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녀석들]혼다 타입 R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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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녀석들]혼다 타입 R -상편-
  • 박병하
  • 승인 2022.11.2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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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의 차별화 전략들 중에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면 바로, 고성능 모델들을 필두로 한 이미지 마케팅이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BMW 'M', 메르세데스-벤츠 'AMG', 아우디 'RS' 등은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고성능 서브 브랜드로 통하고 있다. 이러한 고성능 서브 브랜드는 단순히 판매량만을 늘리기 위한 가지치기용 라인업이 아니다. 고성능 서브 브랜드 소속의 자동차들은, 제조사의 기술력을 비롯한 모든 개발 역량이 총동원되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제조사와 브랜드를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해당 제조사가 가진 전통과 같은 온갖 무형의 가치들이 담겨있어, 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동원할 수 있는 최신예의 기술들을 총동원하여 제작되는 '브랜드의 총아', 고성능 자동차들은 색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내어 소비자들에게 좀 더 강인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른 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충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스피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드림카로 불리기도 하며, 해당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도 이러한 고성능 라인업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게 된다. 모토야 에서는 이러한 특별한 녀석들을 연속 기획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이번에 다루게 될 강력한 브랜드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혼다기연공업(이하 혼다)의 고성능 라인업, '타입 R(Type R)'이다.

혼다 타입 R은 모터스포츠에 대한 혼다의 열정과 도전, 그리고 기술력을 상징하는 서브 브랜드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혼다 타입 R 모델들은 외관 상으로 두 가지 대표적인 특징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챔피언십 화이트(Championship White)'로 명명된 특유의 백색 외장색상이고 다른 하나는 배경색이 적색으로 되어 있는 전용 혼다 엠블럼이다. 이는 1965년, 순수 자사 기술로 포뮬러 1 우승을 따낸 경주차 RA272에서 가져 온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는 타입 R이 만들어진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타입 R 모델의 키 비주얼로서 내세워지고 있다.

혼다 타입 R의 시작은 1980년대 후반, 자사 최초의 미드십 후륜구동 스포츠카가 될 프로젝트명 '혼다 스포츠(Honda Sports)'를 개발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로젝트 혼다 스포츠는 사실 상 거의 전차종이 FF(전방엔진-전륜구동)였던 혼다의 라인업에서 독보적인 성능과 매력을 가진, 혼다 기술력의 집약체로서 대외적으로 내세울 헤일로 모델의 역할을 해 줄 스포츠카로서 개발되고 있었다. 그리고 '1980년대'와 '미드십 후륜구동'이라는 키워드에서부터 이미 눈치 챈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바로 혼다의 걸작 스포츠카로 손꼽히는 명차, 'NSX'다.

NSX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을 당시는 혼다가 포뮬러 1 무대에서 최전성기를 맞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F1의 터줏대감인 윌리엄스와 함께 '윌리엄스-혼다(Williams Honda)' 팀을 꾸리고 있었던 혼다는 1985년도까지 3연승, 그리고 1986년 16전 9승의 압도적인 기록으로 매뉴팩처러즈 타이틀까지 획득하는 등, '정점'에 달했다. NSX의 개발은 온로드 모터스포츠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F1에서의 눈부신 성과에서 비롯된 자신감이 그 바탕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NSX의 개발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일단 NSX는 1980년대 초반에 선행 연구 프로그램으로서 진행한 UMR(Underfloor Midship-engine Rear-drive)을 통해 '리어-미드십 후륜구동'으로 차량의 기본적인 틀은 잡아 둔 상태였다. 그러나 이 틀을 가지고 "어떠한 컨셉트의 스포츠카를 만들것인가"를 두고 연구진들이 두 패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NSX의 개발에 투입된 혼다의 연구진은 ''하이테크 이미지를 상징하는 첨단 전자장비로 무장한 스포츠카"로 개발하길 원하는 '실버파(シルバー派)'와 "F1 머신과 직계되어 있으면서, 전자장비를 철저히 배제한 퓨어 스포츠카"로 개발하기를 원했던 '적파(赤派)'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 논쟁은 결국 첨단 이미지를 주장했던 실버파가 승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NSX는 "쾌적한 F1(快適F1)", "인간중심의 스포츠카"라는 참신하고도 혁신적인 스포츠카로 태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NSX를 뼛속까지 퓨어 스포츠카로 개발하기를 원했던 적파 연구진은 NSX가 실버파의 주도로 개발이 되고 출시가 된 이후에도 퓨어 스포츠카를 향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특히 1987년에는 혼다의 안방인 스즈카 서킷에서 개최된 F1 일본 그랑프리를 계기로 유례없는 F1의 열풍으로 일본 열도가 들끓고 있었고, 이를 통해 일본의 모터스포츠 씬 자체가 더욱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이로 인해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일상 뿐만 아니라 서킷에서 고성능 스포츠카를 주행하는 인구 또한 크게 늘고 있었다.

