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온 준마 - 재규어 F-타입 시승기
상태바
영국에서 온 준마 - 재규어 F-타입 시승기
  • 박병하
  • 승인 2017.05.23 14: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규어 F-타입은 201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C-X16 컨셉트카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2014년부터 전 세계에 판매되고 있는 재규어의 스포츠 쿠페/로드스터다. 재규어 F-타입은 등장과 함께 그동안 재규어의 GT/스포츠카 포지션에 있었던 모델인 XK를 대체했다. F-타입이라는 이름은 60년대에 등장한, 이제는 전설이 된 재규어의 명차, E-타입의 뒤를 잇는다는 의미다. 비록 이 차와 E-타입 사이에는 무려 반세기라는 간극이 존재하지만, 정신적인 의미에서의 후속작임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영국에서 온 재규어의 스포츠카, F-타입을 시승하며 영국에서 온 스포츠카의 진가를 경험해 본다. 시승한 F-타입은 컨버터블 S AWD 모델이다. VAT 포함 가격은 1억 4,010만원이다.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이안 칼럼()이 주도한 F-타입의 외관 디자인은 어떠한 각도에서 마주하고 있어도 시각적인 만족감이 크다. 애스턴마틴을 빼다 박은 실루엣과 다소 미묘한 프론트 마스크로 호오가 갈리는 선대 XK와는 달리, 모든 면에서 불균형이나 과부족(過不足)을 보이지 않는다. 고전적인 미학과 현대적인 세련미, 그리고 스포츠카로서의 정체성을 조화롭고 균형 있게 양립한 데서 오는 F-타입의 외관 디자인은 근래에 등장한 스포츠카들 중에서도 가히 손에 꼽을 만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차체 전반의 형상은 앞이 길고, 뒤가 짧다. 스포티한 스타일링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롱-노즈 숏-데크 형상에 가깝게 빚어져 있다. 길지 않은 길이와 낮은 높이, 그리고 넓은 차폭은 스포츠카의 디자인으로서 모범 답안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 외에 차체의 각 부분을 이루는 선과 면들은 불필요하게 과장된 부분이 없이 아주 매끄럽게 정돈되어 있다. 시각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스포츠카로서의 스탠스와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F-타입의 외관 디자인은 정신적인 측면에서 선대로 여기고 있는 E-타입에 대한 오마주(Hommage)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뒤쪽에서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매끄럽게 흐르는 섹시한 면 처리를 시작으로, 양쪽 휀더와 중앙부가 돌출된 보닛, 둥근 형태의 싱글프레임 라디에이터 그릴에 이르기 까지, 고전으로 남은 선대의 디자인 요소를 현대적으로 멋들어지게 재해석했다. 특히 보닛의 경우, 좌우에 배치된 공기토출구는 물론, 앞으로 열리는 것까지 재현해 놓았다. 가운데에 위치한 테일파이프 역시 고전적인 매력을 자아내는 요소다.

매끄러운 형상의 헤드램프는 스포티한 인상을 주면서도 지나치게 공격적인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차의 전체적인 외관 디자인에 잘 녹아 들어 있다. 검정색 매시 타입 라디에이터 그릴 한 구석에는 S엠블럼이 붙어 있고, 그 양옆으로 대형의 공기흡입구가 자리하여, 스포츠카의 당당한 인상을 자아낸다. 도어 핸들은 잠김이 풀리면 전동으로 돌출되는 형태다. 또한, 세련미 넘치는 테일램프는 F-타입의 외관 디자인에서 가장 인상적인 디테일 중 하나다. 이 외에도 트렁크리드 끝부분은 전동식으로 작동하는 팝업형 리어 스포일러가 장착되어 있다.

시승하게 된 F-타입 컨버터블 모델은 그야말로 2시터 로드스터에서 가장 모범적인 조형미를 뽐낸다고 말할 수 있다. 전자동으로 작동하는 소프트톱을 오픈하면, 2시터 로드스터의 정석에 가까운 스타일과 마주하게 된다. 또한, F-타입 컨버터블의 소프트톱은 차체의 디자인과 놀라울 정도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고전과 현대의 미학이 공존하는 외모에서 눈을 떼고, 실내로 눈을 돌리면, 간결하면서도 스포티한 분위기가 물씬 흐르는 대시보드와 마주하게 된다. F-타입의 실내 디자인은 스포츠카의 스포티한 분위기가 살아 있다. 이와 더불어 실내 곳곳을 질 좋은 가죽으로 마무리하여, 감성품질 면에서도 공을 들였다.

