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도 뜨거운 심장, 엔진]닛산 RB26 엔진 편

2017-10-19     박병하

자동차의 엔진은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차가움이고, 나머지 하나는 뜨거움이다. 이렇게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갖는 이유는 금속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으로부터 시작된 엔진의 역사이래, 인류는 항상 금속으로 엔진을 만들어 왔다. 최근에는 재료역학의 발달로  인해, 금속 외의 다른 합성 재료를 사용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상의 모든 엔진의 주류는 금속이다. 강철과 알루미늄 등의 금속은 엔진이 잠에서  깨어난 시점부터 가동 시간 내내 발생하는 고열과 마찰 등의 모든 부담을 감당할 수 있으며, 대량생산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자동차의 심장, 엔진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본 기사에서 다룰 수많은  자동차의 엔진들 중 그 열 번째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전설적인 명기를 다룬다. 그 명기의 이름은  바로 RB26DETT 엔진이다.


전설로 남은 스카이라인 GT-R의 심장 – RB26DETT 엔진

닛산의 RB26DETT 엔진은 자동차, 특히 JDM(Japan Domestic Market, 일본 내수  시장용) 차량에 관심이 많았던 세대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전설로 통하는 엔진이다. 왜냐하면 이 엔진이 그 유명한 ‘스카이라인 GT-R’의 심장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RB26 엔진은 역대 가장 강력한 스카이라인 GT-R로 남은 BNR32부터 BNR34까지의 모델들에 채용된 마지막 RB계열 엔진이다. 그 때문에 RB26DETT엔진이  갖는 의미는 더욱 커진다. 특히, 지금의 닛산 GT-R을 적통으로 인정하지 않는 스카이라인의 골수팬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RB26DETT 엔진은 닛산 RB계열  직렬 6기통 엔진 중의 하나다. 엔진명인 RB는 각각 Response와 Balance를  의미하며, 숫자 26은  2.6리터(2,568cc)의 배기량을, D는  DOHC 기구 채용, E는 전자식 연료분사 기구 채용, 그리고 TT는 트윈터보차저를 각각 가리킨다. 실린더 내경은 86mm에, 행정 73.7mm이며, 캠샤프트 듀레이션은 흡기 240도, 배기 236도다. 아울러 당대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 손꼽히는 고회전 지향의 터보엔진이다. 시판  사양의 최고출력은 280마력, 최대토크는 40.0kg.m이다.



처음부터 ‘종마’를 위한  심장으로 태어난 엔진이다. 이 엔진은 당시 전일본 투어링카 챔피언십(JTC)의그룹A 클래스에서 포드 시에라 RS500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엔진이기 때문이다. 600마력의 최고출력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 엔진은 당시 신개발 상시사륜구동  시스템인 ATTESA E-TS와 함께, 후기 스카이라인 GT-R의 핵심을 이룬다.



그리고 1990년, 닛산은  이 엔진을 탑재한 신형의 스카이라인 GT-R로 JTC에 참전, 1차전부터 기적과 같은 주행을 해낸다. 당시 참전 중이었던 다른  경주차들을 압도하는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이다. 이 날 예선에서 새로운 스카이라인 GT-R 경주차에 오른 호시노 카즈요시(星野 一義)와 스즈키 토시오(鈴木 利男) 페어가 당시 JTC 최강으로 꼽히고 있었던 포드 시에라 RS500을 큰 폭으로 제치고  폴 포지션을 따낸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펼쳐진 본선에서는 이 페어가 그대로 결승선을 통과하기에 이른다. 이날 본선 경기에서 두 드라이버의 스카이라인 GT-R은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그나마 소닉 스카이라인을 제외하면 당시 참전한 경주차 모두가 이 페어보다 1랩 이상 뒤처져 있었던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리고 닛산은 90년 JTC에서 첫 승리를 기록한 이래, 1993년까지 총 29전 29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에 이른다. 당초 목표한 ‘우승’을 이루는 데 성공한 것이다.


