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의 물결 속, 선물같은 자동차 - 토요타 GR86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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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화의 물결 속, 선물같은 자동차 - 토요타 GR86 시승기
  • 박병하
  • 승인 2023.06.07 1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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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만화 이니셜 D로 유명한 AE86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등장했던 토요타의 86이 또 한 번의 진화를 이루었다. 바로 토요타자동차의 모터스포츠와 고성능 자동차를 전담하는 토요타 가주레이싱(Toyota GAZOO Racing, 이하 TGR)의 손길을 거쳐 GR86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토요타 GR86은 지난 2021년 공개된 86의 후속 차종으로, 대대적인 개량을 거쳐 '1.5세대'에 가까운 변화를 거쳤다. 또한 이 차는 지난 2022년 국내 정식 출시되었으며, 인제 서킷에서 한 번 경험한 바 있다. 토요타 GR86을 일반 도로에서 시승하며 어떤 매력을 품고 있는지 알아 본다. 시승한 GR86은 상위 트림인 프리미엄 모델이다. VAT 포함 차량 기본 가격은 4,630만원.

GR86의 외관은 정통 스포츠카다운 모습과 더불어 기능미를 추구한 스타일로의 변화를 시도한 모습이다. 전반적으로 기존의 86을 더욱 얌전하고 정돈된 느낌으로 페이스리프트한 인상을 준다. 벨트라인에서부터 수평으로 통과하는 휀더 상단의 라인을 통해, 정통파 FR 스포츠카다운 스탠스를 표현했다. 여기에 수평기조를 강조하는 차체 하부의 스타일링 요소들을 활용하여 보다 낮고 안정감 있는 모습을 만들어 낸다. 또한, GR 브랜드 전용의  펑셔널 매트릭스 그릴(Functional Matrix Grill)을 적용한 점도 눈에 띈다. 이를 통해 호불호가 크게 갈렸던 86의 모습과는 달리 한층 단정(?)하고 무난한 스타일로 변화했다는 점에서 플러스 점수를 주고 싶다. 

여기에 차체의 높이도 약 5mm 낮춰 시각적인 안정감과 주행 안정성을 함께 높인다. 아울러 모터스포츠 무대를 누비고 있는 TGR의 경험이 녹아 들어간 신규 에어로 파츠를 적용해 스포츠카에 어울리는 공력 특성을 얻어낸다. 뒷모습에서는 트렁크리드를 통째로 스포일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으며, 수평기조의 일체형 테일램프가 적용된 점도 눈에 띈다.

인테리어는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된 수평기조의 신규 대시보드가 적용된 것을 시작으로, 복서 엔진을 형상화한 신규 계기반이 적용되었으며, 스위치류의 배치를 전면 재검토하여 더욱 운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버튼과 다이얼들이 하나같이 큼직큼직하고 조작하기 편리하게 디자인되어 있어, 운전 중에 조작하기에도 아주 수월하다. 특히 7인치 TFT LCD를 채용한 9계기반은 다양한 정보를 더욱 직관적으로 제공하며, 수평대향 엔진의 피스톤 운동을 보티브로 한 웰컴 애니메이션을 적용한 것도 특징이다.

다만 기본으로 제공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비롯해, 계기반 등에 한글이 전혀 지원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차량의 성격과 판매량 등을 따져 보았을 때 대중성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차종이기는 하지만, 가뜩이나 한글화에 인색하다는 평을 많이 듣는 와중에 이렇게 한글화를 거의 포기한 듯한 모양새는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본다. 

앞좌석은 그야말로 스포츠카를 위한 시트의 정석을 보여준다. 세미 버킷형으로 디자인된 전용 스포츠 시트는 알칸타라와 직물 등으로 마감되어 있으며, 탄탄한 지지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 부드럽고 편안한 착좌감보다는 탑승자를 단단히 붙들어 놓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진짜배기 스포츠카의 시트라고 할 수 있다. 시트의 조절은 수동 레버를 통해 이루어지며, 그 외에는 2단계(Hi-Low) 열선 기능만을 제공한다.

뒷좌석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타기 위한 자리라기 보다는, 가방 등 짐을 두기 위한 자리에 가깝다. 물론, 뒷좌석으로접근하기 용이하도록 기계식의 워크스루 기능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성인이 착석하기에는 비좁은 공간이다. 대략적으로 5~7세의 어린이를 겨우 태울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라 보면 된다. 이 뒷좌석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트렁크 공간이 부족한 경우에 접어서 짐 공간을 늘리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단, 분할 접이 기능은 지원하지 않는다. 트렁크는 성인 2명분의 짧은 여행 짐 정도는 충분히 실을 수 있는 수준이다.

TGR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진 GR86은 기존 86 대비 한 단계 이상 향상된 성능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엔진은 기존 대비 0.4리터의 배기량을 늘려 잡은, 신개발 2.4리터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을 사용한다. GR86과 새로운 스바루 BRZ를 위해 새로 개발된 2.4리터 엔진은 '경량, 소형, 저중심'이라는 수평대향 엔진의 장점과 자연흡기(Naturally Aspirated) 엔진의 특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배기량을 2.0리터에서 2.4리터로 증대하여 동력성능 향상을 꾀했다.

여기에 포트 분사와 연소실 내 직분사 겸용인 최신의 토요타 D-4S 직분사 기구가 적용되며, 국내 기준 231마력/7,000rpm의 최고출력과 25.5kg.m/3,7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이는 기존의 86 대비 최고출력은 28마력, 최대토크는 4.6kg.m가 증가한 수치다. 특히 토크의 경우에는 향상 폭은 물론, 기존 엔진과 달리, 저속토크가 크게 상승한 것이 눈에 띈다. 변속기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수동 6단 변속기를 사용한다.

