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만들다가 자동차 만들었던 그 브랜드...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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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만들다가 자동차 만들었던 그 브랜드... 지금은?
  • 모토야
  • 승인 2022.03.1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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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제조사들 가운데는 항공기를 제작하다가 자동차 쪽으로 업종전환을 한 사례들이 존재한다. 독일 BMW의 경우에는 항공기 엔진을 제작하는 기업으로 시작해, 1917년에 이륜차 사업을 먼저 시작했다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자동차 제조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본격적으로 자동차 사업에 전력을 다하게 된 것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국에 의해 항공기 관련 사업을 할 수 없게 되면서부터였다. 일본의 스바루와 미쓰비시 역시 과거 비행기를 제작하던 제조사였으나 2차 대전 당시 구 일본군에 무기를 공급한 전범기업으로, 이 역시 연합국에 의해 항공기 개발 및 제작이 금지되어 생존을 위해 자동차 제조업으로 업종전환을 한 케이스다.

하지만 이렇게 비행기 만들다 자동차 만들게 된 회사로 가장 유명했던 제조사는 바로 스웨덴의 '사브자동차(SAAB Automobil AB)'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브 자동차는 스웨덴 항공 유한회사(Svenska Aeroplan AkiteBolag, 現 SAAB AB)의 자동차 부문으로 출발한 기업이다. 사명인 '사브(SAAB)'는 스웨덴 항공 유한회사를 줄인 것이다.

사브 AB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1937년 4월 2일, 스웨덴의 하늘을 지킬 군용 항공기를 만들기 위해 세워졌으며, 여기서 생산된 항공기들로 자국의 영공을 수호했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의 화마가 지나간 이래, 냉전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에도 스웨덴 공군을 위한 전투기를 만들었다.

오늘날 사브 AB는 스웨덴 내의 크고 작은 방산업체를 차례차례 합병해가며 덩치를 키워, 유럽 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방산업체로 성장했다. 지금은 스웨덴 공군의 주력 전투기 JAS 39 그리펜 시리즈와 더불어 다양한 구경의 화포와 유도탄, 심지어 군함과 레이더 등에 이르는 다양한 무기체계를 개발 및 생산하고 있다.

스웨덴 항공 유한회사 사브가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 까닭은 전쟁이 끝나면서 전투기의 수요가 급감한 데 있었다. 전세계에 걸쳐 끔찍한 피해를 입혔던 전쟁으로 인해 세계 각국은 너도나도 군비를 전례 없는 규모로 축소하기 시작했고, 이는 스웨덴 역시 마찬가지였다. 군비 축소는 곧 전투기 등의 신규도입이 줄어든다는 것과 같고, 전투기의 생산이 주를 이루고 있었던 사브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새로운 '미래 먹거리'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자동차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항공기들은 레시프로 엔진(왕복 엔진)이 주력이었기에 자동차와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공유하는 것들이 여러모로 많았다. 이 때문에 서두에서 언급한 기업들이 비교적 빠르게 자동차 제조업으로 업종전환이 가능했던 이유였고, 롤스로이스 나 스페인의 이스파노-수이사(Hispano-Suiza) 같은 경우에는 아예 항공기와 자동차 사업을 병행하고 있기도 했다.

사브는 자동차 사업을 시작한 이래, 줄곧 자신들을 ‘비행기 만드는 자동차 기업’이라 소개 해 왔으며, 광고로 이를 꾸준히 어필해 왔다. 심지어 항공기에 사용된 기능이나 기술들을 자동차에 꽤나 적극적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이는 한 편으로는 선진적으로 비춰질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괴짜와도 같은 인상을 주곤 했다.

사브의 자동차는 1970년대를 전후하여 상당한 고성능차 제조사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는데, 이는 그들이 그토록 집착했던 터보 엔진 덕분이었다. 자동차에 최초로 터보차저를 도입한 것은 쉐보레였지만 ‘터보 자동차’는 강력하다는 인상을 심어 준 자동차 제조사는 바로 사브다. 1970년대 사브의 엔진은 2.0리터의 배기량으로 145마력의 출력을 낼 수 있었다. 오늘날 고성능으로 유명한 BMW가 110마력대에 머물던 시기에 이미 그를 상회하는 출력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1989년, 사브의 자동차 부문은 제너럴 모터스(GM)에 합병되었다. 하지만 GM과 결합한 이래, 사브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동차 제조사로서의 힘을 잃기 시작했다. 비좁은 자국의 내수시장만을 고려한 제품개발 사상을 굽히지 않았다. 트렌디한 외관 디자인이 중시되고 있었던 당시의 경향을 무시했으며, 비용 절감을 위한 GM식의 설계 사상에도 따르지 않았다. 사브의 이러한 태도는 꾸준한 비용 상승과 재정난을 초래했다.

물론 GM에서도 사브의 이러한 태도에 대하여 손을 아주 안 쓴 것은 아니었다. 90년대를 전후하여 GM식의 뱃지 엔지니어링과 그를 통한 모델 라인업 확대를 실행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차들이 바로 스바루 임프레자 기반의 9-2X와 올즈모빌 브라바다 기반의 9-7X 등이었는데, 이들 차종은 사브의 강렬한 개성과는 전혀 어우러지지 않는 차들이었다. 그 때문에 브랜드의 개성과 이미지만 실추시키는 역효과만 내고 처절하게 실패했다.

2000년대 후반 들어 사브는 몰락을 거듭했다. 2007년도에 약 12만대 가량이었던 생산량은 2008년도에 9만대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급락하더니 2009년에는 고작 2만대를 간신히 웃돌았다. 2010년도에는 3만대 가량으로 소폭 상승했지만 이미 2009년 이래로 스포츠카 제조사인 포르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어찌나 자금이 모자랐는지, 2011년 초에 열리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는 전시장에 부스조차 차리지 못하고 전시장 건너편 공터에 천막을 치고 내방객을 맞는 해프닝도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에서의 천막 투혼이 무색하게, 사브 자동차는 2011년에 파산 보호 신청을 내기에 이르게 된다. 2012년, 당시 사브는 약 15억 달러(2012년도 기준 약 1조 7,060억원)에 상당하는 부채를 안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2011년도에 파산보호 신청을 낸 사브는 해외, 특히 급성장중에 있었던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사브 자동차에 눈독을 들였다. 하지만 사브의 최대주주인 GM은 "사브를 중국 기업에 넘기게 되면 기술유출이 우려된다"며 중국 자동차 업체 두 곳의 인수 제의를 거절했고, 결국 사브는 최종적으로 2011년 12월 파산하고 말았다.

그리고 한동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던 사브에게 한 줄기 희망(?)이 닿았다. 2012년, 중국계 대체 에너지 기업 내셔널 모던 에너지 홀딩스(National Modern Energy Holdings)와 일본계 투자기업 선 인베스트먼트(Sun Investment)가 합작으로 세운 법인인 NEVS(National Electric Vehicle Sweden AB)가 파산하고 빈털터리가 된 사브를 인수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브가 생산했던 중형 승용차 9-3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를 제작하려는 계획이었고, 이에 GM은 사브를 NEVS에 넘기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사브의 브랜드를 사용하지 못하고, NEVS 자체 브랜드로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GM이 사브 브랜드의 사용을 거부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심지어 본가(本家)에 해당하는 사브 AB가 자체적으로 자동차 사업에 재도전할 의사를 밝히는 등, 이야기가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현재 NEVS의 최대주주는 중국의 헝다그룹(China Evergrande Group)으로, 2021년 세계 금융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헝다그룹 파산위기의 주역이어서 그 미래는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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