어두운 장소에서 F-타입의 문을 열고 실내에 발을 들이면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바로 시동 버튼. 문을 열면, 시동버튼이 마치 심장 박동의 리듬으로 점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순히 점등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독특한 점멸 패턴을 넣은 것은 퍼포먼스와 스피드를 사랑하는 영국인들의 독특한 감성 코드로 생각된다.

스티어링 휠은 심플한 디자인의 3스포크 형태다. 좌우 스포크에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버튼들이 배치되어 있다. 적당히 굵직한 림 덕분에 우수한 그립감을 제공하며, 뒤편에는 오렌지색으로 마감된 시프트 패들이 멋스러움을 더한다. 계기반은 큼직한 폰트와 단순한 디자인을 적용하여, 시인성이 좋다. 센터페시아에는 재규어의 터치스크린식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다. 중앙의 에어컨 송풍구는 에어컨이 작동 중일 때 돌출되고, 에어컨을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내부로 숨어 들어간다.


좌석은 운전석과 조수석의 단 두 개. 양쪽의 좌석은 모두 일체형 헤드레스트가 붙은 스포츠 버킷 시트이며, 양질의 가죽으로 마감되어 있다. 허리받침과 볼스터 조절 기능을 포함한 전동 조절 기능을 지원하며, 3단계의 열선 기능을 제공한다. 스포츠 시트이면서도 의외로 안락한 감각의 착석감이 인상적이다. 물론, 격렬한 기동에서 몸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잡아주는, 스포츠 시트 본연의 임무에도 충실하다.

트렁크는 F-타입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아무리 스포츠카가 주행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차종이라 하더라도, 로터스 엑시지 같은 트랙 지향의 스포츠카가 아닌 이상, 기내용 수트케이스 정도는 수납이 가능한 것이 정상인데, F-타입의 트렁크에는 노트북용 가방 몇 개면 꽉 차고 만다. 소프트톱을 위한 공간을 따로 분배하여 짐의 적재 유무가 소프트톱의 전개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 만든 것은 좋지만, 내부가 지나치게 얕고, 공간의 설계도 비효율적이다. 

시승한 F-타입은 F-타입 S 컨버터블 AWD 모델로, 수퍼차저가 장착된 배기량 3.0리터의 V6 가솔린 엔진을 심장으로 한다. 이 엔진은 S 모델을 위한 고사양 V6 엔진으로, 380마력/6,500rpm의 최고출력과 46.9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엔진에서 발생한 동력은 ZF의 자동8단 변속기를 거쳐 재규어의 상시사륜구동 시스템을 통해 네 바퀴에 전달된다.

심장박동의 리듬으로 점멸하는 재규어 F-타입 S의 시동 버튼을 누르면, 엔진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깬다. 냉간에서는 소음이 다소 크지만, 적정한 수준으로 예열이 되면 소리가 제법 잦아든다. 소프트톱을 닫고 있을 때에는 적당한 정도의 방음을 보여준다. 간혹 약간의 울림이 들려오는 점만 제외하면, 일상적인 운행 환경에서 불필요하게 자극을 주는 편은 아니다.

승차감은 단단한 편이다. 스포츠카에게 있어서는 정석에 가까운 감각이다. 노면의 요철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물론, 융통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어서 그렇게까지 불편하고 딱딱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적당히 소프트한 승차감을 선호하는 운전자에게는 다소 거슬릴 수 있지만, 차의 성격을 이해하는 운전자에게는 도리어 기쁨이 될 수도 있다.

다이나믹 모드로 주행 모드를 전환하고, 스로틀을 최대로 개방하여 가속을 개시하면, 박력 넘치는 배기음과 함께 차체가 전방으로 쏜살같이 나아간다. 8단 자동변속기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속도계의 바늘이 매서운 기세로 치솟으며, 엔진의 회전수와 운전자의 심장박동수도 함께 오른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올라서는 데에는 5초도 필요하지 않다. 스포츠카가 주는 가장 순수한 기쁨 중 하나인 짜릿한 가속을 일말의 아쉬움 없이 즐길 수 있다.

