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대우자동차 르망

기사입력 2018.04.1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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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대한민국의 승용차 시장은 소형차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에서 소형차의 전성시대는 80년대 중후반 3저 호황에 따른 마이카 열풍과 함께 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마련할 수 있으면서도 부족하지 않은 동력 성능, 그리고 실용성으로 소형차는 80~90년대 승용차 시장에서 크게 각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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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등장한 소형차들은 모두 그 시대를 대표하는 차종들로 남은, 진정 특별한 자동차들이다. 그 중에서도 구 대우자동차의 ‘르망(Le Mans)’은 기아자동차 프라이드, 현대자동차 엑센트와 함께 대한민국 소형차 시장의 전성시대를 상징하는 차종 중 하나다.


GM의 월드카 프로젝트로 태어난 대우자동차의 장수 소형차

대우자동차 르망은 1986년 6월에 출시된 대우자동차 최초의 전륜구동 승용차다. 그동안 이스즈 제미니를 라이센스 생산한 ‘맵시’나 오펠 레코드 기반의 후륜구동 승용차를 주로 만들어 온 대우차로서는 여러모로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 모델이라 할 수 있었다.


대우 르망의 개발은 GM이 주도한 월드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상품으로서의 자동차를 개발함에 있어서 발생하는 비용과 단가를 낮춰 제품 경쟁력을 끌어 올리고자 하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르망의 디자인과 설계는 소형차 관련 고급인력이 밀집한 독일 오펠(Opel)에서, 생산은 인건비 측면에서 유리했던 대한민국의 대우자동차에서, 그리고 판매는 당시 전세계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었던 GM에서 각각 담당했다. 서로가 특출한 분야를 전담하여 그 시너지를 노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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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망의 설계는 1984년 등장한 오펠의 카데트(Kadett) E를 바탕으로 했다. 오펠 카데트 E는 공기역학적인 설계 개념을 도입한 0.32Cd의 낮은 공기저항 계수와 이를 더욱 강조하는 역동적인 인상의 외양을 지니고 있었다. 오펠 카데트 E는 예나 지금이나 열띤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소형차의 메카, 유럽 시장에서 폭스바겐 골프와 직접 경쟁했던 차종으로, 유럽 시장에서 인정한 경쟁력 있는 차종이었다. 대우 르망은 외부 디자인 일부와 실내 디자인 일부, 그리고 파워트레인 일부를 제외하면 설계 대부분이 오펠 카데트 E형과 큰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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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인 르망은 프랑스 서북부의 페이 드 라 루아르(Pays de la Loire) 레지옹의 사르트(Sarthe) 주에 위치한 도시, 르망(Le Mans)에서 가져왔다. 르망은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대회인 ‘르망 24시(24 heures du Mans)’ 내구 레이스가 열리는 그 곳이다. 드라이버와 경주차 모두 심대한 부담이 가해지는 내구 레이스가 펼쳐지는 장소의 이름을 선정한 이면에는 그만큼 강건한 내구성과 우수한 성능을 겸비했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이름은 GM이 당초 수출명으로 정했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대우자동차에서는 르망의 출시 전, 내수용 차량의 차명을 별도로 짓고자 공모까지 했다. 그러나 대우자동차 내부에서 “내수용 차량과 수출용 차량의 이름이 다르면 품질과 성능이 차이가 난다는 이미지를 심어 줄 우려가 있다”는 것을 이유로 GM이 지어 놓은 수출명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 외에도 르망은 미국의 자동차 안전 기준에 대응하기 위해 고성능의 브레이크 시스템과 더불어, 높이조절식 안전벨트와 충돌 시 도어가 차체 바깥쪽으로 나가며 뒷좌석 도어의 잠김을 방지하는 설계까지 적용했다.


오펠이 빚은 날렵한 디자인과 탄탄한 주행성능으로 앞서가다

르망은 출시와 동시에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오펠이 설계한 카데트의 탄탄한 기본기로부터 비롯된 우수한 달리기 성능과 승차감, 그리고 정숙성은 당대의 경쟁자들은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르망은 그 날렵한 이미지의 외모로도 크게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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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망은 4,260mm의 길이와 1,663mm의 폭, 1,362mm의 높이를 가졌다. 휠베이스는 2,520mm로, 이는 당대의 소형 승용차 중 가장 큰 축에 속했다. 르망의 외관 디자인은 전면이 낮고 후면으로 갈수록 치켜 올라가는, 당시로서는 극단적인 쐐기형 차체를 지니고 있었다. 이 덕분에 당대의 그 어떤 소형차에 비해서도 한층 날렵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는 물론, 오펠 카데트와 같이 0.32Cd에 불과한 공기저항계수를 지니게 되었다. 르망의 스타일은 당시 현대차의 포니엑셀 혹은 프레스토의 고전적인 스타일과 확연한 대비를 이루었다.


