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MC 스트라달레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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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MC 스트라달레 시승기
  • 김기범
  • 승인 2012.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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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세라티 그란투리스모는 2007년 데뷔한 쿠페다. 그란투리스모는 꾸준히 성능 높여 가지를 쳤다. 2010년엔 ‘최강의 양산 마세라티’인 그란투리스모 MC 스트라달레가 나왔다. 스포일러와 디퓨저로 외모를 험궂게 다듬었다. V8 4.7ℓ 엔진의 출력은 470마력까지 높였다.





1914 년, 이태리 볼로냐에서 한 경주차 제작업체가 문을 열었다. 회사 이름은 마세라티. 창업자 형제의 성이었다. 마세라티는 1955년까지 경주차 한 우물을 팠다. 23개의 챔피언십과 32회의 F1 그랑프리 등에서 우승컵을 총 500여회나 쓸어 담았다. 그런데 1957년 250F로 월드 타이틀을 거머쥔 이후 마세라티는 돌연 마음을 바꿨다. 양산차 제작에 ‘올인’했다.

마 세라티가 일반 판매용 차를 개발하는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호화 리무진이나 소형차에 욕심내지 않았다. 주특기인 경주차를 진화시켜 위험부담을 줄였다. 레이스카의 살벌한 성능을 밑바탕 삼았다. 대신 단단히 뭉친 하체의 근육을 풀어 승차감을 살렸다. 옆과 뒷좌석에 누군가 태우고 이곳저곳 쏘다녀야 할 테니 실내 공간을 넓히고 짐 공간도 챙겼다.

마세라티는 당시 귀족 스포츠였던 자동차경주에서 잔뼈가 굵은 브랜드다. 당연히 타깃은 상위 몇 %의 부자였다. 첫 번째 결실은 경주차의 성능과 고급차의 편안함을 겸비한 스포츠 쿠페, 3500GT. 오늘날 흔해빠진 무늬만 스포츠카가 아니었다. 백전노장의 노하우가 담긴 진정한 스포츠카였다. 마세라티가 늘 ‘스포츠’를 핏대 올려 강조하는 덴 다 이유가 있다.

마세라티는 3500GT 이후 장거리 투어링 카에서 재미를 봤다. 이후 세브링, 미스트랄, 기블리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이내 스포츠 GT의 달인으로 거듭났다. 4도어 세단, 콰트로포르테는 마세라티의 주가가 한창 높던 1963년 선보였다. 지금은 몇 백 마력짜리 고성능 세단이 흔해 빠졌다. 반면 그땐 고급 세단과 스포츠카 사이에 엄격한 경계가 존재했다.

그 벽을 과감히 허문 주인공이 콰트로포르테였다. 마땅히 견줄 라이벌도 없었다. 마세라티가 스스로 ‘럭셔리 스포츠 세단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후 마세라티는 부침을 겪었다. 소유주도 몇 차례 바뀌었다. 그러나 콰트로포르테는 꿋꿋이 진화했다. 2003년 5세대, 2008년에는 마이너체인지를 거쳐 현재 5.5세대까지 진화한 상태다.

2세대 콰트로포르테는 한때 소유주였던 시트로엥의 SM과 뼈대를 나눴다. 때문에 앞바퀴굴림으로 잠시 외도했다. 이때만 빼면 콰트로포르테는 줄곧 FR 방식 투어링 세단이었다. 디자이너는 1세대 푸르아, 3세대 주지아로, 4세대 간디니, 5세대 피난파리나 등 당대 최고의 카로체리아 디자이너가 맡았다. 마지막 마이너체인지의 ‘집도의’ 또한 피닌파리나였다.

마세라티는 5세대 콰트로포르테를 손질하며 겸사겸사 신차를 한 대 더 내놨다. 2 2인승 쿠페, 그란투리스모였다. 뼈대는 콰트로포르테와 나눴다. 알페로메오 8C 콤페티치오와도 친척뻘이다. 쿠페로 탈바꿈한 그란투리스모는 세단의 유전자를 잊을 만큼 늘씬했다. 그란투리스모는 V8 4.2ℓ 405마력 엔진과 ZF제 6단 자동변속기를 얹고 뒷바퀴를 굴렸다.




