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가 출시한 르노 마스터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르노 마스터는 프랑스 르노그룹에서 생산하는 유럽산 LCV의 대표 모델 중 하나다. LCV란 '경상용차(Light Commercial Vehicle)'의 약자로, 유럽과 호주, 캐나다 등지에서 사용되는 상용차의 한 형태를 말한다. LCV에 속하는 차종들은 세미보닛형 전면부를 갖는 총중량 3.5톤 미만의 중소형급 상용차이며, 이번 기사의 주인공 르노 마스터 역시 이러한 분류에 포함된다.
한 편 르노 마스터는 생업용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크게 각광 받고 있다. 바로 'RV(Recreational Vehicle)'부문이다. 현재 국내 RV시장에서 르노 마스터는 그야말로 '대세'로 통하고 있다. 현재 국내 RV제조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르노 마스터 기반의 캠핑카들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한 첫 유럽형 LCV이자, 르노삼성자동차를 통해 베이스 차량의 유지보수가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산차종인 현대 쏠라티에 비해서도 '부담 없는 가격' 덕분에 제조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르노 마스터란 과연 어떤 자동차일까? 르노 마스터를 직접 시승하면서 르노 마스터가 가진 상용차로서의 가능성과 더불어 캠핑카의 베이스 차량으로서의 가치를 심도 있게 짚어보고자 한다. 시승한 르노 마스터는 가장 작은 밴 S(스탠다드) 모델이다. VAT 포함 차량 기본 가격은 2,900만원.
유럽식 LCV의 전형을 보여 주는 외관 디자인
르노 마스터의 외관부터 살펴보자. 르노 마스터의 외관은 유럽식 LCV의 전형을 그대로 나타낸다. 1.5박스에 가까운 세미보닛형 차체 전면과 더불어 국내의 유일한 화물 밴은 스타렉스보다 훨씬 높은 높이, 그리고 공간활용에 유리한 사각 박스형에 가까운 차체 디자인 등이 특징이다. 시승한 S 모델은 숏휠베이스/로우루프/전륜구동 모델로, 길이는 5,050mm, 폭 2,020mm, 높이 2,305mm다. 휠베이스는 3,185mm다. 한 체급 아래에 해당하는 현대자동차 그랜드스타렉스와 비교하면 길이는 100mm나 짧지만 폭은 100mm나 넓으며, 높이는 무려 380mm나 더 높다. 이 때문에 현대 그랜드스타렉스와 나란히 서게 되면 기본 체급의 차이를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로우루프를 사용하는 모델임에도 높이가 2,305mm에 달해, 현재 2.3m가 기준인 국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는 출입할 수 없다.
르노 마스터의 전면부는 지난 2014년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초기형의 디자인은 지금과 같은 세로형 헤드램프에 라디에이터 그릴과 엠블럼이 분리된 형태였다. 현재의 디자인은 르노 알핀 컨셉트카로부터 비롯된 르노 그룹의 신규 패밀리룩을 반영한 것으로, 르노 로쟝쥬 엠블럼을 중심으로 라디에이터 그릴이 뻗어 나가는 형상이 눈에 띈다. 세로형 헤드램프는 한 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램프는 할로겐 램프를 사용하고 있으며, 야간 가시성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헤드램프와 동그란 안개등 사이에는 큰 홈이 하나 파여져 있는데, 이 홈은 정비나 작업 시 '발판'으로 사용되는 부분이다. 르노 마스터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형 LCV들은 보닛을 열었을 때 엔진이 하부 깊숙이 자리하는데 이 때문에 차체 전면부에 발판을 마련해 두는 것이다.
르노 마스터 S 모델의 측면은 '숏휠베이스' 모델인만큼 상당히 짧다. 반면 높이도 높고 폭도 크기 느껴지기에 일견 짜리몽땅해 보일 수 있는 외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하게 되면 2.5톤 트럭인 현대 마이티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차체의 크기가 크게 느껴진다. 시승한 S 모델은 기본적으로 패널 밴 모델이다. 조수석측에만 슬라이딩 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S 모델의 슬라이딩 도어는 최대 1,050mm까지 개폐되며 L 모델의 슬라이딩 도어는 최대 1,250mm까지 개폐된다. 운전석과 조수석 도어 근처에는 각각 조그만 뚜껑이 하나씩 달려 있는데, 운전석측의 뚜껑은 주유구, 조수석특의 뚜껑은 요소수 주입구다.
