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변혁의 사이 - 마세라티 기블리 하이브리드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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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변혁의 사이 - 마세라티 기블리 하이브리드 시승기
  • 박병하
  • 승인 2022.02.04 17: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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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의 준대형급 세단 모델 기블리, 그 중에서도 새롭게 등장한 기블리 하이브리드 모델을 시승했다. 기블리 하이브리드는 동시에 출시된  르반떼 하이브리드와 더불어, 마세라티의 첫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적용한 모델이다. 지난 2020년 하반기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기블리 하이브리드 모델을 시승하며 마세라티 첫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진가를 알아본다. 시승한 기블리 하이브리드 모델은 고급세단의 면모를 강조하고 있는 그란 루소 모델이다. VAT 포함 차량 기본가격은 1억 2,150만원.

마세라티 기블리는 2018년도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바 있다. 이 때의 페이스리프트는그렇게까지 극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기존 대비 조금 더 세련된 외관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 새로운 전후면 범퍼 디자인을 적용하여 초기형에서 지적되었던 공기역학적 특징도 개선이 된 바 있다.

그리고 마세라티 기블리는 이 때의 페이스리프트와 더불어 서로 다른 두 가지 외관 디자인을 갖는 사양으로 나뉘어져 판매된다. 하나는 '그란루소(Gran Lusso)'고 다른 하나는 '그란스포트(Gran Sport)'다. 그란루소는 럭셔리 세단으로서의 면모를 더 강조하는 반면, 그란스포트는 스포츠세단으로서의 스타일을 더욱 강조하는 형태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 시승하게 된 기블리는 '그란루소' 사양이다. 그란루소 사양의 기블리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또한 하이브리드 모델만의 깨알같은 디테일도 나타난다. 그 디테일은 프론트 펜더의 3구 에어벤트와 C필러 엠블럼에 있다. 다른 모델의 크롬도금과는 달리, 파란색으로 처리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하지만 브랜드 최초의 하이브리드 모델임을 감안하면 다소 소극적인 디테일이 아닐까 한다.

인테리어 또한 기존의 모습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근래 출시되고 있는 자동차들이 체급을 막론하고 시각적으로 더욱 넓어보이는 효과를 주기 위해 수평향의 기조를 적극채용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여전히 Y자형의 대시보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신형의 마세라티 기블리에는 마세라티 인텔리전트 어시스턴트(Maserati Intelligent Assistant, 이하 MIA)라는 아주 긴 이름의 신형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적용된다. MIA는 기존에 마세라티에서 사용했었던 MTC(Maserati Touch Control)를 대체하는 신형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 역시, 크라이슬러 유커넥트(Uconnect) 기반의 시스템이지만, 기존 MTC 대비 UI 디자인은 물론, 폰트까지도 한층 세련된 구성을 가지며, 사용 편의성도 크게 개선되었다. 기존에 있었던 한글화 번역 미스도 개선되어 있는 모습이다. 아울러 화면 자체도 한층 커진데다, 터치 패널 표면을 유리로 처리하여 한층 고급스러운 느낌을 전달한다.

이 외에도 실내에는 그란루소만의 차별화 포인트가 있다. 그 중 하나는 그란스포트 대비 더 강화된 편의장비를 들 수 있다. 그란루소 트림에는 전동 조절식 풋 페달과 스티어링 휠, 뒷좌석 전동 선 블라인드, 소프트 도어 클로즈 시스템, 전자식 글로브 박스 잠금장치 등이 기본으로 적용된다. 여기에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와의 협업으로 완성한 전용의 인테리어 패키지도 포함되어 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 인테리어 패키지는 카시트, 도어 패널, 루프 라이닝, 선바이저, 천장 조명 등에 그레인 가죽 소재와 천연섬유인 멀버리 실크 인서트 등이 적용돼 독특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시트에 적용된 전용의 패턴이 인상적이다.

이 시트는 운전자에게 우수한 착좌감을 선사한다. 마세라티는 조립품질 등과 같은 측면에서 여타 완성차 브랜드에 부족한 점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시트의 질감만큼은 최상급이라고 본다. 특히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전용 소재가 적용된 기블리 그란루소의 시트는 더욱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탑승자의 신체를 탄탄하게 지지해주어 장시간의 주행에도 피로감이 덜하다. 시트는 전동조절 기능과 더불어 4방향 전동식 요추받침, 그리고 좌우 양쪽에 2단계의 열선/통풍 기능이 적용된다.

뒷좌석의 경우에는 등받이의 각도가 다소 서 있는 편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착좌감 자체는 좋은 편이다. 물론 체급 대비해서 내부 공간은 다소 좁은 편에 속하는데, 이는 프론트가 상당히 긴 기블리 특유의 디자인 때문이라고 본다. 전반적으로 정통파 세단이라기 보다는 4도어 쿠페쪽에 더 가까운 수준의 거주성을 갖는다. 좌석은 좌우 양쪽에 각 2단계의 열선기능과 전동식 후방 선 셰이드 등의 편의장비를 제공한다.

