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기업, 하늘을 넘보다

기사입력 2018.01.1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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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항공기. 둘 사이에는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 자동차와 항공기는 비슷한 시점에서 개발되어 서로가 함께 발전되어 왔다. 항공기 역사의 초기, 항공기는 자동차에 사용된 가솔린 엔진으로 힘을 얻었지만 오늘날에는 첨단 기술의 상징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역으로 그 기술들을 자동차에게 전수하고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급속도로 발전을 거듭한 점도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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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세계의 자동차 기업 중에는 항공기를 만들다가 자동차로 전향한 경우도 있지만, 자동차를 만들다가 항공기까지 손을 뻗은 경우도 존재한다. 본 기사에서 다루게 될 이야기들은 자동차 기업으로 시작하여 항공기까지 손을 뻗은 사례들에 대하여 다룬다.


엔진으로 땅과 하늘을 모두 누비다 – 롤스로이스

영국에서 태어난 세계 최고의 고급 자동차 제조사 롤스로이스(Rolls-Royce). 롤스로이스는 1906년, 자동차 딜러와 레이서를 병행하던 귀족 출신의 찰스 스튜어트 롤스(Charles S. Rolls)와 전기기술자인 프레드릭 헨리 로이스(Frederick H. Royce)가 공동으로 설립하였다. 롤스로이스는 처음부터 자동차를 제작하는 회사로서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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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그들의 사업은 지상을 넘어 하늘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엔진’. 당시의 항공기와 자동차는 공통적으로 왕복 엔진(Reciprocating Engine)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주류는 단연 가솔린 엔진이었다. 라이트 형제가 처음으로 제작한 동력 비행기인 플라이어 시리즈도 가솔린 왕복엔진을 사용한 항공기다. 왕복 엔진은 이후 제 2차세계대전까지 각종 군용 항공기의 주력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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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자국인 영국을 비롯하여 연합군의 항공 전력에 사용된 수 많은 엔진을 공급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엔진들 중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꼽히는 엔진은 바로, `전쟁을 이긴` 명기, `멀린(Merlin)` 엔진이다. 이 엔진을 사용한 대표적인 항공기로는 영국의 하늘을 지킨, `수퍼마린 스핏파이어(Supermarine Spitfire)`와 `호커 허리케인(Hawker Hurricane)` 전투기 등이 있으며, 미국의 P-51 머스탱에도 탑재, 머스탱의 성능을 비약적으로 끌어 올리며 명작 전투기의 반열에 올리는 데 일조했다. 1944년에는 자사 최초의 제트 엔진을 개발하여 글로스터 미티어(Gloster Meteor) 전투기에 탑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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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는 5~60년대를 전후로, 영국의 산업계에 경영합리화의 바람이 불면서 롤스로이스는 M&A를 통해 그 덩치를 키워갔다. 그리고 프랑스의 스네크마(Snecma)社와 함께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에 탑재된 `올림푸스` 엔진을 개발하는 성과를 올렸다. 또한, 그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록히드 사의 신규 개발 3발 여객기, L-1011에 장착될 새로운 엔진을 개발 및 독점 납품 계약을 따내며,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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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로운 엔진의 개발이 난항을 거듭하면서 록히드에 납품하기가 어려워지자, 1971년에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며, 이어진 영국 정부의 국유화 조치 이후, 자동차 분야와 분사가 진행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한 몸이었던 롤스로이스 자동차와 롤스로이스 엔진이 분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롤스로이스의 자동차 사업부는 현재는 BMW에 인수되어 `롤스로이스 모터카(Rolls-Royce Motor Cars)`로 명성을 잇고 있으며, 중공업 분야는 현재, `롤스로이스 plc(public limited company: 주식회사와 유사한 개념)`라는 이름으로, 영국의 대표 중공업 기업으로 활동하고 있다.


