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하이브리드의 '정신적 지주'가 부활하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판매 1000만대 금자탑을 세운 토요타의 명성이 이렇게나 높으니, 으레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타이틀은 토요타가 지녔을 거라 여길 것이다. 그러나 최초로 하이브리드 개념을 들고 나왔던 자동차는 프리우스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프리우스보다 반 년이나 먼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혼다 '인사이트'가 그 주인공이다.
탄생 이후 하이브리드 자동차 역사 그 자체로 자리매김하며 승승장구의 길을 걸어온 프리우스와는 달리, 인사이트는 굉장히 다사다난한 삶을 이어왔다. 1997년 도쿄 모터쇼에서 공개된 J-VX 컨셉트를 기반으로 제작된 초대 인사이트는 3도어 해치백 형태에 공기저항 최적화를 위해 뒷바퀴를 절반가량 가려버린 모습이 인상적인 자동차였다.
초대 인사이트는 공기저항을 최대한 줄이려 유연한 패스트백 스타일로 빚어졌다. 이로 인해 실제 연비에 영향을 미치는 공기저항 계수가 0.25Cd에 불과했고, 알루미늄으로 제작한 차체 덕에 공차중량도 900kg이 채 되지 않아 IMA(Integrated Motor Assist)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과 함께 상당히 높은 연비를 자랑했었다. 당시 미국 측정 기준 29.7km/l으로, 연비가 70mpg를 넘는 최초의 차량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다만 연비 끌어올리기에만 집중하다 보니 외형이 일반 승용차들 대비 이질감이 컸다. 3도어 타입 바디 탓에 실용성도 높지 않았다. 따라서 조금 더 대중적인 레이아웃과 (5도어 해치백), 이질감 덜한 생김새로 프리우스가 1세대 하이브리드카 대결에서 승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초대 인사이트는 프리우스와 함께 하이브리드카 만들기의 교과서와 같은 요소들을 다수 챙겨 많은 제조사들의 귀감이 되었다. 다소 생소한 개념 탓에 상업적으로 성공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1세대 인사이트는 2세대 프리우스가 한창 돌풍을 일으킬 당시인 2006년까지 판매가 되다 기약 없이 단종되었다.
이후 2008년 파리모터쇼에서 2세대 모델을 예견하는 인사이트 컨셉트 모델이 공개되었다. 현시점에서 바라보면 양산형 모델과 판박이였다. 헤드램프와 알로이 휠, 도어 캐치 등을 인위적으로 쇼카 스타일로 꾸민 것이 눈에 띈다.
이듬해 양산형 모델이 출시되었다. 2006년 초대 인사이트가 단종된 지 3년 만의 컴백이었다. 인사이트의 명맥은 잠시 끊겼으나 혼다의 IMA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지속적인 진보를 거듭했고, 4미터가 채 되지 않던 선대 모델에 비해 차체도 4.3미터까지 훌쩍 자랐다.
아울러 5도어 레이아웃으로 2열 시트와 실용성을 듬뿍 첨가한 덕에 이전보다 시장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이를테면, 2세대 인사이트는 시판 첫해 일본에서만 9만 3천 대가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고, 그 해 인사이트는 글로벌 시장에서 13만 대나 팔렸다. 초대 모델의 무력한 실패와 경쟁 모델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에도 불구하고 제법 분발한 것이었다.
당시 하이브리드카 시장은 모델 가짓수는 상당히 적지만, 스트롱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시장을 지배하다시피 한 프리우스와 정면 대결하기엔 인사이트 측이 네임 밸류 측면에서 모자란 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혼다는 병렬식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아이덴티티인 양 이어왔고, 프리우스보다 가격대도 낮게 책정하여 경쟁력을 발휘했다. 운전의 재미를 아는 브랜드답게 프리우스보다 핸들링도 날렵하게 다졌다.
2세대 인사이트는 2014년까지 판매를 이어오긴 했으나 높은 완성도를 통해 ‘완성형 하이브리드’라는 평을 받았던 3세대 프리우스의 등장 탓에 상품성이 나날이 하락했다. 자연스레 판매량 역시 꾸준히 줄어들었다. 주요 시장인 미국을 보면 데뷔 시즌과 그다음 해엔 각각 2만 대를 넘게 파는 저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2011년 이후 판매량이 큰 폭으로 감소하기 시작하며 결국 2014년에 단종을 맞이했다.
인사이트는 또다시 언제 깰지 모르는 동면에 들어간 셈이었다. 후속 모델에 대한 기약도 없었다. 마치 초대 인사이트가 무덤에 들어가던 그 시절과 같았다.