그 란투리스모 역시 데뷔 이후 진화를 거듭했다. 기존 차종의 요소를 이리저리 짜 맞춰 수시로 변종을 선보여 왔다. 다품종 소량생산 브랜드의 생존방식이었다. 출시 이듬해 나온 그란투리스모 S가 가지치기의 시작점이었다. 배기량을 4.7ℓ로 키워 출력을 440마력까지 끌어올렸다. 변속기는 6단 시퀀셜인데, 트랜스액슬 방식으로 뒤 차축에 물렸다.

같은 차, 두 가지 다른 구성의 변속기. 일반 브랜드는 상상 못할 일이다. 반면 마세라티에선 별스러울 게 없다. 콰트로포르테가 좋은 예다. 듀오셀렉트 변속기 모델은 슬림한 드라이섬프 방식 엔진을 앞 차축 위에 얹었다. 무게배분을 위해 변속기는 뒤 차축으로 뺐다. 반면 자동변속기 모델은 웨트섬프 방식 엔진을 앞 차축 뒤에 얹고 바로 뒤에 변속기를 붙였다.

그란투리스모의 진화과정 역시 비슷했다. 2009년엔 6점식 시트벨트와 120L짜리 연료탱크를 단 그란투리스모 MC를 내놨다. 같은 해 그란투리스모 S 오토매틱도 나왔다. 440마력 엔진 바로 뒤에 시퀀셜 대신 ZF제 6단 자동변속기를 붙였다. 아울러 ‘스카이 훅’ 기술이 녹아든 감쇠력 조절식 서스펜션과 20인치 휠·타이어를 옵션에서 기본 장비로 돌렸다.




이 즈음 그란투리스모 MC 스포트 라인도 출시했다. 그란투리스모 S를 기본으로 앞뒤 범퍼의 스포일러와 도어 핸들, 사이드 미러, 스티어링 휠 림과 패들시프트, 대시보드와 도어 패널을 카본파이버(탄소섬유)로 촘촘히 엮어 짰다. 그런데 마세라티의 ‘퍼즐 맞추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앞서 나온 버전의 우성형질만 조합한 ‘끝판왕’을 암시하는 전주곡이었다.

주인공은 지난해 데뷔한 그란투리스모 MC 스트라달레. 현재 마세라티의 양산차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가벼우며 또 빠르다. 엔진은 마세라티의 ‘마찰감소 프로그램’으로 손봤다. 그 결과 출력을 450마력까지 높였다. 동시에 연비는 18%나 개선했다. MC 스포트 라인의 카본 부품도 안팎 구석구석 심었다. 범퍼 디자인을 바꾸면서 차체 길이는 48㎜ 더 늘었다.

외모는 섬뜩한 분위기다. 곳곳에 날을 세운 스포럄러와 스플리터, 디퓨저 때문. 차체도 낮아 아무데나 쏘다니기 조심스럽다. 실내는 의외다. 공식 사진으로 본 풍경과 다르다. 그란투리스모 S와 판박이다. 실내를 꾸민 소재는 알칸타라와 카본보다 가죽의 비율이 높다. 카본 프레임 버킷시트와 4점식 시트벨트도 빠졌다. 판매 장벽을 낮추기 위한 ‘절충’인 듯하다.




스 티어링 휠은 지름이 대형 세단처럼 큼직하다. 시트 포지션이 적당해 시야도 좋다. 공간도 여유롭다. 여러모로 경주차의 거칠고 폐쇄된 느낌과 거리가 멀다. 다행히 엔진엔 꼼수가 없다. 450마력 내는 V8 4.7ℓ가 맞다. 그런데 변속기는 타협했다. 뒤 차축에 얹는 시퀀셜 대신, 엔진 뒤에 바로 붙는 6단 자동을 달아 들여왔다. 거친 변속감각을 걱정해서였을 거다.