비행기를 ‘찍어 낸’ 자동차 회사 – 재너럴 모터스(GM)

창립 이래 여러 자동차 기업들을 흡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성장을 일궈 나가고 있었던 GM은 막대한 규모의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전간기(戰間期,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사이를 가리키는 말)인 1929년에는 독일에 있는 오펠(Opel)까지 사들였을 정도였다. 이렇게 GM에게 흡수된 여러 기업들 중에는 항공기 엔진을 전문으로 하는 ‘앨리슨(Allison Aero Engine)’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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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세계대전은 GM에게 있어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미군이 요구하는 군수물자의 양은 하늘과 땅, 바다를 가리지 않고 막대했다. GM은 전시생산체제를 통해 별의 별 장비들을 생산했다. 물론 그 중 절대다수는 지상군을 위한 트럭이나 전차 등의 지상장비, 포탄, 대포 및 총기류였다. 그러나 이들 못지않게 만만치 않은 비중을 두고 있었던 분야는 다름 아닌 ‘항공’ 분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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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이 전시생산체제 하에 20만기 이상의 항공기용 엔진과 30만개 가량의 항공기용 자이로스코프(Aircraft Gyroscopes), 그리고 1만 3천기의 함상용 전투기 및 뇌격기를 생산했다. 이 당시 GM이 직접 생산을 전담한 함상용 전술기는 그루먼(Grumman, 現 노스롭 그루먼) 사의 F4F 와일드캣 함상 전투기와 TBM 어벤저 뇌격기(雷擊機)가 있다. GM이 생산한 와일드캣과 어벤저는 미국의 수송선단을 호위하는 소형의 호위항공모함에 주로 탑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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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생산체제 하에 항공기 분야에서 제대로 손을 뻗은 GM은 이후에도 항공 사업이 더 성장할 것으로 보고, 꾸준히 사람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GM은 항공 분야에 있어서 상당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축적해 나갔다. 그리고 이미 선발주자들이 뛰어난 성능의 항공기를 잇달아 탄생시키는 와중에 GM은 1942년, 미 육군이 요구하는 새로운 ‘고속 요격기’ 사업을 수주해내기에 이른다. 이를 발판으로 GM의 항공 산업을 맡고 있었던 피셔 부문(Fisher Division)이 개발해 낸 비행기가 XP-75 이글(Eagl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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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XP-75는 결국 실전에 투입되지는 못하고 시제기 12기만이 제작되는 선에서 정식 채용은 좌절되었다. XP-75는 앨리슨의 강력한 최신형 W형 24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동축반전형  이중 프로펠러로 추진하는 혁신적인 기체였다. 그러나 강력한 출력을 발휘해야 할 터였던 엔진은 고고도에서 제 성능을 내지 못했고 개발일정을 단축시키기 위해 서로 다른 항공기들의 부품들을 전용(轉用)하여 완성하는 바람에 기체 자체의 완성도도 크게 떨어졌다. XP-75는 몇 차례에 걸친 시제기 제작을 통해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수정해 나갔다. 그러나 연합군의 승리가 확실시되면서 프로젝트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1944년에는 프로젝트 자체가 취소되었다.


XP-75의 실패 이래 GM은 더 이상 하늘을 넘보지 않게 되었다. GM은 1947년, 항공관련 사업에서 모두 손을 떼었다. 하지만 수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지상장비 관련 부문은 남겨 놓아, 1950년 ‘GM 디펜스(GM Defence)’를 따로 설립하여 90년대까지 운영했다.


