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대한민국 최초의 버스, 하동환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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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차]대한민국 최초의 버스, 하동환버스
  • 모토야
  • 승인 2022.08.2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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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존재하는 본연의 목적은 육상에서의 이동 및 수송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에 가장 충실한 유형의 자동차는 상용차(商用車, Commercial Vehicle)다. 많은 인원을 한 번에 이동시킬 수 있는 버스 및 승합차, 그리고 화물을 운반하기 위한 크고작은 화물차(트럭)가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의 자동차는 전후 복구가 한창이던 1950년대 대한민국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유형의 자동차였다. 그 중에서도 버스는 다수의 인원을 태우고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어, 인구가 밀집한 도시를 중심으로 수요가 크게 늘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버스를 만든 이는 누구일까? 그리고 언제부터 자체적으로 버스를 만들기 시작했을까?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버스를 제작한 이는 바로  지난 2018년 작고한 故 하동환 한원그룹 명예회장이다. 그리고 그게 설립한 '하동환자동차제작소'는 대한민국 버스 역사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버스 역사의 산실
하동환자동차제작소의 설립자인 하동환氏는 10대 시절부터 자동차 수리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미군이 민간에 불하(拂下)한 지프와 트럭 등을 자신의 손으로 하나둘씩 분해하고 수리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쳐가며, 그는 자동차의 전반적인 작동 원리를 독학으로 하나씩 터득해 나갔다. 그리고 자동차를 접하면서, 연료만 있으면 사람들을 어디든 데려다 줄 수 있는 자동차가 가진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음은 물론, 미래에 자동차가 가져 올 사회의 변화까지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시기였던 1954년, 24세의 청년 하동환은 서울시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한 자신의 집 앞 마당에 천막으로 된 공장을 세우게 되었다. 오늘날의 현대화된 자동차 공장에 비하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청년 하동환은 그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자동차를 직접 만들며 국내 자동차 산업, 그 중에서도 버스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 천막 공장이 바로 하동환자동차제작소의 시작이자 국내 최초의 버스, '하동환버스'가 태어난 곳이다. 하동환 사장은 다년간 자동차 수리공장에서 일하며 축적해 온 경험을 토대로, 당시 국내에서 수요가 커져가고 있었던 버스를 주로 제작했다. 차량의 핵심인 엔진과 변속기, 차축은 불하 받은 미군용 트럭에서 가져왔고, 차량의 뼈대를 이루는 프레임 섀시는 열차의 선로를 구해 이것을 절삭 및 용접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여기에 차체(Body)의 골조는 목재로 제작하되, 외판은 드럼통을 자르고 펴서 이를 골조에 입히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자동차로 기록된 국제차량제작의 '시-바ㄹ'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하동환자동차의 '드럼통 버스'는 당시 버스 수요가 늘고 있었던 대한민국에서 큰 무엇보다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전쟁 이후 공공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대한민국에서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었던 자동차 중 하나가 바로 ‘버스’였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에서 버스는 사실 상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이었으며, 한 번에 많은 사람이 적은 비용으로 이동할 수 있는 사실 상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렇게 하동환 사장이 만든 버스는 날개 돋힌 듯이 팔려나갔다. 당시 하동환자동차에서는 하루 종일 제작에 매달려서 평균 2대의 버스를 생산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려드는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하동환 사장은 ‘드럼통 버스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상당한 양의 버스를 생산했다.

성장,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의 자동차 수출
그리고 1962년, 하동환자동차제작소는 약 2,000평 규모에 달하는 구로동의 신 공장을 세우고 ‘하동환자동차공업주식회사(이하 하동환자동차)’로 사명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하동환자동차의 공장은 당시로서는 최신식 설비를 갖추고 있었고 하루 평균 2대의 버스를 생산할 수 있었다. 하동환자동차의 버스 공장은 쉴틈 없이 돌아갔다. 1960년대 당시 서울 시내를 돌아 다니던 버스 중 7할이 하동환자동차에서 생산된 버스였을 정도였을 정도로 하동환자동차는 국내 버스 업계를 틀어쥐게 된다. 그리고 하동환 사장은 국내 버스 보급에 누구보다도 앞장 선 공로를 인정 받아, 1965년 12월, 전국 모범 기업체 표장대회에서 교통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하동환자동차는 국내 자동차 산업의 역사에 또 한 가지의 큰 족적을 남겼다. 그것은 바로 사상 최초의 '자동차 수출'이라는 기록을 남긴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포니보다 10년이나 앞선 1966년, 하동환자동차의 버스는 동남아시아의 석유부국 브루나이에 정식으로 수출길에 올랐다. 이 당시 수출된 최초의 국산 자동차는 HDH(하동환) R-66 버스로, 당시만 해도 열악했던 국내 자동차 산업계에서 매우 뜻 깊은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하동환자동차의 버스는 브루나이를 시작으로 1967년도에는 베트남에도 수출이 이루어졌고, 이후 리비아 지역에도 선보였다.

쌍용자동차의 기틀을 세우다
이렇게 드럼통 버스로 시작해 버스를 중심으로 한 상용차 전문 제조사로 거듭나고 있었던 하동환자동차는 1967년,  상공부의 자동차산업 계열화 정책에 의해 신진자동차의 계열사로 편입된다. 이 시기에는 신진자동차가 일본 토요타자동차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은 토요타 버스와 미국 카이저 인더스트리(Kaiser Industries Corporation)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은 'CJ-5(Civilian Jeep, 민수용 지프)'를 위탁생산하는 형태로 사업을 꾸려나갔다. 그리고 이 때 생산한 지프는 '신진 지프'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는데, 이 차는 훗날 코란도의 전신이 된다.

하지만 1975년, 토요타자동차가 중국시장 진출을 위해 신진자동차와의 제휴관계를 일방적으로 청산해버리면서 더 이상 토요타 버스를 생산할 수 없게 되자, 하동환자동차는 신진자동차로부터 독립,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버스와 지프 등을 생산하면서 소방차, 등의 특수/특장차 부문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고, 이에 1977년 사명을 '동아자동차공업'으로 변경하고 1979년, 평택에 공장을 세웠다. 이 평택 공장은 오늘날 쌍용자동차의 공장이기도 하다. 이렇게 순조롭게 사업을 전개하면서 1984년에는 거화까지 인수하는 등, 몸집을 키웠으며, 트랙터 등의 중장비와 고속버스 등을 중심으로 성장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렇게 사업을 키우다 보니, 자연스레 외부자금 유입이 커졌고, 이는 무차입 경영을 선호하는 하동환 회장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에 하동환회장은 당시 자동차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쌍용그룹을 설득해 동아자동차를 매각했고, 이렇게 쌍용자동차가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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