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르부르크링의 신화 GUMPERT Apollo
상태바
뉘르부르크링의 신화 GUMPERT Apollo
  • 김기범
  • 승인 2012.04.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12월 11일, 홍콩의 손꼽히는 부자동네 리펄스베이에서 굼퍼트 아폴로가 아시아 최초로 공개됐다. 독일의 초미니 자동차 메이커, 굼퍼트가 만든 아폴로는 아우디의 V8 4.2ℓ 650마력 엔진과 시퀀셜 6단 기어를 미드십에 얹고, 0→시속 100km 가속 3초, 최고시속 360km를 내는 수퍼카. 지난해 8월, 독일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에서 7분 11초 57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워 화제를 모았다. 본지는 홍콩의 아폴로 임포터인 SPS 오토모티브의 초청으로 아폴로 발표회를 둘러보고, 창업자인 롤란트 굼퍼트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폴로를 만났다. 그리스 신화의 아폴로는 아니다. 달착륙선은 더욱 아니다. 독일에서 만들었고, 홍콩에서 만났다. 아리송하고 어리둥절한 조화. 아폴로의 정체는 수퍼 스포츠카. 독일의 굼퍼트란 업체가 만들었다. 지난해 8월 23일, 독일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를 7분 11초 57에 달려 화제를 모은 주인공이다. 연습 땐 6분대 기록까지 낸 것으로 알려졌다.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북쪽 코스)의 랩타임은 고성능의 바로미터. 서킷의 길이는 20km가 넘는다. 2000년 초만 해도 7분대면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성능이 나날이 치솟았다. 덩달아 기록도 점차 단축되고 있다. 현재 랩타임 50위권에서 2000년 이전의 기록은 한 개뿐. 일반 판매용 차 가운데는 영국의 래디칼 SR8LM이 세운 6분 48초가 최고다. 

그러나 SR8LM은 스포츠카라기보다는 레이싱카에 가깝다. 아폴로 또한 경주차와 별 차이 없다. 하지만 SR8LM은 앞 유리도 없다. 반면 아폴로는 두 명을 태울 오붓한 공간을 갖췄다. 아폴로의 랩타임이 얼마나 빨랐기에 이렇게 호들갑인가 싶을 거다. 엔초 페라리가 7분 25초, 쾨닉세그 CCX가 7분 33초,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LP640이 7분 40초였다.  



리펄스베이에서 진행된 발표회 

홍콩에서 별안간 이메일이 날아든 건 지난 11월 중순. 발신자는 홍콩의 수퍼카 딜러 SPS 오토모티브였다. 지난해 파가니 존다R 발표회 때 본지를 초청했던 업체다. 홍콩에서 그들의 고객과 오직 4개의 매체만을 대상으로 은밀히 열릴, 굼퍼트 아폴로 론칭에 참석해달라는 내용이었다. 12월 11일, 난 로드테스트마저 외면한 채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시내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전화벨이 울린다. SPS 오토모티브의 홍보담당 윙이었다. 호텔 앞엔 미쓰비시 아이(i)가 서 있었다. 쏜살같이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가운데, 차 안에서 대만 기자와 반짝 인사를 나눴다. 우리의 목적지는 리펄스베이. 부자들이 많다는 홍콩에서도 가장 호화스러운 곳이다. 아시아 최초의 마이바흐 전시장이 문을 연 곳이기도 하다. 

행사가 예정된 시간은 오후 6시. 너무 서둘렀는지 우린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2003년 ‘홍콩의 부자’ 취재 이후 두 번째로 찾은 리펄스베이. 산기슭엔 으리으리한 아파트가 부챗살처럼 늘어섰다. 그 앞엔 인공 백사장과 바다가 펼쳐졌다. 식민지 시절 영국인의 차고를 개조해 만든 마이바흐 쇼룸은 여전히 눈부셨다. 그런데 장사는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이젠 AMG도 함께 판다. 