그러나 인사이트는 다시 한번 일어섰다. 혼다가 올해 초에 막을 올렸던 2018 디트로이트 모터쇼 (이하 NAIAS)에서 2014년 단종되었던 자사의 하이브리드 전용 모델, ‘인사이트’의 프로토타입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여타 신형 혼다 패밀리들과 다를 바 없는 얼굴, 양산 모델다운 디테일을 지녀 사실상 양산 모델 공개의 초읽기로 보였다.
특히 공기의 흐름을 최적화 시키기 위해 물방울 모양의 바디가 멋들어진 패스트백 형상의 세단으로 변모했다는 것이 놀랍다. 이는 쉐보레 볼트(VOLT)가 2세대 모델로 탈바꿈하며 이뤄낸 디자인 변화와 테마가 유사하다. 효율에 초점을 맞춰 생김새도 심미성보단 기능을 따라갔던 1,2세대 인사이트들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길이를 양껏 늘려 심미성까지 잡으려 한 흔적이 팍팍 드러난다.
더군다나 인사이트는 두 번이나 겪어온 단종의 아픔으로,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3세대로 이어오며 점점 대중적인 외형으로 변해오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모델 고유의 색깔을 점점 선명하게 표현하는 프리우스와는 정 반대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대중적이고 이질적이지 않은 모습을 지향한 변화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리고 프로토타입을 통해 시장 복귀를 예고했던 인사이트가 2018 뉴욕 오토쇼를 통해 완전한 부활을 알렸다. 앞서 언급했던 디자인 요소들을 고스란히 재현한 채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프런트 펜더 앞에 부착된 자그마한 하이브리드 엠블럼 뿐, 그게 전부다.
인테리어 역시 프로토타입 공개 당시의 렌더링과 판박이다. 디지털 클러스터와 3스포크 스티어링휠, 큼직큼직한 버튼들로 구성된 센터페시아가 결합된 모습은 10세대 시빅과 상당히 유사하지만 소소한 디자인 차이를 통해 차별화를 이루고자 했고, 어코드나 오딧세이와 같은 상위급 모델들에게서 버튼식 기어쉬프트를 빌려와 고급화를 이루고자 했다.
이와 함께 최신예 모델답게 혼다의 ADAS 기술 브랜드인 '혼다 센싱(Honda Sensing)'을 품었다. 이 ADAS 패키지는 사양에 따라 전방 추돌 경보(FCA)와 충돌 완화 제동 시스템(CMBS), 차선 유지 어시스트(LKAS), 교통 신호 인식 기능을 포함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등으로 구성된다.
신형 인사이트는 한지붕 가족인 10세대 시빅과 동일한 뿌리를 지녔다. 혼다가 입이 닳도록 강조하는 'ACE(Advance Compatibility Engineering) 바디' 적용으로 경량화와 차체 강성 강화로 전반적인 차량 완성도를 끌어올렸다는 것이 혼다의 설명이다. 패키징과 주행성능 등 다양한 측면에서 호평받아 온 혼다의 컴팩트 플랫폼 아래에서 빚어진 인사이트의 몸놀림과 상품성에도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파워트레인 구성에도 주목하자. 3세대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보닛 아래에 담긴 1.5리터 앳킨슨 사이클 엔진과 전모터 2개, 60셀 리튬이온 배터리 팩으로 구성된다. 이 구성 요소들이 힘을 합친 시스템 총 출력은 151마력에 달한다.
아울러 이 새로운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2018년 출시될 혼다의 새로운 전동화 모델들에게도 적용될 예정으로, 3세대 인사이트는 한층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파워트레인으로 4세대 프리우스를 정조준할 계획이다.
다만 혼다가 인사이트의 시장으로 삼는 북미 시장은 현재 저유가 기조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의 판매량 성장이 둔화되어있으며, 정반대 성향의 대형 SUV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새로운 인사이트 투입 시기와 데뷔 무대가 사실 어울리지 않아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것은 반대로 유럽 시장에서 주목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도 해석할 수 있다. 유럽에서 고연비 카테고리를 꽉 잡고 있던 디젤 엔진이 빠른 속도로 저물면서,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비롯한 부분 전동화 차량이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단종, 그 공백은 인사이트가 지녔던 브랜드의 간판 하이브리드 모델 타이틀을 여타 모델에게 넘겨줘야하는 계기였다. 다만 모든 혼다 하이브리드카의 정신은 인사이트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잊어선 안된다.
여담이지만 인사이트는 하이브리드 최초로 일본 열도를 점령하기도 했다. 그리고 몰라보게 잘생겨진 외모와 한껏 끌어올린 파워트레인 경쟁력으로 현재 일본 자동차 판매량 차트를 장악한 프리우스 형제의 뒤통수를 칠 절호의 기회다. 인사이트의 역사는 2018 뉴욕 오토쇼를 기점으로 다시 한번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