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스 에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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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 에보라
  • 안민희
  • 승인 2012.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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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는 멋진 배기음을 연주하지 않는다. 강한 출력의 엔진도 얹지 않았다. 하지만 로터스는 수준 높은 자동차 브랜드 그룹에 낄 자격이 있다.

 

모터스포츠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뒀으며, 잦은 시련 끝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끝까지 지켜온 괴짜들이다. F1에선 출력보다 가벼움과 공기역학을 이용해 승부를 걸었다. 그렇게 제작사 부문 7회 우승이란 대단한 업적을 거뒀다.

 



하 지만 그들이 내놓는 승용차까지 괴짜에 가까웠다. 쉽게 선택하긴 어려운 차였다. 그래서 로터스는 불안했다. 창업자 콜린 채프먼 사후에는 이리저리 팔려 다녔다. 확장에 여념이 없던 GM이 사들였다. 하지만 대량생산 기업의 눈으로 어찌 로터스를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GM은 로터스를 내놓았다.

부 가티의 재림을 꿈꾸던 이탈리아 사업가 로마노 아티올리가 사들였다. 하지만 부가티 EB110의 쓰디쓴 실패 후 로터스는 다시 팔려간다. 말레이시아의 자동차 기업 프로톤이 로터스를 인수했고, 로터스는 엘리스를 내놓으며 다시 날개를 폈다. 그 와중에도 반세기가 넘게 이어진 원칙을 충실하게 지켰다.

로터스의 아버지 콜린 채프먼의 말이다. “모든 것을 덜어내고 가벼움만 더하라.”


20 세기 GT. 에스프리의 운전석에 오르는 순간 로터스 감각을 느낀다. 실내에 쓰인 가죽은 “나는 고급 GT에요”라고 말하지만, 왼발을 편히 놔둘 수도 없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자니 좁은 실내 공간과 높게 솟은 센터 터널이 가로막는다. 오로지 운전에 집중하고 달리라는 듯 나를 옥죈다. 오로지 가벼움만 생각하고 만든 모델에 여유는 없다. 무게를 늘릴만한 편의 사양은 배제했다. 몸놀림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다.

스포츠카도 아닌 GT를 이렇게 만들었다. 그만큼 로터스는 취향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차다. 하지만 그만큼 입지도 좁다. 성질을 둥글려 다가서기보다 모난 자신을 좋아해줄 사람을 기다리는 차다.




에보라도 마찬가지다. 로터스 성질 가득한 차다. 딱 보면 작은 스포츠카다. 반면 그들은 엘리스가 퓨어 스포츠카고 에보라는 GT라고 얘기한다.

편 히 먼 길 달려야 하는 GT지만 스포츠 성능 뽐내려다 상당히 작아졌다. 차체 길이만 따지면 현대 엑센트보다 28㎜짧다. 4342㎜다. 휠베이스도 2575㎜로 5㎜ 길 뿐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상상이 어렵다. 너무 작다는 부정적인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염두에 둘 것이 있다. 핸들링 머신이라 불리는 포르쉐 카이만의 크기는 4347㎜다.

에 보라는 차체 가운데 엔진을 얹었다. 앞뒤 무게 중심을 나누는 데는 유리하다. 반면 실내 공간이 좁아진다. 게다가 엔진을 싣고 남을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에보라는 뒤로 갈수록 부채꼴 마냥 너비를 벌린다. 최대 1900㎜에 달한다. 넓게 바닥에 붙어 있으니 안정감이 느껴질 정도다.

범 퍼 가운데는 웃는 입처럼 구멍을 뚫었다. 귀엽게 보이지만 로터스 전통 중 하나다. 공기를 듬뿍 마셔 인터쿨러로 보낸다. 보닛 가운데에는 크게 구멍을 내고 그물망으로 덮었다. 공기 역학적인 요소도 있겠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다. 헤드램프는 치켜 올려 다듬었다. 아래 반짝이는 방향 표시등은 눈물샘 마냥 작게 숨겼다.