이날 발표회의 무대는 리펄스베이 호텔의 앞마당. 무대엔 아폴로가 따가운 조명을 받은 채 서 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존재감이 대단했다. 아름답다는 표현은 망설여졌다. 하지만 시뻘건 성능을 짐작케 하는 모습인 건 분명했다. 어느덧 무대 세팅이 거의 끝났다. 바비큐가 구수한 냄새를 피워내기 시작했다. 행사가 막을 올릴 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손님이 안 온다. 음악이 울리고, 조명이 휘젓는데 행사장엔 덩그러니 스태프와 취재진뿐. “부자들은 시간 맞춰 오는 법이 없어요.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늦게 나타난다니까요. 아마도 뒤늦게 나타나서 시선을 받는 걸 즐기는 것 같아요.” 윙이 샐쭉한 표정으로 귀띔한다. 그의 얘기는 과장이 아니었다. 7시가 넘어서야 손님이 하나둘씩 도착한다. 

기다린 보람은 있었다. 진귀한 풍경을 만들어가는 건 그들이 몰고 온 애마들. 까마득히 뻗은 마이바흐 62 두 대와 납작하게 엎드린 파가니 존다 F 로드스터, 메르세데스-벤츠 SL 65 AMG 블랙시리즈가 꼬리에 꼬리를 문 채 미끄러져 들어온다. 포르쉐, 람보르기니도 일반 모델은 찾아보기 어렵다. 희소가치 높은 스페셜 에디션이거나 살벌하게 튜닝됐다. 

행사장은 8시가 되자 비로소 북적였다. 아내와 자녀까지 데리고 온 고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지난 2003년 취재 때 만난 젊은 부자, 존다 R을 계약했던 중년 신사 등 낯익은 얼굴도 여럿 보였다. 이날 실눈을 치뜨고 아폴로의 이모저모를 살피러 온 이는 드물어 보였다. 새차 발표회라기보단 폐쇄적인 그들만의 사교모임에 가까웠다. 

이날 파티는 밤늦도록 계속됐다. 2시간에 걸친 정찬에 이어 술자리까지. 요긴한 정보와 시답잖은 농담이 원탁을 넘나들었다. 일본에서 온 수퍼카 딜러는 알딸딸하게 취한 굼퍼트 씨를 붙들고 질문을 쏟아 냈다. 우린 식사만 마친 후 조용히 빠져 나왔다. 다음날의 시승을 기약하며. 우릴 핑계로 조금이나마 일찍 퇴근하게 된 윙의 얼굴에 빙긋 미소가 걸렸다. 




희귀차로 가득한 SPS의 전시장

다음날 아침, 우리 취재진은 홍콩섬 차이완에 자리한 SPS 오토모티브의 전시장으로 향했다. 이날의 일정은 아폴로 시승과 굼퍼트 사장 인터뷰. 차 안에서 윙이 심각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만담처럼 흥겹던 광동어가 이날처럼 심각하게 들린 적이 없다. 전화를 끊은 윙이 길어진 얼굴로 말한다. 오늘 시승이 어렵게 됐다고. 기운이 쭉 빠졌다. 

시승이 취소된 이유는 경찰의 집중 단속. 홍콩에서 왼쪽 운전석 차를 모는 게 불법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단지 부자들이 이에 아랑곳 않은 채 몰고 다녔던 것. 그런데 행사가 열리기 일주일 전 문제가 터졌다. 엔초 페라리를 몰던 젊은 부자가 단속에 나선 경찰과 격한 실랑이를 벌였다. 열 받은 홍콩 경찰이 단속에 나섰다. 한 마디로 괘씸죄에 걸린 거다.  

어제 목격했듯 홍콩의 부자들은 여전히 자기 차를 몬다. 하지만 아폴로는 SPS 오토모티브의 단 한 대뿐인 데모카. 나아가 3개월 뒤 오른쪽 운전석의 아폴로가 도착하면 독일로 돌려보내야 한다. 어떻게든 시승을 추진하려 했지만, 굼퍼트 측에서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원치 않았단다. 더욱이 난 외국인. 윙은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느닷없이 이날 오전 일정에 구멍이 뻥 뚫렸다. 오후의 인터뷰까진 자유 시간. 우린 전시장에서 예정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됐다. 몇 개월 사이 SPS의 전시장엔 변화가 스몄다. 정비공간에선 시즌을 마친 고객의 경주차 정비가 한창이었다. 존다R의 차지였던 1층 전시공간엔 부가티 베이론 두 대를 세웠다. 그 중 한 대는 전 세계에 다섯 대뿐인 스페셜 버전. 

