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퍼에게 없는 그 것... 'CVT'
현대자동차가 오늘 자사의 신형 경차 모델 캐스퍼를 선보이며 온라인 사전판매에 들어갔다. 현대자동차 캐스퍼는 아토즈(ATOZ) 이래 근 20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경차 모델이며, '경형 SUV'를 표방한다.
현대자동차 캐스퍼는 기자가 선행 디자인 공개 당시에 썼던 칼럼 기사(https://www.motoy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953)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침체 일변도로 흐르고 있는 국내 경차 시장에 새로운 활력소를 넣어 줄 모델로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자료를 살펴보니, 신차 캐스퍼에는 결정적으로 아쉬운 요소가 한 가지 있다. 바로 변속기다. 기존에 기아의 경형 모델들에 사용하고 있었던 자동 4단 변속기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1.0 카파 터보 엔진에도 자동 4단 변속기를 그대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는 상당히 의외였다. 과거 기아 모닝과 레이 터보 모델에 사용했던 1,0리터 카파 터보 엔진에는 국산 CVT 조합으로 파워트레인을 구성했었기 때문이다. 이미 검증된 조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4단 자동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대체로 '비용절감'을 위한 조치로 보인다. 파워트레인의 품종을 간소화하는 것은 차량에 맞는 파워트레인의 세팅값을 도출하는 과정, 그리고 인증을 위한 절차 등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 붙이자면, 국내에서 CVT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좋지 않다는 점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보인다.
수동보다 덜 먹는 변속기, '결함변속기'로 낙인 찍히다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 처음으로 CVT를 도입한 사례는 구 GM대우의 경차 마티즈(Matiz)다. 마티즈에 탑재된 CVT는 일본 아이치기공의 E3CVT였고, GM대우는 이를 이른 바 "수동보다 덜 먹는 자동"이라며 CVT의 우수성을 역설했다. 이 덕분에 당시 외환위기로 침체된 90년대 후반의 경제상황과 맞물려서 '수동보다 덜 먹는' 마티즈 CVT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팔려 나갔다.
하지만 CVT의 채용은 이후, GM대우에게 있어 끔찍한 재난을 초래하게 된다. 바로 CVT의 '결함' 문제였다. 이는 변속기 자체의 결함이라기보다는 대우자동차 측에서 엔진에 맞지 않는 사양의 변속기를 잘못 채용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본래 아이치기공의 E3 CVT는 배기량 660cc 미만의 일본 내수용 경차를 위해 만들어진 변속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기량 796cc의 M-TEC 엔진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곳곳에서 소비자 불만이 터져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대우자동차는 리콜 없이 '무상수리'로 일관하는 대응만을 보여 더더욱 비난 받았다. 심지어 대체품을 찾지도 못한 채, 단종되는 그 날까지 이 결함품을 계속 사용했다.
이 CVT를 사용한 마티즈는 주행 중 고장을 일으키게 되면 동력전달이 끊기거나 시동이 정지되어버리기 때문에 대형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현재까지도 마티즈의 E3CVT는 한국지엠에게 부담을 안기고 있는 혹덩어리다. 심지어 한국지엠에서는 2012년도부터 2018년도까지 무려 6년에 걸쳐 E3 CVT 사양의 마티즈를 일종의 보상판매 형태로 매입하는 이벤트까지 벌였을 정도다. 그리고 이 때부터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는 ‘CVT=결함’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이는 현대-기아가 기껏 스마트스트림 엔진을 위해 새로 개발한 CVT, '스마트스트림-IVT'를 끝끝내 'CVT'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도 국내 시장의 이러한 정서를 꿰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단순하고 가벼워 경~소형차에 가장 이상적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CVT는 경차에게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변속기 중 하나다. CVT는 자동변속기의 일종으로, 기어와 기어가 서로 맞물리는 형태인 통상의 변속기와는 달리, 두 개의 풀리(Pulley, 도르래)를 하나의 벨트로 연결하는 형태를 띈다. 이 덕분에 구조가 일반적인 자동변속기 대비 움직이는 부품의 수가 통상의 자동변속기에 비해 현저히 적고, 구조도 단순하기 때문에 경형~소형차에 사용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변속기다.
물론, 감당할 수 있는 허용 가능한 출력과 토크의 폭이 일반적인 자동변속기 대비 작고, 변속 과정에서 이질감을 불러올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기어가 직접 물려서 변속을 하는 방식이 아니고, 기어비도 유동적으로 제어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높은 토크를 감당하기에는 한계점이 명확하다. 또한, 변속시의 이질감과 같은 문제는 보다 정밀한 제어장치와 소프트웨어의 개선으로 어느정도 극복이 가능한 부분이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줄이고 - CVT의 오늘
오늘날의 CVT는 고무제 벨트 대신 보다 견고한 금속 체인 구조의 채용과 전자제어의 정밀화 등을 통하여 상기한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해 나가고 있다. 특히 경차왕국 일본의 경우에는 자국 시장에서 판매하는 경차의 절대다수가 CVT를 사용한다. 그리고 나날이 발전된 CVT 기술을 통해, 3.5리터급의 대배기량 차종에도 CVT를 적용할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현대-기아 역시, 2018년 선보인 완전신형 기아 K3를 통해 처음으로 새롭게 선보인 ‘스마트스트림 IVT’를 소형~준중형급 차종에서 사용하고 있다. 현대-기아의 스마트스트림 IVT는 통상적인 CVT의 ‘강화판’에 가깝다. 동력을 전달하는 벨트는 금속제 체인으로 제작되며 유압 계통에 해당되는 부위들을 보강했다. 이를 통해 동력전달효율과 신뢰성 향상을 꾀한다. 기계적인 구조 상으로는 통상적인 CVT에 비해 큰 차이는 없지만 각각의 구성요소들을 강화시킴으로써 변속기로서의 성능을 전반적으로 높인 것이라 볼 수 있다.
추후라도 부분 변경 등을 통해 IVT의 출시를 기대
이렇듯 CVT는 경차는 물론 소형급의 차종까지 아우르는, 대표적인 '저비용/고효율'의 변속기다. 하지만 20여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경차 모델에 이 CVT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상당히 크나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아직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스마트스트림 IVT는 이제 개발이 완료된 지 3년차에 불과한 최신형 변속기이고, 이 변속기의 적용 폭이 넓어질수록 이익을 보는 쪽은 현대차다. 그리고 캐스퍼는 이제 막 사전계약을 실시한 최신예 차종이다. 따라서 현대차가 추후 캐스퍼의 파워트레인에 변화를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여부는 캐스퍼의 판매실적이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