특히, F-타입 S의 배기음은 그야말로 각별한 맛이 있다. 격렬하고 짜릿하다는 말 이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다. 저회전에서는 무게감이 있는 소리를 내고, 고회전으로 올라갈수록 앙칼진 울음소리를 토해낸다. 여기에 가속 페달에서 발을 놓으면 터져 나오는 미스파이어링(misfiring) 연출까지 더해지면, 오디오 시스템이 필요 없을 만큼의 멋들어진 곡이 하나 완성된다. 소프트톱을 열고 가속을 하면, 이 멋들어진 배기음이 귓전에 직접 쏟아져 들어오는 덕분에 짜릿함이 한층 배가된다.

수퍼차저를 사용하는 점 덕분에 몇 가지의 이점도 있다. 수퍼차저는 터보와는 달리, 엔진에 직결되어 구동하므로, 터보 엔진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터보랙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속 페달의 조작 응답성이 일정하게 유지되며, 이 덕분에 필요할 때 힘을 끌어다 쓰기 쉽다. 출력 향상과 연소 효율 면에서는 터보보다 부족한 점이 있지만, 스포츠카의 엔진에 사용되는 과급기로서는 터보와는 또 다른 특색과 매력을 보여준다.

또한, ZF의 자동 8단 변속기는 일상에서는 부드럽게 변속을 하다가도, 다이나믹 모드 전환 후 본격적으로 차를 거칠게 몰아붙이기 시작하면, 자동변속기로서는 스포츠카에 걸맞은 역량을 보여준다. 특히, 고회전에서 변속을 할 때에도 더블클러치 변속기가 딱히 부럽지 않을 만큼의 능력을 보여준다. 

코너링은 스포츠카로서 기대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보여준다. 재규어가 자랑하는 가벼우면서도 탄탄한 알루미늄 차체구조와 단단하게 조여진 서스펜션, 그리고 상황에 따라 전후 구동력을 실시간으로 배분하는 똑똑한 상시사륜구동 시스템의 유기적인 협주를 이룬다. 네 개의 타이어는 코너에 진입하여 탈출할 때까지 끈질기게 노면을 붙들어 매며, 고저차가 높은 코너에서도 악착같이 버텨내는 섀시는 주행 내내 신뢰감과 만족감을 안겨준다.

조종성도 인상적이다. 스티어링 시스템은 전동식으로서는 일체감이 있고, 이질감이 적은 편이며, 준수한 성능의 브레이크와 함께, F-타입을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이다. 스티어링 휠을 감을 때마다 앞바퀴가 운전자가 의도한 바에 따라 착착 몸을 비트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코너의 정점에 도달하여 재가속을 시도하면 정직한 응답성의 파워트레인이 차를 능숙하게 밀어준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서 몸으로 파고들어 오는 감각은 독일식의 정교한 전자장비들의 향연이 아닌, 순수한 기계가 주는 질감에 더 가깝다. 그만큼 단순하기에 운전자가 신경을 써야 할 부분도 더 많다. 그리고 그만큼 더욱 순수하게 운전을 즐길 수 있다.

F-타입의 연비는 고성능의 스포츠카로서는 무난한 정도를 보여준다. 공인연비는 도심 7.4km/l, 고속도로 10.4km/l, 복합 8.5km/l다. 시승을 진행하며 트립컴퓨터로 기록한 구간별 평균 연비는 혼잡한 도심에서는 5.4km/l를, 고속도로를 100km/h로 정속주행한 경우에는 공인연비에 약간 못 미치는 10.9km/l의 평균연비를 기록했다. 배기량에 비해 고출력을 내는 엔진을 탑재하고 있는 만큼, 기본적으로 고급휘발유를 요구하기 때문에 장거리 운행 시에 주의가 필요하다.

재규어의 스포츠카 F-타입은 고전과 현대가 공존하는 멋들어진 스타일링, 짜릿한 가속과 우수한 제동력, 탄탄한 코너링 실력에 이르는 스포츠카의 미덕을 한 치의 모자람 없이 두루 갖춘, 제대로 된 혈통을 가진 준마다. 비록, 일상에서의 편의성 면에서 경쟁 모델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정도(定道)에 가까운 스포츠카를 찾고 있다면 F-타입은 충분히 그러한 기대에 부응한다. 정통파 스포츠카의 디자인, 퍼포먼스, 그리고 감성적인 접근이라는 세 가지를 빠짐 없이 갖춘 F-타입은 성능과 감성을 본위로 하는 스포츠카로서 후회 없는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