L(Large) 모델은 현지에서는 미디움휠베이스/미디움루프/전륜구동 모델에 해당한다. L 모델은 기본적으로 S 모델과 동일한 폭을 가지지만 500mm 늘어난 길이와 휠베이스를 가지며, 높이는 2,485mm에 이른다. 보다 더 긴 전장 및 휠베이스와 하이루프를 제공하는 L 모델은 위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테이퍼(Taper)형에 가까운 차체 형상이 나타난다. 사실 상 현대 쏠라티나 메르세데스-벤츠 스프린터 등을 통해 우리에게 먼저 소개되었던 유럽산 LCV의 전형에 더 가까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뒷모습은 사각 박스형에 가까운 차체 형태가 도드라지는 부분이다. 밴 차량 특유의 세로로 가늘게 붙어 있는 테일램프가 눈에 띈다. 또한 양쪽으로 나뉘는 테일게이트의 특성을 이용해 한쪽에는 번호판을 달고, 다른 한 쪽에는 보조제동등을 달아 놓았는데, 이 보조 제동등과 테일게이트 패널의 디자인이 의외로 감각적이다. 후방 테일게이트는 캐비닛 도어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시승한 S 모델은 좌우 도어 모두 총 180도까지만 개폐가 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L 모델의 경우에는 총 270도까지 개폐 가능하다.
'실용주의' 돋보이는 상용차 인테리어의 정석
운전석측을 먼저 살펴보자. A필러에 보조 손잡이가 없기 때문에 승하차하기가 다소 어색한 점은 아쉽지만 막상 운전석에 오르고 나면 상용차에서 기대할 수 있는 상하좌우로 널찍한 공간이 묘한 만족감을 준다. 르노 마스터의 실내는 정말이지 '일하는 자동차'의 모범에 가깝다. 극도로 단순화된 대시보드 레이아웃과 더불어 차내 이곳 저곳에 자잘한 수납공간들을 만들어 놓았다. 사실 이 정도는 중형급 상용차에서는 으레 기본적으로 따라와 줘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국내의 1톤 트럭은 물론, 심지어 2.5톤급 이상의 캡오버형 카고 트럭조차도 '승용감각'을 강조하는 풍조로 인해 이러한 부분에서 매우 부족한 모습들을 보인다. 이러한 국내 중소형 상용차들의 모습에 익숙하다면 르노 마스터의 실내가 투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일하는 자동차'의 가치에서 바라보자면 오히려 이쪽이야말로 정석이다.
스티어링 휠은 실로 단순하다. 크루즈 컨트롤과 스피드리미터도 내장되어 있지 않아 그 흔한 버튼 하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스티어링 휠 뒤편으로 르노계열 자동차들이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별도의 오디오 리모컨 유닛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티어링 휠은 다소 거친 질감의 플라스틱으로 마감되어 있어, 장시간 조작하게 되면 손바닥 위쪽이 약간 배기는 느낌이 든다. 계기반은 3-서클 레이아웃을 취하고 있으며, 이 역시 심플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겉보기에는 승용차처럼 세련되진 못해도 꼭 필요한 정보만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해 주는, 정석에 가까운 계기반 구성이 마음에 든다.
르노 마스터 밴 모델의 좌석은 총 3인승 배치다. 이들 중 운전석은 별도로 분리되어 있고 조수석과 중앙의 보조석은 착좌부가 하나로 합쳐진 형태를 띄고 있다. 르노 마스터의 좌석은 모두 직물로 마감되어 있으며, 촉감은 무난한 편이다. 운전석은 수동 레버를 이용한 기계식으로 조절되는데, 등받이 각도 조절 기능을 담당하는 레버가 도어측이 아니라 콘솔측에 배치되어 있다. 이는 QM3와 같은 르노의 승용 차종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크게 낯설지 않겠지만 처음 경험하는 입장에서는 어색할 수 있다. 운전석의 착좌감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충분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등받이의 각도를 약간 세워 줄 필요가 있다.
조수석과 보조석의 구성은 상당히 아쉽다. 조수석의 경우, 등받이의 각도가 고정되어 있는 것도 모자라서 그 각도가 상당히 꼿꼿하게 세워져 있는 편이다. 속된 말로 '각 잡고' 앉아야 하는 수준이다. 사실 르노 마스터의 조수석은 승객의 편안한 승차 환경보다는 거리가 멀다. 대부분 혼자서 운행하는 경우가 많은 중소형 상용차의 특성 상, 필요한 때에 공구 등, 업무를 위한 장비들을 보관하는 장소에 더 가깝다. 르노 마스터의 조수석 하부는 제법 큰 공구 상자 하나가 알맞게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극단적으로 간소화된 조수석 구조로 인해 아예 좌석을 접어버리고 그 위쪽을 짐 공간으로 손쉽게 전용할 수 있다. 상용차의 실내가 가져야 할 미덕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다.