르망의 심장은 88마력의 성능을 내는 1.5리터(1,498cc) 가솔린 엔진을 주역으로 내세웠다. 이후 96마력의 성능을 내는 1.6리터(1,598cc, 르망 TBI) 가솔린 엔진이 추가되었으며, 88년도에는 컴퓨터제어 연료분사방식인 TBi 엔진을 도입한 96마력 사양의 신형 엔진을 도입했다. 그리고 후대에 등장한 고성능 모델인 르망 임팩트와 이름셔(Irmscher)에는 120마력의 2.0리터 엔진이 탑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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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망의 우수한 주행 성능은 ‘달리는 즐거움’을 어필하기에 충분했다. 당시 르망의 최고속도는 시속 170km/h에 달했다. 국산차의 최고시속 경쟁이 존재했던 그 당시 르망의 톱 스피드는 한참 상위급 차종인 현대차의 쏘나타(165km/h)는 물론, 그랜저(162km/h)마저 앞서는 것이었다. 86년 10월 출시한 3도어 해치백 모델 르망 레이서에 이르면, 경량화와 더 낮은 공기저항 계수에 힘입어, 180km/h의 최고속도를 내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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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스타일과 주행성능 양쪽에서 큰 호평을 받은 르망은 대우자동차 역사 상 가장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모델이기도 하다. 르망은 데뷔 첫 해인 1986년에만 1만 6천대를 넘게 판매하였으며 이듬해인 1987년에는 세단형 모델이 4만 2천대 가량 판매되면서 프레스토 판매량의 턱 밑까지 쫓아왔다. 그 뿐만 아니라, 3도어 모델인 르망 레이서는 아예 포니엑셀 3도어 모델과 8배 가까이 차이 나는 4,100여대를 팔아 치웠다. 88년, 르망 레이서의 5도어 해치백 버전인 ‘펜타5’ 추가 이후에는 5도어 모델 역시 포니엑셀의 판매량을 바짝 뒤쫓는 등, 현대자동차의 프레스토/포니엑셀과 거의 대등한 수준의 경쟁을 펼쳤다. 물론 이 과정에서 르망은 꾸준히 개량을 거듭하는 한 편, 신규 트림을 꾸준히 신설하며 상품성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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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르망은 ‘뉴 르망’으로 한 차례의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현대차가 ‘제3세대 승용차’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내놓은 신형의 ‘엑셀’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뉴 르망은 오펠 카데트의 기본 디자인 기조를 벗어나, 보다 날렵한 형상의 헤드램프와 더불어 기존의 복잡다단한 트림 구분을 GTi, ETi, STi 등의 3종으로 재편하고 실내 디자인 일부도 국내 시장의 요구에 맞게 변경을 가했다.


물론, 이 이후에도 르망은 끊임 없이 크고 작은 개량을 가했다. 또한, 90년대 초반부터 GM과의 결별을 대비하고 있었던 대우자동차는 92년형 르망에 독자개발한 에스페로의 1.5리터 MPFi 엔진을 탑재한 르망 RTi를 추가했다. 르망 RTi는 높아진 동력성능에 대응하여 서스펜션 등을 추가로 보강하는 등의 개량이 더해졌다.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 르망은 현대차가 내놓은 신세대 소형차인 엑셀과도 경쟁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1994년, 현대자동차가 엑셀의 후속 모델인 ‘엑센트(Accent)’를 내놓으면서 르망의 판매량은 급변하기 시작한다. 혁신적인 디자인과 독자개발 파워트레인의 우수한 성능,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까지 내걸고 나온 엑센트는 젊은 구매층을 상대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르망과 기아 프라이드의 시장 점유율을 빠른 속도로 뺏어 오기 시작했다. 출시한 지 8년이 다되도록 풀 모델 체인지 한 번 없었던 르망으로서는 너무도 벅찬 상대였다.


게다가 대우자동차가 1994년에 내놓은 신형 소형차랍시고 내놓은 ‘씨에로(Cielo)’는 기본적으로 르망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에 불과하여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따라서 대우자동차는 씨에로와 르망을 병행생산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대우자동차가 절치부심 끝에 내놓은 신형 소형차, 라노스가 1996년 하반기에 선보이면서 97년 초, 르망은 만 10년 8개월에 달하는 현역 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이때까지 생산된 르망은 내수 536,254대, 수출 516,099대로, 총 105만 2,353대가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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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르망은 하나의 모델을 오랫동안 생산했던 만큼 상품성의 유지를 위해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만들어졌다. 르망의 바리에이션 중 유명한 모델로는 상기한 르망 레이서와 더불어, 2.0리터 엔진을 얹은 르망 임팩트가 있다. 르망 임팩트는 현대차가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 사상 최초로 내놓은 스페셜티카인 ‘스쿠프’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모델로 알려져 있다. 120마력의 2.0리터 TBi엔진을 장착한 르망 임팩트는 ‘르망이 날개를 달았다’는 광고와 함께 고성능차로서 어필했다. 하지만 ‘2도어 쿠페’라는 스쿠프의 혁신적인 시도에 묻혀 그리 빛을 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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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르망의 수많은 바리에이션 중 자동차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로 통하는 모델이 하나 있다. 바로 르망 이름셔(Irmscher)다. 이름셔는 독일의 튜너로, 과거부터 오랫동안 오펠 차종을 튜닝해 왔으며, 지금도 오펠 차종의 튜닝 사업을 이어 오고 있다. 91년형 모델로 등장한 르망 이름셔는 르망 임팩트를 바탕으로 이름셔의 전용 튜닝 및 외장사양을 더한 모델이다. 이는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시도된 제조사 공식 튜닝 모델이기도 하다.


르망 이름셔는 전용의 4등식 원형 헤드램프와 전후면 에어로파츠, 전용 알로이휠, 이퀄라이저가 포함된 고급 오디오 등이 포함된 최고급 사양의 르망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미 중형차 수준인 800만원대를 호가했던 르망 임팩트도 판매가 부진한 마당에 이름셔의 파츠가 더해진 르망 이름셔는 당시 시작가만 990만원에 달했다. 당시 동사의 중형세단인 프린스가 900만원대 후반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심각하게 비싼 가격이었다. 국내 완성차 제조사의 시도로서는 여러모로 선진적인 시도였음에는 분명하지만, 당시 시장은 이러한 모델을 대중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기에 그리 오래 판매되지 못하고 단종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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