그런데 1990년 NSX가 시판에 돌입한 이후, 혼다는 NSX의 오너들로부터 또 다른 요구를 받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서킷을 더욱 적극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차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NSX는 분명히 잘 만들어진 스포츠카이지만, 특유의 '인간중심의 스포츠카'라는 설계사상으로 인해 당시에도 호불호가 갈리는 면이 있었다. 따라서 NSX의 개발 과정에서 '적파'로 분류되었었던 엔지니어들이 중심이 되어, '인간 중심'의 NSX를 '성능 중심'의 퓨어 스포츠카로 탈바꿈 시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차가 바로 혼다 타입 R의 시조가 되는 'NSX 타입 R(NSX Type R)'이다. 여기서 붙은 'R'은 레이싱(Racing)과 적파(Red) 엔지니어들을 의미한다.

당시 NSX 타입 R의 연구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던 츠카모토 료지(塚本亮司)는 혼다 타입 R 30주년 기념 자체 인터뷰에서 "NSX는 어디를 달리든 운전이 즐겁고 쾌적한 자동차였지만 주행성능의 잠재력을 더욱 끌어 올릴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었다"며, "최초 개발 당시에 존재한 '적파'의 개발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쾌적성과 편의성을 위한 장비를 한계까지 덜어내고 속도를 끌어 올림으로써 서킷에서의 극한 퍼포먼스를 실현할 수 있도록 개발한 차가 바로 NSX 타입 R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NSX 타입 R의 개발은 원판만큼이나 만만치 않은 난관들이 존재했다. 가장 큰 난관으로는 당시까지 현행법으로 적용되고 있었던, 이른 바 '마력규제(馬力規制)' 때문이었다. 일본의 마력규제는 일본 내에서 생산되는 완성차의 출력은 280마력, 최고속도는 180km/h로 제한하는 자동차 관련 규제를 말한다. 이는 본디 자동차 제조사들 간의 불필요한 출력 경쟁을 막고 에너지 절약의 차원에서, 그리고 교통사고 예방 등등을 명분으로 시행되었으나, 지난 2003년도에 폐지된 바 있다.

이 마력규제로 인해, 혼다의 적파 개발진은 고민에 빠졌다. 고성능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방법론 중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가 엔진 성능 강화인데, 기반인 NSX부터 280마력이었기 때문에 엔진의 성능을 강화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진 것이다. 이에 혼다의 적파 개발진은 NSX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던 출력 대 중량 비(Power to Weight Ratio)를 더욱 높이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혼다의 적파 개발진은 이미 고도의 경량화 설계 개념으로 완성된 NSX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부터 시작했다. 정숙성 향상을 위해 차량 각부에 적용된 흡/차음재를 몽땅 제거하는 것도 모자라, 범퍼와 도어를 지탱하는 빔 구조물을 모두 알루미늄 합금으로 변경했다. 여기에 리어 스포일러와 뒷유리, 실내의 내장재들은 물론, 시트로 레카로(Recaro)제 초경량 버킷시트로 교체했으며, 스티어링 휠도 모모(Momo)의 경량 스티어링 휠로 변경했다. 심지어 변속기 레버로 티타늄으로 교체하는 등, 그램(g) 단위의 철저한 경량화 솔루션이 적용되었다. 이렇게 뼈를 깎는 철저한 경량화 설계의 적용으로 무려 120kg을 감량하는 데 성공한다.

이러한 살인적인 감량은 단순히 무게를 줄이기 목적 뿐만 아니라, 차량의 무게중심을 낮추기 위한 의도도 숨어 있었다. 그리고 엔진의 경우에는 크랭크 샤프트의 밸런스를 더욱 정밀하게 조정하고 커넥팅 로드의 중량을 보다 정밀하게 맞춤으로써 한층 빨라진 응답성을 이끌어내는 한 편, 종감속기어의 기어비를 낮춰 운전자로 하여금 더욱 적극적으로 고회전 영역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여기에 운동성능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한, 보다 정밀하고 고도화된 섀시, 바디, 서스펜션 세팅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서스펜션 세팅은 한층 단단하게 변경되었고, 브레이크 패드의 소재를 변경해 페이드 저항성을 높이는 등, 철저하게 트랙주행에 초점을 맞춘 차로 거듭났다. 사실 상, 경주차와 진배없는 접근법을 취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혼다의 첫 번째 타입 R 모델인 NSX 타입 R은 1992년 일본 내수시장에 출시되었다. 자동차로서의 쾌적함과 스포츠카가 가져야 할 주행의 즐거움을 절묘한 균형으로 양립한 NSX와는 달리, NSX 타입 R은 더욱 가볍고, 공격적이며, 더욱 강력한 '경주마'로 만들어져, 하드코어한 서킷 주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뿐만 아니라 일본 내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워 레이스 팀들에게도 사랑 받은 차로 손꼽힌다. 

그리고 NSX 타입 R을 시작으로 다져진 기술과 철학은 오늘날의 혼다 타입 R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타입 R은 시간이 지날수록 성능지상주의에서 벗어나 혼다의 창립 이념인 "기술은 사람을 위해(技術は人のために)"에 점차 가까워져가면서 오늘날에는 일상에서의 편안함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서킷에서도 최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성숙한 고성능차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해 왔다. 후속 기사에서는 NSX 타입 R의 이래 지금까지 등장한 12대의 혼다 타입 R 차량들을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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