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로엥이 만든, 단순하고 우직한 일꾼 - 시트로엥 메하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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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로엥이 만든, 단순하고 우직한 일꾼 - 시트로엥 메하리 이야기
  • 박병하
  • 승인 2020.04.2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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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SUV에 약하다는 이미지가 있다. 실제로도 르노, 푸조, 시트로엥 등, 프랑스계 제조사들은 영국은 물론, 독일, 심지어 일본계에 비해서도 SUV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시기가 다소 늦은 편이다. 물론 지금에야 유럽과 동구권 시장 등을 필두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제품군도 매우 다양해지긴 했지만, 크로스오버의 붐이 일기 시작했던 1990년대만 해도 MPV쪽에 훨씬 더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 프랑스의 자동차 업계였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도 상당히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구성의 사륜구동 오프로더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차는 1980년대까지 근 20년간 장수했다. 심플하고 터프한 정통파 오프로더 메하리(Méhari)가 바로 그것이다. 시트로엥 메하리는 프랑스의 시트로엥이 생산했던 매우 단순한 구성을 자랑하는 오프로더 자동차다. 차명인 메하리(Méhari)는 수 천년 전부터 사하라 사막 일대에서 가축으로 사용되어 왔던 단봉낙타(Dromedary)를 의미한다고 한다. 단봉낙타는 사하라의 모래사막에서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척박한 곳을 달려야 하는 오프로더에게 있어서 상당히 어울리는 작명이다. 프랑스어 원어로는 '메아히'에 더 가깝지만, 국내서는 '메하리'라는 표기가 쓰이고 있다.

시트로엥 메하리는 1968년에 처음 등장했다. 이 차는 본래 시트로엥이 주도적으로 개발한 차종은 아니었다. 이 차를 개발한 주체는 이전부터 시트로엥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었던 SEAP(Société d'Etudes et d'Applications des Plastiques)라는 이름의 회사에서 설계한 차량이다. 이 회사는 단순히 시트로엥의 벤더사가 아닌, 프랑스의 플라스틱 산업 전반을 크게 성장시킨 기업으로 꼽힌다. SEAP는 부품 공급과 더불어 메하리의 기본 개념을 미리 설계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메하리의 외관 디자인은 당시에나 지금이나 상당히 독특한 느낌을 준다. 특히 일반적인 자동차와는 전혀 다른 형형색색의 색상과 더불어 이 색상이 차체 외판 뿐만 아니라 내측의 운전실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기본적인 외관 디자인조차 일반적인 자동차들과는 다르다. 차량의 곳곳에 새겨져 있는 돌기들과 트럭 등, 짐 싣는 차의 레일처럼 우둘두둘한 패턴이 새겨진 측면 역시 다른 자동차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감각을 선사한다. 전/후면의 디자인에서는 원형을 사용한 등화류 일부를 제외하면 몽땅 직선적이면서도 입체적인 조형으로 채워 넣었다. 전면 윈드스크린은 평면유리를 사용했다. 차체 외장 색상은 총 8가지가 존재했다.

또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지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전복 사고를 대비한 롤-오버 바 같은 구조물조차 없었다. 게다가 기본 사양에는 지붕은 커녕 도어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이 상태 그대로 판매한 것은 아니었고, 선택사양의 형태로 탈착식 캔버스제 소프트톱, 차체와 동일한 색상과 소재의 도어를 장착 가능했다. 또한 군용으로 사용된 일부 모델에는 파이버글라스제 지붕이 장착되기도 했다. 시트로엥 메하리의 크기는 길이 3,520mm, 폭 1,530mm, 높이 1,640mm로 오늘날 국내 경차 수준의 크기를 가졌다.

메하리의 운전실 공간은 차체와 동일한 소재 및 색상의 일체형 패널이 특징이다. 운전석에는 시트로엥 2CV의 조종계통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고, 여기에 정말로 기본적인 계기류(속도계, 유류계 등)만 제공하는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형태였다. 자동차의 운전석이라기보다는 보트의 조종석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또한 기본적으로 개방형에 가까운 차량이었으므로, 에어컨 같은 무겁고 사치스러운 물건 따윈 없었다. 심지어 메하리에는 안전벨트조차 없었다.