기존의 화물차와는 격이 다른 적재함
실내를 둘러 보았으니, 이제는 화물차의 생명인 적재함을 볼 차례다. 시승한 르노 마스터는 측면의 슬라이딩 도어와 후면의 테일게이트를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슬라이딩 도어는 좁은 곳이나 작고 가벼운 물건을 간편하게 상/하차하는 데 유용하고 테일게이트는 차체 내측의 끝까지 개방되는 특성을 활용, 크고 무거운 짐을 상/하차하는 데 유용하다.
적재함 내부는 두 개의 조명이 위치하고 있다. 하나는 슬라이딩 도어 건너편에 위치하고 다른 하나는 테일게이트 근처에 위치하여 적재함 안쪽을 비춰준다. 색온도가 낮은 색상의 조명을 사용하여 야간에도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시승한 르노 마스터 밴 S 모델의 적재함은 최대 길이 2,505mm로, 차체 길이가 100mm 더 긴 현대 그랜드스타렉스 3인승 패널 밴 모델 보다 130mm나 더 길다. 적재함의 폭은 르노삼성자동차가 발표한 제원표 상으로는 1,700mm지만, 이는 하부를 기준으로 한 측정치로 보이며, 가장 넓은 폭이 나타나는 높이에서는 최대 1,765mm(르노 제원표 기준)의 폭이 나온다. 좌우 휠 하우징 사이의 폭은 1,380mm(르노 제원표 기준)다. 적재함 높이는 1,750mm로, 성인 남성이 허리만 약간 굽혀 주면 큰 불편 없이 드나들 수 있는 높이다.
또한 지면으로부터 적재함 바닥까지의 높이(이하 상면고)가 545mm에 불과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렇게 낮은 상면고는 화물의 상/하차 작업에서 작업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택배에 사용되는 1톤 트럭 적재함의 상면고가 최소 775mm에 달하고, 탑차와 같은 특장차량의 경우에는 그보다 더 높아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는 상당한 장점이다. 일단, 적재함에서 바로 바깥으로 나와도 부담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르노 마스터의 이러한 적재함 설계는 상/하차 작업에서 종래의 1톤급 화물차와는 비교할 수 없는 편의성을 선사한다. 굳이 비교 대상을 1톤급으로 둔 이유는 이 차량의 최대 적재중량이 S 모델은 1,300kg, L 모델은 1,200kg이기 때문이다. S 모델은 L 모델에 비해 섀시에 가해지는 부담이 더 적어, 더 작은 차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적재 중량을 지닌다. 본래의 적재중량은 S 모델이 1,663kg, L 모델이 1,583kg에 달하는데, 이렇게 신고가 된다면 현재 1.5톤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국내 법규 상, 소형 화물차로 분류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악습임에도 여전히 현장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는 '과적' 문제 역시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캠핑카의 베이스 차량으로 떠 오른 이유
르노 마스터 중에서 캠핑카의 베이스 차량으로 주로 사용되는 차종은 단연 L 모델이다. 최근에는 더 긴 전장과 휠베이스를 갖춘 버스 모델을 기반으로 개발중인 모델들도 소수 나타났지만 여전히 캠핑카 베이스 차량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차종은 L 모델이다. L 모델은 패널 밴 모델인 만큼, 버스 모델에 비해 구매 단가가 훨씬 낮고 시트 탈거 작업이 필요 없다. 또한 운전석과 화물칸을 나누는 벌크헤드(격벽)를 제외하면 내부가 텅텅 비어 있다시피한 구조를 갖는다. 이 덕분에 생산성 면에서 크게 유리하다.
시승한 S 모델과 비교한다면, 화물칸의 내측 높이가 최대 1,894mm로 월등하게 높다는 것이 강점이다. S 모델이 1,750mm로 캠핑카로서는 다소 부족한 높이를 갖는 반면, L 모델은 바닥과 천장 마감을 하고도 일반적인 성인이 직립한 상태로 이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높이를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적재함 내측 길이가 3,015mm이기 때문에 캠핑카에 필요한 침대와 주방,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캠핑카 시장에서 L 모델을 기반으로 한 차량이 유독 많은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국산 상용차와는 전혀 다른 주행질감
그렇다면 자동차로서의 기본기인 달리고, 돌고, 서는 측면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국내에서 판매되는 르노 마스터는 공통적으로 르노그룹의 2.3리터 dCi 디젤 엔진과 수동 6단 변속기로 구성된 전륜구동 파워트레인을 갖는다. 유럽 시장에서는 전륜구동과 사륜구동, 심지어 후륜구동도 선택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전륜구동 모델만 수입된다. 2.3리터 엔진은 145마력/3,500rpm의 최고출력과 36.7kg.m/1,5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르노 마스터는 상용차다. 그리고 상용차는 '경제성'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순위에 놓는다. 상용차는 기본적으로 생업에 쓰이는 자동차인 만큼, 운용하는 1분 1초가 곧 '돈'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승용차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취급되는 '정숙성'이나 '승차감' 등의 가치는 그보다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따라서 상용차와 승용차는 기본적인 주행 질감에서부터 평가를 해야 할 기준이 완전히 다르다고 봐도 무방하다.
