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커브 이야기
일본의 혼다기연공업(本田技研工業, 이하 혼다)은 일본을 대표하는 기계공업 전문 기업으로 전세계에 자사의 이륜차와 자동차를 판매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혼다제트(Hondajet)’라는이름으로 민간용 항공기 사업에도 뛰어들어 쏠쏠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범용제품이라는 이름으로 잔디깎이, 예초기는 물론, 제설기, 펌프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소형 선박용의 선외기 또한 생산하고 있다. 그야말로 ‘엔진 달린 물건은 다 만드는’ 셈.로봇공학 분야에서는 인간형 로봇 아시모(ASIMO)로도 유명하다.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 손꼽히는 혼다의 시작은 이륜자동차, 정확하게는 원동기를 장착한 자전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48년설립한 혼다 모터사이클은 반세기가 넘는 역사 동안 수많은 이륜차를 개발하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며, 오늘날의혼다를 이루는 반석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의 혼다를 있게 한 수많은 명차 중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 단연 최고로 꼽을 수 있는 모터사이클은 내년으로탄생 60주년을 맞는 ‘혼다 슈퍼 커브(Cub, 이하 혼다 커브)’다.
1958년에 태어난 혼다 슈퍼 커브는 혼다가 개발한 소형의 이륜차로, 우리나라에서‘배달 오토바이’로 인식하는 모든 바이크들의 조상이라 할수 있는, ‘원조’ 언더본(Underbone)바이크다. 차명인 커브(Cub)는 본래 혼다가 50년대 초반에 생산하고 있었던 자전거용 보조 원동기 키트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지만 오늘날 혼다 ‘커브’라 함은, 대체로 58년부터 생산된 슈퍼 커브를 말한다. 혼다 슈퍼 커브는 오늘날에도생산되고 있으며, 현재 한국 시장에서도 혼다코리아를 통해 수입/판매되고있다.
혼다 슈퍼 커브는 한국전쟁 특수와 전후의 복구가 진행되어경기가 호조를 타고 있었던 50년대, 기존의 원동기장치자전거이륜차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개발되었다. 혼다 커브는 오늘날의 혼다를 일궈내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한 경영의 귀재, 후지사와 타케오(藤澤武夫, 당시전무)의 안목이 작용했다.
후지사와는 당시 이륜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고있다는 것과, 이에 따라 저렴하고 실용적인 소배기량 이륜차의 필요성을 직감했다. 그는 창업주이자, 기술자인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에게 “자전거용 보조 원동기 키트가 아닌, 배기량 50cc의 완성된 이륜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50cc의 배기량으로는 탈만한 성능의 것을 만는 것은 불가능하다”는냉담한 답변 뿐이었다. 하지만 후지사와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혼다 소이치로를 설득했고, 결국 1956년, 새로운완성차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정보 수집을 위해 혼다 소이치로는 후지사와와 함께 유럽으로 시장 조사를 떠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1956년의유럽 시장 조사에서 유럽의 각종 모패드(원동기장치자전거)를비롯한 소형의 이륜차들을 비교해 보면서 새로운 완성차에 대한 개념을 구체화해 나갔다. 또한, 혼다 소이치로는 이미 자국 시장에 출시되어 있었던 각종 이륜차들을 구입하고 이를 비교해 보면서 후지사와의 조언을구했다. 후지사와는 “기존의 것을 흉내 내서 조금 다르게만들어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새로 개발할 완성차는전혀 다른 개념과 방식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후지사와가슈퍼 커브에 요구했던 사항은 ‘작고 가벼운 차체에 높은 성능을 내는 소배기량 엔진을 탑재할 것’, ‘우수한 조종성을 가질 것’, ‘실용적이고 유지 보수 비용이 적을것’ 등이었다.
수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혼다 소이치로가 내놓은 시제품의차체는 50cc의 엔진이 감당할 수 있으면서도 충분한 차체 강성을 기대할 수 있는 유럽식 모패드의 골격을바탕으로 했다. 그러면서도 모패드가 아닌, 완성된 이륜자동차이기때문에 페달의 장착은 처음부터 배제되었다. 차체는 상당히 낮게 만들어졌는데, 이는 앉은 채로 차체를 움직이기 용이하면서도, 치마를 입는 여성운전자도 부담 없이 승차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여기에 차체의 응력이 직접 전달되지 않는 부위들에는플라스틱 소재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중량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였다. 이는 당시 업계 최초의 시도였다. 아울러 다양한 주행 환경에 견디기 위해 전륜에는 보텀 링크 방식의 서스펜션을 사용했다.