2층의 비밀창고에도 뉴 페이스가 여럿 보였다. 우주를 통틀어 다섯 대뿐인 파가니 존다 친콰 중 두 대가 나란히 서 있다. 중국의 부호가 주문했는데, 돈을 다 내고도 탈 곳이 마땅치 않다며 인수를 미루고 있다고. 포드 GT40과 메르세데스-벤츠 300 SL도 눈에 띄었다. 중앙의 널찍한 공간엔, 어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아폴로가 덩그마니 웅크린 채 잠들었다. 

아폴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아들. 승리를 상징해 남성미의 심벌로 사랑받는다. 지구와 대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제 아폴로는 번호판을 단 최강의 수퍼카란 의미까지 부여 받았다. 굼퍼트 엠블럼의 주인공은 전설 속의 동물, 그리핀. 독수리와 사자를 절반씩 섞은 모습이다. 힘과 스피드를 뜻한다. 사브가 한때 고성능 모델에 붙인 부제이기도 했다. 





기능 위주의 투박한 안팎 디자인  

아폴로는 아름답지 않았다. 철저히 기능 위주로 빚어냈다. 오죽하면 디자인을 마르코 베네타란 견습생에게 맡겼을까. 아폴로의 실루엣을 좌우하는 요소는 다운포스를 최우선순위에 두고 디자인했다. 공기저항계수와는 다른 개념. 고속에서 공기의 흐름을 다독여 차를 최대한 짓누르게 설계했다. 아폴로가 시속 360km로 달릴 때의 다운포스는 1천360kg. 

아폴로의 무게는 1천200kg. 이론상으로 시속 360km에서 터널 천정에 붙어 달릴 수 있다. ‘녹색 지옥’이라고 불리는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에서 쟁쟁한 수퍼카의 콧대를 납작 꺾은 비결 중 하나가 다운포스였다. 냉각을 위한 구멍도 우악스럽게 뚫었다. 멋이나 장식 따위엔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그래서 아폴로의 겉모습엔 비장한 기운마저 감돈다.  

아폴로의 레이아웃은 미드십 2인승 쿠페. 섀시는 크롬-몰리브덴 스틸, 탑승공간은 카본 모노코크로 짰다. 도어는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의 가위 타입이나 엔초 페라리의 풍뎅이 날개 타입이 아닌, 걸 윙 방식. 갈매기의 날개처럼 위아래로 여닫는다. 120ℓ 용량의 연료탱크는 무게배분과 안전을 위해 캐빈 뒤에 얹었다. 당연히, 옥탄가 98 이상을 쓴다. 

서스펜션은 푸시로드 방식의 더블 위시본. 앞뒤 댐퍼는 조절식이다. 따라서 최저지상고를 40~120mm로 바꿀 수 있다. 브레이크 디스크는 앞뒤 모두 지름 378mm의 통풍식. 여기에 6피스톤 캘리퍼를 물렸다. 브레이크용 냉각시스템도 갖췄다. 나아가 브레이크는 젖은 노면, 마른 노면, 그리고 레이스를 위한 3단계로 세팅할 수 있다. 양산차보단 레이싱카에 가깝다.  

아폴로의 길이×너비×높이는 4천460×1천998×1천114mm. 처음 보면 저걸 몰수나 있을까 싶다. 트렁크는 뒤쪽 절반을 씌운 커버를 젖혀야 드러난다. 커버는 카본강화섬유로 만들었다. 오일 댐퍼까지 갖췄다. 그래서 혼자서도 거뜬히 열 수 있다. 트렁크는 금고 같은 박스. 100ℓ로 궁색하기도 하거니와 여닫기 번거로워 쉬 손이 가질 않을 공간이다. 