시트로엥 메하리의 이 독특한 디자인은 이 차의 차체(Body)에 사용된 소재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차의 차체는 ABS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ABS 플라스틱은 아크릴로니트릴(Acrylonitrile), 부타디엔(Butadiene), 그리고 스타이렌(Styrene)을 주원료로 하는 플라스틱으로, 통상의 플라스틱에 비해 내충격성과 내열성이 강해, 이전부터 자동차의 내외장재에 사용되어 왔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소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엔진과 섀시는 금속제다. 엔진과 섀시는 시트로엥의 베스트셀러, 2CV의 것을 소폭 개량한 것으로 디안 6(Dyane 6)에 사용된 28~33마력짜리 602cc 수평대향 2기통 엔진과 프레임 구조를 활용했다. 플라스틱의 대량 사용과 더불어 가벼운 2CV의 기골과 엔진을 활용하여 완성된 메하리의 몸무게는 고작 535kg에 불과했다. 메하리는 2CV의 섀시와 구동계를 활용했으므로 기본적으로 전륜구동을 사용한다.

이 차에서 유일하게 호사스러운 부분은 바로 4륜 독립식 서스펜션이다. 1979년에 추가된 사륜구동(4X4) 모델의 경우, 독립식 서스펜션 및 깃털같이 가벼운 몸무게 더불어 오프로드 주행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었다. 이 차의 사륜구동 시스템은 차축 하나 당 엔진을 하나씩 얹었던 시트로엥 2CV 사하라 4X4와는 달리, 하나의 엔진으로 네 바퀴를 모두 구동하는, 보다 진보된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사륜구동 방식의 메하리는 기본형 메하리에 비해 가격이 크게 올라버리는 바람에 20여년간 생산된 약 14만대 중에서 고작 1,200여대만 팔려 나갔다고 한다.

시트로엥 메하리는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구조를 통해 저렴하고도 실용적인 '운송수단'으로서의 가치에 충실한 차였다. 이 차의 기본 개념은 플라스틱을 대량으로 사용하여 만들어진 '초경량 트럭'에 아주 가까웠는데, 메하리는 차량의 내/외장재가 몽땅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덕분에 유지보수 면에서 뛰어난 편의성을 제공했다. 방수성이 뛰어난 ABS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차체는 물과 걸레 정도만 있으면 간단하게 청소할 수 있었고, 자잘한 흠집 정도는 얼마든지 눈감아 줄 수 있을 정도였다. 또한 플라스틱 차체 덕분에 부식에 대한 염려가 훨씬 적었다. 그야말로 "막 굴리기" 딱 좋은 자동차였던 것이다.

이 덕분에 시트로엥 메하리는 프랑스의 농촌은 물론, 해풍으로 인해 차량에 녹이 발생하기 쉬운 해안지역에서도 작업용 차량으로 사랑받았다. 심지어 이 차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남프랑스 일대의 리조트에서도 사용되었다.

메하리는 단순하고 신뢰성 높은 구조설계 덕분에 프랑스군의 기동차량으로도 사용되었다. 프랑스군은 1972년, 약 7천 여대의 메하리를 주문했다. 이는 2차대전 이후 호치키스에서 라이센스 생산해 사용했던 구식 지프들을 조기 퇴역시키는 과정에서 차세대 기동 차량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프랑스판 G-바겐, 푸조 P4의 도입 사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었다. 프랑스군에서 주문한 군용의 메하리는 2륜구동 버전으로, 군에서 사용하는 무전기 등의 전자장비를 이용하기 위한 24V 전장시스템과 히터 등이 적용되었다. 

메하리는 해외에 수출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시장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메하리의 정체성인 플라스틱 차체 대신, 강철 차체를 적용하는 경우도 있었고, 일부 국가에서는 아예 지붕과 창까지 갖춘 버전으로 만들어져 판매되기도 했다. 일례로 아르헨티나에 수출된 메하리의 경우에는 파이버글라스 차체와 도어, 지붕을 갖춘 이 메하리는 전량 우루과이에서 생산되었으며, '메하리 레인저'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시트로엥 메하리는 출시 조기에는 연 1만대에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하며, 시트로엥의 새로운 효자 차종으로 꼽혔다.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모델 노후화가 심화되면서 판매량은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프랑스 내수시장에서는 적게나마 꾸준하게 수요가 있었기에 1988년까지 생산이 이어졌다. 시트로엥 메하리는 프랑스의 영화, 드라마, 시트로엥 메하리는 단종된 지 30년이 지난 2018년, 100% 순수 전기로 구동되는 초미니 4륜구동 자동차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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