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의 폐허에서 태어난 아름다움 - 최초의 베스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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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의 폐허에서 태어난 아름다움 - 최초의 베스파 이야기
  • 박병하
  • 승인 2018.04.03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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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파(Vespa)는이탈리아 피아지오 그룹(Gruppo Piaggio)의 이륜차 제조사로,1946년 설립되어 7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베스파의 스쿠터들은 고유의 아름다운 외관과 뛰어난 감성 설계로 지금까지도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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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파는 그 아름다움과 변치 않는 감성으로 세계 각국의미디어에도 자주 등장하며, 옛 베스파의 포스터들은 복고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한 인테리어 소품이나 엽서등으로 만들어져 판매되기도 한다. 클래식 스쿠터의 대명사로 통하는 베스파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베스파는 1946년에만들어졌다. 이 시기는 전세계를 뒤집어 놓은 제 2차 세계대전이끝난 직후로, 온 유럽이 전쟁의 상처로 피폐해져 있던 시기였다. 그리고이 시기는 베스파의 주인인 피아지오에게는 그야말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순간이기도 했다.

베스파의 주인인 피아지오는 파시스트 정권에 부역한전범기업이었다. 1884년 설립된 피아지오는 본래 철도차량의 제작과 대형 여객선의 의장(艤裝, Outfitting)작업을 생업으로 했던 기업이었지만1906년부터 항공기 사업에 뛰어 들어 전투기, 폭격기,수송기 등의 각종 군용기를 생산했다. 하지만 피아지오의 항공기 생산 기반은 전쟁 중 파괴되었고군용 항공기의 수요도 덩달아 없어지면서 생존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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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피아지오의 수장인 엔리코 피아지오(Enrico Piaggio, 1905~1965)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그는 이미 전쟁 중에 당시의 열악한 도로상황에서도 수요를 기대할 수 있었던 저가의 운송수단에 주목하여 ‘MP5 파페리노(Moto Piaggio 5 Paperino)’라는이름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한 바 있다. 파페리노는 이탈리아어로 ‘오리’를 뜻한다.

MP5 파페리노는 후방에 엔진, 변속기, 체인 등의 동력계통을 한데 모으고 이를 완전히 덮는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이는당시 이륜차 사용자들이 겪고 있었던 바지 밑단이 더러워지거나 당시 노면에서 튄 돌멩이 등에 의해 동력부가 손상되는 등의 문제를 해결한 설계라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엔리코는 그 오리같이 생긴 디자인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엔리코는 파페리노보다 더 진보된 디자인의 이륜차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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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그는 세계 최초의 헬리콥터 D’AT3를 개발한 코라디노 다스카니오(Corradino D'Ascanio,1891~1981)에게 도움을 청했다. 엔리코는 ‘단순하고튼튼하며 경제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그리고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최초의 베스파 스쿠터 ‘베스파 98’이었다. 1946년 4월, 로마의한 골프 클럽에서 공개된 이 신개념 운송수단은 저렴한 운송수단을 필요로 했던 대중은 물론, 그 독특한외형 때문에 언론에서도 주목할 정도였다.

베스파의 첫 작품 ‘베스파 98’의 외형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베스파의 오리지널리티가 그대로 살아 있다. 그리고 이 요소들은 현대적인 스쿠터의 원형을 이루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특히후방에 엔진, 변속기, 체인 등의 동력계통을 한데 모으고이를 완전히 덮는 후방의 덮개형 구조는 오늘날 현대 스쿠터 설계의 정석으로 통하고 있다. 여기에 프론트페어링과 이어지는 형태의 플로어 보드와 항공기의 랜딩기어에서 가져온 외발 스윙암 방식의 전후륜 서스펜션은 베스파 디자인의 아이덴티티로서 오늘날까지이어지고 있다. 차명은 이탈리아어로 말벌을 의미하는 ‘베스파(Vespa)’, 그리고 배기량을 의미하는 98을 합쳐서 지어졌다. 이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시제품 MP6를 보게 된 엔리코가 말벌과닮았다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

베스파의 첫 작품인 베스파 98은 보어(실린더 내경)와스트로크(행정 길이)가 각각 50mm인 98cc의 2행정단기통 엔진을 심장을 통해 최고 60km/h의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외발 스윙암 방식의 서스펜션은 각각 강철 스프링이 지지하고 있었으며, 외발 구조 덕분에휠과 타이어의 교체가 매우 편리했다. 프론트 페어링에는 새로운 피아지오의 로고와 함께 오늘날까지 그대로쓰이고 있는 베스파 엠블럼이 붙었으며, 플로어 보드는 알루미늄으로 장식했다.

