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반을 닮은 MPV - 시트로엥 그랜드 C4 피카소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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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반을 닮은 MPV - 시트로엥 그랜드 C4 피카소 시승기
  • 박병하
  • 승인 2017.04.2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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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몇 년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캠핑 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덕분에 국내의 레저/아웃도어 시장의 폭은 비약적으로 넓어졌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국내 시장에는 유럽, 혹은 북미산 카라반이나 모터홈과 같은 온갖 종류의 RV(Recreational Vehicle)들이 유입되었다. 특히, 견인하는 형태의 유럽식 카라반은 북미식의 트레일러 캠퍼 등에 비해 취급이 용이하여 다른 RV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보급되었다.

유럽식 카라반은 북미의 캠핑용 트레일러 등에 비해 크기에 제약이 있는 편이다.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몇 세기가 넘도록 오래된 도시와 가도(街道)가 남아 있는 유럽의 도로 환경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의 카라반은 북미형 캠핑 트레일러에 비해 작은 크기를 갖는다. 때문에 유럽의 카라반은 한정된 규격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기발하고 재치 있는 아이디어들로 가득하다. 또한, 햇볕을 사랑하는 유럽인들의 요구에 맞춰, 채광 효과를 극대화하는 설계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자동차의 세계에서도 유럽의 카라반과 같은 시원스럽고 위트 넘치는 차가 존재한다. 그 차가 바로, 본 시승기의 주인공인 시트로엥의 그랜드 C4 피카소다.

 시트로엥의 그랜드 C4 피카소는 지난 2014년부터 한국 시장에 한불모터스를 통해 정식으로 한국에 상륙한 바 있다. 또한, 수입차 업계 유일의 7인승 MPV(Multi-Purpose Vehicle)로, 시트로엥 브랜드에서 가장 꾸준한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올 해에는 지난 해 유럽에서 선공개된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시판하기 시작했다. 시승한 그랜드 C4 피카소는 1.6리터 BlueHDi 엔진을 실은 1.6 Feel 모델이다. VAT 포함 가격은 3,990만원.

지난 해 페이스리프트 작업을 마친 그랜드 C4 피카소의 디자인 변화는 주로 전면부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범퍼의 외형이 크게 변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존에 비해 한층 돌출되어 있고, 헤드램프 주변을 야구선수처럼 검게 칠했다. 이 때문에 헤드램프 자체가 달라진 느낌을 준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실질적으로 라디에이터 그릴의 역할을 하는 상하단 공기흡입구의 크기를 크게 키운 것이다. 이 덕분에 기존에 비해 한층 박력있는 인상을 준다. 대체로 매끈했던 느낌을 주었던 기존 모델도 톡톡 튀는 얼굴이었는데,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더욱 튀는 얼굴이 되었다.

물론, 이 외에는 디자인 상의 변화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더블 셰브론(Double Chevron) 엠블럼을 통째로 이용한 라디에이터 그릴, 그리고 그 양쪽 내부에 자리한 LED 주간주행등은 그대로다. 둘로 나뉜 A필러는 물론, A필러에서 시작하여 루프랙을 지나 D필러까지 이어지는 메탈릭 페인팅은 여전히 특징적이다. 그리고 그야말로 유리로 뒤덮여 있다고 해도 무방한 차체의 상부 구조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변화의 양은 적지만, 그랜드 C4 피카소의 외관은 출시한 지 3년을 지나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놀랍도록 신선하며, 다른 차와 닮은 구석을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인 개성을 뽐낸다.

시승차는 1.6리터 엔진을 실은 Feel 트림으로, 2016년을 기해 재편된 시트로엥의 트림 구성 중 하나이자, 전반적으로 엔트리급 구성에 속한다. 따라서 기존 그랜드 C4 피카소에서 볼 수 있었던 일명, `3D 리어램프`는 장착되지 않는다. 휠은 기존에 사용했던 17인치 휠을 사용하고 있으며, 타이어는 205/55R17의 미쉐린 프라이머시 HP를 사용하고 있다.

실내 역시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놀랍도록 미래지향적이고 독특한 스타일이다. 대시보드 둘레의 디자인은 여전히 컨셉트카를 방불케 하는 독특함을 자랑한다. 그나마 현실과 가까워 보이는 구조물이라면 스티어링 휠과 페달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기어 레버 조차도 평범함을 거부한다. 컬럼 마운트 타입의 셀렉터 레버는 마치 펜대와 같은 느낌을 준다. 생김새와는 달리, 조작이 간편한 점이 인상적이다.

