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기아 캐피탈 편

기사입력 2018.08.0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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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 자동차 세제 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탄생 이래 지금까지 국내 자동차 시장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준중형차’. 소형차는 아니면서 ‘중형차에 준한다’는 이 괴이쩍은 표현이 정착된 지도 어느덧 30년을 넘어가고 있다. 준중형차는 차의 크기를 ‘계급’으로 여겨 큰 차를 선호하고 작은 차를 홀대하는 소비 성향과 80년대의 ‘3저(저유가, 저금리, 저환율)’ 호황으로 인한 소득 향상과 맞물려 각광을 받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준중형차는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에 조금이라도 더 큰 차를 원했던 대한민국 소비자들의 심리를 통렬하게 파고들었다.


현재의 준중형차는 국제 기준으로 컴팩트카(Compact Car) 내지는 C~D세그먼트 정도의 크기로 정착된 지 오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이른 바 ‘1세대’ 준중형차들은 진짜로 ‘중형차의 차체’에 ‘소형차의 엔진’을 실은 차로 출발했다. 준중형차라는 표현이 나타나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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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미에서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준중형차’는 현대자동차가 1982년에 내놓은 ‘스텔라(Stella)’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우자동차도 1983년 ‘로얄XQ’를 내놓으며 이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제법 늦어지기는 했지만 기아자동차에서도 1세대 준중형차에 해당하는 모델을 내놓으며, 준중형차의 3자 대결 구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 역할을 맡은 차가 바로 기아자동차의 ‘캐피탈(Capital)’이다.


콩코드를 바탕으로 개발된 기아자동차 최초의 준중형차

기아자동차가 처음으로 준중형차 캐피탈을 내놓은 것은 1989년의 일이다. 현대 스텔라의 출시 시기가 1982년이고 대우 로얄XQ의 출시 시기가 1983년인 것을 보면, 경쟁자들에 비해 6~7년이나 데뷔가 늦었다. 캐피탈의 데뷔가 이렇게 늦었던 까닭에는 과거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 정권 산하에 있던 국보위가 내린, ‘자동차공업 통합조치’ 때문이다.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는 국가가 나서서 자동차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가한다는 명분으로 발표되었으나 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몇 차례의 조정을 거쳤다. 그리고 종국에는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절충안을 통해 기어코 시행에 이르게 되었다.

이 절충안이라는 것은 ‘승용차의 생산을 현대자동차와 새한자동차로 이원화’하고 ‘기아자동차(당시 기아산업)는 이륜차 부문을 대림산업에 넘긴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이는 기아에게 승용차를 생산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적자로 얼룩진 혹덩어리였던 이륜 사업부를 대림에 넘긴 것까지는 좋았지만 수익성 높은 승용차 사업이 막혀버리면서 생존의 위기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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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아는 때맞춰 투입한 봉고 시리즈의 흥행으로 인해 조치가 해제될 때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 기아를 옥죄고 있었던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가 해제된 1987년, 기아는 미국 포드와 일본 마쓰다와의 공조로 개발한 소형차 프라이드(Pride)를 연초에 재빠르게 내놓았고 동년 하반기에는 중형차 콩코드(Concord)를 내놓는 등, 빠르게 승용차종을 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형차와 중형차만으로는 시장점유율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기아는 이미 80년대 초부터 ‘준중형차’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해 온 것을 지켜보면서 프라이드와 콩코드의 사이를 메워 줄 모델이 절실했다. 그리하여 콩코드의 출시 후 1년을 조금 넘어 새롭게 등장한 차가 바로 캐피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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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캐피탈은 기본적으로 중형차 콩코드의 차체에 1.5리터급의 엔진을 탑재한, 전형적인 1세대 준중형차다. 외관 디자인은 콩코드의 것을 대폭 수정한 정도였다. 전면부와 후면부의 디자인에 큰 차이를 주면서도 도어 몰딩의 위치를 휠하우스의 중간 이상으로 올려 시각적으로 콩코드와의 차별화를 꾀했다. 전/후면부의 디자인은 직선 기조에 크롬 장식을 많이 썼던 콩코드와는 달리, 곡선적인 형상의 헤드램프 및 테일램프와 더불어 바디컬러 3분할형 라디에이터 그릴 등이 특징이다. 전반적으로 콩코드의 화려함을 다소 덜어 내되, 보다 젊은 감각을 중시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면과 후면의 길이도 콩코드보다는 다소 짧게 설계했다. 이 때문에 초도 생산분 기준으로 길이는 콩코드보다 120mm나 짧은 4,430mm지만 휠베이스는 2,520mm, 전폭은 1,705mm, 전고는 1,405mm로 콩코드와 동일했다. 윤거(좌우 바퀴 사이의 거리) 또한 전륜 1,440mm, 후륜 1,430mm로 콩코드와 같았다.


캐피탈은 1989년 3월 3일 사전계약을 실시한 이래 첫 출고 날짜인 25일까지 8천대에 가까운 계약을 올렸다. 이는 출시 시기 상, 내수경제가 상당한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그에 맞춰 고가의 내구재 판매가 증가하고 있었던 시기의 혜택을 입었다는 점도 작용했다. 캐피탈은 출시 3개월 만에 누적 판매 대수 1만대를 돌파하는 등, 첫 도전이었던 준중형차 시장에서 상당한 선전을 해냈다.


