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6시리즈의 뿌리는 1968년 나온 E9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E9는 도어 두 짝 짜리 쿠페로, 어떤 BMW보다 개인적 성향이 강한 차였다. 또한, 유러피언 투어링카 챔피언십에 출전하면서 ‘BMW=스포티한 차’의 이미지를 쌓은 일등공신이기도 했다. 경주차 인증을 위해 일반 판매용으로도 나왔던 3.0CSL은, BMW의 ‘아트카’ 시리즈로 우리에게도 낯익다.
6 시리즈란 이름은 1976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이후 6시리즈는 1989년 단종되고 한동안 공백을 가졌다. BMW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불투명한 시기엔 이런 한량 기질의 차가 먼저 철퇴 맞기 일쑤다. 6시리즈가 2세대로 부활한 건 2003년. 로버 인수로 인한 손해와 미국에서의 부진을 딛고 BMW가 기지개를 켤 무렵이었다.
BMW 디자인의 수장으로 부상한 크리스 뱅글이 신형 7시리즈로 세상을 한바탕 들쑤셔 놓은 이듬해이기도 했다. 파격의 수위는 7시리즈보다 낮았다. 그러나 역대 BMW에서 볼 수 없었던 얼굴을 앞세웠다. 아울러 성격도 바꿨다. 스포티한 분위기 물씬했던 1세대와 달리 나른하고 느긋해졌다. 골수팬의 반발을 우려해 2005년 M6을 추가하긴 했지만.
3 세대로 거듭한 신형 6시리즈의 얼굴은 앞서 선보인 코드네임 F 계열(5와 7시리즈)을 쏙 빼닮았다. 신앙처럼 고집해온 ‘콩팥’ 그릴에 ‘간’처럼 생긴 눈매를 짝지었다. 콧날은 한층 강화된 보행자 충돌규정을 의식해 거의 수직으로 깎았다. 범퍼엔 점선처럼 LED를 띄엄띄엄 심었다. 꽁무니의 조형미도 낯설다. 공간은 단호하게 나누되 표면을 미끈하게 다듬었다.
실 내를 송두리째 바꿨지만, 예상했던 대로 별다른 감흥은 없다. 6시리즈뿐 아니라 다른 BMW에서도 꾸준히 반복되는 경험이다. BMW뿐 아니라 아우디, 메르세데스-벤츠도 마찬가지다. 차마다 각도를 비틀고 높낮이를 바꿨을 뿐 결국 같은 부품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한편, 몸과 맞닿는 곳은 페달과 변속레버만 빼면 구석구석 천연 및 인조가죽으로 씌웠다.
소 프트 톱은 스위치로 간단히 여닫을 수 있다. 시속 40㎞까지 작동된다. BMW의 자료에 따르면 여는 덴 19초, 닫는 데는 24초가 걸린다. 프리미엄 브랜드답게 덜컹거리지 않고 조용히 밀고 당긴다. 직물이라지만 여러 겹으로 씌운 데다 고무 실이 정교해 방음과 밀폐성능은 흠잡을 데 없다. 시속 200㎞ 안팎으로 달릴 때도 부풀어 오르는 현상 없이 차분하다.
650i 컨버터블의 엔진은 V8 4.4L 트윈파워터보 직분사로 407마력을 낸다. 직렬 6기통에선 트윈스크롤 싱글 터보를 뜻하지만, V8에서는 말 그대로 두 개의 터보를 단다. 6기통과 달리 가변밸브시스템(밸브트로닉)도 쓰지 않는다. 빵빵한 제원만 보고 650i 컨버터블이 어깨 으쓱해서 거들먹거리는 ‘마초’가 아닐까 넘겨짚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650i 컨버터블은 불덩이처럼 뜨거운 잠재력을 애써 감췄다. 시동 걸 때 유별나게 기침하지도 않았고, 아이들링 때 머플러를 바르르 떨지도 않았다. 진동과 소음을 꼭 감싸 쥐고서 조용히 삭였다. ‘절제’와 ‘억제’로 단련된 성향은 달릴 때도 한결같았다. 엔진을 쪼갤 듯 채근하지 않는 이상, V8 특유의 고동소리도 도어 높이의 절반 이상 솟아오르는 법이 없었다.
어 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이 ‘똑똑이’는 자신의 취향을 나에게도 강요했다. 내가 손발로 내린 명령을 철저한 계산에 따라 축소하고 왜곡하며 과장했다. 실수는 표 나지 않게 수정했고 과욕은 기분 나쁘지 않게 다독였다. 그 결과 가속하고 멈추고 감아 도는 일련의 감각은, ‘럭셔리’의 이상에 걸맞게 치밀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650i 컨버터블은 과연 ‘럭셔리’ BMW의 꼭짓점다웠다. 가슴 뭉클하게 빠르되 엠블럼을 새삼 확인하고 싶을 만큼 부드러웠다. 가변 스티어링 기어비, 바이와이어 기술 등 갖은 기교로 내 운전의 격을 제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
글 김기범|사진 BM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