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스포츠의 정점, F1의 안전규제 변천사 -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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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스포츠의 정점, F1의 안전규제 변천사 - 상편
  • 박병하
  • 승인 2024.06.0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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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권에서는 예로부터 '레이스'를 좋아했다. 고대 로마 시절부터 전차(Chariot)를 가지고 레이스를 벌이는 트랙이 존재했으며, 경마, 경견, 심지어 비행기(!)까지 달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레이스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자동차 역시 그들의 손을 피해갈 수 없었다. 자동차 산업이 일어남과 동시에, 유럽 각지에서는 크고작은 레이스가 열리기 시작했고, 오늘날 전세계에서 명차로 취급되는 차들은 대체로 이 레이스 무대에서 갈고 닦은 기술력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자동차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는 자동차 경주가 행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오픈콕핏, 오픈휠(휠이 외부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음) 온로드 레이스로서 정점에 있는 포뮬러 원(이하 F1)은 지금까지도 서구권을 중심으로 전세계에서 매년 400만명이 관전하고 15억명이 시청하는 메인스트림 스포츠로 통한다. 

F1은 1984년 첫 그랑프리 경기가 열린 이래 오늘날까지 130년에 달하는 역사를 자랑한다. 그리고 이 기나긴 역사 속에서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특히 경기를 치르는 드라이버와 팀 크루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규제 역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개정되어 왔다. 그리고 이렇게 추가된 안전규제의 상당수는 그로 인한 사고가 원인이 되어 정식 도입된 것들이기도 하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F1의 주요한 안전규제 변화상을 살펴본다.

1950년 - 마셜
마셜(Marshal)은 경기가 진행되는 트랙 내에서 선수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안전관리자'로, 1950년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이들은 다양한 모터스포츠 이벤트에서 중요한 안전 관리 및 운영 지원을 제공한다. 이들은 화재 발생시 소화작업을 수행하고 사고 발생시 사고차량과 잔해를 신속히 수습해 관중의 안전을 확보한다. 또한 깃발신호를 사용해 드라이버에게 다양한 신호를 전달하는 것에서부터 트랙의 관리, 의료지원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1952년 - 헬멧
오늘날이야 모든 모터스포츠 현장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기준이기는 하지만, 1952년 이전까지는 헬멧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 이 당시 드라이버들은 1차대전 당시 조종사들이 사용했던 털가죽모자와 주행풍 차단용 고글 정도를 사용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시기를 기해, 코르크(Cork)제 헬멧을 착용하는 것을 의무화하여 선수들의 안전을 1차적으로 지킬 수 있도록 했다. 오늘날 F1 드라이버들의 헬멧은 특수 CFRP로 제작되어 우수한 내충격성에 더해 내화성까지 갖추고 있다.

1975년 - 방염수트
과거 드라이버들의 복장 규정이 없었을 당시에, 드라이버들은 자신이 움직이기 제일 편한 옷을 입었다고 한다. 오늘날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지만, 이 당시 드라이버들은 날씨가 춥지 않다면 되도록 가벼운 셔츠나 반팔 차림으로 경기에 임했다. 하지만 1963년부터는 드라이버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커버올(원피스)형태의 수트를 착용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그리고 1975년부터는 화재 발생시 수트에 불이 옮겨붙어 화상을 입는 것을 막기 위해 방염처리를 한 커버올 수트를 착용하는 것을 규정으로 못박게 되었다.

1981년 - 서바이벌 셀
F1은 앞서 언급했듯이, 오픈콕핏, 오픈휠 레이스다. 그렇기에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전자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헬멧과 안전벨트, 그리고 수트가 전부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1981년부터는 드라이버를 확실하게 보호할 수 있는 서바이벌 셀(Survival Cell) 구조를 적용할 것을 의무화했다. 모노코크, 혹은 세이프티 셀로도 불리는 이 구조물은 충돌 및 전복 등의 상황에서 드라이버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구조재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쉽게 파괴되지 않도록 다양한 특수소재들이 적용되며,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 광범위한 충돌테스트를 거쳐야 경주차에 적용할 수 있다. 

1993년 - 세이프티카
세이프티카는 기계고장으로 정지된 경주차, 충돌 후 트랙 곳곳에 흩뿌려진 파편, 심각한 악천후 등, 안전한 레이스 진행에 심대한 위협이 되는 요인이 감지되었을 때 출동해 모든 경주차들을 선도하며 레이스의 페이스를 낮추고 추월을 원천봉쇄하는 역할을 한다. 이 차가 트랙에 나타난다면, 그 뒤에 있는 모든 경주차는 즉시 속도를 줄여야 하며, 절대 이 차를 추월해서는 안 된다.세이프티카는 트랙에서의 위험요소가 완전히 제거되었을 때에 되돌아간다. 그리고 이 세이프티카의 운전대는 F1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전문 레이싱 드라이버만이 잡을 수 있다.

