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현대 티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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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차]현대 티뷰론
  • 모토야
  • 승인 2020.04.1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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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카는 예나 지금이나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로망'으로 통한다. 그 중에서도 고가의 정통 유럽산 스포츠카는 화려하고 멋들어진 외관과 출중한 성능, 그리고 희소성으로 인해 지금도 선망의 대상으로 통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통 스포츠카들은 일반인이 접근하기는 커녕,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토록 높은 현실의 장벽 때문에 대다수의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정통 스포츠카는 그저 가슴 속 한 켠의 '로망'으로만 남게 된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의 자동차 시장에는 보다 부담없는 가격으로 접근할 수 있는 스포츠카들이 존재했다. 이들을 두고 자동차 업계에서는 '스페셜티카(Specialty Car)'로 분류했다. 스페셜티카는 기성 승용차의 섀시를 바탕으로 개발된 쿠페형 승용차를 말한다. 스페셜티카는 비록 성능 면에서는 스포츠카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외관 만큼은 스포츠카에 가까운 과감한 스타일링을 적용하여 보다 부담없이 스포츠카를 운행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스페셜티카는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무늬만 스포츠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접근성의 측면에서는 월등히 높아,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한 마디로 "대중의 스포츠카"인 셈이다. 스페셜티카는 정통 스포츠카 대비 월등히 높은 접근성으로 인해 모터스포츠의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우리나라의 스페셜티카의 역사는 1990년, 현대자동차가 내놓은 스쿠프(Scoupe)가 시작이다. 그리고 스쿠프의 후속 차종으로서 출시된 신형의 스페셜티카는 스쿠프에 이어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통했으며, 국내 모터스포츠 역사에도 크게 공헌한 이 차의 이름은 바로 '티뷰론(Tiburon)'이다.

대한민국 스페셜티카 시장의 중흥을 이끌다
현대자동차 티뷰론은 스쿠프의 후속 차종으로 등장한 스페셜티카 모델이다. 현대자동차는 1992년, 프로젝트명 'RD'로 개발되기 시작해 4년여 동안 총 1,200억원의 비용을 투입하여 완성, 1996년에 정식 출시했다. 기반 설계는 1995년 출시한 초대 아반떼(J2)의 설계를 기반으로 개발되었으며, 차명인 티뷰론(Tiburon)은 스페인어로 '상어'를 의미한다.

티뷰론의 외관 디자인은 현대자동차의 캘리포니아 디자인센터에서 빚어낸 컨셉트카인 HCD-I과 HCD-II를 바탕으로 했다.HCD-I은 인체의 근육을 자동차의 형태에 투영함으로써 만들어진 역동적인 굴곡과 더불어 타르가탑 형태의 지붕 구조 등이 특징적이며, HCD-II는 보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쿠페형 차체가 특징이다. 이 두 가지 컨셉트카가 가진 과감하고 전진적인 조형은 티뷰론의 외관에 거의 그대로 반영되었다.

티뷰론의 외관 디자인은 "정중동(靜中動)"과 "동중정(動中靜)"의 두 가지 테마가 공존한다. 정중동은 "멈춰 있는 동안에도 움직이는 것 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동중정은 "움직이고 있을 때에도 자연스럽게 보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티뷰론의 개발 당시, 디자이너들은 총 2만 장이 넘는 스케치 끝에, 1년여의 토론과 합의를 거쳐, 티뷰론의 디자인을 최종 결정했다. 

이렇게 완성된 티뷰론의 외관은 당대 국산 차종 중 단연 돋보였다. 두 컨셉트카의 디자인 요소를 양산차에 충실히 반영한 덕분에 날렵하면서도 볼륨감 넘치는 차체 형상을 자랑했다. 티뷰론은 등장하자마자 그 역동적인 외관으로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았으며, 해외에서도 호평이 많았다. 여기에 국내 최초로 시도된 프레임리스(Frameless) 도어 윈도우가 적용되어 한층 깔끔하고도 선진적인 느낌을 주었다. 또한, 소형차를 기반으로 개발된 스쿠프에 비해서 체적도 한층 커졌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철저하게 운전자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구조가 돋보인다. 계기반과 센터페시아를 하나로 잇는 한 편, 극단적인 랩 어라운드형 실내 구조를 취함으로써 스포츠카의 역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했다. 이는 통상적인 승용차의 대시보드 구조를 그대로 가져왔던 선대 스쿠프와 크게 다른 점이었다. 좌석 구조는 전형적인 2+2 좌석 배치를 취했다. 