접이식 키를 펼치고, 르노 마스터의 운전석에 올라 키 홀에 넣고 시동을 건다. 시동을 걸기 전에 클러치 페달을 밟는 것도 잊지 않는다. 르노 마스터의 클러치 페달은 굉장히 깊게 들어가는 편이고 기본 위치도 다소 위쪽으로 올라와 있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클러치 페달 조작을 할 때에는 무릎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수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후진 기어는 중간의 링을 잡아 올려서 잠금을 해제하고 체결하는 방식으로, 오늘날 기아 봉고3나 현대 포터2의 6단 수동변속기와 동일하다.
시동을 걸고 난 이후에는 디젤엔진의 걸걸한 소음이 운전실로 흘러 들어 온다. 정차 중의 진동도 제법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차 중일 때의 이야기다. 주행을 시작하게 되면 엔진에서 오는 소음과 진동보다는 적재함에서 벌크헤드를 통해 유입되는 소음이 더 크게 느껴진다. 특히, 수동식 주차 브레이크를 풀 때에는 적재함 안으로 텅텅거리는 소음이 울린다. 반면 참으로 다행인 것은 공차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실내에서 일어나는 공명 자체는 의외로 크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장시간의 주행에서도 다른 상용차에 비해 의외로 피로감이 크지 않다.
르노 마스터는 전륜에 맥퍼슨 스트럿, 후륜에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을 사용한다. 후륜의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은 상용차 세계의 상식으로, 일반 승용차량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막대한 수직하중을 버텨 내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승차감 자체는 우리나라의 중~소형 상용차들과는 전혀 다르다. 특히 운전실 부분이 시종일관 출렁거리기 바쁜 1톤 화물차에 비해서는 훨씬 단단하고 안정감이 있다. 또한 2.5톤급 화물차인 현대 마이티에 비해서는 한층 포용력이 있는 느낌이다. 이렇게 탄탄한 서스펜션 설정 덕분에 의외로 장시간의 주행에서 국내의 다른 상용차에 비해 운전자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적게 느껴지는 편이다.
르노 마스터에 탑재된 2.3리터 dCi 디젤 엔진은 한 급 아래인 현대 그랜드스타렉스나 분류 상 동급에 해당하는 현대 쏠라티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2.5리터 디젤 엔진에 비해 배기량도 작은 데다, 제원 상 성능 수치도 낮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면 체감 상으로는 그 두 차종에 전혀 밀리지 않는 성능을 제공한다. 후륜구동에 비해 구동손실률에서 유리한 전륜구동과 수동변속기 조합이 낳은 결과라고 생각된다. 공차 상태에서는 덩치에 비해 경쾌하게 가속을 진행하고 짐을 실은 상태에서도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크게 들지 않는 편이다. 수동변속기는 인디케이터가 내장되어 있어 최적의 변속 타이밍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르노 마스터의 또 다른 진가는 램프 구간이나 산악도로와 같은 선형이 구불구불한 곳에서 발휘된다. 스티어링 시스템이 다른 상용차에 비해 훨씬 직관적이고 차체도 꽤나 기민하게 움직여 주는 편이기 때문이다. 또한 차량의 무게중심이 전반적으로 낮다는 느낌을 받게 되어, 적어도 국산 중소형급 상용차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탄탄한 질감의 하체와 차체구조 덕분에 예상 외로 코너를 기민하게 돌아 나간다. 통상적인 국산 상용차와는 전혀 다른 감각의 주행 질감이 상당히 인상 깊게 남는다.