1994년 - 피트레인 제한속도
경주차들은 소모된 연료를 보충하고, 마모된 타이어를 교체하기 위해 피트로 향해 일련의 작업들을 수행한다. 이 과정을 피트스톱(Pit Stop)이라고 하는데, 이 피트스톱을 위해 진입하는 구간이 바로 피트레인(Pit Lane)이다. 피트레인은 트랙보다 훨씬 좁은 도로인데다, 작업을 위해 피트 크루들이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항시 인명사고의 위험이 도사린다. 1994년부터 제정된 피트레인 제한속도는 80km/h이며, 이를 1km/h라도 초과시에는 1km/h당 최소 100유로에서 최대 1,000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만약에 기록을 위해 의도적으로 피트레인 내 제한속도를 초과한다고 의심되는 경우, 추가 패널티가 가해진다.

1996년 - 헤드레스트
이전까지의 F1 경주차에는 헤드레스트가 없었다. 즉, 운전자의 머리를 보호할 헬멧은 있었으나, 운전자의 경추를 보호할 장치는 없었던 것이다. 이 시기는 F1 경주차의 속도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고, 그 때문에 드라이버에게 가해지는 중력가속도의 영향이 매우 커졌다. 특히 일부 레이스트랙의 코너에서는 운전자의 신체에 가해지는 중력 가속도가 약 6G에 달하기도 하는데 이는 자기 몸무게의 무려 6배의 힘이 가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렇게 급격한 중력가속도가 가해질 때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목'이다. F1 드라이버들은 대체로 일반인들은 물론, 다른 운동선수들에 비해서 유달리 목이 굵은 경우가 많은데, 이는 레이스 내내 목에 가해지는 엄청난 부담을 견디기 위해 특별히 이 부위를 단련하는 운동을 병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F1 경주차들에는 드라이버의 목과 머리를 더 효과적으로 보호해줄 수 있는 장비들을 연구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헤드레스트다. 그리고 이 헤드레스트는 충돌 시에 머리와 목에 가해지는 충격을 흡수하는 데 도움을 준다.

1997년 - 사고 데이터 기록 장치
1997년부터 모든 F1 경주차에는 충돌 정보와 충돌 중 안전장비들이 얼마나 제대로 작동했는가의 여부를 기록하는 사고 데이터 기록 장치(Accident Data Recorder)가 의무적으로 포함된다. 이 데이터는 의료진이 사고 현장에서 충격의 심각성을 파악하는 데 유용할 뿐만 아니라 런-오프 에어리어(Run-off Area), 배리어(Barrier) 등과 같은 서킷 자체의 안전 기능의 효용성을 평가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F1 경기 전반의 안전성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장치다. 오늘날의 시판용 차량에 사용되는 블랙박스와는 개념이 다르고, EDR(Event Data Recorder)에 더 가깝다. 이 장치를 통해 수집된 모든 사고 데이터는 모든 FIA 주관의 레이스 경기에도 활용되어, 드라이버의 안전을 향상시키는데 사용된다고 한다.

1999년 - 휠 테더(Wheel Tether)
도로를 주행중인 차량에서 바퀴가 떨어져 나가는 사고는 사고 당사차량뿐만 아니라 곧장 2차사고로 직결되는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다. 하물며 300km/h의 속도를 넘나드는 오픈휠 레이스인 F1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F1에서는 사고시 바퀴가 떨어져 나갈 경우, 그것은 더 이상 바퀴가 아닌, 20kg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흉기로 돌변한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경주차의 관성과 타이어의 탄성으로 인해 엄청난 속도로 튀어오르거나 구르기 때문이다. 사고로 떨어져 나간 타이어는 안전 요원(마셜)들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으며, 차량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바퀴가 다른 팀의 차량을 파괴하거나 드라이버의 머리를 강타하는 등의 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가 바로 휠 테더다. 

휠 테더는 차량의 바퀴와 서스펜션에 연결된 고강도의 케이블로, 충돌사고 발생 시 바퀴가 차체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 못하게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한다. 초기에는 강철 케이블을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강도가 대단히 높은 특수 합성섬유를 조합해 제작하여 성능과 경량화를 모두 잡았다. 이 케이블들은 최대 70kN의 힘을 견딜 수 있으며, 주로 서스펜션의 위시본에 내장된다. 휠 테더는 초기에는 휠 1개당 1개씩 설치되었으나 2018년부터는 휠 하나당 3개씩 설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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