마치 코카콜라 병처럼 굴곡을 다듬었다.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가고 뒤를 볼록하게 부풀려 볼륨감을 더했다. 문의 끝을 경계로 뒤 펜더가 어깨처럼 솟아오르며 넓게 펼쳐진다. 엔진을 넣고, 폭이 넓은 타이어를 달기 위해서다.


문손잡이 뒤로 그물망 처리한 공기 흡입구가 있다. 엔진이 뒤에 있으니 이렇게 공기를 빨아들여 보낸다. 트렁크 도어 가운데 창으로 엔진 커버가 보인다. 둘레는 검은색 패널로 둘렀고 곳곳에 열을 내보내기 위한 그물망을 달았다.

치켜 올려 마무리한 꽁지에는 일체형 리어 스포일러와 리어 디퓨저를 달았다. 두벌의 머플러는 가지런히 모아 리어 디퓨저 가운데에 달았다.

테일램프는 원형으로 좌우 2개씩 달았다. 바깥쪽은 브레이크 등 안에 방향 표시등을 겹쳐 달았고, 안쪽은 후진등이다. 테일램프 사이로 LOTUS 글자가 빛난다.


에 보라를 보고 있자면 새침때기 아가씨 같다. 속내도 그렇다. 가죽으로 눈 닿는 곳마다 감싸 고급스럽다. 하지만 소심한 듯 좁다. 욕조형 프레임에 로커패널마저 두터워 쉽게 자리하긴 어렵다. 키를 꽂고 돌리자 타코미터와 속도계의 바늘을 끝까지 돌리며 인사를 건넨다. 계기판 양쪽에는 붉은색 정보 디스플레이를 달았다.

스 티어링 휠은 작고 아담하다. 스티어링 휠 양쪽으로 6개씩 버튼을 놓았다. 스포츠 모드, DSC 해제, 주유구 열기 등의 기능을 담았다. 대시보드 가운데는 내비게이션을 달았다. 다만 사외품인 티가 크게 난다. 에어컨 송풍구도 마찬가지다. 쉐보레 스파크에 쓰인 것과 같다. 고급스러움이 무너진다. 부품 대리점 가끔 들리며 뒷마당 차고에서 조립하던 백야드빌더 혈통의 한계다.


센터터널은 가죽으로 감싸고 알루미늄을 덧댔다. 가장 위쪽에는 에어컨 조작부, 그 아래로 변속기 레버와 사이드 브레이크를 일렬로 놓았다. 자동변속기 모델은 변속기 레버 대신 변속 버튼을 놓았다.

뒷좌석은 2 2 구성으로 상당히 좁다. 머리 공간도 좁을뿐더러 등받이는 직각에 가깝다. 엉덩이 받침도 매우 짧다. 성인 남자의 팔꿈치에서 주먹 쥔 끝까지 채우지 못할 정도다. 만약 아이를 태워도 가까운 거리까지다.

실 내가 좁아도 운전하는 덴 문제없다. 어떤 차나 운전석 공간은 충분히 있지 않는가. 좌석과 스티어링 휠, 페달의 위치가 중요하다. 운전 자세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다. 자세만 좋으면 불편함은 없다. 레카로 시트로 몸을 단단히 붙드는 것은 좋다. 반면 왼발을 편히 놓을 공간이 없다. 욕조형 프레임인데다 로커패널이 페달부분까지 좁혀 들어간다. 그래서 풋 레스트 조차 없다. 왼발 브레이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라는 주문이다.

엔진은 토요타의 V6 3.5L를 그대로 가져왔다. 캠리에 실리는 엔진이다. 변속기 또한 마찬가지다. 수동 6단과 자동 6단의 두 종류를 맞물린다.


로터스는 엔진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 다른 회사에서 엔진을 가져와 손봐 얹는다.

현재 로터스의 모든 모델에는 토요타 엔진이 들어간다. 로터스는 내구성 좋은 토요타 엔진을 얹었다고 어필하고 있다. 또한 토요타는 로터스와 같은 스포츠카에 자사 엔진이 들어간다고 자랑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만족할만한 관계다.

