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의 휘발유가 ‘무연’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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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의 휘발유가 ‘무연’인 이유는?
  • 박병하
  • 승인 2019.07.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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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솔린 자동차의 재급유를 위해 주유소에 가게 되면, ‘무연’ 휘발유라는 문구를 꼭 한 번쯤은 보게 된다. 최근에는 이러한 표기 없이 그냥 ‘휘발유’라고 표기하는 곳도 적지 않게 늘어난 반면, 아직도 ‘무연’이라고만 표기해 둔 곳도 종종 눈에 띈다. 휘발유를 표기하는 ‘무연’에는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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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의 의미는 간단하게 말해서 ‘납이 없다’는 의미이다. 무연의‘연’은 납(Pb)을의미하는 납 연(鉛)자다. 과거 흑연을 납의 일종으로 인식했던 시절에 만들어진 연필(鉛筆)라는단어 또한 같은 글자를 사용한다. 그리고 굳이 ‘무연’이라는 표기를 사용한 것을 볼 때, 과거에는 휘발유에 납 성분이 첨가된휘발유와 구분하기 위해 이러한 표기법이 생겼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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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지금의시점에서는 상당히 살 떨리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과거에는 휘발유에 납 성분을 첨가한 ‘유연휘발유’라는 것이 존재했다. 유연휘발유는20세기 초인 1920년대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 당시는 엔진에 연료를 공급하는 방법에 있어서 지금과 같은 정밀한 전자식 연료분사 기구나 제어기구 등이 존재하지않았고, 주로 기화기(Carburetor)에 의존하고 있었던시절이다.

카뷰레터는 그 당시나 지름이나 온도, 환경, 그리고 연료의 품질에 아주 민감한 기계이며, 조금만 조건이 맞지 않아도 엔진의 부조, 혹은 노킹을 일으키는 원인이된다. 게다가 당시는 지금과 비교하면, 석유 정제 기술이크게 발달하지 않아, 연료의 품질이 천차만별이었다. 카뷰레터를주로 사용했던 당시 엔진의 연료공급 체계와 품질이 들쭉날쭉하는 연료는 자동차를 이용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겼다.

그런데 1921년, 미국의 한 화학자, ‘토머스 미즐리 주니어(Thomas Midgley Jr.)’가 노킹 현상을 억제해 주는 획기적인 발명품을 내놓았다. 그는 휘발유에 다양한 물질을 첨가하는 수많은 실험 끝에, ‘테트라에틸납((CH3CH2)4Pb)’을 첨가하게 되면, 옥탄가가 상승하는 효과가일어나면서 엔진 부조를 크게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냈다. 그리고 이 획기적인 발명품은 곧 상기화합물의 성분명을 딴 ‘에틸(Ethyl)’이라는 이름의 첨가제로상품화되어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휘발유의 품질을 개선하기 위한 획기적인 발명품은두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테트라에틸납이 첨가된 ‘유연휘발유’는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물론 이 당시에도 납의 유해성에대한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과 같이 강하지는 않았기에, 유연휘발유는잘만 팔려 나갔다. 하지만 머지않아 유연휘발유는 대재앙의 불씨가 될 수도 있었다.

유연휘발유의 유해성과 위험성을 알린 이는 클레어 페터슨(Clair C. Patterson)이라는 과학자였다. 그는 지구의나이를 계산하는 연구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우라늄 동위원소의 반감기를 이용하여 우라늄과 납의 양을측정하는 과정에서 대기중의 납의 수치가 너무 높다고 판단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청정구역을 만들어지구 나이를 계산해 본 결과, 산업혁명 시기를 전후로 대기 중 납 농도가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가설을세웠다. 그는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그린란드 일대를 조사하고 적설층의 납 농도를 측정, 1923년 이후로 대기 중 납 농도가 위협적인 수준으로 쌓인 것을 밝혀냈다.1923년은 상기한 에틸의 대량판매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그 시기다.

그의 노력 덕분에 미국에서는 청정대기법이 만들어질수 있었다. 하지만 유연휘발유의 판매는 1986년에 이르러서야전면적으로 금지된다. 그리고 북미, 유럽 아시아 등, 각지에서 유연휘발유의 판매가 금지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유연휘발유가완전히 퇴출된 시기는 1993년 1월 1일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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