기블리 하이브리드 모델은 기존 내연기관 버전과 동일한 500리터의 트렁크 용량을 제공한다. 이는 후술하겠지만 기블리 하이브리드에 적용된 방식 덕택인 점도 있다. 트렁크룸 하단에는 중량 배분을 위해 배터리가 수납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블리 하이브리드는 파워트레인 면에서는 기존의 마세라티 차종들과는 크게 다른 점이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마세라티 차종은 디젤 모델을 제외하면, 모두 페라리에서 공급하는 엔진을 탑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블리 하이브리드, 그리고 같은 파워트레인을 사용하는 르반떼 하이브리드에 탑재되는 엔진은 페라리에서 공급하는 엔진이 아닌, 구 FCA(現 스텔란티스 그룹)의 글로벌 중형 엔진(FCA Global Medium Engine)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펫네임 '허리케인'으로도 불리는 이 엔진은 마세라티 뿐만 아니라, 스텔란티스 그룹의 중형, 혹은 그 이상 급의 차종들이 사용하고 있다. 현재 마세라티 브랜드를 제외하고 스텔란티스 그룹 내에서 이 엔진을 사용하고 있는 차종으로는 지프 랭글러 및 체로키, 알파로메오 줄리아 및 스텔비오 등이 있다. 이 엔진은 직렬 4기통 레이아웃에, 총배기량 1,995cc의 2.0리터급 엔진이며, 보어(실린더 내경) 84mm, 스트로크(행정 길이)90mm의 세미 스퀘어에 가까운 실린더를 갖는다. 여기에 가솔린 직분사 기구와 더불어 모노 스크롤 터보차저가 적용되어 있다.

하지만 이 차에 탑재된 엔진은 상기한 차량들에 적용된 것들을 한참 뛰어 넘는 스펙을 자랑한다. 상기한 차종들의 경우 대체로 200~280마력 정도의 최고출력을 갖는다. 헌데 마세라티에 적용된 파워트레인은 마세라티 차종을 위해 세팅된, 48V 전장계 기반의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 e부스터(eBooster)까지 적용되어 최고출력만 330마력/5,750rpm, 최대토크는 45.9kg.m/2,250rpm에 달하는 성능을 자랑한다. 심지어 1,500rpm의 극저회전에서부터 최대토크의 80%에 해당하는 35.7kg.m가 나오고 1750rpm에서부터 90%에 해당하는 41.8kg.m의 토크가 뿜어져 나온다. 변속기는 ZF의 8단 자동변속기를 사용하며, 구동방식은 후륜구동이다.

그렇다면 먼저 가속력부터 살펴보자. 제원 상 마세라티 기블리 하이브리드는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단 5.7초 만에 가속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기자는 이 차를 시승하기 전에 몇 가지 걱정되는 것들이 있었다. 바로 동급에 해당하는 여타 E세그먼트 세단들에 비해 가장 무거운 축에 속하는 몸무게였다. 기블리 하이브리드의 공차중량은 2,030kg에 달하는데, 이는 동급에 해당하는 E세그먼트 모델들이 대체로 1,800~1,900kg대의 공차중량을 갖는 것과 비교하면 한참 무거운 것이다. 심지어 디젤 모델이 가솔린 모델 대비 훨씬 가벼운, 역설을 보여주는 차가 바로 기블리였다. 

하지만 탁 트인 직선 구간에서 가속페달에 작정하고 힘을 주기 시작하니, 위와 같은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극저회전 영역에서부터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강력한 토크가 힘차게 차를 밀어 붙여주는 덕분이다. 마치 무거운 돌덩어리가 강력한 투석기에 의해 힘차게 던져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체감 상으로는 3.0 V6 SQ 4보다도 더 기분좋은 가속감이며, 의외로 훌륭한 느낌을 주었었던 디젤 모델도 한층 뛰어 넘는 감각이다.

그런데 이렇게 극초반에 토크가 몽땅 몰려있는 세팅임에도, 의외로 뒷심이 부족하지 않다. 330마력의 최고 출력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 생각보다 빠르게 오는 덕에 지치지 않고 속도를 올려주는 느낌이 아주 인상적이다. 제법 오래된 기반설계를 가진 차량임에도 뛰어난 직진 안정성 역시 일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2.0리터급 엔진을 사용한 차라고 하기에는 여러모로 예상을 뛰어 넘는 가속성능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다.