그리고 여기에 새롭게 개발한 공랭 4행정 50cc OHV 엔진을 탑재했다. 이 엔진은 당시 더 큰 배기량(100~125cc급)의 엔진에 비견할 만한 출력을 내는, 고출력의 엔진이었다. 변속기로는 손을 사용하지 않고도 변속할 수 있는, 자동 원심 클러치를탑재하여, 조작이 쉬우면서도 우수한 연비를 끌어낼 수 있었다.
혼다 소이치로의 시제품을 확인한 후지사와는 그 자리에서“이거라면 3만대는 팔린다”고말했다. 혼다 소이치로와 연구진은 그가 연간 판매량을 말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되물었다. 그들이 이렇게 되물은 이유는 당시 일본 전체의연간 오토바이 판매량이 3만대 정도였기 때문이다. 후지사와는그 말에 “월간(판매량)이다!”라고 언성을 높였다. 훗날 전 세계 이륜차 시장을 휩쓸게 될 역사상 최대 베스트셀러의 개발이 완료된 순간이었다.
이렇게 완성된 초대(C100)혼다 슈퍼 커브는 1958년 6월부터 생산에착수, 8월부터 일본 시장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단, 데뷔 1~2년차에는 후지사와가 주장한 ‘한 달에 3만대’를 달성하지는못했다. 당시 혼다의 생산 설비가 부족했기 때문. 물론, 커브의 성공 가능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후지사와는 거액의 자금을 융통하여 생산 설비를 크게 늘린다. 지금의 스즈카 제작소가 그 주인공. 스즈카 제작소는 당시의 혼다내부에서 과잉 설비로 보는 시선도 있었으나, 1960년부터는 그 과잉 설비마저 숨쉴 틈 없이 돌아갈정도로 주문이 폭증했다. 1960년의 혼다 슈퍼 커브의 누적 생산 대수는 56만 4365대에 달했고, 그로부터 1년 뒤인 1961년에는 누적생산 100만대를달성했다.
혼다 커브는 지극히 단순한 구조로 인해 튼튼하고 잔고장이적으며, 유지보수가 용이함은 물론, 생산성까지 뛰어났다. 따라서 그 긴 역사만큼이나 셀 수도 없이 많은 변종 모델이 만들어졌다. 모든혼다 커브는 상기한 유럽식 모패드에서 착안한 언더본 차대 형상과 소배기량의 4행정 엔진, 자동원심클러치 등의 핵심 구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세계 각지에서그 신뢰성을 증명했다. 그리고 지금도 증명되고 있다. 아울러세대를 거치면서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또한 철저하게 소비자의 요구를 고려한 제품 기획 덕분에당초 목표로 했던 미국 시장은 물론, 전 세계 시장에 처음으로 수출한 혼다의 이륜차가 되었다. 혼다 커브는 직접 수출 외에도 세계 각국(특히, 아시아권)에서 라이센스 생산되었다.그 중에는 대한민국도 있었다. 대림자동차공업이 혼다와의 기술제휴 하에 있었던 ‘대림혼다’ 시절에 만든 ‘DH88’과‘씨티100’으로 대표되는 씨티 시리즈의 초기 모델들이 그것이다. 원본에 해당하는 차가 이미 우수한 내구성으로 유명한 차였던 덕분에, 대림의씨티 시리즈 역시 우수한 내구성과 유지보수의 편리함으로 유명하다.
이 외에도 혼다 커브는 특히 동남아시아권에서 그 인기가대단하다. 저렴하면서도 튼튼하고 실용적이며, 유지보수가 어렵지않은 단순한 구조 덕분에 교통 및 산업 환경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국가에서도 생산 및 운용에 걸림돌이 없기 때문이다. 혼다 커브는 이 지역에서는 선진국의 승용 자동차 및 경상용차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며, 그야말로 ‘서민의 발’ 노릇을톡톡히 하고 있다.
1958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혼다 커브는 1974년에 누적생산 1천만대를 달성했으며, 2013년7,600만대, 2014년에 9천만대가 넘게생산되었다. 이는 라이센스 생산을 제외한, 혼다 자체 생산분만집계한 것으로, 올 해에는 여유롭게 누적 생산대수 1억대를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참고로 대량생산의 아이콘, 포드모델 T가 1,500만대이며, 국민차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폭스바겐 비틀이 멕시코 생산분까지 합쳐 2,153만여대다.
혼다 슈퍼 커브는 대림제 라이센스판이라 할 수 있는 DH88의 등장 이래 30여년 만인 2013년부터 혼다코리아를 통해 정식 수입/판매되고 있다. PGM-FI 전자제어 연료 분사 기구를 탑재하고 있으며, 4단 자동원심클러치를사용하여 우수한 효율과 경제성을 무기로 국내 비지니스 바이크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국내 판매 가격은 219만원(VAT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