 중앙의 상하로 나뉘어진 디스플레이는 각자 역할이 다르다. 상단의 디스플레이는 10인치급으로, 계기반의 역할을 수행한다. 시원스런 크기와 우수한 시인성으로 각종 정보를 제공한다. 하단의 디스플레이는 그랜드 C4 피카소의 대부분의 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컨트롤 패널의 역할을 수행한다. 공조장치, 내비게이션, 멀티미디어, 전화 등의 다양한 기능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구조의 UI(User Interface)를 가지고 있으며, 3종의 UI 디자인(테마)이 준비되어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반응과 처리속도가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다소 느린 편이라는 데 있다. 오디오 시스템의 품질도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여전히 독보적인 전방 시야와 개방감도 인상적이다. 적어도 `개방감` 측면에서 그랜드 C4 피카소를 맞상대할 수 있는 차종은 컨버터블이나 무개차(無蓋車, 지붕이 없는 차)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상쾌하기 짝이 없는 전방 시야를 위해, 전방을 가리는 요소를 철저하게 배제했다. 그랜드 C4 피카소의 운전석 시트 포인트는 기본적으로 높은 편이며, 대시보드는 낮게 디자인되어 있다. A필러는 둘로 나뉘어져 있어, A필러에 의한 시야 차단을 최소화하고 있다.

여기에 윈드실드의 상단을 운전자의 시야 바깥까지 확대한 시트로엥 특유의 `파노라믹 윈드실드`를 채용했다. 선바이저를 뒤로 완전히 젖히면, 윈드실드 상단이 운전자의 시야에 들어 오지 않는다. 이 덕분에 마치 무개차에 오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비행기의 캐노피나 보트의 조종석도 유사한 느낌이다. 독보적으로 광활한 전방 시야는 경험이 적은 운전자도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운전에 임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는 다양한 형태의 창을 이용해서 개방감과 채광 효과를 극대화하는 유럽식 카라반의 설계사상과 닮은 점 중 하나다.

이러한 가운데 그랜드 C4 피카소의 실내에서 가장 빛나는 점이 있다면 바로 공간설계다. 미래지향적 디자인에 가려져 있는 공간에 대한 배려는 한정된 규격 안에서 최적의 공간을 확보하는 유럽식 카라반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기본적인 내부 설계가 공간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창을 통해 조성되는 뛰어난 개방감으로 체감 공간을 확대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여기에 대시보드와 도어 패널, 앞좌석 등받이 뒷면의 디자인은 무릎에 걸리는 공간을 최소화하는 형상을 통해 체감 공간을 더욱 증대한다. 이 덕분에 그랜드 C4 피카소는 차체에 비해 넉넉한 수준의 실내 공간과 거주성을 갖는다. 평면에 가깝게 만들어진 바닥 역시 체감 공간을 넓히는 효과를 준다.

이 뿐만 아니라, 곳곳에 배치한 기발하고 다양한 수납공간 역시 돋보인다. 가령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플로어 콘솔 박스의 경우, 넉넉한 용량은 기본에, 필요 없을 때에는 탈/부착도 가능하다. 콘솔 박스를 들어 내면, 가방을 놓을 수 있는 정도의 선반이 나타난다. 센터페시아 하단에는 USB, AUX, 12V전원 등, 각종 전원 포트가 내장되어 있으며, 내부에 스마트폰 등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뿐만 아니라, 4개의 도어에는 각각 대용량의 도어포켓이 마련되어 있으며, 2열좌석의 바닥에도 수납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심지어 스티어링 컬럼 하단에는 수첩이나 다이어리 등을 넣어 둘 수 있는 트레이가 존재한다.

시승한 그랜드 C4 피카소의 좌석은 모두 직물로 마감되어 있다. 직물의 촉감은 약간 거친 느낌이지만 뻣뻣하지는 않다. 앞좌석은 운전석과 조수석의 착좌부가 서로 대칭을 이루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양쪽 좌석은 펌핑식 높이조절장치와 팔걸이가 설치되어 있으며, 운전석은 수동 다이얼식, 조수석은 레버식으로 각도를 조절한다. 허리받침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착좌감은 무난한 수준. 열선 기능을 제공한다.

오늘날 승용 자동차에서 2열좌석은 일반적으로 4:2:4 비율을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랜드 C4 피카소는 이에 정면으로 대항하듯, 3등분으로 설계되어 있다. 3개의 좌석은 모두 전후 거리와 등받이 각도를 따로 조절할 수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4:2:4 비율에 비해 좌석 각각의 크기가 조금씩 더 작기 때문에 착좌감은 덩치가 큰 성인 남성에게는 다소 불편할 수 있다. 3열 좌석은 좌석 위치가 지나치게 높고, 공간 안배가 거의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구색을 갖추기 위한 용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트렁크 공간은 3열좌석까지 모두 전개한 경우, 130리터. 하지만 3열 좌석을 바닥으로 접어 넣으면, 2열 좌석의 전후 거리에 따라 최소 575리터에서 최대 704리터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2열 좌석을 모두 접으면 최대 1,843리터에 달하는 공간이 조성된다.