경량화는 아폴로의 지상과제. 무게를 덜기 위해서라면, 값에 연연치 않았다. 첨단 소재를 아낌없이 썼다. 뼈대만의 무게는 98kg. 힘 좀 쓰는 양반이면 혼자서도 들쳐 업을 수 있다. 인스트루먼트 패널조차 카본. 시트는 덜렁 엉덩이 받침만 있다. 등받이와 머리받침은 엔진룸 앞의 벽에 붙었다. 누군가에게 운전대를 맡길 땐 추가로 쿠션을 붙이면 된다.  

아폴로는 진정한 의미의 주문제작 스포츠카. 한 대씩 고객 개개인의 취향에 맞춰 만든다. 따라서 편의장비는 주문하기 나름. 기본 모델은 그저 달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만 구성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에어컨, 내비게이션 시스템, 후방카메라, DVD 플레이어 등 옵션은 무궁무진하니까. 심지어 겉모습 디자인마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  




650~800마력 내는 V8 트윈터보 

아폴로의 엔진은 뱅크각 90°의 V8 4천163cc 트윈터보. 어디선가 익숙한 조합. 그렇다. 아우디의 5세대 A6 기반의 RS6 심장. 굼퍼트는 아우디에서 블록만 사온다. 그런 다음 경량 소재로 크랭크케이스와 실린더 헤드를 짠다. 윤활방식은 드라이섬프. 무게중심을 낮추기 위해서다. 실린더 당 밸브 수는 아우디답게 5개. 엔진의 무게는 196kg에 불과하다. 

아폴로의 최고출력은 650마력이 기본. 스포츠 버전인 아폴로 S는 700마력을 낸다. 뉘르부르크링에서 눈부신 기록을 세운 주인공이 바로 아폴로 S였다. 레이싱 버전은 800마력을 뿜는다. 굼퍼트 측은 이 엔진으로 최대 1천 마력까지 세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상한선을 800마력에 그었다. 일반적으로 다룰 수 있는 출력의 한계라고 판단했기 때문.  

변속기는 F1 기술이 녹아든 시퀀셜 6단. 무게배분을 위해 엔진 뒤쪽에 바짝 붙였다. 클러치 페달은 있다. 그러나 출발하면서 1단을 붙일 때만 쓴다. 일반 수동처럼 기어 봉을 요리조리 휘저을 필요가 없다. 레버만 딸깍딸깍 밀고 당기면 된다. 그만큼 변속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 가속 페달은 바이 와이어 방식으로 연결했다. 빠르고 정교한 반응을 위해서다.  

수치로 드러난 아폴로의 성능은 환상적. 650마력 기준, 0→시속 100km 가속 3.1초. 정지 상태에서 시속 200km까지 가속은 9.1초면 충분하다. 최고속도는 시속 360km. 굼퍼트는 아폴로를 출퇴근용으로 쓰는 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아이들링이 안정적이며, 최저지상고도 높일 수 있어서라고. 아폴로는 유로 4 및 충돌테스트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그러나 여느 수퍼카 또한 만만치 않은 성능을 낸다. 번호판을 달기 위한 조건도 빠짐없이 챙긴다. 아폴로는 여기에 장점 하나를 더 갖췄다. 레이스에 나가기 위해 따로 개조할 필요가 없다. DMSB와 ACO, FIA GT 등 3개 카테고리에 곧장 출전할 수 있다. 일반 도로와 서킷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수퍼카. 아폴로의 핵심 매력은 여기에 있는 셈이다.  

아폴로의 아이디어가 처음 싹 튼 건 2001년이었다. 애당초 합법적으로 도로를 달릴 수 있으면서, 트랙도 곧장 나설 수 있는 스포츠카로 기획됐다. 나아가 수퍼카 시장에서 값 대비 가치가 가장 큰 모델이길 원했다. 이 같은 밑그림을 바탕삼아 개발이 시작됐다. 이듬해 1:4 스케일 모델이 완성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대의 프로토타입이 태어났다.  

