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으로 현재 시판되고 있는 전기차는 별도의 충전소를 통해 전력을 공급받아야 한다. 물론 주행거리연장형 전기차와 같이, 차량이 스스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전기차는 충전소가 필요하며, 조금이라도 더 빠른 시간에 충전을 하려면 별도의 규격을 사용하는 전용 충전소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만약 전기차를 운행하다가 전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면? 심지어 주변에 충전소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실로 절망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전기차의 충전과 주행거리에 대한 걱정(Range anxiety)은 전기차를 구매하고 운용하는 데 있어서, 내연기관 자동차를 운행해 왔던 소비자들이 전기차로 전환할 때 가장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양산형 전기차들의 가장 큰 과제가 바로 넉넉한 주행거리의 확보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 시장에서는 이 주행거리 확보에 경쟁이 붙으면서, 마치 오일쇼크 이래로 벌어진 연비경쟁을 방불케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에 '지나가던' 전기차가 내 차를 충전해줄 수 있다면 어떨까? 만약 이것이 실현 가능하다면, 적어도 다른 운전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여지'라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을 어느 정도 덜어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국토가 어마어마하게 넓은 미국 같은 곳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렇게 지나가는 전기차가 내 차를 충전하거나, 혹은 내 차로 곤경에 처한 전기차 운전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차량 對 차량 간(Vehicle-To-Vehicle)' 충전 솔루션이 미국 시장에서 발표되어 화제다. 이 솔루션을 상용화한 주체는 올해 초 순수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Lighting)을 발표한 미국 포드자동차(이하 포드)다.
포드는 현재 자사가 판매 중에 있는 풀사이즈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과 풀사이즈 하이브리드 픽업트럭인 'F-150 파워부스트 하이브리드'의 2022년형 모델에 차량 대 차량간 충전 솔루션, '프로 파워 온보드(Pro Power Onboard)'를 상용화한다고 밝혔다.
이 차량들에 적용된 프로 파워 온보드는 포드 전기차 전용의 충전 시스템으로, 전용의 240V 콘센트를 사용하여 자차의 전기를 다른 전기차에 빠른 속도로 공급해줄 수 있다. 9.6kW, 혹은 7.2kW의 두 가지 출력 사양을 갖는 포드 프로 파워 온보드는 SAE J1772 규격을 만족하는 다양한 순수 전기차에 자차의 전력을 공급 가능하며, 포드 차량의 경우에는 전용의 충전 규격을 사용하게 되면서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 이 솔루션의 전용 충전 규격을 이용해 고속 충전이 가능한 포드 차량으로는 동형의 차량은 물론, 고성능 전기차 머스탱 마하-E, 심지어 전기 상용차인 E-트랜짓도 사용이 가능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프로 파워 온보드가 적용된 2022년형 포드 F-150 라이트닝과 F-150 파워부스트 하이브리드는 가정에서도 활용 가능하다. 즉, 가정에서 예기치 못한 정전이 발생했을 때, 일종의 '비상 전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교외에 위치하는 미국의 일반적인 가정 주택의 경우에는 상당수가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 별도의 발전기는 물론, 심지어 가정용으로 만들어진 저용량의 UPS(Uninterruptible Power Supply, 무정전 전원 장치)까지 갖추는 경우도 있다. 포드 측은 만약 상기한 발전기와 UPS가 갖춰져 있는 경우, F-150 라이트닝과 파워부스트 하이브리드는 가정에서 약 3일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포드의 e-파워트레인 시스템 엔지니어인 패트릭 소더보그(Patrick Soderborg)는 "전동화를 통해서만 가능해진 특성과 기능을 통해 새로운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가 아주 많다"며, "지난 2월, 수백만 명이 추위에 시달려야만 했던 텍사스 정전 사태 당시, 프로 파워 온보드가 적용된 F-150 하이브리드를 시험 운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을 도울 수 있었으며, 나아가 더 많은 일을 F-150 라이트닝과 함께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