티뷰론은 아반떼를 설계 기반으로 삼게 되면서 선대인 스쿠프에 비해 체급이 한 단계 더 커졌다. 스쿠프는 소형차인 엑셀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던 차종이었기 때문이다. 티뷰론은 기본 1.8리터 엔진을 사용하는 중형급 쿠페로 만들어졌다. 엔진은 알파 엔진에 이어, 현대자동차가 독자개발한 두 번째 엔진인 '베타' 엔진을 처음으로 채용했다. 베타 엔진은 미쓰비시 시리우스 엔진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현대자동차의 독자개발 중배기량 엔진으로, 직렬 4기통 레이아웃에 실린더 당 4밸브의 DOHC 밸브트레인과 다점연료분사(Multi Point Injection, MPI)방식을 사용한다. 실린더헤드는 알루미늄 합금, 블록은 주철로 만들어졌다.

티뷰론에 실린 베타 엔진은 1.8리터 사양과 2.0리터 사양이 모두 적용되었다. 1.8리터 사양은 최고출력 133마력/6,000rpm, 최대토크 17.1kg.m/4,200rpm을 낼 수 있었으며, 2.0리터 베타 엔진은 150마력/6,000rpm의 최고출력과 19.0kg.m/4,500rpm의 최대토크를 낼 수 있었다. 베타 엔진은 주철 블록을 사용하는 데다, 엔진의 열변형에 대비해 설계 마진을 고의적으로 넉넉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후술할 튜닝에서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베타 엔진은 기본적으로 무겁고 기본 설계 상 낭비요소가 크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후속 모델인 투스카니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변속기는 4단 자동변속기와 5단 수동변속기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섀시 면에서는 차체 강성을 더욱 강화하는 한 편, 국산차 최초로 포르쉐와 공동개발한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을 적용했다. 강화된 섀시와 신규개발된 서스펜션은 승차감과 조종성능 면에서 일반 승용차와 차별화된 질감을 제공했다. 이는 엑셀의 섀시를 거의 그대로 활용했던 스쿠프와는 크게 다른 점이었다. 가격 또한 1.8리터 기본형 1,210만원, 2.0리터 엔진을 탑재한 SRX 모델은 1,350만원에 판매되었다. SRX 모델의 가격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기아 엘란의 반 값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티뷰론은 1996년 4월 출시 직후부터 시장에서 큰 주목을 끌었다. 티뷰론은 출시 후 단 5일 만에 1,700대의 수주량을 올렸다. 이는 당초 예상했던 월간 판매량 1,500대를 가뿐히 뛰어 넘은 것이었다. 이 때문에 현대자동차는 티뷰론의 생산 대수를 월 2,000대로 상향 조정했으며, 동년 10월까지 9,260대를 팔아 치웠다. 티뷰론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으며, 1996년 한 해 동안 18,600대가 수출길에 올랐다. 

티뷰론은 데뷔 당시부터 많은 관심과 더불어 기아 엘란과의 비교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티뷰론은 분명히 정통 스포츠카로 볼 수 없는 차량이지만, 현대자동차는 이를 '정통 스포츠카'로 홍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스쿠프와 티뷰론, 투스카니를 모두 '스포츠카'로 홍보하고 있다. 게다가 미디어에서도 수입 스포츠카와의 비교를 하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내는 등, 티뷰론을 꽤나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례로 당시 모 잡지에서는 후륜구동 스포츠카인 포르쉐 944와의 비교 시승기사도 올라 왔을 정도다.