사실 아폴로보다 더 관심을 끈 인물은 창업자이자 매니징 디렉터인 롤랜드 굼페르트(Roland Gumpert) 씨. 그는 아우디에서 오랜 세월 엔지니어로 활약했던 주인공. 이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호기심을 풀 시간이 왔다. 서글서글한 눈매의 굼퍼트 씨가 전시장에 나타난 것. 선입견일는지 모르겠지만, 순박하고 선한 표정이 전형적인 엔지니어 출신답다. 



피에히의 오른팔이었던 굼퍼트 

굼퍼트. 영어로는 검포트에 가깝게 발음된다. 브랜드의 이름이자 창업자인 롤란트의 성이기도 하다. 그는 독일 잉골슈타트 출신. 아우디의 고향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은 독일이 양분된 이후의 일. 반면 그의 조상은 대대로 잉골슈타트에서 살아온 토착민. 그는 고교를 졸업한 뒤 잉골슈타트를 떠나 오스트리아 그라츠로 향한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기계공학 학위를 땄을 무렵, 유럽에선 전후 복구로 인한 경제 호황이 한창이었다. 많은 기업이 인재를 필요로 했다. 그는 졸업도 하기 전 무려 20군데 넘는 업체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자동차 메이커를 비롯해 부품 기업, 각종 기계 공업 회사까지. 그를 원하는 곳은 다양했다. 그는 행복한 고민 끝에 아우디에 입사한다. 1969년, 그의 나이 24세 때였다. 

궁금했다. 그의 고향에 자리한 기업이어서 마음이 더 끌린 건 아니었는지. 그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니에요, 정든 곳을 원했다면 오히려 대학 시절을 보낸 오스트리아에서 직장을 찾았을 거예요.” 그가 아우디의 품에 안긴 이유는 명료했다. 탁월한 기술력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코흘리개 적부터 모터사이클과 자동차에 빠진 매니아였다. 

아우디에서 그의 첫 직책은 테스트 엔지니어. 프로토타입을 누구보다 먼저 모는 주인공이었다. 그의 첫 번째 작품은 아우디 50. 2년 뒤 폭스바겐 폴로로 변신해 지금껏 명맥을 잇게 될 모델이었다. 힘들었지만 보람찬 하루하루가 계속됐다. 1972년 아우디는 독일군으로부터 차세대 네바퀴굴림 군용차 개발을 의뢰받는다. 그의 몫이었다. 물론 혼자서는 아니었다. 

당시 그의 상사는 아우디의 신차 개발을 총괄하던 페르디난트 피에히. 포르쉐 박사의 외손자이자, 현 폭스바겐 감독위원회 의장인 자동차 귀족이다. 최근엔 폭스바겐을 넘보던 포르쉐의 CEO 비데킹을 몰아내고 거꾸로 인수해 화제를 모았다. 피에히는 포르쉐에서 1천 마력이 넘는 917 경주차를 개발하다 가문의 미움을 사 쫓겨나듯 아우디로 옮긴 상태였다. 

굼퍼트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전 피에히의 오른팔이었어요. 같은 골수 엔지니어로서 뜻이 아주 잘 통하는 사이였죠. 그는 이후 저의 든든한 후견인이 되어줬어요. 이젠 서로 만나기 어렵게 됐지만요. 1년에 몇 번 모터쇼에서 보는 게 전부죠. 하지만 일단 자리를 만들면 피에히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본격적인 군용차 테스트가 시작됐다. 피에히는 원정 테스트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겨울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굉장히 중요했기 때문. 그 결과 굼퍼트는 핀란드에서 겨울을 났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테스트가 진행됐다. 이윽고 밤낮 없는 연구가 결실을 맺었다. 바로 일티스(iltis)였다. 결국 폭스바겐 엠블럼을 달게 됐지만, 일티스는 훗날 콰트로의 기원이 됐다.  




모터스포츠 총괄 거쳐 중국 담당

일티스가 완성됐을 즈음 프랑스군에서도 요청이 들어왔다. 아우디는 약간씩 다른 사양의 일티스 20대를 제작해 테스트에 들어갔다. 당시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다. 메르세데스-벤츠였다. 벤츠는 G-바겐을 밀어 붙였다. 피에히는 일티스의 경쟁력은 최고지만, 지명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피에리는 일티스를 파리-다카르 랠리에 출전시키기로 결심한다. 