로 터스의 손을 거쳤음에도 제원 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ECU를 튜닝해 최고출력은 280마력(6400rpm). 최대토크는 34.2㎏·m(4700rpm)이다. 하지만 상위 모델인 S를 택하면 큰 차이가 난다. 로터스 엔지니어링의 슈퍼차저를 더해 최고출력을 350마력(7000rpm)으로 끌어올렸다. 토크 또한 40.8㎏·m(4500rpm)으로 올랐다.

높은 출력을 기대한다면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로터스의 차체 기술은 아쉬움을 날려버릴 만큼 훌륭하다. 엔진은 비록 사올지언정 차체에선 그들의 아이디어가 빛난다.

에보라는 로터스가 오랜만에 맘먹고 새로운 플랫폼으로 만든 차다. 앞으로 이 플랫폼을 분화해서 다른 차에도 적용해야한다. 그만큼 아낌없는 정성을 쏟았다. 크게 만들 수도 있다. 향후 에스프리를 되살리기 위해서다.

하 지만 에보라는 “더 크게”를 외치는 시류와는 반대 길을 택했다. 프레임의 무게가 200㎏에 불과할 정도다. 새로운 방식도 도입했다. 욕조형 메인 프레임을 중심에 얹고 앞뒤로 서브 프레임을 볼트로 붙인다. 덕분에 서로 다른 소재도 쓸 수 있게 됐다. 앞과 가운데 프레임에는 알루미늄을, 뒤쪽 프레임에는 아연도금 강판을 썼다.

에 보라의 장비는 주행 위주로 짜였다. AP레이싱의 앞뒤 4피스톤 캘리퍼, 빌스타인 댐퍼, 레카로 스포츠 버킷 시트, 바이제논 헤드램프, 피렐리 P-제로 타이어 같은 주행용 장비들이 목록을 채웠다. 안전 사양은 ABS, 트랙션 컨트롤, 앞좌석 듀얼 에어백 정도다.

추가로 편의 사양을 더해 원하는 차를 만들 수 있다. 한국 시장의 특성을 반영한 코리안 패키지가 있다. 투어링, 프리미엄, 스포츠의 3가지 패키지를 하나로 묶었다. 속칭 ´풀 옵션´에 가까운 구성이다.

코 리안 패키지를 선택하면 터치스크린, 내비게이션, 크루즈 컨트롤, 후방 감지 센서, 타이어 공기압 체크 시스템, 실내 가죽 색상 선택 및 가죽 마무리, 스포츠 모드 스위치, 타공 브레이크 디스크 등의 장비가 따라온다. 후방카메라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에보라의 뒤쪽 시야는 매우 좁다. 뒤가 엔진룸으로 막혀있어 창문이 작다. 게다가 엔진이 볼록 튀어 나와 시야를 더 가린다.


코 리안 패키지를 선택하면 가격은 성큼 오른다. 2000만 원이 넘게 오른다. 에보라의 가격은 1억2400만 원. 코리안 패키지를 더하면 1억4730만 원이다. 에보라S는 1억4500만 원. 코리안 패키지를 더하면 1억 6545만 원이다.

가 격은 진지하게 고민해볼 문제다. 에보라는 참으로 매혹적인 디자인을 갖췄다. 게다가 전통 있는 로터스 가문의 최신작이다. 즐거운 달리기라는 명제를 내세워 마음을 파고든다. 하지만 시장은 누구에게나 치열하다. 이 정도 가격대까지 올라오면 모든 라이벌이 자신의 특별한 매력으로 호소한다.

단 적인 예로 포르쉐 911을 비교해본다. 능률적으로 스피드를 추구한다. 게다가 수많은 이들의 동경대상이다. 조립 품질 또한 훌륭하다. 오랜 시간 숙성된 완성도는 최고에 다다랐다. 속도광과 최고의 차를 꿈꾸는 모두를 아우른다. 에보라가 슈퍼차저를 얹는대도 911과 맞설 수 있을까?

하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다. 두 모델 모두 각자가 추구하는 쪽에서 최고를 향했다. 타협 없이 목표를 맞췄다. 그거면 충분하다.

차를 향한 열망에 어차피 이성은 통하지 않는다. 감성이 결정할 문제다.

글 안민희│사진 로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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