전후의 열악한 상황에서 태어난 베스파 98은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출시 첫 해에만 2,484대를생산했다. 베스파 98의 성공은 생존의 위기에 몰린 피아지오를회생시키는 주춧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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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파 98의성공에 고무된 엔리코 피아지오는 트랙에서 높은 성능을 낼 수 있는, 보다 강력한 베스파를 개발하기로했다. 그는 작지만 민첩한 운동성능을 지닌 베스파의 가능성에 주목했다.그리고 베스파 98을 기반으로 성능을 강화시킨 트랙주행 전용 모델, ‘베스파 98 코르사 치르쿠이토(Vespa98 Corsa Circuito)’를 1947년에 내놓았다. 이 특별한 베스파는 엔진 주변의 패널을 과감하게 잘라내고 강제공랭식으로 변경하였으며, 플로어 보드와 페어링을 간소화하여 무게를 줄였다. 또한 기본 색상을빨간 색을 사용하여, 파이어볼(Fireball)이라는 애칭으로불렸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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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파 98이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면서 피아지오는 베스파의 생산을 늘리면서도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을 거쳤다. 이렇게 하여 베스파 98은 베스파98 II 세리에(Vespa 98 II Serie)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베스파 98 II 세리에는 타이어 펑크가 잦았던 당시의 사정을 반영하여예비 휠을 갖췄다. 그리고 이 예비 휠은 베스파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디자인 요소가 되었다. 베스파 98의 개량형인 베스파98 II 세리에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무려 16,500여대가 팔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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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48년에는엔진을 125cc급으로 교체하고 후륜에 쇼크 업소버를 적용하여 한층 상품성을 올린 ‘베스파 125’를 내놓으면서 베스파의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베스파 125는 오드리 햅번과 그레고리 펙 주연의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등장하여 대중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모터스포츠를 훌륭한 홍보의 수단으로 생각했던 피아지오는 125cc 엔진의베스파를 이용한 트랙 전용 모델들을 제작해 투입했다. 그 중 하나는 ‘베스파 125 코르사 알로이 프레임(Vespa 125 Corsa Alloy Frame)’,다른 하나는 ‘베스파 치르쿠이토 125(VespaCircuito 125)’, 그리고 베스파 125 식스 데이즈(Vespa 125 Six Days) 등의 경기용 모델들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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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베스파 125코르사 알로이 프레임은 과거 항공기를 제작한 경험이 있는 피아지오의 기술을 대거 접목, 알루미늄합금을 이용하여 뼈대부터 새롭게 만들어졌다. 공기역학적 형상의 페어링으로 공기저항을 줄이는 한 편, 98 코르사와 같이, 추가 연료탱크를 설치하여 경주에 대비했다. 베스파는 이 모델의 레플리카를 6대 제작하여 판매했다. 이후로도 베스파 125는 베스파 125U의등장 이전까지 원형의 디자인을 대부분 유지한 채 1951년까지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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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베스파가 창사 70주년 몇 년 앞둔 2014년, 이최초의 베스파를 기리기 위한 모델이 새롭게 만들어지기에 이른다. 말벌을 닮았던 초창기 베스파의 디자인을철저하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특별한 모델의 이름은 ‘베스파 946’.차의 이름은 베스파의 창립연도인 1946년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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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스쿠터인 베스파 946은초창기 베스파 스쿠터 특유의 구조를 충실하게 반영한 차체와 시트 디자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베스파 946의 단순한 복고풍을 넘어, 미래지향적인 감각마저 느끼게 한다. 헤드램프는 휀더에 달려 있지 않지만 어느 모로 보나 최초의 베스파에 가까운 모습이다. 하지만 이 외관 디자인 때문에 일반적인 스쿠터의 시트 하단 트렁크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엔진은 125cc 및 150cc 배기량의 신형 3밸브 4행정단기통 엔진으로, 150cc 모델 기준으로 판매 국가에 따라11.6~12.7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도록 만들어졌다. 최고속도는 두 엔진 모두 96km/h로 제한된다. 여기에 ABS는기본에 트랙션 컨트롤까지 갖추고 있으며, 전용으로 만들어진 전자식 계기반 등, 125cc급 스쿠터로서는 초호화급 안전/편의장비를 갖추고 있다.

가격은 기본형 모델이 한화로 약 1천만원 이상. 125cc짜리 스쿠터의 가격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엄청난가격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 특별한 베스파는 전량 수작업으로 제작되며, 생산량 자체도 많지 않다. 베스파의 아이덴티티를 잇고, 그것을 기념하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는 모델인 만큼, 그만한 대가를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엠포리오 아르마니, 프로덕트레드(Product RED)와의 협약으로 만들어진 특별 모델들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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