캐피탈은 콩코드가 그러하였듯이, 등장 당시부터 ‘성능’을 중시하는 이미지를 강조했다. 그리고 실제 성능 역시 경쟁사의 준중형차 대비 우수하여, 자연스럽게 캐피탈의 세일즈포인트가 되었다. 캐피탈의 초도 생산 모델은 마쓰다 1.5리터급의 B5 가솔린 SOHC 엔진을 싣고 있었는데, 이 엔진의 최고출력은 95마력/6,000rpm에, 최대토크는 14.2kg.m/3,500rpm이었다. 이는 85마력에 불과한 대우 XQ엔진은 물론, 스텔라 1.5의 92마력 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게다가 캐피탈은 국산차 최초의 전륜구동 중형세단인 콩코드의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어, 국산 준중형 최초의 전륜구동 모델이기도 하다. 당시 준중형차들에 비해 강력한 성능을 냈던 엔진은 중량 및 구동손실율에서 후륜구동에 비해 더 유리한 전륜구동의 장점과 결합하여 캐피탈의 우수한 성능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 강력한 엔진과 콩코드의 탄탄한 기골을 지녔던 캐피탈은 당시 170km/h의 최고속도를 자랑했다.


여기에 데뷔 6년차였던 스텔라에 대한 피로감과 함께, 대우의 1.5리터 엔진을 탑재했던 일련의 모델들이 등장 당시부터 턱없이 부족한 동력 성능이 혹평을 받고 있었기에, 캐피탈은 데뷔 첫 해부터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대성공을 이룬다. 캐피탈의 등장은 대우 로얄 시리즈와 현대 스텔라가 대대적인 모델 재편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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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캐피탈은 한창 잘 나가고 있었던 와중에도 89년 말 내놓은 90년형 모델에서 가격을 내리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캐피탈의 첫 출시 당시부터 SLX(699만 5,000원)와 GLX(749만 5,000원)의 두 가지 모델로 팔리고 있었는데 SLX는 669만 5,000원으로 30만원을, GLX는 739만 5,000원으로 10만원을 내렸다. SLX는 기존 차 값의 4% 이상을 인하한 것이었고 GLX 모델의 경우,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고가였던 파워스티어링 시스템을 기본 적용하고도 기존 차값의 1.3%에 해당하는 가격을 더 내린 것이었다.


기아는 1990년 5월부터 캐피탈에 새로운 엔진을 도입한 1500 GTX 트림을 신설했다. 마쓰다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들여 온 새 엔진은 115마력/6,500rpm의 최고출력과 15.2kg.m/4,500rpm의 최대토크를 냈다. 이는 당시 기아가 콩코드에 사용하고 있었던 1.8리터 SOHC 엔진을 20마력이나 상회하는 고성능이었다. 적어도 국내에서 생산된 1.5리터급 자연흡/배기 엔진 중에서 캐피탈에 실린 1.5리터 DOHC 엔진의 성능을 뛰어 넘은 엔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또한 이 엔진 덕택에 기아자동차는 국내 완성차 업체 최초로 DOHC 엔진을 양산차에 사용한 제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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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엔진은 출시 초기에는 이보다 더 강력한 123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도록 설정되었다. 하지만 이후 연료펌프의 결함이 발견되면서 123마력 버전은 전부 리콜되었고 연료펌프를 교체한 이후에는 115마력으로 출력을 하향조정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엔진을 실은 캐피탈은 0-100km/h 가속을 10초에 끝낼 수 있었다. 기아는 캐피탈에 1.5 DOHC 엔진 외에도 1.8리터 엔진을 탑재한 1800 EGI 모델 또한 출시하였다. 캐피탈 1500 GTX의 가격은 789만 8천원, 캐피탈 1800 EGI의 가격은 870만원이었다.


기아 캐피탈은 큰 차체에 작은 엔진을 탑재하여 전반적인 성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1세대 준중형차들 중에서도 우수한 동력성능을 선보이며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경쟁자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는 캐피탈의 등장 1년 만인 1990년, 완전히 새롭게 개발한 준중형차 엘란트라(Elantra)를 선보이며 캐피탈의 점유율을 빼앗아 오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 대우자동차도 당초 중형급 세단으로 내놓으려 했던 신형 전륜구동 세단 에스페로(Espero)를 1.5리터 준중형 포지션으로 재조정해 출시하면서 공세를 가했다. 캐피탈은 강력한 경쟁자의 잇단 등장으로 말미암아 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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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기아에서도 1992년에 독자개발한 신형 준중형차 ‘세피아(Sephia)’를 내놓으면서 캐피탈은 시장의 관심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되었다. 다만 기아에서는 캐피탈의 사양을 재조정, 저가형 및 영업용 등으로 구성하여 1996년까지 세피아와 병행 판매되었다. 콩코드의 기골과 상대적으로 우수한 성능의 동력계로 승용차 시장에서 성능으로 승승장구했던 캐피탈은 89년 3월부터 96년 12월까지 총 23만여대가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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