RB26 엔진은 우승을 목표로 만들어진 엔진인 만큼, 닛산의 입장에서도 굉장한 공을 들인 엔진이다. 가장 큰 특징으로는  강건한 구조로 만들어진 실린더 블록을 꼽는다. 이는 혹독한 레이스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튼튼한 실린더 블록은 스카이라인 GT-R이 가졌던 당대  최고 수준의 튜닝 포텐셜을 이루는 밑바탕이다. 실린더 블록은 주철로 만들어졌으며, 일체식의 사다리형 프레임 구조를 갖추고 크랭크 샤프트 베어링과 크랭크 케이스 사이를 잇는 등, 다방면에서 보강을 가했다. 특히 엔진 자체의 사다리형 구조는 RB26 엔진의 뛰어난 강도를 이루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RB26 엔진은 당시 일본의 애프터마켓 업계에서도 주목받았다. 높은 포텐셜을 품은 RB26 엔진은 일본은 물론, 미국 등지의 튜너들에게도 상당히 각광 받은 바 있다. 물론 RB26 엔진은 이미 시판사양으로도 1리터 당 100마력 이상을 발휘하는 고성능 엔진이었다. 하지만 이 280마력이라는 최고출력은 당시 일본의 양산차 출력 제한 규제에 ‘묶여  있는’ 출력이었다. 본래  600마력의 출력에 대응하기 위한 엔진이었던 만큼, 일본의 튜닝 업계에서는 제한을 풀고  450마력 정도의 출력 설정에도 안정적인 운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통념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제조사인 닛산에서는 전혀 보증하지 않았지만.


높은 포텐셜을 지닌 RB26 엔진은 일본 자동차 애프터마켓 업계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다루어졌다. 특히, 튜너 톱 시크릿(Top Secret) 사에서 1,000마력의 출력을 넘은 스카이라인  GT-R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국내에도 알려진 튜너 베일사이드(Veilside) 사에서는 1,460마력에 달하는 스카이라인 GT-R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엔진  자체를 다른 차에 이식하는 엔진 스왑도 빈번하게 행해졌다. 이는 같은 스카이라인 계열의 차종은 물론, 닛산의 다른 후륜구동 차종, 심지어는 전혀 다른 제조사의 차에 이식한  사례도 존재한다.



다만 RB26 엔진에도 결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2.6리터라는 어중간한 배기량은 당시 일본의 양산차 시장에서  RB26 엔진의 대표적인 단점 중 하나로 꼽혔다. 이는 스카이라인  GT-R이 참가하고 있었던 JTC의 규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당시 JTC는 배기량 별로 클래스가 세분화되어 있었으며, 이에 따라 참가 차량의 타이어 폭까지 제한을 두고 있었다. 터보와  같은 과급 엔진에는 자연흡배기 엔진에 대한 패널티 규정을 적용했다. 당시 JTC 그룹A의 규정 상 자연흡배기 엔진의 배기량 상한은 4.0리터였고 과급 엔진은 본래의 총배기량에 과급계수 1.7을 곱한  값이 이를 초과하지 않아야 했다.


따라서 닛산은 당초 새 엔진을 개발할 때 2.35리터 배기량의 RB24엔진을 고회전 과급엔진으로 전환하는 것을 계획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는 당초 목표한 600마력의 최고출력 대응은 고사하고 10인치  트레드의 타이어를 사용하기 어려웠으며, ATTESA E-TS의 추가로 인해 중량 제한마저 넘어버리는  등의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당초 목표한 그룹A 4.0리터  클래스의 참전을 포기, 4.5리터 클래스에만 참전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2.6리터 애매한 배기량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이 애매한 배기량은  양산차 시장에서 BNR32 이후 스카이라인 GT-R 시리즈  전체의 단점으로 꼽혔다. 일본의 자동차세제 하에서는 스카이라인 GT-R은  배기량이 2.5리터를 초과하기 때문에 3.0리터급 차종으로  분류되었으며, 이는 구매자에게 상당한 세금 부담을 안겼다. 하지만  닛산은 최후기형 모델인 BNR34까지 이 엔진을 계속 탑재했다.


주철로 만들어진 실린더 블록은 특유의 구조 설계와 함께 강건한 강도 및 높은 포텐셜을 만들어주는 바탕이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같은 배기량에 비해 엔진이 너무 무거웠다. 건조  중량은 BNR32 스카이라인에 얹힌 엔진을 기준으로 255kg에  달했다. 이는 BNR32부터 처음 탑재된 ATTESA E-TS와 함께, 스카이라인 GT-R의 중량을 크게 늘려, 후술할 4.0리터 클래스의 참전을 포기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고중량으로  인한 나쁜 연비도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또한, 일반도로용  자동차로는 토크가 지나치게 고회전에 몰려 있어 운전이 까다로운 편이었다. 또한 밸브 시트의 구조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하고 엔진오일을 소모한다는 점도 단점으로 지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