자동차 기업, 하늘을 넘어 우주까지 넘보다 – 크라이슬러

현재 이탈리아 피아트의 산하에 있는 크라이슬러. 하지만 그 과거는 꽤나 화려했다. 크라이슬러는 GM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시생산체제 하에 수많은 양의 전시 물자와 장비를 생산했다. 당시 크라이슬러는 전차 생산의 핵심기지 중 하나였으며, 다수의 자주포도 생산했다. 크라이슬러의 산하 브랜드인 사륜구동 자동차의 대명사 ‘지프(Jeep)’도 이 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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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크라이슬러의 손은 하늘에도 닿아 있었다. 크라이슬러의 손길이 닿은 항공기 중 하나가 바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으로 유명한 미군의 중(重)폭격기 ‘B-29 슈퍼포트리스’였다. 크라이슬러는 당대 최신예 폭격기인 B-29를 추진시키기 위한 엔진을 생산하는 역할을 맡아, 종전까지 총 1만 8,000기의 B-29용 엔진을 생산하여 공급했다. 엔진의 생산은 닷지(Dodge)의 시카고 공장에서 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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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슬러는 단순히 기존 엔진의 라이센스 생산 외에도 자체적인 항공기용 엔진도 개발했다. 크라이슬러는 1940년도부터 자체적인 신형 항공기 엔진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 엔진의 이름은 XIV-2220.  약 36.3리터의 배기량에 60도의 뱅크각을 가진 액랭식 V형 16기통 엔진으로, 터보슈퍼차저를 사용하여 2,500마력에 달하는 최고출력을 낼 수 있었다. 이 엔진은 전후 서부전선에서 활약했던 미군의 전투기 P-47 썬더볼트(Thunderbolt)의 성능개선 사업에서 활용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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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슬러 XIV-2220 엔진은 본래 썬더볼트가 사용하고 있었던 더블와스프에 비해 배기량은 약 9.6리터가 더 작았지만 안정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최고출력이 더블와스프의 2,000마력에 비해 훨씬 높았고, 연비마저 더 좋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썬더볼트의 기체 성능(특히, 고고도 성능)을 한층 올려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이 엔진을 실은 시제기 XP-47H는 테스트에서 실제로 뛰어난 성능 향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P-47에 이 엔진이 정식으로 채용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종전과 함께 프로젝트가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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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슬러 XIV-2220 엔진은 당시로서는 독특한 반구형 연소실(Hemispherical combustion chamber)이 특징이었다. 이 반구형 연소실 구조는 오목하게 파인 형상을 취하고 있어, 헤드에서 발생하는 열 손실을 줄일 수 있고, 폭발 행정시 혼합기의 연소속도가 고르기 때문에 노킹과 같은 이상연소가 잘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곧 연소효율의 향상을 의미하며, 연소효율이 좋다는 것은 연비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과 같다. 이에 크라이슬러는 이 엔진을 개발하며 얻은 기술을 자동차 부문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크라이슬러계 V8 엔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헤미(HEMI)’ 엔진이다.


전후에도 크라이슬러는 항공기 사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1950년대에 ‘VZ-6’라는 이름의 수직이착륙 항공기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50년대 미 육군이 내건 비행형 지프(Flying Jeep)에 대한 연구로부터 시작되었다. VZ-6는 기체 전후에 팬을 이용하여 추진하는 소형의 회전익 기체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무거운 중량과 더불어 비행 안정성도 떨어져 채용은 불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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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에 하늘을 넘보고 있었던 크라이슬러는 1950년대에부터 그 너머에 있는 우주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크라이슬러는 1950년 개발이 시작되어 1952년에 실전배치된 탄도 미사일(Ballistic Missile), 레드스톤(PGM-11 Redstone)을 추진하는 로켓을 제작했다. 크라이슬러는 레드스톤의 성공과 함께 미국의 유인 우주비행 계획인 머큐리 계획(Project Mercury)와 같은 우주개발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크라이슬러는 머큐리 계획을 위한 시험용 레드스톤 로켓을 꾸준히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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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비로소 결실을 맺은 것은 머큐리-레드스톤 3호(Mercury-Redstone 3)였다. 머큐리-레드스톤 3호는 미국 최초의 유인우주비행선인 프리덤 7호(Freedon 7)를 우주로 보내기 위한 추진체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외에도 크라이슬러는 아폴로 계획에 사용된 새턴 I-B 로켓의 추진체를 제작하기도 했다. 또한 60년대 이후 크라이슬러는 ‘SERV(Single-stage Earth-orbital Reusable Vehicle)’이라는 우주왕복선 개념을 제안했으나, 이는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그리고 90년대에 이르러, 크라이슬러의 항공우주 분야는 시대를 선도하는 기술력의 상징에서 비용만 잡아 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본업인 자동차 역시 부진을 거듭했다. 그리하여 결국 1997년, 메르세데스-벤츠가 속한 다임러AG에 합병되었고, 크라이슬러의 항공우주부문 일부는 미국의 방산업체인 레이시온(Raytheon)社에 합병되었다.