그렇다면 캠핑카로 개조된 르노 마스터의 주행질감은 어떨까? 그 답은 '제작사마다 다르다'다. 각 제작사마다 탑재하는 편의시설의 중량이 천차만별이고, 총중량도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바로 '안정감'이다. 캠핑카의 베이스 차량으로 사용되는 마스터는 이번에 시승한 S 모델이 아닌 L 모델들로, 동일한 동력성능에 더 무겁고, 더 큰 차체를 갖는다. L 모델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르노 마스터 기반 캠핑카들을 주행해 보면, S 모델과는 다른 진중함과 더불어 더욱 묵직하고 안정감 있는 주행 질감을 경험할 수 있다. 단, 제동거리가 일반적인 밴 모델들보다 훨씬 길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상용차의 미덕, 뛰어난 효율
국내에 수입되는 르노 마스터는 전륜구동과 수동변속기 조합이다. 이 조합은 구동손실률 면에서 가장 유리한 조합으로, 르노 마스터의 우수한 연비의 밑거름이 된다. 공차 상태를 기준으로 하는 공인 연비는 S 모델과 L 모델이 서로 조금씩 다르다. S 모델은 도심 10.9km/l, 고속도로 10.6km/l, 복합 10.8km/l이며, L 모델의 경우 도심 10.8km/l, 고속도로 10.2km/l, 복합 10.5km/l다. 도심보다 고속도로 연비가 조금씩 더 낮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르노 마스터 특유의 다소 짧은 기어비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시승한 S 모델을 가지고 연비 측정을 진행한 결과는 공인연비와는 조금 달랐다. 도심에서는 12.0km/l, 고속도로에서는 13.5km/l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공인연비와는 달리, 도심보다 고속도로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르노 마스터는 스톱/스타트(ISG) 기능이 적용되어 있다. 이 덕분에 도심에서의 연비 저하를 어느 정도 막아 줄 수 있으면서도 디젤 엔진의 진동으로 인한 피로감도 덜 느끼게 된다. 르노 마스터의 스톱/스타트 기능은 기어를 중립에 둔 상태로 클러치 페달에서 발을 떼면 작동하며, 클러치를 밟는 순간부터는 출발 가속을 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시동을 건다. 물론, 신호대기 내내 클러치를 밟고 있는 습관을 가진 운전자라면 사용하기 어려울 수 있고 재시동시 충격이 다소 있는 편이기는 하지만 연료 절감에 있어 꽤나 도움을 준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다
르노 마스터는 르노삼성자동차가 처음 출시를 발표한 이후부터 그 성공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다수의 채널을 통해 흘러 나왔다. 그 중에는 우려 섞인 전망들도 적지 않았다.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차종이므로 가격 및 공급 문제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과 국내 소형 상용차 시장의 세미보닛형 차종에 대한 거부감 등이 그 근거였다. 현재까지 국내 상용차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모델은 현대자동차의 그랜드 스타렉스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그랜드스타렉스 마저도 기존 1박스형 승합차의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인기를 유지해 오고 있는 측면이 큰 것이 사실이다. 이는 단종된 지 15년도 더 지난 1박스형 승합차들의 중고차 시세가 떨어질 줄 모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마스터는 르노삼성자동차가 기대한 것 이상의 실적을 올리기 시작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처음 판매하게 될 패널 밴 모델의 초도물량을 200대로 잡고 사전계약을 실시했다. 그리고 이 때 실시한 사전계약에서 250대의 수요가 몰렸으며, 출시된 지 한 달이 지난 2018년 11월에는 600대가 넘어가는 계약을 이루었다. 그리고 2019년 6월부터는 13/15인승의 마스터 버스(승합) 모델의 판매를 시작했으며, 7월 말까지 970대가 계약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르노 마스터의 성공적인 시장 진입은 현대기아그룹의 소형 상용부문 독점으로 국내 소형 상용차 시장이 느끼고 있었던 염증, 유럽에서 검증된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 책정이 주효했다고 본다. 또한 르노 마스터의 시장 진입은 그동안 독점체제 속에 정체되어 있었던 소형 상용차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그리고 그 르노 마스터를 직접 경험해 보고 나니, 그 경쟁력의 근간과 앞으로 펼쳐질 가능성을 알 수 있었다. 르노 마스터는 그동안 중소형 상용차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장점들로 가득하고, 그 근간에는 철저한 실용주의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용차가 가져야 할 본연의 모습을 다시금 일러주는 것은 물론, 가격대마저 국산 상용차와 충분히 경쟁할 만한 수준으로 책정되었다는 점도 고평가 될만한 요소다.
그리고 이렇게 탄탄한 기반을 가진 덕분에 르노 마스터는 '일하는 자동차'로서의 목적은 물론, 다양한 형태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충만하다. 르노 마스터는 애초에 그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정통 유럽식 LCV이니 말이다. 국내 캠핑카 제작사들이 너도나도 마스터 기반의 캠핑카를 쏟아냈던 배경에는 정통 유럽 LCV의 탄탄한 기반설계와 조건, 그리고 절묘하게 책정된 가격의 삼박자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해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