반면, 티뷰론을 스포츠카로 인정하지 않는 쪽에서는 스쿠프와 같은 "스포츠루킹카", 즉, "무늬만 스포츠카"로 취급했다. 당시 티뷰론은 기아자동차가 생산하고 있었던 엘란(ELAN)과도 자주 비교되었다. 기아 엘란은 비록 엔진은 기아자동차의 것을 사용했고 구동방식도 티뷰론과 같은 전륜구동이었지만, 백본 프레임으로 구성된 차체구조와 파이버글라스를 듬뿍 사용한 초경량 차체로 뛰어난 코너링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정통 영국식 경량 스포츠카였다. 일반 승용차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티뷰론과는 태생 자체가 달랐다. 티뷰론으로부터 시작된 '정통 스포츠카' 논란은 후속 차종인 투스카니까지 이어지다가 정통 후륜구동 스포츠쿠페인 제네시스 쿠페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종지부를 찍게 된다.

티뷰론의 성공적인 론칭에 자신감을 얻은 현대자동차는 1997년 12월, 현대자동차의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티뷰론 스페셜'을 출시했다. 이 차량은 루프와 쿼터패널을 제외한 차체 외부 패널을 알루미늄 합금을 적용하여 일반형의 1,160kg에서 25kg의 몸무게를 덜어내고 엔진출력을 154마력까지 높였다. 또한 이탈리아 모모(Momo)사의 알로이 휠과 스포츠 스티어링 휠 및 기어노브를 적용하고 독일 작스(SACHS)의 가스식 쇼크업소버, 그리고 차체 중앙에 두 줄의 스트라이프를 적용하여 스포츠카로서의 멋과 성능을 강조했다. 이 특별한 티뷰론은 총 500대가 한정판매되었다.

티뷰론은 스쿠프가 그러하였듯이, 국내 모터스포츠 저변을 확대하는 주역으로도 활약했다. 특히 양산차를 기반으로 하는 경주차의 베이스차량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한 때 국내 모터스포츠 무대를 달리던 경주차의 7~8할 이상이 티뷰론이었을 정도다. 심지어 티뷰론이 국내 모터스포츠를 독식하다시피 하는 현상이 벌어지자, 투어링 A 클래스에서는 경쟁차에 비해 80kg의 핸디캡을 부여했을 정도였다.

티뷰론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현대자동차의 첫 WRC(World Rally Championship, 세계랠리선수권) 출전을 함께했다. 1998년, 현대자동차는 영국의 튜닝 전문회사인 MSD와 기술협력 관계를 맺고 2년간 F2 클래스(2WD, 논터보)에서 10번 참가해 5회 우승을 거둔다. 2000년부터 WRC의 본무대인 그룹 A8 클래스(4WD, 터보)에 진출한다.

1999년, 티뷰론은 한 차례의 큰 변화를 맞았다. 영어로 난기류를 의미하는 '터뷸런스(Turbulance)'라는 별칭이 붙은 티뷰론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파격적인 분리형 4등식 헤드램프와 한층 확대된 에어인테이크, 그리고 더욱 역동적으로 변모한 후면 디자인이 특징이다. 또한, 새로운 디자인 요소들은 티뷰론의 역동적인 차체형상과도 훌륭한 조화를 이뤘다. 티뷰론 터뷸런스의 외관은 10명의 디자이너가 8개월간 머리를 맞댄 결과물로, 기존의 티뷰론에 비해 더욱 강하고 공격적인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인테리어 역시 몇 가지의 변화를 거쳤다. 변화의 주된 대상은 계기반과 버튼으로, 새로워진 스타일을 적용해 시각적인 즐거움과 조작감, 시인성을 향상시켰다. 이 뿐만 아니라 라인업을 총 9종의 트림으로 세분화하고 가격은 차종에 따라 1,093~1,649만원으로 설정, 선택의 폭을 크게 넓혔다. 또한 2.0 베타 엔진을 보다 업그레이드하여 153마력의 최고출력을 낼 수 있도록 했으며 제원 상 최고 225km/h의 속도로 질주할 수 있었다. 티뷰론은 2001년 상반기까지 계속 생산되다가 동년 9월, 후속 차종인 투스카니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단종을 맞았다. 티뷰론은 현대자동차의 두 번째 스페셜티카 모델이자, 스페셜티카 시장의 중흥, 그리고 국내 모터스포츠의 저변확대를 이끈 기념비적인 자동차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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