바퀴로 시작해 날개까지... 창업주의 염원을 이루다 – 혼다

일본은 구 일본제국 시절부터 나카지마, 미쓰비시, 신메이와 등, 자체적으로 항공기를 생산한 기업들이 존재했다. 전후 이 기업들은 GHQ(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재벌 해체 과정에서 항공기 제작을 금지 당했고 나카지마와 미쓰비시는 해체 수순을 밟았다. 이 때 해체된 나카지마 출신의 인력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자동차 기업이 프린스 자동차(후에 닛산자동차에 합병됨)와 스바루다. 미쓰비시는 60년대 들어서 자동차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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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퀴로 시작해서 날개까지 오른 기업이 비교적 근래에 생겼다. 바로 혼다기연공업(이하 혼다)이다. 전쟁이 끝난 1946년, ‘혼다 기술연구소’를 설립, 일반 자전거에 원동기를 장착하는 패키지를 개발/제작하면서 그들의 역사를 시작했다. 바퀴 달린 탈것의 가장 원초적인 단계에서부터 사업을 시작한 혼다는 끊임 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점차 그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들의 사업은 원동기장치 자전거에서부터 고성능의 이륜자동차는 물론, 사륜자동차까지 확대되었다. 심지어는 잔디깎이, 예초기, 발전기 등에 사용되는 각종 엔진과 더불어 소형 선박용의 선외기(Outboard Motor)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그야말로 ‘엔진 달린 물건은 다 만드는’ 회사가 바로 혼다다. 지상은 물론 바다까지 진출한 그들에게 미답의 영역이란 오직 ‘하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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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혼다의 창업주인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가 가장 갈구했던 영역이기도 했다. 혼다의 이륜차사업부가 날개 형상의 CI를 사용하는 것도 창업주인 혼다 소이치로가 가졌던 하늘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이미 1940년대부터 항공기의 개발을 구상하고 있었다. 혼다 소이치로는 1962년, 항공 산업으로의 진출을 선언했고 1964년부터 혼다 항공을 설립하여 항공기를 위한 가스터빈 엔진 연구를 시작으로 항공 산업을 위한 초석 닦기에 나섰다. 이어 1986년에는 혼다기술연구센터에서 항공기 기술 연구를 진행하고 미국 미시시피 주립대학의 비행연구소와도 제휴를 맺는 등, 다양한 방향으로 기술을 습득해 나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생전에는 자사에서 제작한 항공기가 하늘을 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혼다의 항공사업은 초기부터 사륜차를 비롯한 다른 사업부 간의 기술 연계성이 낮았다. 또한, 막대한 개발 비용 소요로 인해 혼다의 재정을 괴롭혀 온 애물단지로 취급되어 사내에서도 시선이 나빴다. 혼다의 첫 항공기인 ‘HA-420 혼다제트(Hondajet)’의 개발은 그의 사후 6년이나 지난 1997년에서야 간신히 시작되어 2003년에 시제기를 제작, 초도 비행에 성공하였다. 따라서 혼다는 2009년에 양산형 기체의 초도비행을 실시하여 2010년경부터 납품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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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과정도 녹록치 않았다. 혼다제트는 개발 일정이 잇달아 지연되면서 2010년에야 형식 인증을 위한 초도비행을 완료할 수 있었다. 양산형 기체의 초도 비행 역시 늦어져, 2014년에야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 미국연방항공국에서 기체 형식 인증을 취득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하늘을 누빌 수 있게 되었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유럽과 캐나다 등에서도 형식 인증을 취득하면서 본격적인 비즈니스 제트 시장에 돌입했다. 혼다제트는 2017년 상반기부터 시판을 개시하자마자 무려 100대 이상의 판매를 성사시키는 기염을 토하며 제트기 시장의 `무서운 신인`으로 떠올랐다. 혼다제트는 2017년 상반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출하된 제트기로 이름을 올렸다.


혼다제트는 엔진이 주익 상단에 위치한 독특한 형태를 띄고 있으며, 동급에서 가장 뛰어난 비행 성능과 항속거리, 그리고 우수한 공간 활용성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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