이런저런 이유로, 해외 뉴스 보며 막연히 기대했던 것과 다른 그란투리스모 MC 스트라달레가 우리 땅을 밟았다. 하지만 시동 거는 순간 터져 나오는 사운드만으로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은 까맣게 잊게 된다. 그란투리스모 MC 스트라달레는 꽁무니에 관악기라도 매단 것 같았다. 엔진의 호흡에 맞춰 음산하고 아찔한 소리를 변화무쌍하게 뿜었다. 

가속은 버겁다. 시속 100㎞ 가속을 4.9초 만에 끊는다. 구성진 사운드 때문에 감흥은 몇 곱절이다. 시속 200㎞까지는 순식간이다. 그 이후에도 거침없다. 제원에 나온 최고속도는 시속 300㎞에서 두 눈금 빠지는 298㎞. 이날 그란투리스모 MC 스트라달레로 시속 285㎞까지 달렸다. 레이스로 산전수전 겪은 브랜드답게, 고속에서도 차는 안정감을 잃지 않았다.




변 속기는 자동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긴박하게 기어를 갈아탄다. 부메랑처럼 큰 시프트패들을 까딱여 변속을 휘두르는 재미도 끝내준다. 다운시프트 때마다, 차는 온 몸으로 울부짖었다. 중독성 짙은 사운드 때문에 자꾸만 엔진을 들쑤시게 된다. 머플러 연주하는 재미에 푹 빠진 사이 애꿎은 엔진만 벌겋게 익어 갔다.

가속페달에서 갑자기 발을 떼면 이번엔 꽁무니에서 콩 볶는 소리가 작렬한다. 하지만 소란스러울 뿐 운전은 편안하다. 엔진은 토크를 매끈하게 토해낸다. 자연흡기 엔진답게 회전수와 힘의 비례는 일정하다. 다혈질적이되 솔직하다. 의뭉스럽거나 까다로운 구석이 없다. 따라서 가속의 패턴을 투명하게 예측할 수 있다.

게 다가 은근히 보수적이다. 무슨 짓해도 눈 하나 깜짝 않을 듯한 외모와 달리, 빗장을 겹겹이 걸었다. 가령 변속기는 수동 모드에서조차 연료 차단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 너무 달궈졌다 싶으면 다음 기어로 넘긴다. 몸놀림도 마찬가지. 머리털이 쭈뼛 설 상황은 좀처럼 겪기 어렵다. 놀랄 만큼 민첩하지만, 극단적 상황에선 매너 좋게 언더스티어를 앞세운다.




그 란투리스모 MC 스트라달레 시승을 앞두고 내심 경주차를 기대했다. 첫 인상은 확실히 그랬다. 디퓨저엔 날카로운 송곳니가 삐죽삐죽 솟았다. 옆구리엔 ‘MC 스트라달레’ 문신도 새겼다. 카본 부품은 섬세한 결을 올올이 고스란히 드러냈다. 20인치 휠과 타이어만큼, 그 속에 물린 방열 디스크도 듬직했다. 레이스 스타트 직전의 긴장감이 물씬 감돌았다.  

하지만 운전감각은 ‘반전’이었다. 예상대로 470마력은 압도적이었다. 가속은 시속 200㎞ 넘어서도 풋풋하고 팽팽한 느낌을 유지했다. 반면 운전은 시종일관 편안했다. 승차감도 수긍할 만큼 좋았다. 흉흉한 외모나 사운드와 달리, 그란투리스모 MC 스트라달레는 친절하고 세심한 차였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나쁜 남자를 가장한 가슴 따뜻한 남자였다.

이 차와 함께 한 하루는 할로윈 데이와 같았다. 귀신 가면 뒤집어쓰고 다른 존재로 빙의하듯, 난 그란투리스모 MC 스트라달레란 탈을 쓰고 종일 레이서 기분을 냈다. 으스스한 분장 때문에 보는 이는 오금 저렸을 거다. 하지만 정작 난 불편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수시로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따금씩 승부욕에 불타기도 했다. 난 찰나에 집착했다. 순간을 즐겼다. 마치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란투리스모 MC 스트라달레의 숨통을 트는 순간, 일상은 이미 축제로 거듭났기 때문에.

 

글 김기범|사진 마세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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