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 컨티넨탈 GT 스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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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 컨티넨탈 GT 스피드
  • motoya
  • 승인 2013.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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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는 1919년 월터 오웬 벤틀리가 영국에서 창업한 고급차 메이커다. 고성능 경주차와 주문 제작차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런데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자금줄이 묶였다. 벤틀리는 파산 위기를 맞았다. 결국 1931년 벤틀리는 롤스로이스에 인수된다. 이후 벤틀리는 롤스로이스의 스포츠 버전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1997년 벤틀리도 다시 한 번 운명의 갈림길에 섰다. 모기업 롤스로이스의 자동차 사업부문이 불황에 못 이겨 매물로 나온 까닭이다. 폭스바겐과 BMW가 벤틀리 인수전에서 맞붙었다. 롤스로이스에 12기통 엔진 기술을 전수했던 BMW에게 인수우선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폭스바겐과 BMW 모두 벤틀리를 노렸다. 호화롭되 스포티한 이미지를 높게 샀기 때문이다.

치열한 협상 끝에 폭스바겐이 벤틀리의 상표권과 롤스로이스 공장을 거머쥐었다. BMW는 무형의 자산인 롤스로이스 상표권만 헐값에 사들였다. 폭스바겐의 품에서 벤틀리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린다. 한해 고작 몇 백대 찍어내던 롤스로이스 시절과 달리, 2007년엔 1만대의 벽마저 넘어섰다. 호화차 브랜드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혔다.

컨티넨탈 시리즈는 벤틀리가 폭스바겐의 품에 안긴 이후 내놓은 첫 모델이었다. 벤틀리 부활을 이끈 일등공신이기도 했다. 컨티넨탈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건 2003년 선보인 컨티넨탈 GT였다. 이후 2005년엔 세단인 플라잉 스퍼, 2006년엔 컨버터블인 GTC로 가지를 뻗었다. 2007년엔 GT 스피드, 지난해엔 수퍼 스포츠까지 추가됐다.

컨티넨탈 시리즈의 외모는 제 각각이지만, 모두 같은 뼈대와 엔진, 사륜구동 시스템을 쓴다. 효율을 높여 소량생산의 단점을 상쇄시키기 위해서다. 컨티넨탈 시리즈의 인기비결은 모기업 폭스바겐의 기술력과 벤틀리의 수작업 공정이 황금비율로 어우러진 데서 찾을 수 있다. 기존의 초고급차보다 한층 현실적인 가격도 인기를 부채질했다.

2010년 11월, 중동의 오만에서 신형으로 거듭난 컨티넨탈 GT를 시승했다. 화장만 살짝 고친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바뀐 부분이 많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눈매다. 반짝이는 LED 주간주행등을 네눈박이 테두리에 보석처럼 둘렀다. 부드럽게 눕혔던 그릴은 슬며시 곧추세웠다. 범퍼 디자인도 손질했다.

보닛의 좌우 끝자락과 앞바퀴의 펜더가 만나는 라인은 날카롭게 접었다. 벤틀리가 ‘앞날개’라며 자랑해마지 않는 부위다. 용접 없이, 한 판의 알루미늄을 섭씨 500도로 가열한 뒤 쾅 찍어 만들었다. 이른바 ‘수퍼포밍’ 기술이다. 테일램프는 보다 넓적해지면서 꽁무니의 모서리를 파고들었다. LED로 수놓은 테일램프 속의 타원 또한 얼씨구나 좌우로 늘어졌다.




기다랗고 두꺼운 도어를 당겨 열면, 호화찬란한 인테리어가 펼쳐진다. 특급호텔의 스위트룸 못지않다. 결이 고운 가죽과 자연산 레이저 가공 원목, 싸늘한 촉감의 알루미늄 패널이 어우러졌다. 넉넉한 크기의 시트는 벗겨서 입고 싶을 만큼 고급스럽다. 코브라의 목덜미처럼 좌우로 날개를 펼쳤고, 등받이와 엉덩이 받침엔 다이아몬드 꼴로 이중 스티치를 박았다.

시트엔 열선과 통풍이 기본. 앞좌석은 10개의 압축 셀이 마사지도 해준다. 시트를 다시 디자인하면서, 뒷좌석 다리 공간도 46㎜ 늘었다. 센터페시아엔 터치스크린 방식 모니터를 심어 각종 기능을 조작하기 한결 쉬워졌다. 오디오는 영국의 네임(Naim)제로 최대 11개의 스피커를 어울릴 수 있다. 음악을 담기 위한 저장 공간만 15기가바이트나 마련했다.

엔진은 이전과 같은 W12 6.0L. 그러나 최고출력은 15마력, 최대토크는 8% 치솟았다. 엔진 부품의 무게를 줄이고, 각 부위의 마찰을 낮춘 결과다. 변속기는 컨티넨탈 시리즈의 최고성능 버전인 수퍼스포츠에서 가져왔다. 프로그램을 손봐 기어 갈아타는 시간을 더욱 줄였다. 게다가 급가속 땐 두 단을 성큼 내려서는 기능도 담았다.

이전과의 성능 차이는 뚜렷이 와 닿았다. 반응이 빨라졌고, 고속에서 가속이 한층 힘차졌다. 어차피 남아도는 힘이긴 했다. 네 명을 나르기 위해 575마력을 불사르는 건 분명 난센스. 그러나 이런 차에서 과잉은 곧 미덕이다. 게다가 다루는 실력에 따라 흉기가 될 수도 있는 괴력은, 벤틀리란 여과막을 거치면서 넉넉하고 부드러운 힘으로 승화됐다.

그래서 컨티넨탈 GT의 575마력은 시뻘건 불기둥이 아닌, 망망대해처럼 다가온다. 네바퀴굴림 시스템이 접지력을 챙겨주니 불안할 짬도 없다. 이 때문에 컨티넨탈 GT를 운전하는 건 의외로 싱겁다. 뛰쳐나가고 가로지르고 멈춰서는 조작이 놀이처럼 쉽고 즐겁다. 안락한 실내에 파묻혀, 잔잔한 진동과 사운드를 느끼면서 쏘다닐 때의 뿌듯함은 중독성이 짙었다.

모진 채찍질을 날리면 컨티넨탈 GT는 돌연 매서워졌다. 드로틀을 열 때마다 W12 엔진은 2.5톤짜리 거구를 불 대포처럼 펑펑 쏘아 날렸다. 초침이 채 다섯 칸을 건너기 전에 시속 100㎞ 가속을 마쳤다. 어떤 속도 대에서도 쥐어짜는 느낌 없이 튀어나갔다. 하지만 차 무게는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서 가슴을 짓누르는 가속 G가 가벼운 차의 곱절쯤 된다.

디자인이 바뀌고 파워트레인을 개선했지만, 벤틀리의 절대 가치인 편안함엔 변함이 없었다. 서스펜션을 가장 딱딱하게 설정한들, 요철의 존재만 오톨도톨 도드라질 뿐 허리 뻐근한 스포츠카가 되진 않았다. 반나절 동안 400㎞ 이상 몰았지만 전혀 피로를 느낄 수 없었던 건 벤틀리 특유의 풍요로운 파워와 긴장을 녹이는 편안함 때문이었다.

글 김기범|사진 벤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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