 델레강스로 차를 몰았고, 그랑프리상을 수상했다.
6EX가 거둔 승리를 본 롤스로이스는 동일한 기술 속성과 유사한 차체를 가진 양산 모델을 출시하기로 결정했으며, 여기에 코치빌더와 고객들이 자신만의 디자인 취향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1933년 94MY가 탄생했다. 94MY는 조절 가능한 앞자리 버킷 시트, 한 쌍의 앞유리 와이퍼, 옆유리 위에 위치한 플러시 피팅 방향지시등과 같이 당대에 흔치 않은 요소들을 탑재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검은색과 함께 “특별한 갈색 가죽, 밝은 갈색 파이핑, 카펫과 천장 간의 조화, 고광택 우드 비니어”라는 주문을 받아 제작됐다. 고성능과 최상급의 승차감, 특별한 방식의 맞춤 마감을 결합한 94MY는 1930년대에 만들어진 롤스로이스 중 오늘날의 블랙 배지가 지닌 정신을 가장 잘 담아낸 모델이다.
1959년: 팬텀 V(5AT30)
1959년에 출시해 실버 레이스를 대체한 팬텀 V는 거대한 쇼퍼드리븐 차량이다. 이중 1960년 글로스터 공작 헨리(HRH The Duke of Gloucester)의 주문으로 출고된 5AT30의 바디는 코치빌더 제임스 영(James Young)의 PV15 디자인에 기반해서 만들어졌으며, 오늘날 가장 우아한 팬텀 V 차체로 여겨진다. 글로스터 공작의 팬텀 V가 기존 롤스로이스의 관습으로부터 가장 차별화된 부분은 도색이다. 차량 윗면은 무광 블랙, 옆면은 유광 블랙으로 조합됐다.
이외에도 비스포크 아이템으로 표준보다 훨씬 작은 백라이트, 거대한 안개등, 도어에 붙은 사이드 미러, 뒤 창문의 미닫이식 셔터, 그리고 두 개의 스테판 그레벨(Stephane Grebel) 스포트라이트 등이 포함됐다. 차량 전면에는 일반적인 내장형 헤드라이트 대신 루카스 R100 헤드램프가 위풍당당하게 자리잡았다. 롤스로이스의 마스코트였던 환희의 여신상은 글로스터 공작의 상징인 비행하는 독수리가 대체했다. 여기에 브랜드 역사상 최초로 ‘홀더에 담긴 우산’이 주문 제작되었고, 훗날 롤스로이스 자동차의 기본 사양으로 제공되고 있다.
1965년: 팬텀 V(5VD73)
1964년 12월, 세계적인 그룹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이 팬텀 V를 주문했다. 모든 사양이 개인 맞춤식으로 진행된 만큼 레논은 자동차 안에서부터 바깥쪽까지, 일반적인 크롬 도금이나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된 부분까지 모든 곳이 검은색이기를 원했다. 뮬리너 파크 워드가 제작한 레논의 팬텀 V는 상징적인 판테온 그릴과 환희의 여신상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유광 블랙 도색으로 마감됐다. 이 모델은 영국에서 처음으로 유리창을 완전한 검은색으로 덮은 차량이었는데, 이는 사생활 보호뿐만 아니라 밝은 낮에 귀가해도 자동차 안은 여전히 어두워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느낌을 선사했다. 실내 역시 검은색으로 채워졌다. 뒷좌석에는 검은 나일론 러그가 덮여 있으며, 앞좌석은 검은 가죽으로 둘러싸였다. 이외에도 라디오와 이동식 TV를 작동하기 위한 전기식 안테나, 그리고 검은색의 러기지 7종 세트도 함께 포함됐다. 이와 같이 대담하고 창의적이며 독특한 차량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문화적 혁신가 중 한명인 존 레논과 완벽한 조합을 보여준다. 레논은 음악 분야뿐만 아니라 운동화를 스포츠 영역 밖에서 활용한 최초의 인물로 패션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이후 레논의 팬텀 V는 몽환적인 노란색으로 칠해졌으며, 꽃과 소용돌이 무늬, 그리고 황도 12궁 문양이 그려지기도 했다. 독창적이기 그지없는 차량의 변화에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이야말로 블랙 배지의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롤스로이스의 멈출 줄 모르는 그 도전 정신은 계속해서 진화를 거듭하는 롤스로이스 블랙 배지 라인업을 통해 새롭게, 그리고 역동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