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기아자동차 머큐리 세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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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차]기아자동차 머큐리 세이블
  • 모토야
  • 승인 2020.08.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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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당시 기아산업)는 1970년대, 고급 승용차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프랑스의 푸조로부터 푸조 604의 라이센스를 획득, 자사의 고급 세단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비싼 가격과 1978년 말에 터진 오일쇼크로 인해 관용차 수요까지 날아가는 바람에 상업적으로 처절한 실패를 맛봐야만 했다. 여기에 1980년대 신군부 세력이 저지른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라는 폭거로 인해 승용차 생산까지 막히는 바람에 기아자동차의 승용차 역사가 끊기고 만다.

하지만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진행되고 있을 시기에도, 기아자동차는 다시금 승용차 생산을 재개하기 위해 여러 활로를 모색하고 있었고, 그러던 와중에 손을 잡게 된 곳이 바로 한 때 현대자동차의 스승이기도 했던 미국의 포드자동차다. 기아자동차는 포드자동차와의 협업을 통해, 세계적인 히트작 하나를 생산해 냈다. 그 차가 바로 프라이드(Pride, 포드 페스티바)였다. 자동차공업통합조치가 해제된 이래 처음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승용차 프라이드는 전세계적으로 높은 판매고를 올렸음은 물론, 국내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 기아자동차가 종합자동차제조사로서 재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당시 프라이드를 성공적으로 생산하고 있었던 기아자동차의 활약상을 지켜 본 포드자동차는 기아자동차에 자사의 자동차를 생산해서 한국 시장에서 판매할 것을 요청했다. 당시 기아차는 연 10만대 가량의 프라이드 차량을 판매하고 있었지만, 포드자동차의 양산차는 국내서 전혀 판매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아자동차는 포드자동차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한 편, 푸조 604의 실패 이래로, 고급 승용차가 전무했기 때문에 포드의 고급 차량을 라이센스 생산하여 자국에 판매하기로 했다. 이 차가 바로 '머큐리 세이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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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세이블(Mercury Sable)'은 포드자동차가 거느리고 있었던 브랜드들 중 하나인 '머큐리(Mercury)' 브랜드의 차량이다. 머큐리 마퀴스(Marquis)를 대체하기 위한 중형급 세단/에스테이트로 설계된 이 차는 미국 시장에서 포드 토러스의 고급화 버전으로 통하는 모델이었으며, 미래지향적인 외관 및 실내 디자인과 준수한 품질 및 성능으로 인기를 얻고 있었던 모델이다. 기아자동차는 1986년도부터 이 차를 OEM 방식으로 생산하여 국내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머큐리 세이블의 외관 디자인은 1세대와 2세대 모델 간의 차이가 거의 없다. 사실 상 페이스리프트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2세대를 모두 관통하는 공통의 요소는 역시, 라디에이터 그릴 자리를 꿰어 찬, 기다란 라이트 바(Light Bar)다. 특히 전통적인 중형급 이상의 세단은 화려하게 치장된 라디에이터 그릴이 상식이었던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세이블의 라이트 바는 가히 충격적인 디자인이었다.

이 라이트 바는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머큐리 세이블 고유의 시그니처 스타일로, 미래지향적인 감각을 유감없이 뽐냈다. 또한 당대의 국산 중~대형차들에 비해 한층 넓은 1,798mm의 차폭을 더욱 두드러지게 강조되도록 했다. 오늘날 자동차 제조사들이 너도나도 올라 탄 '수평기조'에 지극히 충실한 디자인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차체는 전반적으로 공기역학적인 측면을 최대한으로 고려한 에어로다이내믹 스타일을 강조했다. 날렵하게 뻗은 차체와 완만한 경사도의 전면부, 매끄럽게 연결되는 루프 디자인, 그리고 플로팅 루프 스타일을 연출하는 C필러에 이르기까지, 스포티한 멋으로 가득했다. 여기에 한층 넓어보이는 차폭과 4,882mm에 달하는 차체는 당대 중형급 세단을 초월해, 대형차의 영역에 있었던 수준이었다. 아울러 기아자동차의 플래그십 역할을 해야 했던 탓에, 트렁크리드 하단에 조그맣게 기아산업의 굴뚝 엠블럼을 붙여 넣었다.

실내 디자인도 상당히 진보적인 구성을 띄었다. 내부 공간도 넉넉할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급 세단의 상징처럼 통했던 디지털 계기반과 어불어 다양한 전자장비가 탑재되었으며, 스티어링 휠 리모컨 기능까지 충실하게 적용되는 등, 고급 자동차로 어필할 만한 요소를 만재하고 있었다. 여기에 ABS, 운전석 에어백 등, 당대 최신의 안전사양까지 다양하게 구비하여 고급 승용차 소비층에 어필했다.

미국에서 판매된 머큐리 세이블은 총 3종의 가솔린 엔진과 2종의 자동변속기를 사용했다. 그 중 기아자동차 생산분에 탑재된 엔진은 3.0리터 벌칸(Vulcan) V6 엔진으로, 140마력의 최고출력과 22.1kg.m의 최대토크를 냈다. 변속기는 4단 자동변속기를 사용했다.

머큐리 세이블은 1989년 10월, 국내 자동차 시장에 '3000cc 퍼스트 클라스 세단'이라는 홍보 문구와 함께 전격 공개되었다. 출시 당시 가격은 2,990만원으로, 현대자동차의 그랜저 3.0 모델의 2,890만원과 고작 100만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세이블은 단 3개월 동안, 493대가 판매되었고, 이듬해인 1990년도에는 1,579대를 팔아 치우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1987년 고작 11대, 1988년도에는 318대에 불과했던 당시 수입차 시장의 규모를 생각하면 거의 1년 3개월 만에 수 년치 판매량을 홀로 독식한 것과 다름 없었다. 

게다가 이 당시는 수입차에 대한 시선이 상당히 나빴다. 이른 바 '외제차'라는 경멸섞인 말로 부르는 것은 예사요, 운송수단이 아닌, '사치품' 그 자체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 정부와 언론이 주도한 사치품 배격 풍조로 인한 것으로, 수입차 구매자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은 물론, 세무조사까지 각오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세이블은 기아자동차에서 직접 생산해서 판매하는 차량이므로, 국산차에 근접한 가격에 기아자동차의 서비스 네트워크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 '먹혀 든' 것이다. 

머큐리 세이블은 1991년, 미국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다음에도 기아자동차에서 생산이 이어졌다. 세이블의 독특한 디자인과 국산차에 근접할 정도로 낮은 가격, 기아자동차 서비스 망을 이용할 수 있다는 메리트는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세이블의 판매량은 계속 올라갔다. 기아자동차에서 생산한 머큐리 세이블은 2세대 모델이 단종되는 1995년까지 계속 생산이 이루어졌으며 당대 국내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수입자동차의 사례로 남았다. 그리고 세이블이 단종되고 난 이후의 빈 자리는 신형 후륜구동 고급 세단, '포텐샤'가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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