굼퍼트가 풀어야할 또 하나의 숙제였다. 1980년 아우디는 일티스에 두 명의 프랑스 출신 레이서를 태워 일명 ‘죽음의 랠리’에 뛰어든다. 일티스는 1만km의 험난한 여정을 고장 한 번 없이 마쳤다. 신뢰성을 입증했다. 자신감을 얻은 아우디는 이듬해인 1981년 모터스포츠 전담 부서를 출범시킨다. 총괄 책임자는 피에히의 총애를 받던 롤란트 굼퍼트였다. 

아우디는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에 출전했다. 그리고 콰트로의 신화를 써내려갔다. 파죽지세였다. 25회의 우승과 네 차례의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정작 랠리 출전의 계기가 됐던 프랑스군은 메르세데스-벤츠로 돌아섰다. 프랑스 장군이 메르세데스-벤츠에 막연한 호감을 갖고 있었다. 군고위층과 벤츠의 밀월관계도 있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아우디로서도 잃을 게 없는 장사였다. 프랑스군 납품은 좌절됐을지언정 콰트로 시스템의 탁월한 장점을 알릴 수 있었다. 그런데 욕심이 과했다. 너무 강력한 성능을 구겨 넣었다. 이 때문에 경주차가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레이스는 이기지 못하면 철저히 외면 받는 약육강식의 세계. 결국 아우디는 고민 끝에 WRC에서 철수를 결정한다. 

아우디는 굼퍼트를 중국 사업부로 발령 낸다. 그는 짐을 꾸려 중국 장춘으로 옮겼다. 별안간 전혀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게 됐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했다. 아우디 100을 중국에 맞게 다듬었다. 아우디 100은 중국의 택시 시장을 주름잡게 된다. 연간 20만 대씩 생산됐다. 아우디는 중국 최대의 수입차 메이커로 입지를 다졌다. 

사실 아우디는 폭스바겐에 인수된 이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TDI와 앞바퀴 굴림방식 등 핵심기술마저 고스란히 제공해야 했다. 그러나 판매와 마케팅은 점령군 폭스바겐에 의존해야 했다. 1992년 비로소 아우디는 독자적인 세일즈와 마케팅 부서를 설립하게 된다. 굼퍼트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다. 개발뿐 아니라 해외시장의 판매까지 책임지게 된 것이다. 

창백한 설계도와 씨름하던 그는 이제 깨알 같은 숫자를 헤아려야했다. 소비자의 변화무쌍한 심리를 훤히 꿰뚫어야 했다. 주위에선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이번 역시 보란 듯이 해냈다. 1997년엔 아우디와 중국의 조인트 벤처인 아우디 FAW의 임원으로까지 승진했다. 엔지니어에서 판매 및 전략 전문가로, 그의 뒤안길은 카멜레온과도 같았다.  




튜너로 옮겼다가 직접 회사 차려  

안정적인 지위에 오르면서 그는 가족을 중국으로 데려왔다. 그의 가족 또한 발 빠르게 낯선 환경에 적응했다. 당시 세 살이던 딸은 독일어보다 중국어를 더 잘할 정도. 그들 앞에 장밋빛 미래가 펼쳐졌다. 그런데 2001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아우디의 경영진이 물갈이 됐다. 하부 조직에 균열이 생겼다. 그는 황급히 가족과 함께 독일로 돌아간다. 

이듬해엔 아우디의 회장이 교체됐다. 후견인으로 믿었던 피에히는 그를 중국으로 보낸 뒤 진즉 폭스바겐 회장이 됐다. 그를 시샘하던 세력의 공격이 시작됐다. 게다가 아우디에선 빠른 속도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었다. 30대면 중견, 40대면 임원을 바라봤다. 해외에서 갖은 고생을 하고 돌아온 그를 반겨주는 부서는 없었다. 그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눈치 챈 몇 개의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해왔다. 그는 아우디 출신 동료의 회사로 옮겼다. 아우디 전문 튜너인 MTM이었다. 고속 성장을 거듭해 메르세데스-벤츠, BMW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아우디에서 일개 튜너로. 한 순간에 바닥으로 추락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그는 자존심에 연연치 않았다. MTM을 선택한 이유가 분명했으니까.  

