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카 끝판왕 롤스로이스, 세계 최초의 장갑차를 만들었다?

2021-09-24     모토야

롤스로이스(Rolls-Royce)는 영국에서 태어난 세계 최고의 고급 자동차 제조사로 통한다. 현재는 독일 BMW의 산하에 있지만, 여전히 영국 럭셔리카의 자존심과 같은 브랜드다. 롤스로이스는 1906년, 자동차 딜러와 레이서를 병행하던 귀족 출신의 찰스 스튜어트 롤스(Charles S. Rolls)와 전기기술자인 프레드릭 헨리 로이스(Frederick H. Royce)가 공동으로 설립하였다. 롤스로이스는 처음부터 자동차를 제작하는 회사로서 세워졌다.

롤스로이스는 자동차를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엔진도 꽤나 유명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그들의 엔진은 비행기에도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다. 자동차와 자동차 엔진을 만들던 제조사가 어떻게 비행기용 엔진을 공급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을 독자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당시의 비행기 엔진들은 모두 자동차용 왕복 엔진(Reciprocating Engine)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왕복 엔진이라 하더라도 항공기만을 위한 전용의 엔진을 따로 개발하여 사용할 뿐더러, 연료도 전용의 것을 사용하게 된 것은 항공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야기다.

이렇게 롤스로이스는 제 1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영국군의 항공기를 위한 엔진을 공급하는 한 편, 자신들의 복수전공 분야인 '자동차' 부문의 강점을 살린, 새로운 형태의 병기를 발명하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장갑차로 통하는 롤스로이스 장갑차(Rolls-Royce Armoured Car)다.

이 럭셔리(?)한 장갑차는 1916년 솜 전투 때 실전에 투입된 '최초의 전차', Mk.1 탱크가 등장하기 10년 전인 1906년에 나타났으며 1914년, 세계최초로 대량생산되어 실전에 투입된 첫 번째 장갑차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이 장갑차를 최초 발주한 곳은 재미있게도, 영국 육군이 아닌 왕립 해군(Royal Navy)이었다. 그 중에서도 왕립 해군 항공대가 이러한 형태의 차량을 요구했다. 참고로 당시에는 왕립 공군(Royal Air Force)이 아직 창설되기 이전이었다.

왕립 해군이 롤스로이스에 장갑차를 발주한 이유는 대공 및 수색작전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독일은 영국을 폭격하기 위해 비행선을 이용했는데, 이 배행선을 격추시키기 위해서는 전투기들이 출격해서 기총소사를 퍼붓거나, 이동식의 대공포가 필요했다. 게다가 비행선을 요격하러 나간 전투기가 상대의 호위기에 격추되었을 때, 귀중한 자원인 조종사를 구출/호송 할 수 있는 형태의 차량도 필요했다.

해군의 요구에 따라, 롤스로이스는 소규모의 병력이 탑승하여 상기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동차량을 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롤스로이스 장갑차다. 이 롤스로이스 장갑차는 동사가 1906년 출시한 명차, 실버 고스트(Silver Ghost)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 차는 12mm 두께의 장갑판과 지상차량 최초로, 전함에나 쓰던 무거운 회전식 포탑을 적용했다. 포탑에는 뛰어난 화력을 제공하는 빅커스 기관총을 탑재해 대공임무는 물론, 보병을 상대로 화력과 기동력의 우위를 점하며 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무거운 장비들을 잔뜩 실었음에도, 당대에도 좋은 성능의 자동차로 평가 받았던 실버 고스트를 기반으로 한 만큼, 최고 72km/h의 속도로 질주할 수 있었다.

1914년 12월 총 3대가 처음으로 서부전선에 투입되어 실전을 치른 이 장갑차는 많은 양은 아니지만 그 효용성을 입증하고 꾸준히 추가로 생산이 이루어져, 서부전선 뿐만 아니라 오스만 제국군과 전선이 형성되어 있었던 중동 전선에도 보내져 사용되었다. 그러다 1917년, 돌연 생산을 중단하게 된다. 그 이유는 롤스로이스가 항공기 엔진을 납품하는데 전력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영국군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 장갑차를 개량해 사용했으며, 심지어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해 정찰용으로 유용하게 사용했다. 롤스로이스의 장갑차는 현대에도 쓰이고 있는 '차륜형 장갑차'의 효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