시트로엥 그랜드 C4 피카소는 유로 6 규제를 만족하는 고효율의 신형 BlueHDi엔진을 심장으로 한다. 이 엔진은 현재 신형의 푸조 모델들에 두루 채용되고 있는 엔진으로, 최고출력은 120마력/3,500rpm, 최대토크는 30.6kg.m/1,750rpm이다. 변속기는 아이신(AISIN)의 6단 자동변속기를 사용하고 있다.

시트로엥 그랜드 C4 피카소는 디젤 엔진을 사용하고 있는 MPV로서는 비교적 무난한 수준의 정숙성을 보인다. 비슷한 배기량의 디젤엔진을 얹은 준중형 승용차와 비슷한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외부 소음의 유입이나 내장재에서 오는 잡소리는 예상 외로 적은 편이지만, 파워트레인으로부터 유입되는 소음이 다소 큰 편이다. 승차감은 탄탄한 설정의 승용차와도 유사한 느낌을 준다. 굵직하고 든든한 느낌과는 거리가 있지만, 충분한 안정감을 준다. 융통성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운전자나 동승자를 괴롭힐 만한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안정감 위주의 설정 덕에, 속도가 높아지거나 회전구간을 통과할 때의 불안감이 적다.

7인승 좌석을 갖춘 MPV인 그랜드 C4 피카소에게 1.6리터 디젤 엔진의 힘은 부족하지 않다. 짐을 많이 싣고 있어도 충분한 초기 발진 가속력을 제공한다. 일상적인 속도 대역인 60~80km/h는 물론, 고속도로 제한속도인 100~110km/h 까지 경쾌한 감각의 가속이 이어진다. 1,750rpm이라는 저회전 구간에서 이미 정점에 달하는 최대토크 덕에, 초기 가속이 그리 힘겹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그 이상의 속도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눈에 띄게 힘이 빠지며, 속도를 올리는 데 인내가 필요해진다. 일상적인 운행에 딱 `필요충분`한 정도의 동력 성능이라 할 수 있다. 또한, MPV임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인 승용차가 전혀 부럽지 않은, 발군의 고속주행 안정감을 지니고 있다.

반면, 코너링에서는 기대 이상의 운동 성능을 보여준다. 어지간한 승용차가 부럽지 않은 정도다. 스티어링 휠의 조향감은 다소 가볍지만, 아주 헐겁지는 않아서 운전자의 의도를 잘 전달한다. 차체의 반응도 경쾌하며, 안정감이 있다. 다소 높은 지붕을 가졌음을 감안하면 롤이 그리 크지 않고, 하중이 한 쪽으로 편중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탄탄하게 차체를 받쳐준다. 탄탄하고 균형 잡힌 섀시 설계와 더불어, PSA의 EMP2 플랫폼이 갖는 저중심 설계의 이점 덕분에 의외로 차를 다루는 맛이 나쁘지 않다. 물론, 스포츠 세단처럼 몰아 붙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7인승 MPV로서는 꽤나 준수한 솜씨라고 할 수 있는 정도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둔다.

시트로엥 그랜드 C4 피카소는 디젤 파워트레인을 싣고 있는 PSA 계열 차종들의 공통점인 우수한 연비를 지닌다. 공인연비는 도심 14.0km/l, 고속도로 16.7km/l, 복합 15.1km/l이다. 하지만, 시승을 진행하며 트립컴퓨터에 표시된 연비는 이와는 달랐다. 도심의 경우, 혼잡할 때에는 11.0km/l를 조금 웃도는 정도지만, 소통이 원활한 경우에는 공인연비인 14.0km/l를 상회하는 값을 나타낸다. 고속도로를 100km/h로 정속주행하는 경우, 공인연비를 한참 상회하는 23.7km/l에 달하는 평균 연비를 보였다. 도심에서는 업계에서 손꼽히는 완성도를 자랑하는 PSA의 3세대 스톱/스타트 시스템이 크게 기여한다. 즉각적인 시동과 함께, 짧은 타이밍에 가다서다가 반복되어도 충실하게 작동해주는 덕분이다.

시트로엥 그랜드 C4 피카소는 단순히 디자인만 봐서는 그저 비범한 스타일의 MPV로만 보인다. 오직 시트로엥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상천외하기 짝이 없는 그랜드 C4 피카소의 외양은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지금도 여전히 독창적이다. 한편으로는 매우 낯설고, 한편으로는 그 비범함에 끌리는 면도 있다. 하지만 MPV는 외형 외에도 실용성의 측면에서 여러가지로 고려해야 할 점들이 많다. 그리고 시트로엥은 그러한 고민을 가장 심도 있게 해 온 제조사 중 하나다. 외모 못지 않게 기상천외한 실내 곳곳에 녹아 있는 세심한 공간 설계는 한정된 차체 크기를 최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그들의 심도 있는 고민과 위트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독보적이라 할 만한 개방감 역시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매력이다. 그래서 시트로엥의 그랜드 C4 피카소는 경험하면 할수록 재치 있는 유럽의 카라반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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