당시 아우디는 고성능 스포츠카를 은밀하게 개발하고 있었다. 1989년 선보인 아부스 컨셉트카를 양산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아우디는 수퍼카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엔 시기상조. 주주의 눈치를 봐야했다. 프리미엄 승용차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는 게 먼저였다. 디자인 및 감성품질 개혁도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 아우디는 묘안을 냈다. 

튜너인 MTM을 앞세웠다. 그리고 뒤에서 몰래 자금을 댔다. 굼퍼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엔지니어로서의 호기심과 정열이 그를 새로운 도전으로 이끈 것이다. 게다가 신차 개발은 그가 오랜 세월 내공을 쌓아온 전문분야. 외면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시행착오 끝에 시나브로 수퍼카의 청사진이 그려졌다. 그러나 주위환경은 시시각각 변했다.  

그 사이 아우디는 람보르기니를 인수했다. 무르시엘라고의 아래급인 가야르도 개발이 시작됐다. 이란성 쌍둥이 격인 R8의 계획도 무르익기 시작했다. 아우디로써는 더 이상 MTM의 뒤에 숨을 필요가 없었다. MTM 또한 아우디의 지원 없이 나 홀로 수퍼카를 개발할 배짱과 여력이 없었다. 변변한 얼굴마담 하나 만들자고 투자하기엔 너무 무모한 도전이었다.  

결국 MTM은 손을 뗀다. 수퍼카 하나 보고 MTM으로 왔던 굼퍼트에겐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그는 눈물을 머금었다. 그리고 결심한다. 스포츠카 회사를 직접 차리겠다고. 개발자에서 전략가로 변신한 데 이어, 이제 사업가로. 실로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그는 투자자를 모았다. 그의 오랜 경력이 호기심을 모았다. 초기 운영자금이 성공적으로 마련됐다. 




경주차와 양산차 겸한 컨셉트

굼퍼트 스포츠카 제조회사. 회사 이름은 그의 성격만큼이나 진솔하고 담백했다. 이제 누군가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차를 개발할 수 있게 됐다. 그는 기존 수퍼카를 면밀히 분석했다. 도로에선 최고일지언정, 트랙에 나서기 위해 만만치 않은 비용을 들여 개조해야했다. 그는 그런 수고 없이 양쪽을 자유롭게 오갈 수퍼카를 구상했다. 틈새시장을 노린 것이다. 

그는 역발상을 시도했다. 먼저 서킷에 맞는 내용을 갖춘 뒤 양산차로 다듬기로.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포르쉐와 일반 도로용을 선보인 뒤 서킷 버전을 내놓는다. 굼퍼트는 정반대의 수순을 밟은 셈. 콰트로 전문가인 그의 손에서 태어났지만 아폴로는 뒷바퀴 굴림방식. AWD 시스템을 금지하는 대다수 GT 레이스의 규정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아폴로가 최초로 베일을 벗은 건 그가 프로젝트를 인수한 이듬해인 2005년. 독일 호켄하임 서킷에서 열린 디비놀 컵이 데뷔 무대였다. 콕핏엔 벨기에 출신 레이서, 루벤 마에스를 앉혔다. 느닷없이 혜성처럼 등장한 아폴로는 데뷔 첫 해 3위에 올랐다. 세인의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었다. 존재만 입증했을 뿐이었다.   

굼퍼트는 꾸준히 아폴로를 다듬었다. 점차 완성도를 높여 갔다. 초기 버전과 현재 모델의 차이가 상당할 만큼. 남다른 시도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엔 하이브리드 버전으로 뉘르부르크링 내구레이스에 출전했다. 2005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생산된 아폴로는 53대. 경주차와 안전 테스트를 위해 박살 낸 것을 합친 숫자. 일부를 제외하곤 대개 유럽에서 판매됐다. 