GR86은 정숙성 면에서는 아주 뛰어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아이들 상태에서는 뜻밖에 정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운행을 시작하게 되면 제법 조용했던 실내의 분위기는 급변하게 된다. 가속페달을 밟은 오른발에 힘을 주기 시작하면 신형의 2.4리터 복서엔진이 묵직하면서도 혈기왕성한 소음이 차내로 밀려들어 온다. 상당히 강렬한 느낌의 구동음은 이 차가 단순한 승용차가 아닌, 정통파에 한없이 가까운 경량 스포츠카라는 것을 피력하고 있는 부분이다.

승차감 역시 정통파 스포츠카 답게, 상당히 단단한 질감이 특징이다. 그 뿐만 아니라 손목과 등줄기를 통해 노면의 각종 정보들이 여과를 거의 거치지 않은 채 전달된다. 일반적인 승용차의 기준에서는 딱딱하고 불편하게 여겨질 정도로 직설적인 승차감이지만 차량의 성격을 이해한다면 오히려 정통 스포츠카의 본질에 가까운 승차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근래에는 스포츠카들도 승용차에 준하는 일상운행의 편의성을 요구하는 경향이 높아졌기 때문에, 이러한 측면에서는 불리한 면이 있다.

GR86은 경량급 스포츠카에 걸맞은 경쾌하고 힘찬 느낌을 가감없이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이전의 86과는 체감 상으로 한 단계 더 강력해진 가속의 경험을 선사한다. 이 대목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은 역시 파워트레인이다. 증가한 최고출력과 더불어, 기존 대비 한층 두툼해진 저속토크 덕분에 더욱 강하고 활기찬 느낌의 가속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서도 기존과 같이 7,000rpm을 넘나드는 고회전형 자연흡기 엔진의 원초적인 쾌감은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기존 86의 2.0리터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은 20.9kg.m의 최대토크가 6400~6600rpm의 고회전역에서 발생했기에 엔진을 있는 대로 쥐어짜야 제 성능을 발휘하는 느낌이었고, 그 힘 자체도 아주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반면 GR86의 엔진은 기존 대비 배기량이 0.4리터나 늘어나게 되면서 더 높아진 최고출력은 물론, 한층 충실해진 저속토크를 갖게 되면서 더욱 힘찬 초기 가속력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변화가 있는데, 바로 변속기다. 변속기 자체는 수동 6단 그대로이지만 여러모로 재설계가 들어갔다. 특히 통상적인 H게이트식 수동변속기는 특정한 구간에서 필연적으로 걸리는 느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GR86의 수동변속기는 이 부분을 크게 개선해 2단에서 3단으로, 4단에서 5단으로 변속할 때 걸리는 느낌이 거의 없이 매끄럽게 변속할 수 있다. 심지어 변속기의 시프트 스트로크까지 굉장히 짧아서 더욱 역동적이고 박진감 있는 주행 경험에 일조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변하지 않은, 아니 더욱 정교하게 진화된 부분이 있으니, 바로 핸들링이다. 이전에 시승했던 86은 전방엔진 후륜구동 자동차의 특성을 가장 명확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해주면서도 자동차와 운전자가 마치 볼트로 연결되어 있는 듯이 뛰어난 일체감이 일품이었고, 날 것 그대로의 운전경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GR86은 여기서 더 나아가 정교하고 세련된 감각의 조종경험을 선사한다. 과거의 86이 정제가 전혀 되지 않은 감각이었다면 GR86은 현대적인 스포츠카의 정확하고 기민한 감각을 제공한다. 이러한 덕분에 GR86은 한층 세련된 스포츠카로 다가오게 된다. 특히 의도한 대로 정확하게 움직여주면서도 운전자로 하여금 자신감을 만들어주는 최소한의 안정감은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점 또한 과거의 86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보기 좋게 만회한 부분이기도 하다.

연비의 경우에는 늘어난 배기량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이전의 86과 차이가 크지 않다. 이전의 86은 시내 평균 10km/l 내외, 고속도로 평균 14km/l 내외의 연비를 보였는데 GR86은 시내 평균 8.9km/l, 고속도로 정속주행시에는 평균 14.5km/l에 달하는 연비를 기록했다. 도심 연비의 경우에는 다소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 폭이 크지 않고 고속도로 연비는 오히려 소폭 상승하기까지 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토요다 아키오 회장이 인터뷰에서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아직은 시끄럽고 기름 냄새나는 차가 좋습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현역 드라이버로서 활동하기도 했던 인물인 만큼, 자동차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진심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저 발언이 그대로 형상화된 차 중 하나가 바로 GR86이 아닐까 싶다. GR86은 기본적으로 경량급의 스포츠카다. 게다가 이전 세대에 비해서 한층 스포츠성을 강조하며 진화를 이루었다. 기본적으로 경쾌한 응답성과 민첩한 기동성의 실현을 최우선순위로 삼는 중시하는 경량급 스포츠 쿠페의 전통적인 특징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GR86은 전동화와 전동화와 자율주행화가 대세인 오늘날 자동차 시장의 경향을 정면으로 역행하고 있다. 특히 지극히 아날로그적이고 기계를 내가 직접 조종한다는 느낌을 강조하는 GR86은 비록 스펙이나 구성 면에서는 다른 고가형 스포츠카들에 비해면 보잘것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경험만큼은 다른 고가형 스포츠카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동차라는 이름의 기계를 다루고 조종하는 가장 원초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는 데 있어서 GR86은 지금까지 경험했던 여러 스포츠카들 가운데서도 손에 꼽고 싶을 만큼 각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GR86은 전동화와 자율주행 등의 기조로 인해 순수한 스포츠카들이 눈에 띄는 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의 세태에서 실로 선물같은 차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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