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 레인지로버 TDV8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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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 레인지로버 TDV8 시승기
  • 김기범
  • 승인 2012.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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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 드로버 레인지로버 TDV8이 새 단장을 마쳤다. 모델명처럼 V8 터보 디젤 엔진을 얹는데, 기존의 3.6에서 4.4L로 배기량을 키웠다. ‘사막의 롤스로이스’란 애칭답게 디젤의 쇳소리는 완벽하게 막았다. ‘제로백’ 7.5초의 가속은 덩치를 까맣게 잊게 만든다. 그러나 V8 휘발유 엔진의 기름진 사운드는 기대할 수 없다. 대신 뻔질나게 주유소 드나들 필요가 없다. 

 



랜 드로버 레인지로버는 1970년 데뷔 이후 당대 최고 SUV의 역사를 써내려 왔다. 1981년에 5도어, 이듬해엔 자동 변속기 모델을 선보였다. 1986년엔 2.4ℓ 터보 디젤 엔진을 마련했고, 1988년에는 가죽시트와 전동식 선루프를 갖춘 보그 SE 버전을 내놓았다. 1992년엔 양산 SUV 최초로 차고 조절 에어 서스펜션, 뒷바퀴 트랙션 컨트롤, 듀얼 에어백을 달았다.

2 세대 레인지로버(P38A)는 1994년 8월 등장했다. 이즈음 로버의 새 주인은 BMW로 바뀌었다. 엔진은 로버제 V8 4.6L 224마력. 하이/로 기어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H’게이트를 개발해 얹었다.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은 4ETC로 진화하면서 뒷바퀴에서 네 바퀴로 영역을 넓혔다. 에어 서스펜션은 아예 기본 장비로 묶었다. 호화 SUV의 명성은 계속됐다.

랜 드로버는 BMW 품에 안긴 지 4년 째 되던 1997년, 3세대 레인지로버(L30) 개발에 들어갔다. BMW는 이미 개발을 마친 X5의 부품을 활용하고자 했다. 로버의 자취가 물러난 자리에 BMW의 입김이 진하게 스몄다. ‘랜드로버 최초’가 난무할 수밖에. 레인지로버는 꿋꿋이 고집해 온 프레임 뼈대 대신 6천230번의 스폿 용접으로 짠 모노코크 보디를 도입했다.

차체 강성은 250%, 비틀림 강성은 32% 단단해졌다. 경량화를 위해 도어 4개와 앞 펜더, 보닛마저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보닛은 당시 단일 프레스 부품으로는 유럽 최대 사이즈. 무게는 14kg. 같은 크기 철판의 절반 수준이었다. 리서큘레이팅 볼 방식 스티어링을 랙 앤드 피니언으로, 리지드 서스펜션을 앞 스트럿, 뒤 더블 위시본의 독립식으로 바꿨다.

3세대 레인지로버가 명맥을 유지하는 사이, 랜드로버의 주인은 두 차례나 바뀌었다. 포드는 2005년 BMW의 파워트레인을 들어내고, 재규어의 V8 4.2L 수퍼차저 400마력 엔진과 자동 6단 커맨드 시프트를 얹었다. 그런데 모기업이 다시 한 번 바뀐다. 인도의 타타모터스 산하에서 레인지로버는 새 단장을 마쳤다. 안팎 디자인과 파워트레인을 갈아치웠다.

타이틀은 2011년형이다. 그러나 단순한 연식변경 모델이 아니다. 변화의 폭이 크다. 앞뒤 램프는 LED로 산뜻하게 단장했다. 랜드로버는 ‘보석’을 테마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릴은 납작하게 다독였다. 그래서 레인지로버 스포츠와 한층 비슷해졌다. 디스커버리 4처럼 앞뒤와 사이드미러에 카메라를 심었다. 그 결과 모니터로 주변 환경을 샅샅이 훑을 수 있게 됐다.




인 테리어는 앞서 선보인 디스커버리 4처럼 유저 인터페이스를 확연히 개선했다. 스위치를 기능별로 정리 정돈했다. 그럼에도 스위치가 많다. 설명서를 보기 전엔 다 쓸 엄두도 안 난다. 그러나 기능이 워낙 다양한 탓이니 ‘행복한 고민’으로 받아들일만하다. 실내는 요트 뺨치게 고급스럽다. 라이벌이 쉬 넘볼 수 없는, 레인지로버만의 독보적인 경쟁력이다.

엔진은 V8 디젤 터보다. 이전의 TDV8은 3.6L 272마력이었다. 이젠 4.4L 313마력이다. 보어와 스트로크를 모두 키운 새 블록이다. 1,500~3,000rpm에서 최대토크 65.2㎏·m를 콸콸 쏟는다. 변속기 역시 이전의 자동 6단에서 ZF제 신형 8단으로 진화했다. 파워트레인을 바꾸면서 출력은 15.1%, 토크는 9.4% 치솟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4% 줄어들었다.

정 숙성은 놀랍다. 디젤의 쇳소리는 아득한 저편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이들링 땐, 적어도 실내에서는 휘발유 차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다. 가속을 이어갈 때 역시 풍절음과 노면소음에 중화된다. 진동 역시 씨를 말렸다. 가속은 박력 넘친다. 새 파워트레인이 과거 9.2초였던 ‘제로백’을 7.8초로 단축시켰다. 시속 80에서 120㎞ 가속도 6.3초에서 5.1초로 줄였다.

위 력적으로 샘솟는 토크가 덩치를 까맣게 잊게 만든다. 그러나 휘발유 엔진과 달리 파워가 굵고 뭉툭하다. 엔진회전은 매끈하게 상승하지만, 뾰족이 찌르는 맛은 없다. 디젤답지 않게 경쾌하지만, 회전수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은 디젤의 숙명은 어쩔 수 없다. 아울러 휘발유 V8 엔진의 기름진 사운드를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시종일관 조용할 뿐이다. 
가속할 때 잊었던 덩치는 스티어링 조작 때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 코너의 정점으로 예리하게 찔러 넣을 차가 아니니 문제될 건 없다. 나긋하고 부드러운 승차감과 맞바꾼 가치다. 레인지로버는 라인업 나머지 모델을 위해서라도 이처럼 저만의 정체성을 뚜렷이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스포티한 성격에 욕심내지 않은 이번 변화는 바람직해 보인다.  

부분변경을 마치면서 레인지로버 TDV8의 입지는 한층 강화됐다. 이전 TDV8에서 아쉬웠던 성능의 갈증이 말끔히 해소됐다. 소음과 진동은 휘발유 뺨친다. 레인지로버씩이나 타면서 연료비에 연연해할 이가 얼마나 될까 궁금해 하는 독자가 많을 거다. 부자들이 디젤 레인지로버를 고르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주유소 자주 가는 게 귀찮아서다. 


글 김기범|사진 랜드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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