아폴로만의 장점을 물었다. “외주 부품을 적극 쓰는 한편 모듈화를 추구했어요. 그래서 뼈대를 기반으로 다양한 변종 모델을 내놓을 수 있어요. 바로 다음 아폴로는 타르가 톱을 얹을 계획이에요. 나아가 AWD 시스템을 얹는 것 또한 고민 중입니다. 아울러 톱 모델로 이미지를 다진 후엔 출력을 낮춘 볼륨 모델에 도전할 생각이에요.”

외부 부품은 얼마나 쓰는지 물었다. “사이드 미러는 A4, 스티어링 칼럼은 A6, 스티어링 시스템은 TT에서 가져왔어요. 에어컨은 투아렉의 앞좌석용이고요, ABS는 BMW의 제품을 씁니다. 엔진의 인젝터는 아우디의 브라질용 모델에서 가져왔어요. 브라질에선 휘발유에 알코올을 섞어 쓰는데, 효율이 절반 정도 밖에 안 나와요. 그래서 연료 분사압력이 굉장히 세거든요. 고출력을 내는 아폴로 엔진과 찰떡궁합이지요.” 그의 솔직담백한 설명이다. 

굼퍼트는 내년부터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에 출전할 계획이었다. GT1 클래스에 맞춰 아폴로 경주차도 꼼꼼히 손봤다. 그런데 내년 갑자기 규정이 엄격하게 바뀔 예정이란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날벼락에 익숙한 그답게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새 규정의 전모가 드러날 때까지 일단 현재 상태로 출전 가능한 이태리의 GT 챔피언십에 도전할 생각이다.   

한편, 이번 행사에서 강조된 아폴로의 매력은 ‘값 대비 가치’. 700마력짜리 아폴로 S의 값은 독일 기준, 20%의 세금을 포함해 50만 유로(약 8억4천650만 원). 쾨닉세그 CC의 절반이다. 지난 번 홍콩에서 만난 파가니 존다R는 149만 유로. 값이 저렴(?)할지언정 아폴로는 뉘르에서 이들 중 누구보다 빨랐다. 그들의 주장이 결코 허풍은 아닌 셈이다. 

아폴로는 독일 알텐버그의 자체 공장에서 만든다. 한 달에 석 대까지 생산할 수 있다. 1년이면 36대 안팎. 2교대로 공장을 돌리면 그 두 배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는 당장은 볼륨을 늘릴 생각이 없다. 일단은 연간 35대를 만들면서 내실을 다질 계획이다. 미국에서만 벌써 10대의 주문을 받아 놨다. 아시아 지역의 판매는 홍콩의 SPS 오토모티브가 맡았다.  





굼퍼트 아폴로의 주요 제원 
Engine 
형식                  V8 DOHC 트윈터보          
배기량                4,163cc
보어×스트로크        84.5×93.0mm
최고출력              650마력/6,500rpm
최대토크              86.6kg·m/4,000rpm
압축비                9.3:1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120ℓ
권장연료              고급휘발유(옥탄가 98 이상)   
Transmission 
형식                  6단 시퀀셜    
굴림방식              미드십 뒷바퀴굴림   
Body
형식                  2도어 쿠페         
구조                  스틸 모노코크 
길이×너비×높이      4,460×1,998×1,114mm 
휠베이스              2,700mm
트레드 앞/ 뒤         1,670/1,598mm
최저지상고            40~120mm    
공차 무게             1,200kg 
앞뒤 무게비           42:58
Chassis 
서스펜션 앞/뒤        더블위시본/멀티링크  
브레이크 앞/뒤        모두 V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255/35 ZR 19 / 345/35 ZR 19
휠 앞/뒤              10J×19 / 13J×19 
트렁크 크기           100ℓ
Performance data
최고시속              360km  
0→시속 100km 가속  3.1초
0→시속 200km 가속  9.2초     
원산지                독일     
값                    50만 유로(약 8억4,650만 원)   



SPS 전시장 전경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