하지만 이 쯤에서 한 가지 치명적인 아쉬움이 드러난다. 바로 '배기음'이다. 마세라티하면 어떤 사람들인가? 바로 배기음에 "진심 그 자체"인 사람들 아니던가. 자동차 배기음 하나 세팅하는데, 음악가들까지 불러 모으는 것은 물론, 구조적인 한계로 자연흡기 엔진보다 좋은 배기음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터보 엔진들마저 소름끼치는 사운드를 연출해내지 않았던가. 물론 마세라티의 배기음 덕질(?)은 이 엔진에도 예외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차의 엔진에서는 다른 마세라티 차종들에서 느껴졌었던, 그 원초적이고 자극적이며, 도발적이기까지 한 그 풍미를 느낄 수가 없다. 물론 브랜드에 대한 선입견 없이, 엔진 사운드 하나만 가지고 보면 충분히 훌륭한 감성이긴 하다. 나지막하고 중후하니 상당히 절제된 느낌이다. 그저 마세라티가 이토록 절제되고 신사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어색할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정신없이 내달리는 와중에도 진중한 음색으로 일관하던 엔진은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즉, 일상에서 상시 사용하게 되는 저회전 영역에서는 지금까지 경험한 마세라티 차량들 중 가장 뛰어난 정숙성을 발휘한다. "마세라티는 고급 차종일수록 차가 시끄러워진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물론, 직접적인 경쟁상대에 해당하는 여타 고급 E세그먼트 세단들 대비해서는 무난한 정도에 그치지만 마세라티에서 이 정도로 쾌적한 느낌을 안겨주는 차는 기블리 하이브리드가 처음이다. 게다가 이전과는 달리, 실내의 내장재들이 서로 맞지 않아 찌그덕 거리는 잡음도 상당히 줄었다.

이 쾌적함에는 묵직한 몸무게와 든든한 하체, 그리고 실로 절묘한 서스펜션 세팅도 큰 몫을 한다. 기블리 하이브리드의 승차감은 오랫동안 그란투리스모(Gran Turismo, Grand Tourer, GT)를 만들어 왔던 마세라티의 노하우가 반영된, 스카이훅(Skyhook) 서스펜션이 적용되어 일상에서는 부드러운 승차감을 제공한다. 그러면서도 묵직하고도 돌덩이처럼 단단한 차체가 주는 안정감 덕분에 차체가 조금도 나약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전자제어식 서스펜션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독일식 고급세단들이 보여주는 세련미와는 차이가 있는, 대단히 아날로그적인 감각이 묻어난다. 이 부분은 정숙성과 더불어, 기블리 하이브리드를 시승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 중 하나다.

코너링에서도 이런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짙게 묻어난다. 특히 파워스티어링 시스템의 경우에는 사전 정보가 없는 경우라면 기존에 사용했던 전동-유압식(유압펌프는 모터로 작동) 파워스티어링 시스템과 차이를 거의 느끼기가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세팅을 보여준다. 물론 기블리는 다른 E세그먼트급 세단들에 비해 훨신 무거운 몸무게를 지녔고, 그에 따라 코너링에서도 조금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마치 적당히 무뎌서 다루기 편한 부엌칼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조작감을 선사하며, 덩치에 비해 차량과 운전자의 일체감도 의외로 좋은편이다. 따라서 먼저 언급한 쾌적한 운행환경에 더해, 아날로그식 감각이 적절히 버무려져 있는 기블리 하이브리드는 장거리를 장시간 주행하면서, 차와 교감을 나누는 듯한 느낌을 굉장히 오랜만에 경험할 수 있었다.

마세라티 기블리는 상당히 오랜 기간 생산된 차량이지만 근래 들어 그 중요도가 매우 높아진 능동안전장비도 갖추고 있다. 차량을 차선 중앙으로 유지하고 사전 설정 속도로 조절하는 등 운전자의 피로를 완화하는 능동형 드라이빙 어시스트, 조향 시스템의 입력을 바탕으로 차량이 차선을 벗어나지 않도록 유지하는 차선 유지 어시스트(LKA), 능동형 사각지대 어시스트 (ABSA),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전방 충돌 경고(FCW), 어드밴스드 브레이크 어시스트 (ABA),  등,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 (AEB), 여러 장비들을 갖추고 있다. 상품적인 측면에서 적어도 경쟁차종에 대항할 수 있을 만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비록 시승차량에는 위의 항목 중 일부가 빠져 있었지만, 2022년형으로 판매되는 신차들부터는 모두 위와 같은 사항이 기본으로 적용된다.

이번에 시승하게 된 마세라티 기블리 하이브리드는 그들이 걸어 왔던 길과는 다른 방향을 지니고 있는 차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마세라티 고유의 스타일링과 더불어, 다소 옛 것의 느낌이 묻어나기는 하지만 최고급 소재로 마무리된 호사스러운 인테리어, 그리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남아 있는 주행질감 등은 그들이 걸어왔던 길에서 한 치의 벗어남이 없다.

그러나 심장부만큼은 사상 유례없는 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는 작금의 실정에 맞춰 그들의 전통과 전혀 다른 노선을 선택했다. 물론 그 방식은 대단히 온건한 방식이다. 그렇지만 전례 없었던 4기통 마세라티의 등장은 마세라티의 코어 팬층에게는 사도로 여겨질 수 있음에도, 시장성의 측면에 있어서 마세라티 브랜드에 대한 접근성을 상당히 높여주면서도 날로 가혹해져만 가고 있는 배출가스 규제에도 대응할 수 있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마세라티 브랜드를 원하기는 하지만, 그 특유의 강렬한 매운 맛 때문에 쉬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이들에게 있어서, 기블리 하이브리드는 좋은 대안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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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 2022-02-09 17:37:15
이쁜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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